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삼경 목사 / 빛과소금교회 원로ㆍ【교회와신앙】대표ㆍ편집발행인
서론: 이재철은 불신자나, 반기독교 단체나, 이단들보다 정통교회를 더 공격하고 비판하는 자다.
어디나 외부인(outsider)과 내부인(insider)이 있고, 따라서 외부인이 하는 비판과 내부인이 하는 비판은 다른 법이다. 목적도 다르고, 자연히 방법도 달라지고 무엇보다 의무와 권리가 달라진다. “이재철의 한국교회 비판은 정도를 벗어났어도 많이 벗어났다”는 비판이 많은 이유를, 겸손하게 그 자신과 그를 지지하는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의 비판은 교회를 사랑하는 내부인으로서 하는 비판이 아니라, 기독교를 무너트리려는 외부인들 즉 이단이나 반기독교단체가 하는 비판보다 더 악하고 더 심한 비판이다.
그러나 이재철과 <100주년기념교회>(이후 100주년교회)는 그럴 자격도 없지만, 그렇게 하는 것에 모순과 악과 거짓이 있다. 믿지 않겠지만 필자는 먼저 이재철 자신을 위하고(그가 필자의 조언을 받아들인다면 만나서 대화할 수 있다.), 다음은 그를 지지하는 분들을 위하고, 나아가 한국교회를 위하여 <100주년교회>의 장로·권사 제도를 살피고자 한다. 따라서 본 3번째 글에서는 <100주년교회>의 소위 ‘장로·권사호칭제’를 분석하고 비판하겠다.
<100주년교회>에서 스스로 호칭제란 말을 먼저 사용했는지 외부에서 그렇게 사용하자 따라서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기성 장로교회는 장로를 교인들의 선거로 뽑는 것에 대하여, 반대 개념으로 그냥 장로 권사로 불러준다는 의미에서 ‘호칭제’로 이해되고, 그것을 계급화되고 권력화되는 제도에 대한 대안처럼 자부심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본론: 이재철은 한국교회 장로·권사 제도는 계급화되고 권력화 되는 것이 문제라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100주년교회>만의 기성교회와 다른 형태의 제도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은 상식적이지도 않지만, 객관적으로 선한 일이 아니다.
이재철은 <100주년교회> 장로·권사호칭제를 가리켜 “한국 교회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과연 <100주년교회>의 장로·권사 제도는 이재철이 지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인가 살펴보자.
1. 이재철이 지적한 한국교회 장로·권사 제도의 문제점은 2가지다.
<100주년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장로·권사호칭제’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새신자반·성숙자반·사명자반 훈련” 등의 나름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 60세 이상”으로 “집사 임명 7년 이상”이 된 자로 “디도서 2:2-3에 합당한 자”를 남자는 장로로 여자는 권사로 임명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재철이 그렇게 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정통교회의 장로·권사 제도는 계급화와 권력화되었고, 그것은 천주교나 다름이 없는 제도라는 것이다.
이재철은 2009년 5월 26일 주일예배 설교에서 “한국교회의 계급화 되고 권력화된 장로·권사 제도에 관한 한 한국 개신교회는 천주교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하며 기성교회의 장로·권사 제도는 비판하고 대신 자기 교회의 제도는 차별화하였다. 그가 지적한 문제의 핵심 두 가지 중에 첫째는 “계급화되고 권력화된 한국 교회의 장로·권사 제도”이다. 옳은 점은 무엇이고 문제점은 무엇일까?
둘째, 이재철은 “장로교 소속의 목사가 장로교에 속하지 않은 교회를 목회하는 것이 과연 위법인가”라는 생뚱맞은 질문을 하여 자신의 호칭제 제도를 합리화하였다.
이재철이 장로교 통합측을 떠나면서 내세운 구실 중에 실질적 이유는 앞의 ‘호칭제’ 문제가 분명하지만, 이재철이 형식상 강조하는 이유는 다르다. 2009년 7월 23일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문제의 핵심은 독립교회인 100주년기념교회가 장로ㆍ권사호칭제를 실시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장로교 소속의 목사가 장로교에 속해 있지 않는 교회를 목회하는 것이 과연 위법인가”라고 말한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왜 위 질문을 하게 되었고, 과연 그것이 장로교를 떠나 더 타락하고 더 무질서한 <카이캄>이라는 독립교단으로 가야 할 이유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자기합리화를 위하여 만들어 낸 이상한 논리요 제도가 분명하다.
2. 이재철의 주장 중에 옳은 것은 무엇인가?
