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의 헬라어 라틴어 대조성경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라틴어 대조성경

 

 

김홍기 목사 / Ph.D., D.Min. Christ Lives Ministries 대표. Talbot School of Theology (M. Div., D.Min.).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Ph. D.)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9-1536)는 네덜란드 태생의 카톨릭 사제요 신학자였고, 북부의 르네상스의 가장 걸출한 인문주의자요 학자였다. 그는 과거와 신약과 교부학에 대한 역사적-비평적인 연구의 기초를 세우는 일에 공헌했다. 그는 Encomium Moriae(우신예찬)이라는 책을 통해 수도원의 악행과 부도덕과 사악함 및 교회의 남용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그는 로마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거나 카톨릭 신앙을 버리거나 교회와의 결별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는 카톨릭 사제로 남아 내부 개혁을 추구했으며 교황의 권위를 인정했다. 그는 카톨릭 성직자들의 도덕과 행동의 개혁만을 원했을 뿐, 카톨릭 신학의 개혁을 도모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그는 루터가 주도한 급진적인 종교개혁을 반대했고, 이로 말미암아 결국 루터와 결별했다.1)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경은 출판된 이후 에라스무스 자신과 몇몇 사람들(스테파누스, 베자, 엘지비어 형제 등)에 의해 30차례 이상 개정되었다.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경과 개정판들은 텍스투스 레켑투스(Textus Receptus, 약칭 TR)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수용된 본문(received text)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내용에서 모두 조금씩 다르며, 그중 에라스무스의 1522년 개정판(3판)과 스테파누스의 1550년 개정판(3판) 및 베자의 1598년 개정판(5판)은 킹제임스 성경의 헬라어 본문을 이룬다.2)

스페인의 카톨릭 추기경이었던 시스네로스(Francisco Ximenes de Cisneros)는 컴풀루텐시안 성경을 제작하는 일을 주도해서 역사상 처음으로 헬라어 신약성경(1514)을 인쇄했지만, 구약성경에 대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출판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동안 에라스무스는 자신이 편찬한 헬라어 신약성경(Novum Instrumentum omne)을 역사상 처음으로 출판했다(1516). 그의 성경은 종교개혁에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정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1514년 9월 에라스무스는 바젤에서 인쇄업자인 요한 프로벤(Johann Froben)을 만나 헬라어 신약성경 출판에 대해 의논했고, 그 다음 해인 1515년 7월에 편집을 도와줄 그의 제자(Johannes Oecolampadius)와 함께 바젤로 돌아와서 그의 헬라어 신약성경을 급히 만들었다. 인쇄는 1515년 10월 2일에 시작되었고, 1516년 3월 1일에 마쳤다. 그는 7개의 열등한 비잔틴 후기(12-15세기) 사본을 가지고 작업했는데,3) 그중에 신약 전체를 포함하고 있는 사본은 단 하나도 없었다.4)

브루스 메쯔거 박사에 의하면, 에라스무스는 2개의 열등한 사본에 주로 의존했는데 하나는 복음서를, 다른 것은 사도행전과 서신서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는 이것들을 다른 두세 권의 책들과 비교했고, 사본의 여백이나 행간에 인쇄자들을 위해 가끔 수정을 집어넣기도 했다. 게다가 요한계시록에 관한 유일한 사본은 계시록의 마지막 6절을 포함하고 있는 마지막 낱장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계시록의 마지막 6개 구절을 라틴 불가타에 의존하여 헬라어로 번역해서 자신의 성경에 집어넣었다. 이런 작업으로 인하여 그의 헬라어 본문에는 알려진 어떤 헬라어 사본에도 없는 그가 만든 독특한 표현들이 존재하게 되었다.5)

