신재철 목사 / 초원교회 원로, 부산외국어대학교 초빙교수
고려 교단과 고신교단의 분열과 통합의 역사를 간략하게 기록해 공개하고 있다. 고려 교단은 1975년 ‘반고소 고려’라는 교단으로 출발했다. 이는 고신교단은 성도 간의 불신 법정 소송을 감행한 교단임을 밝히면서 자신들은 성경에 근거하여 신앙을 사수하는 교단임을 강조한 명칭이다.
이 교단은 하찬권의 반고소 사상을 석원태가 정략적으로 이용하여 성장시켰음을 이미 밝혔다. 석원태는 경향교회 담임목사직과 상당 기간 고려신학교장직을 겸하면서 언제든지 고신총회가 소송 문제를 23회 총회의 결의대로 소송 불가로 환원한다면 고신교단과 통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역사의 노정 속에 이는 생존전략을 위한 홍보였음이 드러났다.
‘반고소 고려’는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는 교단 명으로 성장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판단하여 고려로 개명하였다. 고려 교단은 체계적인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였다. 다만 석 목사가 주장하는 바를 그대로 소논문 형식으로 기록하여 고려 교단이 고신교단과 달리 성경 절대 신앙의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활용했다.
그러던 중 필자가 고신대학교 대학원에서 200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 교단의 형성과 발전(1975-2001)'이란 논문으로 신학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 논문은 제목대로 고려 교단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다루었다. 이에 고려 교단에서는 고려역사편찬위원회 이름으로 ’고려 25년사‘란 역사책을 출판했다. 이 책의 역사편찬위원장은 후일 자신의 스승에게 필자가 기록한 역사가 사실이고 고려 25년사에 담긴 내용은 사실과 다름을 밝혀 역사의 진실 편으로 돌아섬을 보였다.
필자는 고신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였다는 이유로 고려 교단 인천노회에서는 2000년 10월 정기 노회 시 제명 위기에 봉착했고, 이를 조석연 목사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막아 결과적으로 54개 교회와 조 목사와 필자를 위시한 66명의 목사 등이 고신교단과 부분 합동하여 서경노회가 만들어졌다.
필자는 2006년 8월에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의 송사 문제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란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논문은 반고소를 표방하고 교단을 창설하고 이끈 고려 교단의 역사가 상당 부분 역사 왜곡과 변질이 있었음을 밝혔다. 이에 고려 교단에서는 2007년 10월에 심사위원장이었던 김성욱 교수와 위원인 이상규, 이복수, 심창섭 교수 등의 앞으로’‘신재철 목사 박사학위 논문 재심사 청구에 관한 건’이란 제목으로 내용증명을 보냈다.
“귀교에서 2006년 6월에 박사학위(제목: <불의한 자 앞에서 송사하느냐> 부제: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송사 문제에 대한 역사적 고찰)’를 받은 신재철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고려)의 형성과정을 의도적으로 왜곡함으로써 본 교단의 역사성, 정통성, 정체성을 폄하하였으므로 제57회 총회는 이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아래와 같이 결의하고 이에 <반고소 고려파 교회 형성에 관한 연구: 불의한 자 앞에서 송사하느냐?에 대한 비평적 논고>를 등기(번호:1432901042801)로 보내오니 양지하여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신재철 목사의 논문을 재심사하신 후 박사학위를 취소해 주실 것과 둘째, 그 결과를 본 교단에 통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는 역사편찬 위원회 위원장 강구원 목사와 9명의 위원 그리고 고려 57회 총회장 이무영 목사와 서기 이현상 목사의 이름으로 발송되었다. 이때 5명의 심사위원은 각각 공개토론을 하자는 답을 보냈으나 정작 고려 측에서는 그 후 묵묵부답이었다. 이때 기명된 일부 위원들은 내용증명을 보낸 것을 알지도 못했다고 진술해 줌으로 진실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이후 대한예수교 총회출판국에서 ‘고려총회 40년사’를 2018년 9월에 출판했다. 이 책은 고려총회가 석원태 목사 측과 분리하여 2015년 고신총회와 통합 후 낸 책이었다. 따라서 앞의 ‘고려 25년사’보다는 역사적 진실에 근접한 기록을 담았지만, 전기한 서경노회에 대해서는 침묵 수준이어서 고려총회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이해함에는 보완이 필요했다.
이 책 75면에 “2001년에 54개 교회가 총회를 이탈하여 고신총회에 가입하여 서경노회를 이루었고 그 후 2015년까지 교회들이 총회를 이탈하여 서경노회를 통해 고신총회에 가입했으며 그 숫자가 87 교회에 달했다.”라는 기록이 전부였다. 이 기록의 ‘총회 이탈’이나 ‘고신총회에 가입했다’라는 표현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기록이다. 따라서 고려총회가 고신총회와 통합된 현재에 양 교단의 역사를 합한 하나의 고신 역사를 출판할 때 보완이 필요함이 요구된다.
고신총회는 이상규 교수라는 교계에서 인정받는 역사학자를 위시하여 역사기록자들이 있었기에 1946년 고려신학교 설립과 1952년 총로회 조직 후의 고신교단의 역사를 잘 기술해왔다. 그러다가 2022년에 이상규 교수의 편집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70년사'를 발행하여 균형 잡힌 역사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역사가 정립되는 과정의 역사에 고신교단의 역사기록에도 왜곡과 변질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도 약술함이 본 고의 기술과 독자들의 이해에 필요한 대목으로 여긴다.
- 고신교단의 소송 문제에 대한 역사적 재고찰
- 고신총회와 고려총회 통합합의문
- 고려 교단(총회)과 고신교단(총회)과의 통합
- 고려 교단과 경향교회의 석향교회와 석원태에 대한 소송 포기
- 고려 교단과 경향교회의 석향교회와 석원태에 대한 소송 준비
- 고려 교단 양분과 경향교회의 분열
- 고려 교단과 경향교회의 개혁확산
- 고려총회 특별위원회에서 석원태, 석기현 목사 제명
- 석원태 목사가 속한 서울남노회(고려)의 내분
- 교회사학자 이상규 교수의 고신 역사 기술과 공헌
- 고신총회의 서경노회(무 지역 노회) 허락의 의미
- 고신총회의 교회와 고려총회 교회의 진정한 통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