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철 목사 / 초원교회 원로, 부산외국어대학교 초빙교수

 

고신교단은 성도 간의 불신 법정 소송 문제로 분열되었고 이후 통합의 역사를 이루었음을 약술했다. 1984년에 고려 교단의 고려신학교 34회 졸업생들이 중심이 되어 고신교단과 부분 통합했다. 이들은 2001년에 조석연 목사를 중심으로 한 고려 형제들이 고신교단으로 이동하는 데 디딤돌 역할을 했다는 의미가 있다.
 

2001년 4월에 고려 교단 총회장을 역임한 조석연 목사와 66명의 목사, 5명의 선교사, 10명의 강도사, 장로 50명, 강도사 후보 2명과 신학생 8명을 포함한 성도들이 고신교단으로 합동했다. 소송 문제로 분열을 겪은 고신 50회 총회(2000.9.25.-29)에서는 고려 교단과의 합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9인의 합동 추진위원회(위원장: 이금조 목사)를 구성하고 고려와 합동을 기대했다.


그러나 고려 교단은 2000년 10월 16일 총회 운영위원회와 각 노회 임원과 고려신학교 교수 연석회의를 소집하여 고신교단의 합동 추진 제안에 대한 반대의 뜻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12월 14일에는 고려 교단의 석원태 목사에게 17개 항의 개혁건의안을 올린 조석연 목사를 총회재판국을 열어 5.6계명을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제명을 결의했다. 부모인 석 목사를 공경하지 않았고 조 목사의 행위가 교단을 깨는 살인 행위라는 죄목이었다.


이에 조 목사는 석 목사에게 개혁 건의를 했던 과정과 의미 등을 담은 석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조 목사와 뜻을 같이한 상기한 인사들과 54개 교회가 고려 교단을 떠나 고신교단으로 합동했다. 이때 고신 측의 합동 추진위원회는 고려 측을 배려하여 고신교단에서는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무 지역 노회인 서경 노회 설립을 허락했다.


서경 노회는 1934년생인 석원태 목사가 은퇴하기까지 존속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때까지 추가로 고신 측으로 이동할 교회와 목사가 있을 것을 예상한 합의였다. 그러나 그 후 서경 노회는 2018년에 완전히 고신교단의 지역 노회로 이동하기까지 존속했다.


고신총회에서 서경 노회를 허락한 점과 애초의 약속인 3년을 넘어 무려 17년을 존속시킨 것은 그만큼 합동에 대하여 간절함이 있었고 부분 합동 후 고려 측에서 온 형제들이 잘 적응하도록 배려한 조치였다. 석원태 목사가 은퇴한 2004년이 되자 고려 측 인사들은 개척교회와 특히 미자립교회의 형편상 바로 고신교단의 지역 노회로 가면 후원을 받는 문제에 이상이 생긴다는 점을 들어 노회 존립의 연장을 구했다. 또한 석 목사가 은퇴하였으니 고려 측의 지도력 공백으로 더 많은 고려 형제가 고신 측으로 올 것이란 예상까지 한 조치였다. 고신총회는 그만큼 고려 형제들에게 대한 배려를 했다.
 

선두교회 전경
선두교회 전경
선두교회 예배 모습
선두교회 예배 모습


당시 조석연 목사가 담임하는 선두교회와 황영석 목사가 담임하는 의성교회 등은 고려 교단에서 행했던 대로 교회 예산의 3% 이상을 서경노회를 위해 후원했다. 이를 노회 전도부와 선교부를 통해 적절히 재정이 어려운 형편의 교회를 후원함으로 고려 교단에 있을 때와 같은 형제애를 발휘했다. 조 목사는 서경노회의 어려운 형편의 목회자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의 학비 전액을 교회에서 부담하도록 조치도 했고 성미를 필요한 대로 공급하게도 했다.


고신교단의 여러 교회와 총회 산하 단체에서는 조석연 목사를 강사로 부흥회와 세미나를 했다. 고신 측에서는 석원태 목사가 고신교단이 낳은 특별한 설교자로 인식했었다. 이 교단의 2인자 격인 조 목사를 청하여 설교를 들으면서 석 목사와는 다른 스타일로 큰 은혜가 있다며 감사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조 목사는 약 200여 교회의 강사로 요청을 받아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다.
 

조석연 목사와 함께
조석연 목사와 함께


조 목사는 집회 인도를 통하여 고려 교단의 위상을 높였고 고신교단의 지도자들과 교제하면서 합동의 성숙을 이루어갔다. 조 목사와 해병대 복무를 같이 감당했던 생수 교회의 이길봉 목사는 필자가 고려신학교 42회로 선배 대열에 있지만, 서경노회의 직을 맡지 않기를 권했다. 서경노회 설립의 주역 중 한 사람인 내가 임원과 같은 직을 맡기 위해 개혁의 일선에 섰다고 고려 교단에 남은 형제들에게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고려 측의 지도자는 그런 식으로 호도했었다.


이길봉 목사의 간절한 권유와 요청이 없었어도 필자는 그러한 직에는 연연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이들이 직을 맡아 감당하게 함으로 노회에 관심을 가지는 목사들이 많도록 배후에서 역할을 했다. 필자는 조 목사가 고려와 고신교단의 합동에 실제적인 주역이었음에도 총회 대 총회 차원의 합동이 아닌 부분 합동이란 이유에서 기록을 제한시키는 것은 역사학도의 할 일이 아님을 중시하고 있다. 오히려 조 목사가 있었고 서경노회가 구성되었기에 이후 고려총회와 고신총회의 총회적 통합이 순조롭게 될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조 목사 역시 서경노회에서 어떤 직도 맡은 바가 없지만, 그의 존재만으로도 서경노회에 힘이 되었고 남은 고려 형제들에게도 고신 측으로 이동해도 지도자가 있다는 안정감을 주었다.


서경 노회의 역대 임원은 아래와 같다.

 

서경노회 역대임원 명단(2001-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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