예를 들어 계17:4은 가장 유명한 본문의 오류인데, 에라스무스는 여기서 이전에 결코 볼 수 없었던 헬라어 단어인 ἀκάθαρτητος(아카사르테토스)를 창안해 내었다. 그것의 본래의 용어는 ἀκάθαρτα(아카사르타)이다. 그는 또한 8절에서는 οὐκ ἔστιν καὶ παρέσται(“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이라고 써야 할 것을, οὐκ ἔστι καὶπερ ἔστιν(“지금은 없으나 아직 있는")이라고 잘못 썼다.6) “아직 있는”이라고 기록한 사본은 하나도 없다. 모든 사본은 “장차 나올”이라고 기록했다.7) 이렇듯 사본의 용어를 임의로 바꾸거나 헬라어 사본에 없는 것을 잘못 표기하는 중대한 오류들은 킹제임스 유일주의자들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과 이 성경의 개정판들(텍스투스 레켑투스, 줄여서 TR)을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을 영감을 받아 오류가 없는 성경으로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에라스무스는 계1:6에서 대다수 사본의 표현과 다른 표현을 사용했는데, 킹제임스 성경은 에라스무스의 본문의 표현을 따라 6절을 “우리를 왕들과 제사장들로 삼으신”이라고 번역한 반면, NIV는 대다수 사본의 표현을 따라 그것을 “우리를 왕국(kingdom)과 제사장들로 삼으신”이라고 번역했다. 계1:8에서도 그는 거의 모든 사본의 표현과 다른 표현을 사용했는데, 킹제임스 성경은 8절을 ‘하나님’을 생략하고 “주가 말하노라”라고 번역한 반면, NASB는 그것을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라고 번역했다. 여기서 에라스무스는 사실상 헬라어 사본의 지지가 전혀 없는 잘못된 자료를 사용했다.8) 이와 같이 비잔틴 사본이 변종을 가지고 있을 때 그가 대다수의 사본들의 표현 대신 지극히 적은 수효의 사본들이나, 의심스러운 사본들이나, 심지어 사본의 지지가 전혀 없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의 헬라어 성경과 이후의 개정판들 및 그것을 그대로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의 신빙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경우가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서도 발견된다. 계14:1에서 그는 4개의 중요한 헬라어 단어를 빠뜨렸다. 그의 본문을 따라 킹제임스 성경은 “그들의 이마에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더라”고 말한다. 반면에 NASB는 대부분의 사본을 따라 “그들의 이마에는 그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고 말한다. 그는 여기서 “그의 이름과”라는 표현을 빠뜨렸는데, 이는 기껏해야 6개밖에 되지 않는 후기 사본(9세기 이후, 그중 둘은 매우 의심스러운 사본)을 따랐기 때문이다.9) 그리고 계5:14에서 그는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그분께”라는 말을 덧붙이는데, 이 표현은 개역과 영어 현대역들에는 나와 있지 않다. 이 말은 그가 처음에 사용했던 계시록 사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서, 단지 3개의 의심스러운 헬라어 사본과 약간의 라틴어 사본에서 발견된다.10) 사실상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본문은 20군데 이상에서 알려진 헬라어 사본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11)

