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대 목사 / 예린교회 은퇴목사, 전 부산장신대 교수, Drew University(예배학박사, Ph. D. in Liturgical Studies)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 에베소서 5장에서 빛의 자녀가 될 것을 권면하면서 빛의 자녀, 곧 그리스도인은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인지를 권면하고 있다.
“시(詩)와 찬송(讚頌)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 5:19)
그리고 골로새 교인들에게도 동일한 내용을 권면하였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 3:16)
우리는 2천여 년 전 초대교회 교인들은 과연 어떤 찬송을 불렀을지 궁금해 한다. 그런데 바울이 에베소교회와 골로새교회에 시, 찬송, 신령한 노래를 서로 화답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그런데 바울이 화답하라고 말한 것은 바울의 독창적인 권면이 아니라 화답형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편 노래를 부를 때, 서로 주고받으며 노래하였던 이스라엘의 전통 창법이었다.
그렇다면 바울이 언급한 시, 찬송, 신령한 노래는 구체적으로 어떤 노래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 많은 예배학자와 교회음악인들이 연구를 하였다. 그 중에서도 초대교회 음악의 대가인 에곤 웰레츠(Egon Wellesz)의 연구를 중심으로 시, 찬송, 신령한 노래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1)
사도 바울은 에베소와 골로새 교인들에게 찬송하기를 권면했을 때, 그들이 익히 잘 알고 즐겨 부르는 노래들을 언급하였음이 틀림없다.
예를 들면, 오늘날 교인들에게 “여러분들이 모일 때, 회중찬송이나 복음성가 혹은 CCM을 부르도록 하세요.”라고 말하면 우리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찬송이나 복음송, CCM을 부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에베소, 골로새 교인들에게 시, 찬송,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찬양하라고 했을 때, 오늘의 우리에게는 초대교회의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초대교회 교인들은 익히 알고 있는 노래였기 때문에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즉, 바울이 언급한 시, 찬송, 신령한 노래는 초대교회 교인들이 익히 알고 있고 이미 부르고 있었던 노래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초대교회 교인들이 불렀던 시, 찬송, 신령한 노래는 어떤 노래였을까?
1) 시 (φαλμος 프살모스, psalmos)
먼저, ‘시’의 원어, ‘프살모스’ (φαλμος, psalmos)는 학자들 간에 별다른 이견 없이 구약의 시편(psalm)으로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송이었고, 시편 성경은 두루마리로 기록되어 있었지만, 노래와 가사는 구전으로 전승되어 왔기 때문에 초기 초대교회 구성원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회당에서 불렀던 시편 찬송을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부르는 것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2) 찬송 (ὓμνος 힘노스, hymnos)
이전 개역성경에서 ‘찬미’로 번역한 ‘찬송’의 헬라어 원어 ‘힘노스’(ὓμνος, hymnos)는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한 초대교회 교인들의 신앙고백의 시에 곡조를 붙여 불렀던 찬송으로서 오늘날의 찬송과 크게 차이가 없다. 지금의 찬송(hymn)의 어원이 바로 힘노스(hymnos)이다.
‘찬송(힘노스)’은 오늘날의 찬송처럼 음절 형태(syllabic type)로 만들어진 일명, ‘찬미전승’ (Pre-Pauline Hymns)으로 일컬어지는 노래들을 지칭한다. 찬미전승의 영어, ‘Pre-Pauline Hymns’에서 보듯이 ‘찬송(힘노스)’은 사도바울이 활동하기 이전에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미 부르고 있었던 노래였다. 그래서 바울이 교회에 편지를 쓸 때, 필요한 경우, 이들 찬송시들을 가끔 인용하기도 하였다.
바울 서신에서 모두 다섯 개의 찬송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인용한 찬송시들은 원문에 기록된 대로 필자가 행을 나누어 적었다.
1) 에베소서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잠자는 자여, 깨어라’로 시작하고 있는 이 찬송의 구절은 초대교회 당시 세례(침례)를 베풀 때 불렀던 찬송 가사인 것으로 추정한다. 수세자가 침례조에 몸이 잠기면 순간 죽은 사람이 되고, 그에게 그리스도의 빛이 비칠 때 다시 살아날 것을 노래하였다.
