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연동교회 사경회에서 교회의 서열화 계급화 권력화를 비판했던 이재철 목사(사진=연동교회)
2021년 연동교회 사경회에서 교회의 서열화 계급화 권력화를 비판했던 이재철 목사(사진=연동교회)

 

최삼경 목사 / <빛과소금교회> 원로ㆍ【교회와신앙】대표ㆍ편집발행인

서론: 4번째 글을 쓰면서

필자는 앞의 3번째 글에서 <100주년기념교회>(이후 <100주년교회>)의 장로·권사·집사 호칭제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필자는 이재철이 기성교회(특히 장로교회)의 장로·권사 제도가 계급화되고 권력화되어 천주교와 같이 된다고 지적하고, 그 해결책으로 내세운 것이 선거 없이 장로·권사·집사 명칭만 주는 소위 호칭제란 제도인데, 이재철은 3가지 잘못을 했음을 지적했다.

첫째는 호칭제가 이재철의 진심에서 나온 주장이라면, <100주년교회>는 장로·권사·집사란 제도 자체를 없애고 명칭도 사용하지 않았어야 옳다. 그의 주장처럼 기성교회가 장로 권사란 직분을 팔아먹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면, 이재철은 장로 권사란 이름만 팔아먹어 교회를 부흥시킨 더 악한 사람이란 비난이 가능하다.

둘째는 <100주년교회>는 기성교회와 다른 직분의 다른 명칭을 사용했어야 한다. 가능하면 이름이 좀 이상하게 느껴져도, 봉사의 의미만 나타내고 권세나 계급을 조금도 느낄 수 없는 겸손한 이름을 만들어 사용해야 옳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셋째는 지금의 <100주년교회>의 호칭제는 마약 환자에게 마약을 해결하겠다고 더 나쁜 다른 마약을 먹인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필자는 위 글에서 빠진 두 가지를 발견하였다. 우선 <100주년교회>의 호칭제가 기성교회 교인을 빼앗으려는 꼼수 제도가 아니라면, 기성교회로서는 상상도 못할,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10배 20배 더 어려운 과정을 거쳐 장로와 권사란 이름을 붙여주었어야 옳다. 비록 이름만 주는 ‘호칭제’이지만, 상상도 못할 어려운 과정을 통하여 장로나 권사란 이름을 붙여준다면, <100주년교회>는 지금처럼 대형 교회가 되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호칭제는 또 다른 번영주의요 기복주의요, 장로·권사 이름만 팔아먹는 장사 행위가 아닐까 생각된다.

다음은 이재철이 “장로교 소속의 목사가 장로교에 속하지 않은 교회를 목회하는 것이 과연 위법인가”라는 질문을 하였는데, 그가 진정으로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마땅히 다음 질문도 해야 했다. “<100주년교회>에서 호칭제로 선출된 장로나 권사를 기성교회가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지금 한국교회 상황은 다른 교회, 심지어 다른 교단의 직분 자들마저 어떤 형태로든 인정하는 것이 대세다. 그렇다면 <100주년교회>의 호칭제에 의하여 된 장로나 권사 직분을 기성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이재철은 이 점에 대하여도 생각하고 언급했어야 옳다.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생각하고 답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100주년교회>의 호칭제로 세운 장로·권사는 안수하여 세우는 기성 장로교 장로·권사와는 이름은 같아도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재철이 말로 “<100주년교회>의 장로나 권사는 다른 기성 교회에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100주년교회>만 정통이고 기성교회는 이단’이라고 하거나, 기성교회로부터도 <100주년교회>가 이단 취급 받는 것을 바라거나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로교 소속 목사가 장로교에 속하지 않은 교회를 목회하는 것의 위법 여부를 물을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기 교회에서 호칭제로 된 장로와 권사가 다른 교단의 교회나, 특히 장로교로 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문제를 미리 내다보아야 했다. 그렇지 못하다면 무책임한 것이고 미련한 것이다. 필자는 <100주년교회>의 호칭제의 의미를 모르고, 기성교회가 <100주년교회>의 장로와 권사를 안수한 장로나 권사와 유사한 것으로 이해하고 그대로 그 직분을 받는 것을 보았고, 필자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엄격히 이 교회의 장로와 권사는 기성교회의 장로와 권사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본론: 이재철이 기성교회 목사들이 상상도 못할 퇴직금을 많이 받는다고 비판한 점에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잘못인가?