때로 에라스무스는 다수 본문과 현대의 본문들(예를 들어 UBS 성경 제5판과 네스틀레-알란트 성경 제28판)이 동일한 표현을 사용할 때 현저히 다른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계22:19의 경우가 그러한데, 그는 여기서 헬라어 사본들의 “생명나무”라는 말이 아닌 “생명책”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헬라어 사본 중 이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사본은 단 하나도 없다.12) 이 단어는 그가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6개 구절을 써넣기 위해 본문으로 사용했던 불가타 성경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명책”은 이후의 개정판들에도 포함되어 킹제임스 성경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사도행전 8장과 9장에서도 카톨릭 불가타 성경에서 자료들을 가지고 와서 써넣었다. TR을 보면 행 8:37(“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니 그가 응답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하나님]의[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니라.” 흠정역)이 있다. 반면에 개역과 NIV는 이 구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구절을 가지고 있는 헬라어 사본은 거의 없는데, 그중 6세기 이전의 사본은 하나도 없다. 에라스무스가 그것을 TR에 집어넣은 이유는 불가타 성경과 한 헬라어 사본의 여백에 그것이 있었기 때문이다.13) 그리고 TR은 행9:5에 “가시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 하시거늘”(흠정역)이라는 첨가된 문구를 가지고 있는데 대다수의 헬라어 사본에는 이것이 없다. 에라스무스는 불가타와 행26:14에 있는 병행 구절에서 그 문구를 가져와서 집어넣었다고 말한다.14) 행9:6에도 같은 경우가 발생하는데, TR의 6개 절의 첨가된 문구는 그리스어 사본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는다.15) 에라스무스는 불가타에서 다음의 문구를 가져와서 첨가했다고 말한다.16) “그가 떨며 놀라서 말하기를 '주여,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하니,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흠정역). TR은 또한 행19:20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주의 말씀”이라고 표현한 대다수의 헬라어 사본들과 다르다. 이 표현 역시 불가타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TR은 엡1:18(“너희의 지각의 눈” 흠정역)에서 “너희 마음의 눈”(개역)이라고 표현하는 다른 모든 헬라어 사본들과 다르며, 심지어 불가타(“너희 마음의 눈”)와도 다르다. 그리고 TR은 엡3:9(“신비의 교제” 한글 킹제임스역)에서도 “신비의 경륜”(개역)이라고 표현하는 다수의 사본들과 다르다. 또한 TR의 딤후2:19(“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법에서 떠날지어다”)의 표현은 오직 한 언셜 자체(字體, 둥근 대문자 필사체) 본문과 하나의 소문자(minuscule) 본문에서만 발견되는데, 이것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개역)라고 필사된 다른 모든 사본들과 다르다.17)

에라스무스는 열 달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헬라어 신약성경의 편집을 마쳤다. 그의 성경 인쇄 역시 급하게 진행되었다. 메쯔거 박사에 의하면,

인쇄는 1515년 10월 2일에 시작되었고, 아주 짧은 시간 내에(1516년 3월 1일) 전체 판이 끝났고, 약 1,000페이지에 달하는 큰 2절 판 책은 에라스무스 자신이 후에 선언한 것과 같이" 편집되었다기보다 재촉되었다.” 출판을 서둘렀기 때문에 책은 수백 군데의 오식을 갖게 되었다. 사실 스크리브너(Scrivener)가 언젠가 “이것은 내가 아는 가장 나쁜[결함이 많은] 책이다”라고 말하였다.18)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경 초판은 헬라어 본문과 함께 에라스무스가 향상시킨 라틴어 불가타 성경 및 에라스무스가 서유럽 전역에서 10년 동안 연구하며 작성한 상당한 분량의 주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은 당시의 교황 레오 10세에게 헌정되었다.

재판이 3년 만인 1519년에 나왔는데, 에라스무스는 이 두 번째 판본에서 ‘Minuscule 3’ 이라는 12세기 사본을 사용했고, 본문의 약 400군데를 수정했으며, 기존의 불가타 성경을 자신의 더욱 세련된 번역으로 대체했다. 이 판본 이후 에라스무스는 여러 논쟁에 휘말리게 되는데, 요한일서 5장 7-8절의 일부(‘요한의 콤마’로 불림)가 빠진 것에 대한 논란은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이었다. 에라스무스가 그의 성경에서 ‘요한의 콤마’를 생략한 것 때문에 스페인의 카톨릭 신학자인 스투니카(Stunica)는 불가타 성경에 있는 그 문구를 생략한 것을 강력히 비판했고, 영국 요크의 대주교였던 에드워드 리(Edward Lee)는 에라스무스가 아리안주의 이단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혹독히 비난했다.19) 에라스무스는 자신이 아는 헬라어 사본에는 그 문구가 없으므로 뺀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자신의 성경 평판을 고려하여 요한의 콤마를 가지고 있는 헬라어 사본이 나타난다면 다음 개정판에 그것을 집어넣겠다고 약속했다. 이 판본은 루터의 독일어 성경의 헬라어 본문이 되었으므로 루터의 성경은 요한의 콤마를 가지고 있지 않다. 루터는 평생에 요한의 콤마를 자신의 독일어 성경에 집어넣지 않았다.

