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신앙】박무종 편집부국장

"차려 자세는 군인의 기본 자세이다. 그러므로 내면적으로는 군인정신에 충일하고 외형적으로는 엄숙 단정해야 한다."

군 복무한 사람은 이 말을 외우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군대의 제식동작 교범에서 기술하고 있는 차려 자세의 정의다. 훈련소에 입소한 훈련병들은 훈련만 아니라 낯선 환경과 대부분 처음 듣는 생소한 용어를 이해하고 익히는 것만으로도 한눈팔 겨를이 없다. 게다가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른바 취침 전 일석점호 때에 외워야 할 것들까지 겹쳐 정신이 없다. 그 와중에 꼭 외워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군인의 기본 자세’라는 차려 자세의 개념이다. 차려 자세는 군인의 기본 자세가 맞다. 차려 자세에서 시작하여 ‘열중쉬어’가 나오고 ‘편히 쉬어’도 나온다. 어찌 군인만의 기본 자세일까. 기본 동작 다음에 응용 동작이다. 모든 것이 기본에서 출발한다. 그만큼 기본 동작이 중요하다.

숭실대학교 바로 옆에 있는 교회의 부목사로 있던 때이다. 주말 오후에 대운동장을 찾았다. 대학축구 국가대표를 선발하기 위한 평가전이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자주 볼 수 없는 기회라 관중석에 앉아 구경하고 싶었다. 하필 바로 앞쪽에 국가대표를 지낸 김정남 감독이 관계자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특별한 경기이니 체크리스트를 들고 꼼꼼하게 하나하나 체크하고 그걸 바탕으로 선발할 것을 기대하면서... 나는 경기장을 뚫어져라 주시하건만 김 감독은 옆 사람과 한참 뭔가를 이야기하다가 슬쩍슬쩍 경기 장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국 축구가 실력보다는 인맥과 학맥을 따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저래도 되나?’

부목사 때는 동료 교역자나 청년들과 운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담임목사로 부임한 교회는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아 아쉬웠다. 운동 부족을 몸이 알기 시작할 때쯤 건강 관리를 위해 탁구장을 찾았다. 주변의 권유도 있어 생전 처음 코치에게 일주일에 두 번 레슨을 받기로 했다. 이런 세상에! 탁구 좀 치는 줄 알았는데 이게 도리어 방해가 될 줄이야. 수십 년 몸에 밴 동네 탁구 ‘똥폼’ 고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한 달 내내 아무것도 못 배우고 기본기만, 그것도 ‘파’와 스텝만 배워야 했다. 수십 년 잘못했던 동작을 바로 잡자면 수십 년 잘못했던 동작 횟수 그 이상 바른 동작으로 해야 한단다. 집에서도 거울을 보고 하루 1,000번씩 팔 동작과 스텝 밟기를 계속 연습하라! 기본기가 몸에 밸 때까지는 절대 게임을 하지 말라는 지시까지 들어야 했다. 결국 기본기 없이 게임만 하는 사람은 게임하면 할수록 레슨 받을 때 기본자세를 익히기 힘들기 때문이다. 운동은 기본기가 중요하다.

<뭉쳐야 찬다>는 류의 TV 프로그램이 있다. 오디션 자리에서 코치진이 도전자에게 공 몇 번 보내고 그 공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보고는 1차 테스트를 마치는 것을 보았다. 문일지십이 아니라 시일지십(視一知十)이다. 대학축구 국가대표선발전에서 김 감독이 왜 ‘슬쩍슬쩍’ 보았던지 탁구 기초를 배우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 그림 앞에서 ‘나도 이 정도는 그리겠다’고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이젠 웬만큼 알려졌지만 피카소는 탁월한 데생 실력자였다. 기초가 누구보다 탄탄하다는 것이다. 화가요 미술 교사인 아버지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피카소는 어려서부터 그림 솜씨가 뛰어났다. 아홉 살 때 아버지와 함께 간 투우장에서 본 장면을 그린 <기마 투우사>는 피카소의 첫 유화 작품이다. 그런 탄탄한 기초 위에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기본기 위에 대표작 <게르니카>가 만들어졌고 <우는 여인>이 탄생했다. 탄탄한 기초 위에 입체파라는 미술 사조가 탄생했다.