우선 이재철이 기성교회 목사들의 퇴직금 문제에 대하여 했던 설교부터 살펴보자. 현재 같은 내용의 유튜브 두 개가 인터넷에 떠 있다. 하나는 짧은 유튜브이고 하나는 긴 유튜브인데 핵심은 같은 내용인데, 필자는 2023년 6월 12일에 올린 긴 유튜브를 두고 말하겠다.

그 영상 하단의 문구가 이렇다. “이재철 목사, 이런 대접은 대한민국에서 목사가 유일합니다, 전별금, 집, 월급(받고). 전한대로, 들은 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이 문장만 보아도 일반인이나 기성교회 교인들은 이재철은 성자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반면 그런 퇴직금을 받거나 받으려는 목사들은 사기꾼으로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핵심 내용만 아래에 소개하겠다. https://youtu.be/yzFUrIcPHbM?si=cAQtzfpPcuD5RokM

마태복음 16장 24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주님을 따르는 사람의 대전제입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의 욕심을, 자기의 명예심을, 자기의 이기심을, 자기의 편협한 감정을, 세상에 기인한 자기의 이념을 부인하지 않으면 그 마음속에 하나님 말씀이 담기지 않고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크고 작은 내홍이 있는 것은 전부 이 말씀을 짓밟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목사님들 퇴임하면서 받는 전별금을 보십시오. 봉급쟁이들은 평생 만지지 못하는 돈을 받습니다. 전별금 받고, 집 받고, 그리고 죽을 때까지 봉급 따로 또 받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직업은 목사가 유일합니다. 평생을 “헌신하라.” “자기를 부인하라.” “네 것을 포기하라”고 설교한 사람들이 퇴임할 때는 “내 설교 다 거짓말이었어”라고 하고 퇴임을 합니다.

비판하겠다. 한 마디로 논리적 균형도 없지만 윤리적 균형은 더욱 없다. 기성교회를 비판하기 위하여 만든 왜곡 논리이며, 이재철 자기만 의롭게 보이기에 충분한 영상이다.

첫째, 이재철은 한국교회 모든 은퇴 목사들을 도매금으로 매도하지 말고, 전별금 많이 받고, 집도 받고, 매월 월급을 죽을 때까지 받는 악덕 목사의 실명을 공개하여 비판해주기 바란다.

필자는 평생 많은 비판의 글을 썼지만, 필명이나 이니셜로 처리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가 누구든, 밝혀야 할 진실을 위해서는 오히려 실명을 밝혀 글을 쓰는 편이다. 이재철이 실명을 거론하지 못하겠거든 차라리 이런 비판을 하지 않았어야 옳다.

필자도 이재철의 주장처럼 상상도 못할 퇴직금을 요구하고, 그것도 대접이 아닌 억지를 부려 받아 가는 악한 목사들이 있음을 잘 안다. 만일 필자가 이 문제를 취급하려고 했다면, 필자가 지금 이재철의 이름을 사용하듯 그 악한 목사의 실명을 밝혀 비판했을 것이다. 이렇게 도매금으로 은퇴 목사들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참으로 미련한 짓이고, 그렇지 못한 목사들에 대한 명예훼손 죄가 됨을 알기 바란다. 필자도 은퇴한 한 사람의 목사로 아주 기분이 더럽게 나쁘다. 그 악덕 은퇴 목사들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설교로 다시 유튜브에 올려 주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은퇴 목사들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모든 은퇴 목사들을 도둑으로 몰아간 죄를 공개적으로 회개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이재철이 비난하고 비판하듯 교회로부터 상상도 못 할 돈을 받아 간 악한 은퇴 목사들보다, 오히려 받아야 할 처우조차 받지 못한 비참한 목사가 더 많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재철이 대한민국의 모든 목사들을 다 돈에 환장한 사람처럼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교만으로부터 나온 아주 악한 주장이다. 자세한 것은 후론하겠지만 이재철 자신도 그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교계 은퇴 목사들 중에는 이재철로부터 이런 비판을 받아야 할 목사들보다 이해와 동정을 받아야 할 목사들이 훨씬 더 많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평생 목회에 헌신하고 은퇴 후에 생계유지도 어려운 목사들이 그렇게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왜 이재철 눈에는 그들이 보이지 않을까? 아마 이재철이 워낙 귀족처럼 부자로 살아와서 그런 것으로 본다. 나 배고프면 배부른 사람 모두 도둑놈으로 치부할 가능성이 크고, 나 배부르면 배고픈 수천수만의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이재철은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워낙 큰 사업도 많이 하였고, 상상하지 못할 돈도 벌어본 사람이라고 스스로 설교 시간에 고백하는 것을 들었고, 게다가 목회도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필자 주변에 은퇴 후에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분, 택배를 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필자는 그분들을 이해하고 격려하고 박수까지 보낸다. 은퇴 전에 이중직을 가진 목사를 그렇게 비판하던 이재철로서는, 설사 은퇴했더라도 목사는 굶어 죽으면 죽었지 목구멍을 채우려고 그런 직업을 가지면 안 된다고 할지는 모르겠다. 굶어 죽더라도 이중직은 은퇴 전에도 불가능하고 은퇴 후에도 불가능한지, 이재철이 직접 대답해 주면 고맙겠다.

