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새문안교회음악교육원
사진=새문안교회음악교육원

 

김성대 목사 / 예린교회 은퇴목사, 전 부산장신대 교수, Drew University(예배학박사, Ph. D. in Liturgical Studies)

그렇다, 주일예배는 주일에 드려야 한다. 하지만 불가피한 사유로 주일예배를 다른 요일에 드린다고 해서 결코 신학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필자가 중동 카타르에서 근무할 때, 3년 동안 주일예배를 금요일에 드렸다. 왜냐하면 중동 이슬람국가의 공휴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금요일이기 때문에 건설회사 근로자와 직원은 공휴일인 금요일에 모여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순교의 각오로 주일일 일요일 새벽이나 밤에 모여 예배를 드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이 성경학교까지 일요일에 모일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평일(?)인 일요일에는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타르에서 근무하는 한인 근로자들과 가족들은 공휴일인 금요일에 모여 주일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이슬람국가에서 근무하고 거주하는 크리스천들은 금요일에 모여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 내가 근무했던 당시 영국교회도 금요일에 예배를 드렸다.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보자.

2001년에 개봉한, 톰 행크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 Cast Away’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이 회사 전용기를 타고 뉴욕에서 영국으로 가다가 폭풍우를 만나 조난 당했고, 결국 한 무인도에 떨어진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고 며칠 만에 정신을 차린 주인공은 날짜가 언제인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지내다가 4년 만에 구조된다. 만약에 주인공이 무인도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주일예배를 드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날이 목요일이었다면 이 주인공은 지난 4년 동안 무의미한 예배를 드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죄 받아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일요일인 주일에 예배를 드릴 수 있음에도 개인적인 편의를 위해서 다른 시간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잘못된 것이지, 이처럼 불가피한 사유로 주일예배를 다른 요일에 드린다고 해서 결코 신학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예배를 열납해 주실 줄로 믿는다. 실제로 필자가 3년 동안 금요일에 주일예배를 드렸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 한 번도 죄책감이나 죄송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에서 일요일에 주일예배를 드렸던 것보다 더 큰 은혜와 감동이 있는 예배를 드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금요일에도 주일예배를 드려도 괜찮다는 것이다. 무슨 요일이든지 일주일에 한 번 구별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론은 새들백교회는 수요일에 구별된 주일예배를 따로 드렸고, 일요일에 드린 구도자예배는 새신자를 위한 예배였던 것인데 한국교회가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구도자예배를 주일예배 형식으로 드린 것은 잘못이었다. 새들백교회는 구도자예배와 헌신자예배를 따로 드렸던 것이다.

실제로 초대교회로부터 4, 5세기까지는 기독교회의 예배가 말씀 중심의 초신자를 위한 예배와 성만찬 중심의 결신자 예배로 구분하여 드렸다. 예배의 시작은 함께 하였지만 말씀이 끝난 후에는 결신자들만이 남아 별도로 성만찬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새들백교회의 구도자예배는 헌신자예배로 나아가는 시작이고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새들백교회의 구도자예배를 모델로 한 ‘열린 예배’와 호산나뮤직의 ‘경배와 찬양’은 보다 성숙되고 거룩한 예배로 나아가는 하나의 시작이고 과정으로 생각해야 한다.

즉, 우리의 가슴에, 감성에 호소하는, 마음으로 믿게 하는 신앙경험이자 표현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경배와 찬양’에서 정체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가 지향해야 할 다음 단계는 입으로 시인하는 단계 즉, 가슴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보다 성숙된, 이성에 의하여 주도되는 경건한 예배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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