필자가 앞의 2번째 글에서 이재철의 결혼 문제 특히 이혼 문제를 취급하자, 그 기사를 보고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놀라는 사람도 많았고, 소수의 사람 중에 거칠게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이혼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냐”고 하는 분도 보았다. 필자는 이재철의 결혼과 이혼 문제를 취급할 수 없는 개인적인 문제라고 보지 않지만, 본 글에서 취급하려는 장로·권사호칭제 문제에 대하여는 그런 변명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재철을 옹호하는 혹자는 “<100주년교회>의 장로제도를 그냥 그 교회만의 제도로 이해하고 두고 볼 수 없느냐”고 할 것이다. 그럴 수 없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그가 기성 장로교회의 장로·권사 제도를 잘못된 제도라고 지적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신은 다른 형태의 제도를 만들어 동일한 직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자기만 의롭고 바른 것처럼 기성교회를 향해 비판의 원자폭탄을 수도 없이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한국교회가 계급화되고 권력화되는 것을 심각한 문제라는 점에 이재철과 뜻을 같이 한다. 십자가의 정신을 잃어버린 한국교회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심한 비판을 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겠지만, 필자도 교단을 떠나지 않고 나름 그 점을 시정해 보려고 37년 목회하는 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남은 숙제는 필자 후의 후임자들이 할 것으로 기대하고 바란다.
현대 크리스천들 중에 장로가 되려고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되려고 봉사하고, 장로가 되려고 헌금하고, 기도하며, 순종하는 것이 보편적 현상은 아닌지 모르겠다. 원인이 어디에 있고 누구의 책임일까? 초기 선교사님들의 실수도 있다고 보고, 뿌리 깊은 우리 민족의 유교성 때문이기도 하고, 타락한 인간의 본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제도의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목사들의 잘못이 크다고 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개혁해야 할 문제다. 만일 이 점을 고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의 촛대를 옮기실 것만 같아 두려울 정도다. 가장 큰 책임이 필자를 포함한 목사들에게 있다. 노회장이 되고 총회장이 되는 것을 목사된 최상의 영광으로 아는 자들은 목사가 되지 않았어야 할 사람이며, 목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하여, 외부에서는 정치에 힘쓰고, 대신 교회 내부에서는 직분들을 계급으로 은근히 사용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교인들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하여 목회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장로교가 아닌 감리교나 침례교마저 같은 ‘장로병’에 들어 있는 교회들을 볼 때 기가 찰 일이다. 다 십자가가 없는 변질된 교회의 모습이라고 본다.
필자가 모 총회장에게 한 말이다. “봉사와 섬김으로 장로를 세워도 시간이 지나면 완장 찬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 지금의 한국교회 모습인데, 당신은 아예 장로직을 장사하면서 목회하더군요”, 교인들에게 “내가 당신을 장로로 세웠는데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 “당신은 장로가 되고 싶지 않느냐?”, “내가 장로로 세우려고 하는데 왜 순종하지 않느냐?”, “장로 되려면 새벽기도회에 나오고, 헌금을 더 하고, 전도도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이런 식의 목회는 먹이로 사자를 훈련하듯 '장로 먹이'로 교인들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온갖 죄악들이 뒤따른다. 한국교회의 금품 선거, 임직을 헌금 긁어내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전통, 더러운 지방색 등등의 죄가 이곳으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 목사들부터 회개해야 한다. 비록 회개할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해야 옳다. 총회장 선거에 돈을 썼다고 회개한 총회장과 연합기관 대표회장들 몇 사람을 보았다. 그 중에 K 목사와 L 목사도 있다. 그런데 그들의 회개는 회개하려고 한 회개가 아니라, 죄의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하려고 한 거짓된 회개였다.
교단 내에 개혁적 사상을 가진 분들이 앞장서서 개혁의 소리를 크게 내고, 모범을 보이고, 대안도 제시하고, 그리고 엄하게 책망하고 어떤 불이익이 있더라도 싸워야 한다. 그렇다면 이재철의 개혁은 옳은 개혁인가? 아님을 증명하겠다.
3. 이재철이 한 잘못은 무엇인가?
1) 먼저 장로·권사 제도가 계급화 되고 권력화 된 것을 염려했다면 <100주년교회>에는 장로·권사 제도 자체를 없앴어야 주관적 진실이라도 있을 것이다.