목회를 평생 진실하게 했지만 교회를 부흥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교회 쌀독이 텅텅 비어 있어 아무것도 주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한 목사들이 참으로 많다. 거기다 교회에 돈이 있어도, 교인들의 배신으로 불행한 노후를 맞은 목사도 적지 않다. 성공은 진실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비례하는 것이다. 아니 진실한 사람보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사람이 교회를 더 부흥시키는지도 모른다.

대형교회 목사 중에 청렴한 목사도 많다. 대표적으로 한경직 목사님을 들 수 있다. 한 목사님에게도 실수가 있으셨지만, 그를 존경하는 것은 그 청렴성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교회 목사 중에 황제와 대통령처럼 군림하고 누리는 목사들도 적지 않다. 목사가 바른 양심이라면 교회 헌금으로 비자금을 만드는 것 자체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만들어 그로 인하여 장로가 자살까지 하는 그런 교회 목사를 일컫는 것이다. 돈 때문에 이미 정해진 교단법까지 어겨가며 세습하고, 또 돈으로 불법을 막아내는 목사가 바로 이재철이 비판해야 할 대상이 아닐까.

필자는 12년 동안 김삼환 목사와 싸웠고 앞으로도 싸울 것이다. 그런데 이재철이 이런 김삼환 목사를 실명으로 공격한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자신을 면직시켰다는 이유로 교단 내 순진하고 죄 없는 착한 목사들을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큰 죄를 짓지 말고, 김삼환 목사 같은 사람을 실명으로 비판하는 용기를 내보기 바란다.

셋째, 목사는 세상의 잣대로는 계산하기 어려운 요소가 있다.

“돈은 모든 것을 말해 준다”는 말은 맞다고 본다. 돈 하나만 보면 그의 인격, 신앙, 정직, 가치관 등을 다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세상 기준과 목사의 기준은 좀 다르다.

세상은 일찍 은퇴하지만, 대신 월급에 실업수당도 있고, 은퇴금 예치도 미리 하여 꾸준히 일을 했다면 노후가 어느 정도 보장된다. 그런데 교회는 그렇지 못하다. 목회 초기에는 교회마다 너무 열악하여 먹고 살기도 힘들어 대부분 노후 준비란 말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가장 개혁을 많이 외친 한 목사가 고생하는 구 소련 지역의 선교사들을 모아놓고 “노후 준비를 잘하라. 나는 노후 준비가 다 됐다”고 하자, 선교사들은 그 부자 목사에게 “우리에게는 노후 준비란 말도 사치스럽다. 당신은 노후 준비를 잘한 능력 있는 부자라고 우리에게 뽐내는 것이냐”고 했다고 들었다.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는 목회자의 절대적 헌신 위에서만 이루어지고 성장한다. 목사는 가진 고향 문중 땅까지 팔아서 다 바치는 경우도 있다. 자식들 못 먹이고 못 입히고, 학원도 보내지 못하고, 모든 것에서 교회를 최우선으로 목회했지만 은퇴 할 때 쯤, 그것도 소수의 목사들만 경제적 안정을 찾기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목사를 평가할 때는 세상의 기준으로만 하면 안 되는 요소가 많다는 점이다. 이재철도 세상을 기준으로 55세에 은퇴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70세에 은퇴했다는 점이 그 한 가지 증거다.

