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갓피플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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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대 목사 / 예린교회 은퇴목사, 전 부산장신대 교수, Drew University(예배학 박사, Ph. D. in Liturgical Studies)
 


지휘자와 반주자에게 사례(謝禮)해야 하는가? 그런 사례(事例)가 성경에 있는가?

남유다 히스기야 왕이 종교개혁을 단행하면서, 제사장을 비롯하여 성전의 직임을 맡은 레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직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활비를 제공하였다.

“히스기야는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을 갈래를 따라 다시 조직하여, 각자에게 특수한 임무를 맡겼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각자 맡은 임무에 따라, 번제를 드리는 일, 화목제를 드리는 일, 성전 예배에 참석하는 일, 주의 성전의 여러 곳에서 찬양과 감사의 노래를 부르는 일을 하였다... 그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주의 율법을 지키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려고,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에게 명령을 내려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몫을 가져오게 하였다.” (새번역 역대하 31:2,4)

남유다 요시야 왕도 성전 음악가들이 자신의 직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레위지파 친족들이 그들의 생활비를 지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노래하는 사람들이나 문을 지키는 사람들이 그들의 근무 장소에서 떠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은, 그들의 친족 레위 사람들이 그들의 몫을 준비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새번역 역대하 35:15b)

심지어 포로에서 귀환한 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레위인 성전 음악가들에게 날마다 쓸 몫을 나누어주었다.

“스룹바벨과 느헤미야 때에도,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이들과 성전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몫을 주었다. 백성은 레위 사람들에게 돌아갈 거룩한 몫을 떼어 놓았고, 레위 사람들은 다시 거기에서 아론의 자손에게 돌아갈 몫을 구별하여 놓았다.” (새번역 느헤미야 12:47)

그런데 백성들의 경제 사정이 너무 어려워 노래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생활비를 못 받게 되자,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각각 자기 밭으로 돌아가 버렸다.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느헤미야가 관리들을 꾸짖고 노래하는 자들을 다시 불러 하나님의 전에 세워 노래하는 직분을 행하게 하고 그들의 몫을 나누어주었다.

“내가 또 알아보니, 레위 사람들은 그 동안에 받을 몫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은 맡은 일을 버리고, 저마다 밭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그래서 나는, 어쩌자고 하나님의 성전을 이렇게 내버려 두었느냐고 관리들을 꾸짖고, 곧 레위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다시 일을 맡아 보게 하였다. 그랬더니, 온 유다 사람들이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지고 와서, 창고에 들여다 놓았다.” (새번역 느헤미야 13:10-12)

지휘자, 반주자 등 교회 음악인에게 지급하는 사례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교회들이 많다. 그런데 앞에서 나눈 말씀대로, 성경은 교회 음악인에게 사례를 지급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제공해 주고 있다.

혹자는 구역의 성전 음악가는 전임사역자이기 때문에 사례를 주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앞에서 나누었듯이 음악감독 아삽 헤만 여두둔 정도를 제외하면 성전에서 전임 사역을 한 레위인은 거의 없다. 제사장을 포함한 레위인들은 자기 순번 때에만 성전에 들어와서 직무에 전념하였고, 당번을 마친 뒤에는 2주 동안의 사례비를 받고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한마디로 파트타임 사역자였다.

누가복음에 보면 세례요한의 아버지가 되는 제사장 사가랴가 파트타임 당번을 수행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갔다가 가브리엘 천사를 만났고, 직무를 다한 후에 집에 돌아갔음을 말씀한다.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누가복음 1:8, 23)

오늘날 교회 음악가들 대부분은 파트타임 사역자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도 성전 음악가처럼 교회 사정에 따라 파트타임 사례비를 지급하면 된다. 그런데 일부 교회 음악인들 중에는 사례를 사양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을 교회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물론 존경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들은 적은 사례금으로 생활에 도움을 받는 다른 교회 음악인들을 생각해야 한다. 본인은 사례를 받지 않을만한 믿음이 있고 또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렇지 못한 다른 교회 음악인을 위해서도 사례를 받아야 한다. 만약 진정으로 무급 봉사할 마음이 있으면 받은 사례의 십일조를 바치고 나머지 전부를 감사헌금으로 바치면 된다. 본인 때문에, 누구는 사례를 받지 않더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형편이 어려운 교회 음악인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생활 중에도 노래를 불렀을까?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시리아에 포로로 잡혀가 그 문화에 흡수 동화되어 버렸으며, 남유다 또한 바벨론의 계속되는 침공으로 주전 605년, 597년, 587년 3차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그래서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는 노래를 불렀다.

바벨론 강변에서, Gebhard Fugel, 1920?(출처=위키백과)
바벨론 강변에서, Gebhard Fugel, 1920?(출처=위키백과)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시편 137:1-5)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우상숭배 하였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이방 땅에 포로로 잡혀 왔는데, 대적 바벨론 군인들이 노래 한곡 불러보아라, 악기 연주하라고 말한다. 시편 기자는 우리의 죄악으로 끌려온 주제에 어찌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겠으며,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악기 연주하는 손가락이 그 재주를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한탄하고 있다.

원래, 구약의 음악은 노래와 함께 항상 악기와 춤이 병행되었으나, 바벨론 포로시대 이후부터 악기와 춤의 형태가 점점 사라지게 되었으며, 유대교 회당예배에서 악기 사용은 없어지고 목소리로만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에 대한 근거를 시편 137편에서 제공하고 있다. 참고로, 유대인 회당은 바벨론 포로시대에 생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대교 회당예배로부터 영향을 받은 초대교회 예배에서도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노래로만 찬양하였다. 그래서 교회는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목소리로만 노래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아카펠라 a capella’라는 음악 용어가 생기게 된 것이다.

라틴어 a capella(아카펠라)는 a(at)와 capella(chapel, church)의 합성어이다. 직역하면 ‘교회에서’라는 뜻이다. 교회에서 부르는 노래는 당연히 무반주 노래였기 때문에 곧 무반주 성악, 곧 아카펠라라는 음악 용어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 것이다.

기독교 예배에서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전통은 기악의 발달을 가져온 바로크 시대 이전 14세기 르네상스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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