2) 디모데전서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초대교회 공동체의 신앙고백으로 널리 불리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건의 비밀’을 노래하는 찬송을 소개하고 있다. 모두 6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3) 빌립보서 2:6-11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예수의 이름에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고
11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모든 입으로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사도바울이 쓴 것으로 알고 있는 이 본문 역시 1세기 초대교회 신앙공동체 교인들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신앙고백의 찬미로서 일명 ‘그리스도 찬가’로 불리던 찬미전승 중의 하나인데, 바울이 이를 인용한 것으로 보는 학설이 우세하다. 원문에 모두 18행으로 되어있다.
4) 디모데후서 2:11-13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이 가사도 초대교회 예배에서 불렀던 찬송으로서 모두 5행으로 되어있다.
5) 골로새서 1:15-20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이 본문 역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노래한 초기 기독교인들의 찬미전승의 노래를 바울이 인용하였던 것으로 모두 19행으로 되어있다.
이상과 같은 초대교회 공동체의 신앙고백의 찬송, 일명 ‘찬미전승’의 노래들이 바울이 에베소와 골로새교회에 노래하도록 권면했던 찬송(힘노스)의 모습으로 이해하면 된다.
3) 신령한 노래 (ᾠδαῖς πνευματικαῖς 오다이스 프뉴마티카이스 spiritual songs)
‘신령한 노래’는 영어 성경에 Spiritual song (영적인 노래)으로 번역하고 있다. 헬라어 ‘오다이스’(노래)의 원형인 ‘ὠδε, 오데’는 초대교회 당시 로마제국 안에서 유행하던 헬라어 서사시, 헬라 노래를 말한다. 지금으로 치면 일반 가곡이나 대중가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반 대중들이 많이 좋아하고 즐겨 부르던 음악 장르였다. 세속노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초대교회 교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치 오늘날의 교인들이 찬송가보다는 트로트, 발라드, 댄스음악, 힙합 같은 대중음악을 더 즐겨 부르듯이, 초대교회 교인들도 시편가나 찬송(힘노스)보다는 헬라 오데를 더 많이 불렀던 것 같다.
바울이 이런 사정을 잘 알고는, 교인들이 헬라 오데(ode), 곧 세속 노래를 부르고 싶더라도, 교회 공동체에서는 영적인 노래, 신령한 노래를 부르도록 권면하였던 것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헬라 오데(ode)를 부르지 못하도록 막을 수는 없고, (오늘날도 교인들에게 대중가요 못 부르게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오데를 부르더라도 그 가사를 영적인 가사, 곧 성경적인, 기독교적인 가사로 바꾸어 부르도록 권면하였던 것이다.
예를 들면, 태진아씨가 부른,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대중가요 곡조에 기독교적인 가사를 붙여서 “예수는 아무나 믿나”로 바꾸어서 부르라는 것이다.
이를 음악 전문용어로 콘트라팍툼(Contrafactum)이라고 한다. 콘트라팍튬은 기존곡조에 가사만 바꾸어 부르는 성악곡을 말한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도 이러한 콘트라팍튬 찬송들이 들어있다.
몇 개만 예를 들면,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샤인(Auld Lang Syne) 곡조에 붙여서 부르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280장),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의 ‘환희의 송가’ 곡조에 붙인 ‘오늘 모여 찬송함은’(605장) 등이 있다. 이외에도 다수의 콘트라팍타(Contrafacta) 찬송들이 있다.
사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콘트라팍튬 찬송을 부르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다. 그런데 루터보다 더 먼저 이를 적용하고 사용하도록 권장했던, 콘트라팍튬의 원조는 사도바울임을 알 수 있다.
필자가 강의나 설교할 때, 바울이 말한 시, 찬송, 신령한 노래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에, 어느 것이 제일 거룩한 찬송일 것 같은지 물어보면 대다수가 ‘신령한 노래’에 손을 든다. 이것은 ‘신령한’이라는 수식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울이 말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평가할 때는, 수식어는 빼고 시, 찬미, 노래만 가지고 평가해야 한다. 시는 시편가, 찬미는 찬미전승의 찬송, 그리고 노래는 세속음악이다.
결론적으로 바울이 에베소와 골로새 교인들에게 찬양하기를 권고한 교회음악 장르는 첫째, 성경(당시의 구약)에 수록된 시편찬송과 두 번째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새롭게 창작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의 찬송, 그리고 당시 세속음악이었던 헬라 서사시의 음악, 오데(ode)를 교회에서 부를 때 영적인 가사를 사용해서 부르게 한, ‘신령한 노래’이다.
1) Donald P. Hustad, Jubilate II (Carol Stream, IL: Hope Publishing Co., 1993), 14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