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무종 / 편집부국장

아무래도 가장 많이 찍는 사진은 인물 사진일 것이다. 이른 바 인증샷이다. 대부분 뷰 파인더에 인물이나 얼굴이 보이면 셔터를 누른다. 묻지도 않고 따질 필요도 없이. 똑똑한 스마트폰이 다 알아서 해 주니까. 그게 요즘 사진 문화다. 편리함은 부작용도 부른다. 오토 기능 탓에 사진 실력이 늘지 않는다. 늘 필요도 없고 늘어야 한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면 가끔 이상한 장면도 보인다. 하고 많은 장소 중에 하필이면 휴지통 옆에서 찍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화장실 앞에서 찍는 사람도 있다. 왜 그럴까?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우선 인간은 의존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폐쇄 공포증도 있지만 광장 공포증이 있다. 너무 좁은 공간이나 아주 넓은 공간에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누군가 무엇인가 기댈 만한 것을 찾고 싶어 한다. 다른 하나는 자기를 찍어줄 사람, 카메라만 보기 때문이다. 사진은 찍는 사람도 잘 찍어야 하지만 찍히는 사람도 '잘 찍힐 줄 알아야' 한다. 잘 찍히려면 뒤도 봐야 한다. 포즈를 잡기 전에 먼저 배경을 보아야 한다. 나만 찍히지 않고 배경도 찍히기 때문이다. 찍는 사람도 먼저 배경 보고 다음에 찍어줄 사람을 보아야 한다.

그만큼 사진에서 배경은 중요하다. 다시 말하거니와 잘 찍어주어야 하지만 잘 찍힐 줄도 알아야 한다. 일행이 걸어가고 있다 하자. 저 앞쪽에 카메라가 있다면 어떻게 찍혀야 할까? 우선 앞사람 때문에 내 몸이 가려지지 않아야 한다. 그럼 어떻게 걷지? 일렬횡대로 걸으면 된다. 만약 여럿이 좁은 길이나 오솔길을 걸을 때는 어떻게 할까? 찍는 사람이 빨리 움직이는 수고를 해야 한다. 오솔길 옆으로 가서 일렬종대로 걸어가는 사람을 찍으면 된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는 인물과 인물의 실루엣, 특히 얼굴이 가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내가 찍힌 사진을 보는데 내 얼굴이 앞 사람 때문에 가려졌다면 기분 좋게 여길 사람이 있겠는가. 간혹 결혼식장에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사진가가 몇 번이고 앞 사람의 얼굴과 얼굴 사이라도 얼굴을 보이게 하라고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찍히는 사람은 1/n이 아니라 온전한 한 사람 아닌가.

사진 찍기 좋은 곳은 어디일까? 검색하면 곳곳마다 8경이다 10경이다 하며 뜬다. 종종 지인들이 사진 찍으러 가보라는 곳이 있다. 전해 들은 대로 역시 잘 왔구나 할 때도 있지만 실망할 때가 많다. 사진을 아는 사람이 추천하는 장소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추천하는 장소는 다르기 때문이다. 너무 복잡하고 정리되지 않은 곳은 찍기 힘들다. 게다가 너무 많은 것을 설치했거나 복잡하게 이것저것 온갖 것이 있으면 정말 힘들다. 배경이 너무 복잡해서 정리된 사진을 찍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관광객들 유치엔 좋고 지역경제 활성화엔 도움 될 수 있겠지만. 할 수 있으면 배경은 간단한 곳, 심플하고 깔끔할수록 좋다.

순례보다는 답사란 표현을 좋아한다. 우리 개신교의 이른바 성지순례는 순례보다는 답사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2018년 노회 시찰회에서 유럽 종교개혁지 ‘답사’를 했다. 종교개혁 500주년 다음 해를 택한 것은 전 세계에서 몰려들 인파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후배 목사 부부는 거의 매번 나보다 몇 걸음 앞서가는데, 도착해서 포즈를 취하는 지점은 대부분 포토 존이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결코 경치 좋은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찾아간 그 장소에서 가장 중요한 곳, 꼭 내가 찍히고 싶은 곳, 종교개혁과 관련된 것을 배경으로 하는 의미 있는 장소였다. 종교적 센스일까 아니면 미리 그곳을 공부했기 때문일까. 사진은 배경이다.