어떤 직분도 계급화될 가능성은 있다. 문지기는 문지기로서 큰소리 치는 것이 세상 원리다. 이재철이 직분 자체를 없애고 이런 소리를 했다면 주관적으로는 정직한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100주년교회>의 장로·권사 제도는 계급화되고 권력화된 기성 한국교회에서 얻으려는 욕망을 대신 채우려는 사람들이 몰려갔을 가능성이 크다. 기성 교회에서 아무리 되려고 해도 장로가 될 수 없는 사람들 중, 특히 결함이 많은 사람들까지도 <100주년교회>로 가면 일련의 과정과 시간만 보내면 누구나 장로가 될 수 있고 권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비록 기성교회처럼 권리를 부리는 직분은 아니라고 해도, 같은 장로란 이름을 사용하고 다니고, 그것도 큰 교회 장로라는 점에서 그 교회를 다닐 가능성이 크다. 이 점을 이재철이 결코 모를 리 없다고 본다. 거기에다 그 교회 장로들이 이재철을 닮아 계급화되고 권력화되었다고 기성교회를 비판하는 모습은 가소로워 견딜 수 없다.
‘장로’란 직분은 성경에 나오는 직분이다. 그러나 초대교회 당시의 장로가 지금의 장로와 똑같은 직분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스데반은 집사였지만 지금의 목사와 같은 직분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성경에는 ‘권사’란 직분은 아예 없다. 의미상으로 한국교회가 만들어서 사용하는 직분이다. <100주년교회>는 안수집사도 없고 서리집사만 있다.
만일 이재철 목사가 섬김과 봉사만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모든 직분 자체를 없애고 다 평신도로 신앙생활 하도록 하고도, 지금처럼 부흥시켰다면, 이재철은 다른 형태의 장로 권사 ‘장사’로 교회를 부흥시킨 교회란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듣기에 다니던 교회에서 장로 되지 못한 사람들이 장로 권사가 되려고 그 교회로 옮겨가 그 교회가 부흥되었는데, 자기들 교회는 기성교회처럼 계급화되고 권력화된 장로 권사가 아니라는 꼼수 논리에 속아 숨은 교만(?)까지 가진 장로 권사가 많을 것이다.
2) 아니면 아예 다른 명칭의 직분을 만들어서 세웠어야 옳다.
성경에 없는 권사란 이름을 어차피 만들어서 사용한 것처럼, 얼마든지 성경의 의미를 살려 직분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계급화되고 권력화된 기성교회가 사용하는 장로와 권사와 집사란 이름을 동일하게 사용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기성교회의 모조품이 아닐 수 없다.
장로란 이름을 장로라고 하지 말고, 봉사를 강조하는 의미로 ‘봉로’(奉老)라고 하거나 노예를 의미하는 뜻으로 ‘노로’(奴老)라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과연 이렇게 하자고 할 때, 그 교회 장로들이 수용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다. 기성교회에서는 집사 위에 권사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그 교회도 마찬가지인데, 만일 <100주년교회>에서는 권사를 기성교회 서리집사 수준으로 낮게 만들고, 그 교회가 사용하는 집사를 권사라고 하고, 그리고 지금 권사를 집사란 이름으로 바꾸어서 부른다면 수용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시험해 보았으면 좋겠다.
듣기로 그 교회는 ‘30세 이상이고 세례를 받은 지 1년이 되고, 등록한 지 1년 이상 되는 사람은 모두 집사로 부른다’고 들었다. 추정하기로 그 교회는 모두 장로·권사·집사로 가득할 것이다. 온통 다 직분자일 것이 분명하다. 그 교회는 계급화되고 권력화된 교회가 아니라면 한번 이 집사란 명칭과 권사란 명칭을 바꾸어 사용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지금 그 교회의 제도에서 집사는 권사보다 낮은 직책이 분명한데, 그 때문에 안수집사를 뺐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이재철이 제시해 주면 좋겠다.
이재철과 <100주년교회>가 비록 다른 방법으로, 다른 의미로 뽑고, 기성교회의 계급화되고 권력화된 장로와 권사와 집사가 아니라고 해도, 같은 ‘장로’와 ‘권사’와 ‘집사’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기성교회 직분의 대리만족을 주는 모조품이 아니고 무엇인지 모르겠다.
3) <100주년교회>가 아무리 기성교회와 다른 장로·권사·집사라고 소리를 높여도, 같은 장로·권사·집사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괴성을 지르고 발작하는 마약 환자에게 마약을 먹이고 괴성과 발작이 사라지자 고쳤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말해주기 바란다. 이제 그 마약을 그 교인들에게 더 이상 먹이지 않기 바란다.
4) 이재철이 “장로교 소속의 목사가 장로교에 속해 있지 않는 교회를 목회하는 것이 과연 위법인가”라는 질문은 소가 웃을 질문이다.