피카소가 9세에 그린 첫 유화 작품 '기마 투우사'
피카소가 9세에 그린 첫 유화 작품 '기마 투우사'

벨라스케스(1599~1660)는 바로크 시대의 거장이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시녀들>(276×318cm)을 프라도미술관에서 보았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남아 있다. 미술관 한쪽 벽면에 <시녀들> 하나만 전시할 정도이다. 한 폭의 그림 속에 11명이 등장하는 집단 초상화라 할 수 있는데, 벨라스케스가 살던 시대의 일상생활과 화실의 화가, 자화상, 실내 묘사 등 여러 소재들을 함께 담은 바로크 미술의 걸작이다. 벨라스케스가 만년에 그린 이 그림은 화가들은 물론 시인, 소설가,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으며 연구 대상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피카소도 이 그림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피카소가 한 말이다. “나는 열다섯 살에 벨라스케스처럼 그렸다. 덕분에 80년 동안 아이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열다섯 살에 거장처럼 그릴 수 있었다니. 기본기, 기초가 탄탄했기에 피카소는 20세기 최고의 화가가 될 수 있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출처=프라도미술관, 사진=구글 어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출처=프라도미술관, 사진=구글 어스)

신앙도 기초가 중요하다. 기본기가 필수이다. 교회 양육 과정으로 말하면 ‘새가족 양육’ 과정에서 배우는 모든 것이 기독교 교리의 핵심 기초 아닐까? 구원이 무엇인지, 왜 구원받아야 하고 어떻게 구원받는지, 성경은 무엇인지, 하나님은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성령님은 누구신지... 교회 생활을 중심으로 기도하는 법, 예배하는 법 같은 것들을 배우니 말이다.

사진도 기본이 중요하다. 아무리 잘 찍는 것처럼 흉내를 내도 척 보면 안다. 기초가 없으면 어쩌다 한두 번은 잘 찍을 수도 있겠지만 계속 잘 찍을 수는 없다. 절대 불가이다. 이제 막 기본기를 벗어날 듯 말 듯한 실력으로 사진 이야기를 하겠다니, 확실히 나는 태권도 ‘노란 띠’ 소년이 맞다.

사진은 사진기로 찍는다. 사진기는 광학기계이다. 굳이 말하자면 문과가 아니고 이과인 셈이다. 문과 출신인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과학과 수학을 힘들어했던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이다. 하여 여기서는 이과적인 설명은 가급적 피하려 한다. 이를테면 화각과 초점 거리가 어떻고, CCD·CMOS 이미지 센서나 화소수, 이미지 압축 방식과 JPEG, TIFF, RAW 파일의 성격이나 특징 같은 것 말이다. 사진 찍는데 알아두면 필요하겠지만 꼭 그런 것까지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나도 잘 알지 못한다. 거듭 말하지만 검은 띠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바일용 이미지 센서와 디지털카메라용 이미지 센서의 크기 차이이미지 센서의 크기 차이로 스마트폰과 DSLR카메라의 화질 차이가 있다.
모바일용 이미지 센서와 디지털카메라용 이미지 센서의 크기 차이이미지 센서의 크기 차이로 스마트폰과 DSLR카메라의 화질 차이가 있다.

하여 사진기가 아니라 사진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사진이 아닌 사진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사진을 핑계로 주저리주저리 말하려는 것이다. 이 얘기 저 얘기 그야말로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말해 볼 생각이다. 어쩌면 곁길로 빠질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때도 있을 것이다. 꼭 남들이 다니는 길로만 다니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가끔은 곁길로 빠지고 때로는 일탈도 하는 것이 인생길 아닌가. 그래서 기자가 된 목사의 사진 ‘이야기’이다.

사진의 기본은 카메라이다. 카메라 없이 사진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우선 카메라를 선택해야 한다. 카메라에는 크게 손바닥만 한 콤팩트 카메라를 비롯하여 DSLR 카메라(Digital Single-Lens Reflex Camera), 미러리스 카메라도 있고, 또 만인의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도 있다.

카메라 중에 자신의 수준에 맞고 경제적 상황에 맞는 카메라가 좋을 것이다. 굳이 카메라 살 형편이 못 된다면 스마트폰도 좋다. 요즘 스마트폰의 카메라 렌즈 성능은 웬만한 카메라를 능가(?)한다. 어두운 곳에서는 전문가용보다 더 잘 찍히기도 한다. 게다가 줌 기능도 좋아 멀리 떨어진 피사체도 당겨 찍을 수 있다. 항상 가지고 있어 언제 어디서나 찍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카메라가 어디 있으랴.