한 번은 충남 아산으로 출사를 간 적이 있다. 아산에는 현충사도 있지만 공세리 성당도 있고 외암 마을도 있다. 특히 외암 마을은 구불구불한 골목과 정겨운 돌담이 있어 초가와 어울리고 기와집과 조화를 이룬 민속 마을이다. 게다가 마을 가운데로 물도랑이 있고 마을 앞은 논밭도 있다.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데 어느 기와집에 들어서니 마당에 소품들이 이리저리 놓여 있다. 뭔가 촬영하려는 모양이다. 아직 카메라맨도 배우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한 사람이 사다리를 이용해 기와집 처마 아래 벽에 소품들을 걸고 있다. 순간, 호기심과 관심이 작동한다. 지켜보기로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냥 걸고 싶은 대로 거는 것이 아니다. 지게와 소쿠리 같은 것을 걸되, 비례와 균형에 맞게 조화까지 생각하며 걸고 있다. 드라마 화면에서 출연자들의 동선과 표정 그리고 대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보여주는 배경이다. 스쳐 지나가는 단 몇 초를 위해 스텝들은 촬영에 앞서 그렇게 열심히 땀 흘린다. 사진은 배경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봉준호 감독은 반지하층에 사는 가족의 현재 상황은 물론, 벽에 걸린 작은 소품들을 통해 과거 역사까지 배경 화면에서 연출하였다. 몇 달 동안 미술팀, 소품팀, 제작부 스태프들이 동원돼 옛날 타일, 문짝, 샷시, 방충망, 유리창 같은 소품을 직접 발품을 팔아 가며 구했다고 한다. 실제 봉 감독은 미시적이고 세밀하게 보이기 위해 미술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말까지 했다. 스쳐 지나가는 배경까지도 이토록 치밀하게 구성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배경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층에 사는 가족이 피자 상자를 접고 있다(출처=씨네21)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층에 사는 가족이 피자 상자를 접고 있다(출처=씨네21)

사진은 배경이라 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① 배경에 인물의 머리 위쪽에 세로선을 두지 말자. 큰 결례이다. 정수리에 대못을 박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찍는 사람이 좌우로 움직이든지 찍히는 사람을 좌우로 움직이게 하면 된다. 조금만 신경 쓰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② 인물의 목으로 가로선을 두지 말자. 해수욕장에서 사진을 찍을 때면 대부분 바닷가 모래 위에 인물이 서고 배경은 바다이다. 그냥 셔터를 누르면 8~90은 그 사람의 목 부분 뒤쪽에 수평선이 지나가게 되어 있다. 평야에서 찍을 때는 지평선이 목을 지나가기 쉽다. 주의하자. 자칫 그를 사진으로 참수(斬首)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몰랐다면 다행이다. 그럴 경우 카메라 높이를 조금 낮추든지 높이든지 하자. 조금만 신경 쓰면 죽이지 않고 살릴 수 있다.

③ 주피사체인 인물의 실루엣을 살려주자. 우리가 가는 곳은 대개 다른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포토 존에서 찍으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앞이나 뒤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생긴다. 어떻게 할까. 조금만 기다리자. 적어도 주피사체인 인물이 앞뒤로 지나가는 사람과 겹치지 않는 순간에 셔터를 누르도록 하자.

④ 배경이 좋으면 조리개를 개방하자. f(조리개) 값을 11 이상으로 높여서 인물과 배경 모두를 살려주는 것이 기본이다. 물론 기본일 뿐 의무는 아니다. 반대로 배경을 흐리게 하고 싶다면 f(조리개) 값을 4~5 이하로 낮추면 좋다. 입체적인 사진을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 배경이 별로라면 조리개 값을 낮추는 것이 좋다. 반면 초점에 신경을 써야 한다. 조리개 값이 낮을수록 초점 범위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초점은 반드시 인물의 눈에 맞추어야 한다. 굉장히 중요하다. 초점이 눈을 벗어나면 사진을 망친다. 스마트폰일 경우 스크린에 나타난 주피사체인 인물의 얼굴 부위를 터치하여 초점을 잡으면 된다.

f값을 낮추어 배경을 흐리개 한 샷 @Pixabay.com
f값을 낮추어 배경을 흐리개 한 샷 @Pixabay.com

⑤ 절경이라고, 배경이 좋다고 무조건 셔터를 누르지 말자. 배경이 좋다고 꼭 좋은 사진이 된다는 법은 없다. 그럴수록 더 신경을 쓰면서 찍어야 한다. 카메라의 오토 기능이 사진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환경이 좋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는데,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정작 그의 인생이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반면 좋은 환경도 아니고 괜찮은 집안도 아닌데 인물이 된 사람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대표적이다. 장군이 했던 말 몇 가지만 보자.