예를 들어 장로교 목사가 감리교나 침례교 목사가 되려면 감리교나 침례교 교단 교리와 법을 따르면 된다. 필자가 장로교 합동측에서 공부하고 통합측으로 옮겨와 통합측 교단 법을 따라 모든 과정을 밟고 통합측 목사가 되었다. 청목 과정도 하였고 목사 고시까지 거쳤다.
이재철 목사가 왜 저런 소리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알미니안 교단에서 신학을 한 사람이 장로교로 옮겨 오려면 자신이 가진 알미니안 사상을 버리고 장로교 사상을 가지면 되고, 나머지 형식적 과정을 밟으면 된다. “장로교 소속의 목사가 장로교에 속해 있지 않는 교회를 목회하는 것이 과연 위법인가”라는 질문에 굳이 답을 하자면, 그 위법 여부는 장로교회에서 따질 문제가 아니라 옮겨간 교회와 교단에서 할 일이다. 왜 이런 초등학생도 할 수 없는 질문을 했을까? 자신이 통합교단을 버리고 통합교단보다 훨씬 못한 카이캄이란 교단으로 옮겨가면서 그것을 합리화하고 숨기려는 거짓 질문으로 보인다. 괴상한 원리의 괴상한 교회를 만들고 정통교회와 다른 교회처럼 하려고 만든 꼼수 질문이다.
5) <100주년교회>의 지금의 상임위원회 제도는 과연 한국교회 제도의 모순을 해결해 주는 대안인가, 아니면 더 큰 모순과 부패를 낳을 제도는 아닌가, 오히려 이재철 목사의 절대권력을 보장하는 제도는 아닌가, 혹 아니라면 이재철 사후에도 그것이 유지될 수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현재 기성교회의 법에 문제가 없다고 보지 않는다. 기존의 법 위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의 저항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더 좋고 더 민주적이고 더 도덕적이며, 더 성경에 합당한 법으로 개정해 가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헌법 개정으로 될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적 부흥의 역사와 회개의 역사가 없다면 아무리 법을 최상의 법으로 개정한다 해도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미국은 건국 이래 개헌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 미국을 무질서한 후진국이라고 폄훼하겠는가? 그런가 하면 독립 후 무려 32차례나 개헌한 도미니카공화국(Dominican Republic)을 선진국이라 하겠는가? 꼭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란 점이다.
결론: 장로교의 장로 제도로부터 계급화되고 권력화된 부분이 있다 해도 이재철은 그것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대한민국이 싫어 이민을 갔다면 그는 다른 나라 사람이 된 것이다. 여기에 남아서 끝까지 어떤 불이익을 당하여도 싸우고 노력했다면 무슨 비판이라도 할 자격이 있다. 기성교회의 장로 제도가 문제라고 해놓고 자기도 장로를 뽑는 정직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장로 제도를 비판하는 것은 교만이고 악이다.
부패는 제도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부패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이고, 내적 문제이다. 굳이 교단까지 버리고 면직된 것에 대한 분풀이 하듯이 비판하는 것은 도의상, 윤리상, 그리고 신앙상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재철은 계급화되고 권력화된 교회는 천주교와 같다고 하였는데, 이재철이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하여, 그 교인 중에 천주교로 갔다는 제보도 받았다. 필자의 궁금증은 기존 교회의 장로나 권사 제도를 포기하는 대신, 당회가 없어지고 상임위원회라라는 기구로 기존 교회 당회 구실을 하게 하는 <100주년교회>의 제도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대안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독립교단의 최대의 문제이며 구조적 악이 거기에 있다. 그래서 이단들과 독재자들과 부패한 목사들이 독립교단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성교단이 타락해서 독립교단이 생겼다면 기성교회가 회개할 일이다. 대신 독립교단이 노회나 총회의 간섭을 벗어나 맘대로 하려는 독재자나 이단이나 타락한 목회자들의 은신처가 되었다면, 독립교단의 가장 큰 구조적 악이 아닐 수 없다. 이재철이 카이캄의 문제를 비판하고 그곳에서도 개혁하려는 의지를 보인다면 그나마 존경받을 일이다. 기성교회가 부패한 노회나 총회 속에서 의로운 목회자가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적 악이 있다면, <100주년교회>는 목사 한 사람만 부패하면 다 부패할 수 있는 구조적 악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재철이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총회와 노회와 대화하고 설득하고 양보하여 교단을 떠나지 않고 개혁하려고 했다면 필자와 뜻을 같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필자의 글을 통해 자기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양화진 문제가 간단하지 않고 복잡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이재철 개인은 아픔을 버리고, 양화진 관리를 공적으로 한국교회와 함께 관리하도록 할 의향만 있다면, 필자는 모든 비판을 중단하고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면서 3번째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