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철 목사 / 초원교회 원로, 부산외국어대학교 초빙교수
2013년 12월 29일 주일에 경향교회 정기 당회가 모였다. 이때 개혁 장로들이 당회장 자격을 잃은 석기현 목사가 당회를 개회함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12월 17일 총회에서와 12월 19일 서울남노회서 제명처리 되었음을 근거로 삼아서다. 그래도 당회를 강행하려 하자 17명의 장로가 당회 장소에서 나왔다.
이들에 대해 경향교회 당회는 모두 즉석에서 33:10으로 제명처리를 했다. 제명된 17명 장로는 김동진, 김석주, 남궁일성, 박현규, 성두용, 손정률, 신세호, 오동환, 이도순, 이성민, 이임관, 이재국, 임명락, 장문식, 장영민, 한성호, 강영기이다. 59명의 장로가 참석한 당회에서 17명이 나오고 이들을 제명하는 안에 반대한 장로가 10인이었으니 총 27명이 개혁 성향을 보였다고 판단된다.
| ‘교회 바로 세우기’ 개혁 장로 측의 송구영신예배(허준박물관 5층, 2013.12.31.) |
거기에 당회에 참석하지 않은 구일옥, 여시동 은퇴 장로를 더하면 29명이 된다. 이는 시간이 갈수록 개혁 성향의 장로들이 그 수가 더해져만 갔음을 입증한다. 이 장로들을 제명한 것은 경향교회가 분열을 택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12월 31일 화요일 송구영신 예배 시 이들은 결별하여 예배를 드렸다. ‘교회 바로 세우기’ 개혁 장로들이 주축이 되어 외부 장소인 한국한의사회(허준 박물관) 5층 강당을 허락받아 예배를 드렸다. 예배는 총회에서 파송을 받은 김수복 목사가 인도하며 설교했고 참석자는 약 400여 명이었다.
분리된 경향교회는 2014년 1월 5일 신년 첫 주일 예배를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에 소재한 김동진 장로가 경영하는 주식회사 카스 양주공장 강당에서 드렸다. 서울에서 멀었음에도 약 500여 명이 참석하여 적지 않은 성도들이 개혁을 간절히 바랐음을 보여주었다. 1월 8일 수요예배는 교구별로 모여 예배를 드렸다.
그러다가 1월 12일 둘째 주일 예배는 일시 임대한 예배 처소(강서구 등촌동 등촌중학교 등마루관)에서 새해 둘째 주 예배를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드렸다. 1월 16일 목요일에는 서울시 강서구 공항대로 484-12에 소재한 등촌중학교 등마루관을 임차 계약하여 그 후 안정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 총회에서 파송을 받은 김수복 목사는 김열 목사가 부임하기까지 자신의 소임을 충실히 감당했다.
분리된 경향교회는 2014년 8월 31일 주일에 당회에서 선정한 김열 목사(고신 측)를 공동의회에서 담임목사로 찬성 98%로 결정했다. 그리고 9월 첫 주일부터 김열 목사가 설교했다. 9월 17일 수요일에는 서울남노회에 상신한 김 열 목사를 위임목사로 추인받았다. 이어 9월 21일 주일에는 교회 명칭을 공동의회를 통해 ‘하나인교회’로 하고 후에 ‘주님의 교회’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9월 27일 주일에는 김열 목사의 취임 감사예배를 드렸다.
경향교회는 석원태 목사가 원로 목사로 그 장남 석기현 목사가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석기현 목사는 부친인 석원태 목사의 불의가 드러나자 개인적으로 혼란을 경험했다. 그리고 공적인 처리 문제로 고통을 맞이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 편보다 부모 편에 서는 과를 범하고 말았다.
석원태 목사를 치리하고 경향교회와의 단절을 요구했던 개혁 성향의 장로들과 성도들의 요구를 결과적으로 거절한 것이다. 그리하여 구일옥, 여시동, 김동진 장로를 위시한 23명의 장로와 약 400여 명의 성도가 1차로 경향교회를 떠나 경향교회 인근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 교회는 불과 한두 주 만에 700여 명의 장년 성도로 면모를 갖추게 된다.
경향교회 분열 과정에서 제3의 교회로 이동한 성도의 수도 하나인교회 성도 수 이상으로 알려졌다. 분열 당시에는 임시로 김수복 목사를 청하여 수습했으나 김열 목사는 고신 교단 출신 목사로 하나인 교회는 결과적으로 고신 교단과 하나가 될 주춧돌을 놓은 셈이 되었다. 이 무렵 천환 총회장을 중심으로 한 고려 교단은 하나인교회와 발맞추어 석원태 목사와의 결별을 시도했다.
그리하여 고려 교단은 총회측(천환 목사)과 이탈측(석원태 목사)으로 양분되는 결과를 낳았다. 2015년 당시 석원태 목사 측은 홍록두 목사를 총회장으로 하여 37개 교회로 알려져 있으나 교세는 미미했다. 천환 목사 측은 190개 교회로 존속하다가 2015년 9월 고신 교단과 합동 시 185개 교회가 합동하게 되었다.
2001년에 장년 성도만도 천명 이상의 교세를 가진 선두교회와 조석연 목사, 의성교회와 황영석 목사 등이 고신 교단으로 통합하여 서경노회가 시작되었다. 당시 교세와 상회 비 등을 생각하면 고려총회와 통합한 2015년에 비해 그 파급력이 뒤지지 않는다. 조석연 목사가 고려 교단의 총회장을 역임했지만, 총회 차원의 통합이 되지 못하였을 뿐이다. 이때의 통합 학습이 2015년 통합에 기초를 놓고 모범사례가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2015년의 통합은 고려와 고신 교단의 총회 차원의 교단 통합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더했다. 그러나 2001년에 고려 교단을 떠난 교회와 인사들은 그 당시에 남은 고려의 형제들과 행복한 이별을 하지 못하였다. 남은 자들이 석원태 목사를 무조건 옹호하면서 떠나는 자들의 개혁 요구에 귀를 기울이거나 함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석연 목사 등 앞서 나온 자들은 총회 간 통합에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늦게라도 실체를 알고 바른 교회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근거를 고신 교단과 통합하여 진행함에 환영하고 격려했다. 2001년에 먼저 아픔을 가지고 떠난 형제들에 대해 늦게 온 고려 형제들은 미안한 마음을 직간접적으로 표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 고려와 고신 교단은 물론 시차를 두고 고신 교단으로 온 고려 형제의 하나 됨도 이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