그나마 진실하고 충성했지만, 능력이 부족하거나 다른 외부 요인으로 인하여 교회를 외적으로 부흥시키지 못했고, 그러나 교인들은 목사를 존경하고 사랑해도 노후 준비를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런 목사들은 은퇴 전에도 경제 지옥이었는데, 은퇴 후에도 지옥 생활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그리고 극히 소수이지만 목회에 크게 성공한(?) 목회자들도 60이나 65세가 넘어갈 즈음에 교회의 여유가 생기고, 거기다 교회 빚도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은퇴를 맞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노후를 준비할 시간도 여유도 없는 것이 목회다. 그런 목사를 은퇴 후에 교회가 돌보지 않는다면 그 또한 죄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재철처럼 목사가 되기 전에도 부자요, 목사가 된 후에도 부자인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설사 이재철이 자기 배가 부르더라도 영안이 어두워지지 않고서야 어떻게 배고픈 목사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기 바란다.

“너는 어떤가”라고 물을 것처럼 생각된다. 필자의 은퇴 조건을 가지고 역으로 공격할 사람이 있다면, 그때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조금만 밝히겠다. 필자는 당시 수돗물도 들어오지 않고, 가로등도 없고, 4층 자리 연립형 아파트조차하나 없는 곳에서 시작하여 37년간 목회하고 은퇴했다. 목회도 어려웠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이단 연구도 함께 하였다. 고소만 100회 넘게 당하는 등, 참으로 어렵고 힘든 목회였다. 그러다가 은퇴하기 5년 전쯤에 이르러서야 교회가 손익분기점을 넘기 시작하여 그나마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목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5년으로는 노후를 준비할 시간이 너무 부족하였다. 교회 건축하느라 총회 연금까지 다 해약하여 헌금했는데, 은퇴할 즈음에야 그것이 미련한 짓이었음을 깨달았다. 노후 준비를 하나도 못한 필자를 교회가 잘 해주어 지금 살고 있지만,  만일 은퇴 후에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큰 죄악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재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저울은 다를 수 있다. 주는 자는 많이 주었다 해도, 받는 자는 조금 받았다 하는 것이 인간이다. 세상에서 기업 경영에 크게 성공하면 일반적으로 퇴직금의 10배를 준다고 들었다. 교회도 그런 기준으로 주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목사들도 많이 보았는데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세상과 교회의 기준은 다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있다. “은퇴하는 목사는 도둑놈하고 바보 천치만 있다.”는 것이다. 자기 보기에 조금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면, ‘도둑놈’이라 하고, 자기 기준으로 조금 받았다 하면 ‘바보’라고 한다. 똑같은 사람에게 ‘도둑’이라고도 하고, ‘바보’라고도 한다.

얼마나 많이 받으면 이재철로부터 이런 비판을 받아야 할 사람이고, 얼마나 적게 받아야 훌륭한 목사가 되는지 이재철의 기준과 원칙을 알려주면 고맙겠다. 무엇이 이렇게 이재철의 눈을 어둡게 하고, 미련한 판단을 하게 하였을까? 혹시 교만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기 바란다.

넷째, 이재철이 나쁜 은퇴자를 비난하려면, 죽도록 헌신하고 의롭게 살며,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하였지만, 은퇴하고 너무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목사들은 나서서 도와주어야 옳다.

<100주년교회>는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기 때문에 사용하고 남은 헌금이 때로 백 억대가 넘을 때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만큼 이 교회는 경제적 힘이 크다는 증거다. 그 교회가 몇 백억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남은 돈과 함께 교인들로 힘껏 헌금하게 하고, 다른 교회들로 동참하게 하여, 가난한 은퇴 목사들을 돕기 위해 큰일을 해주기 바란다. 그렇게 한다 해도 이재철이 한 비판이 객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필자로부터 이런 비판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이재철이 그런 비판을 하려면 은퇴 후 고생하는 훌륭한 은퇴 목사들을 돕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섯째, 이재철 목사는 3억 5천이란 거금(?)을 교회로부터 차용하여 20년 거치로 갚기로 하였는데, 이 정도는 청렴한 목사로 보아야 하는가? 이재철의 가진 기준으로는 부끄러운 일인가? 아니면 옳은 일인가?