3판은 1522년에 나왔는데, 이것은 재판과 118군데가 달랐다.20) 윌리엄 틴데일은 최초로 영어 신약성경(1526)을 번역할 때 이 판본을 사용했고, 제네바 성경(1560)과 킹제임스 성경(1611)의 번역자들도 이 판본을 사용했다. 에라스무스는 이 판본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요한의 콤마’를 집어넣었는데, 메쯔거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드디어 [요한의 콤마가 포함된] 그 필사본이 발견되었다. 그것이 지금 보여 주는 대로, 그 헬라어 사본은 아마도 약 1520년에 프로이(Froy 혹은Roy)라고 하는 프란시스코 수도사에 의해 옥스퍼드에서 쓰여졌고, 그는 문제가 된 말을 라틴역에서 가져왔다. 에라스무스는 그의 약속을 지켜 이 구절을 제3판(1522년)에 삽입했으나, 그는 이 사본이 그를 논박하기 위하여 급히 준비되었다고 하는 의구심을 나타내는 긴 설명을 달았다.21)

4판(1527)은 세 평행란에 헬라어, 라틴어, 에라스무스 자신의 라틴어 번역으로 된 신약 본문을 가지고 있다. 에라스무스는 자신의 3판을 출판한 직후 시스네로스의 컴풀루텐시안 성경이 더 나은 헬라어 본문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계시록의 약 90절을 고쳐서 4판을 출판했다. 5판(1535)은 에라스무스의 마지막 개정판으로서, 불가타 성경을 뺐지만 헬라어 본문은 4판과 거의 차이가 없다.22)

TR은 30판 이상의 교정판이 나왔는데, 에라스무스 외에 세 사람의 교정판이 주로 언급된다. 첫째로, 프랑스의 유명한 출판업자였던 스테파누스(Stephanus, 1503-59, Robert Estienne)는 4판(1546, 1549, 1550, 1551)의 헬라어 성경을 출판했는데, 3판은 컴풀루텐시안 다국어 대조성경에서 나온 다른 많은 이문들과 14개의 헬라어 사본과 다른 여러 가지 이문을 페이지의 여백에 담은 최초의 비판적 장치를 갖춘 판이었다. 1판과 2판은 에라스무스판과 컴풀루텐시안판의 혼합물이고, 3판은 에라스무스의 4판과 5판에 더 가까우며 표준적인 헬라어 성경의 본문이 되었다. 4판은 최초로 본문에 숫자로 매겨진 절을 적용한 점에 있어서 주목할 만하다.23)

둘째로, 칼빈의 후계자였던 베자(Theodore Beza, 1519-1605)는1565년과1604년 사이에 무려 9판의 헬라어 성경(TR)을 출판했고, 10판은 1611년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 그의 개정판은 에라스무스와 스테파누스의 이전 판본에 기초했고, 베자 스스로 대조한 몇몇 헬라어 사본에서 이용된 얼마간의 본문 상의 정보를 포함하고 있으며, 약간의 사소한 수정을 가했고 스테파누스의 4판과 조금 다르다. 1611년의 킹제임스 성경의 역자들은 1588-89년과 1598년의 베자의 판들을 많이 사용했다.24)

셋째로, 라이덴의 두 인쇄업자인 보나벤처 엘지비어(Bonaventure Elzevir)와 아브라함 엘지비어(Abraham Elzevir) 형제는1624년에서 1678년 사이에 7판의 헬라어 신약성경(TR)을 출판했다. 그들은 1633년에 나온 2판의 서문에서 “독자들은 이제 모든 사람에 의해 받아들여진 본문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변경되거나 부패된 것이 전혀 없다”라고 썼다.25) "Textus Receptus"(수용 본문)라는 용어는 이 과장된 문구에서 생겨난 것이다.