①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랐다.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할아버지는 8품 봉사직에 있다 조광조 무리로 몰려 파직되었고, 아버지는 과거를 보지 않아 가세가 심하게 기울었다. 외갓집에서 자란 이순신은 풍족하게 크지 못했다.

②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라.

9품 함경도 권관이라는 최하 말직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지냈다.

③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세 번 싸워 스물세 번 이겼다.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활동할 당시 상황은 매우 열악했다. 조정 지원이 적어 스스로 농사지어 전략과 전술에 필요한 군자금을 확보하고, 물자를 보충 공급하는 것도 직접 지휘했다.

④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갖지 마라.

선조의 끊임없는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해야 했다. 두 번의 백의종군을 떠났다. 1차는 1588년 함경도 북병사에서 이일이 지휘한 여진족 토벌전이었던 ‘시전부락 전투’ 당시의 패배를 이유로 백의종군 형에 처했다. 당시 이순신은 녹둔도의 병력이 적은 것을 염려해 이일에게 군사 증원을 요청했지만 이를 들어주지 않았고, 얼마 후 여진족이 녹둔도를 공격해 큰 피해를 입었다. 이일은 자기 잘못이 드러날까 두려워 거짓 장계를 올려 장군은 1차 백의종군에 나서야 했다.

2차 백의종군은 수군을 이끌고 나가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의 함대를 요격하라는 선조의 명령이 함정인 줄 알고 출전을 미루자, 왕명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그를 체포했다. 원균의 모함까지 겹쳐 조정은 삼도수군통제사직을 박탈하고 또 백의종군을 명했다. 한 마디로 배경이 없었다. 집안 배경도 없었고, 줄을 설 줄도 몰랐다. 그럼에도 23전 23승이라는 불패 신화를 기록하며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고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나라 사랑 백성 사랑이 그의 유일한 배경이었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베어> The Bear는 제목처럼 곰이 주인공이다. 아기곰과 함께 지내던 엄마 곰, 굴에서 꿀을 먹으려다 굴러떨어지는 바위에 그만 즉사한다. 야생에 홀로 남은 아기곰. 온갖 일을 겪던 중 사냥꾼의 총에 맞은 수곰을 만나 엄마에게 배운 대로 상처를 핥아주며 둘은 친해진다. 장면이 바뀌어 사냥꾼과 사냥개, 수곰과 아기곰 사이에 이런저런 일이 생기는 데... 아기곰은 사냥꾼의 위협에서는 벗어났지만 수곰이 떠나고 다시 외톨이가 되어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퓨마가 나타나 아기곰을 공격한다. 영화의 클라이막스, 놀란 아기곰은 도망치다 그만 거친 물살에 떠내려간다. 간신히 물살 위에 걸쳐진 나무에 걸려 피하는 듯했지만, 퓨마가 접근하며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진퇴양난이다. 퓨마가 다가오자 비명을 지르는 아기곰, 절체절명이다! 퓨마가 덮치려는 바로 그 순간, 뒤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떠났던 수곰이 우렁차게 포효하는 소리다. 겁먹은 퓨마는 도망치고 아기곰은 위기일발 직전에서 살아난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안다. 아기곰에게 수곰은 든든한 배경이었음을.

영화 '베어' 포스터(1988)
영화 '베어' 포스터(1988)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출애굽할 때 앞에는 홍해이고 뒤에는 애굽 군대, 진퇴양난이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등 뒤에서 방패가 되어 주셨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나님은 우리 방패시고 산성이시다. 우리 배경이시다.

다윗은 그럴 듯한 배경이 없다. 골리앗을 처리한 덕에 왕궁으로 차출되었지만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사울의 갑질에 결국은 쫓기는 인생이 되었다. 아둘람 굴에서 지내기도 하고 블레셋 망명길에는 목숨 부지하려 미친 척도 해야 했다. 그야말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었다. 그 길에서 다윗은 무엇을 배웠을까. 다윗의 간증이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편 18편)

반석, 요새, 건지시는 이, 바위, 방패, 구원의 뿔, 산성- 시 한 편에 하나님을 이렇게 다양하게 은유적으로 표현한 구절이 또 있던가. 어떻게 이토록 놀라운 고백이 터져 나왔을까? 표제어가 가르쳐준다.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심지어 왕이 된 후에는 아들 압살롬이 적으로 바뀐다. 시편 3편은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라는 표제어가 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무엇이 당신의 배경인가? 돈인가 권력인가 연줄인가. 아무런 힘도 빽도 없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그의 배경이 되어주셨다. 누가 당신의 배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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