<100주년교회> 운영위원회가 은퇴한 이재철의 집을 사주고, 매월 600만 원 정도의 생활비를 후원하며, 연 4회씩 부부가 해외에 갈 때 비즈니스석으로 갈 수 있도록 결정한 일이 있다. 나중에 일부는 거절했다고 하지만 사전에 이재철과 교감 속에서 이루어진 일인지 운영위원회의 독단적인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 내용은 이렇다. “이재철 전 담임목사 재정지원 관련 교회 대표단의 경남 거창 소재 사택 방문 결과에 대해 보고함. 지난 2월 26일 정철길 전 재정팀장과 A〇〇 현 재정팀장이 방문하여 지난 제169차(운영위원회) 내용을 재건의 한 바 퇴임 당시와 동일하게 마음만 받겠다고 상임위의 제안을 완곡히 거절하였음을 밝힘” 이어서 나오는 내용이다. “다만, 제1별관을 교회학교 예배 공간으로 헌납하면서(2006.8.) 발생된 빚의 남은 금액 3억 5천만 원을 거창 소재 집을 담보로 교회에서 대출해 주면 좋겠다고 제안함. 대출 기간 15년(단, 5년 1회 연장 가능), 대출이자 상환 시 대출금의 1% 조건(기존 교역자 주택자금 대출 및 학자금 대출 시 동일한 조건임). 이에 상임위원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가결됨...(끝)”

문제는 3억 5천을 이재철이 빌려 달라고 했다는 점이다. 일련의 과정 속에, 지금 이재철이 소유하고 사는 거창의 부동산 중에 일부를 담보로 잡게 하고 그 돈을 차용해 준 것이다. 놀랍고 이상한 점은 네 가지다. 첫째는 이재철이 담임 목사로 있을 때도 아니고, 은퇴할 때도 아닌, 은퇴 후에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부목사에게도 가능한지 묻고 싶다. 둘째는 그 땅의 값은 대출금에 비하면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셋째는 가진 모든 땅을 담보로 제공하지 않았고 일부만 담보로 했다는 점이다. 넷째는 그 돈을 이재철 이름으로 가져간 것이 아니라 홍성사 대표이사인 그의 부인 이름으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2016년 11월 13일에, 이재철이 자기 교회의 재정의 투명성을 자랑하고, 교인도 그렇게 투명하게 살라고 하는 설교를 들었다. 그 기준으로 위 사건에 대하여도 투명한 해명을 기대해 보겠다.

어떤가? 진심으로 필자는 3억 5천이 아닌 그보다 더 많은 35억을 빌려 갔거나, 가져갔다 해도 명분과 사용처가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이라면 비판하지 않겠다. 예를 들어 이재철 사후에 그것을 가난한 은퇴 목사 노후 자금으로 사용하도록 했다고 한다면 말이다.

이재철이 설교 중에 “어떤 사람의 선과 악은 말로 구별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행위를 보아야 한다”고 했다. 100% 맞는 말이다. 결국 3억 5천 차용한 것도 기준에 따라 비판받을 많은 요소를 가진다는 점이다.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지고 자기가 친 올무에 걸리는 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은퇴 후에도 돈을 빌려달라고 교회에 요구하고, 빌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교회도, 그런 권리를 가진 목사도 많지 않다는 점을 알기 바란다. 차라리 은퇴하면서 내가 이렇게는 살 수 없으니 이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으면 정직한 것이다. 그 제보가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지만, 한 제보자의 말에 의하면 이재철 개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다른 사업이 어려워서 빌려 갔다는 말도 들렸다. 그러면 앞으로 이재철이나 가족 중에 어려움이 닥치면 다시 돈을(5억도 10억도) 빌려 달라고 할 것이며, 그래서 가족들 이름으로 가진 부동산을 다 담보로 제공하지 않고 남겨둔 것인가라는 질문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 10명 중에, 9명이 잡아야 할 무장 강도이고 그중에 1명이 민간인이라도 거기에 기관총을 난사할 수 없는 것이 성도와 목사의 윤리다.

청백리로 인정받고 속으로 알부자가 되는 길은 없고, 없어야 한다. 애국자로 인정받고 불법으로 정권까지 잡는 일도 없고, 없어야 한다. 이재철은 다른 목사와 달리 입만 열면 무차별적으로 목사들과 기성교회를 공격하는 악을 저지른 자다. 그런데 10명 중 9명이 잡아야 할 무장 강도가 아니라, 그중에 1-2명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10명 모두 무장 강도로 만들어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나 반성하기 바란다.

필자와 이재철이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물이었다면, 같은 개혁적 의지를 가진 자로 만났을 터인데, 이렇게 만나 애석하다. 다음 5번째 글은 이재철의 이단 문제에 대한 이중적 행태를 비판하겠다. 그 교회 지출을 보니 어떤 이단연구 기관을 돕고 있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단에 대하여 이중 행보를 보이는지 묻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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