에라스무스
에라스무스

에라스무스는 고작 7개밖에 되지 않는 후기의 열등한 비잔틴 사본만을 가지고 헬라어 성경 편찬 작업을 했다. 그는 또한 10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그 작업을 서둘러 마쳤다. 그는 이후에 이것을 가리켜 “편집되었다기보다 오히려 재촉되었다”고 고백했다. 게다가 그는 사본에 없는 계시록의 마지막 6개 절을 라틴어 불가타 성경에서 헬라어로 번역해서 집어넣기도 하고, 알려진 어떤 헬라어 사본에도 없는 독특한 용어들을 창안해서 사용하기도 하며, 헬라어 사본에 없는 것을 잘못 표기하기도 하고, 비잔틴 사본이 변종을 가지고 있을 때 대다수의 사본들의 표현 대신 지극히 적은 수효의 사본들이나 의심스러운 사본들, 심지어 사본의 지지가 전혀 없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며, 소수의 후기 사본을 따라 표현을 생략하기도 하고 덧붙이기도 하며, 헬라어 사본들을 따르지 않고 불가타 성경을 따라 표현을 바꾸기도 하고 사본에 없는 표현들을 집어넣기도 했다. 따라서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본문은 20군데 이상에서 알려진 헬라어 사본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경 이후의 모든 교정판은 각각 다르지만, 원작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에 그것의 문제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위에 제기된 문제들은 TR이 영감받고 무오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킹제임스 유일주의자들에게는 치명타가 된다. 참으로 TR이 영감받아 오류가 없다는 주장은 명백한 이단 교리이며 성경 원본에 대한 신성모독이 아닐 수 없다.

1) Justo L. Gonzalez, “The Story of Christianity,” 2 vols. (New York: HarperOne, 2010), 14-18.

2) “Novum Instrumentum omne Erasmus,” Wikipedia, last modified 18 April, 2025. https://en.wikipedia.org/wiki/Novum_Instrumentum_omne; “The History of the Textus Receptus,” Textus Receptus Bibles, 24 April, 2025. https://www.textusreceptusbibles.com/History; “Theodore Beza,” Textus Receptus Bibles, 24 April, 2025.  https://www.textusreceptusbibles.com/Editorial/Beza

3) Dunham Bible Museum, “Renaissance of the Bible: 500th Anniversary of Erasmus’ Greek text, the Foundation for Reformation,” April 30, 2025.  https://hc.edu/museums/dunham-bible-museum/tour-of-the-museum/past-exhibits/erasmus-an-the-renaissance-of-the-bible/#:~:text=Though%20Erasmus%20had%20worked%20with,earlier%20than%20the%20twelfth%20century.

4) D. A. Carson, The King James Version Debate (Grand Rapids: Baker Academic, 1979), 33.

5) 브루스 메쯔거, “사본학,”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79), 123-24.

6) James White, “King James Only Controversy,”(Minneapolis: Bethany, 2009), 107.

7) William W. Combs,“ERRORS IN THE KING JAMES VERSION?” DBSJ 4 (1999): 155.

8) White, “King James Only Controversy,” 108.

9) 같은 책에서, 108.

10) 같은 책에서, 108.

11)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7 Vol.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10), 231.

12) Doug Kutilek, “Erasmus, His Greek Text and His Theology,” accessed April 22, 2025, https://ibri.org/RRs/RR032/32erasms.htm

13) White, “King James Only Controversy,” 110.

14) 에드워즈 힐즈, “킹제임스 성경 변호,” 정동수, 권성찬 역(인천: 그리스도 예수 안에, 2007), 199; White, “King James Only Controversy,” 111.

15) Carson, “The King James Version Debate,” 34.

16) 같은 책에서

17) 같은 책에서, 111.

18) 메쯔거, “사본학,” 123-24. 스크리브너가 한 말: “Erasmus’ first edition is in that respect the most faulty book I know.” “에라스무스의 초판은 그런 면에서 내가 아는 책 중에서 가장 결함이 많은 책이다.”

19) Grantley McDonald, “Erasmus and the Johannine Comma (1 John 5.7-8),” The Bible Translator Vol. 67(1) (2016): 42–55.

20) Wikipedia, “Novum Instrumentum omne,” modified on 18 April 2025.   https://en.wikipedia.org/wiki/Biblical_manuscript.

21) 메쯔거, “사본학,” 126.

22) 같은 책에서, 127.

23) 같은 책에서, 130.

24) 같은 책에서, 131.

25) Dunham Bible Museum, “Renaissance of the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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