작년에 S사의 갤럭시 울트라 23을 중고품 앱 ‘당근’에서 구매했다. 크고 무겁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카메라 성능은 스마트폰 최상급이다. 특히 줌 기능은 100배도 가능하다. 보름달이 뜨는 날 스마트폰을 고정해 놓고 줌 기능으로 클로즈업하면 분화구까지도 담을 수 있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평균 거리가 약 38만 5천km, 지구 지름의 약 30배나 된다. 천문학적 거리에 있는 분화구를 잡을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물론 초고성능 망원렌즈로 찍은 것에는 비길 수 없지만 손안의 카메라로 그 정도라니 놀라운 일이다. 스마트폰은 이름처럼 똑똑해서 웬만한 것은 다 맞추어 준다. 아주 편하다. 그러나 사진 좀 찍겠다고 한다면 DSLR 작동법도 알아야 한다. 조리개 값, 셔터 속도, ISO, 화이트발란스, 화소수, 조리개 우선이냐 셔터 우선이냐, 측광 모드 전환 등의 용어를 알아야 한다. 더하여 구도나 앵글까지 알면 웬만한 기초는 안다고 할 수 있다.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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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그렇지만 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익혀야 한다. 학습(學習)이 뭔가. 배우고 익힌다는 뜻이 아닌가.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않으면 학습이 아니다. 내 것이 될 수 없다. 배웠으면 반드시 익혀야 한다. 익히는 법 최고는 역시 몸이다. 몸으로 익혀야 내 것이 된다. 어렸을 때 탔던 자전거, 수십 년 만에 타더라도 조금만 타면 금방 익숙해진다. 몸으로 익혔기 때문이다. 흔히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하지 않던가. 어떤 분야에 1만 시간을 투자하면 그 분야의 고수가 될 수 있다고. 단번에 익히는 것이 있을까?

결혼식장에는 사진가들이 있다. 아마추어만 있을 때도 간혹 있지만 부탁받은 전문가가 대부분이다. 결혼사진 전문가 정도면 보통 카메라 2개를 소지한다. 각각 표준렌즈와 줌렌즈를 장착한 카메라이다. 상황에 따라 번갈아 촬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가까운 선배 목사로부터 결혼식 사진 촬영 부탁을 받았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줄 알고 하는 부탁이다. 교회에서 갖는 아들의 결혼예식이라 예배당에는 얼굴이 익은 목사 장로들도 많았다. 결혼식 사진 부탁은 처음인 데다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렌즈 2개를 끼웠다 뺐다 하며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게 노란 띠의 한계다.

얼마 후 지인의 자녀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이다. 역시 DSLR 카메라 2개를 가진 사진가가 보였다. 24~70mm 표준렌즈와 70~200mm 줌렌즈를 장착했다. 손에 들지 않은 카메라는 허리 띠에 결합한 채였다. 내 눈에 사진가의 활동도 잡힌다. 세상에! 카메라 교체를 하는 손이 놀랍다. 허리띠에 장착된 카메라를 꺼내더니 즉시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를 허리띠에 장착한다. 마치 마술사의 손 움직임 같다. 놀라운 것은 그 순간에도 시선은 신랑 신부에게 두면서다. 심지어 걸어가면서도 교체하고 있다. 그에게 손은 눈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장면인데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닌 결혼식장에서라니. 한순간이라도 놓치면 결정적 순간을 놓치게 되니 얼마나 긴장되는 자리인가. 내가 며칠 전에 겪지 않았던가. 저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분명 저 사람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을 터. 그야말로 ‘생활의 달인’급이다.

기본에 충실하면 그 다음부터 익히고 또 익히면 된다. 일신우일신이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도복 입은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흰띠 노란띠 두르고 동네 공터에서 폼 잡는 아이들, 대견하지 않은가. 배운 것을 익히고 있으니. 그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검은띠를 두를 수 있고 도복을 함부로 입지 않는 실력자가 된다.

너무 망설이지 말자. 완벽하게 배운 다음에 시작하려 하지도 말자. 여기서 지금, Here and Now! 시작하는 것이다. 카메라 이론, 사진 촬영 기본기에 대한 자료는 인터넷에 차고도 넘친다. 관심이 관건이다. 우선 유튜브에서 한두 영상만이라도 찾아보자. 끝까지 시청해 보자. 그 다음부터 컴퓨터를 켜고 유튜브를 열면 기기가 알아서 내가 원하는 자료들을 앞장세우며 영상들을 나열해 줄 것이다.

DSLR 카메라가 없다면 스마트폰으로 시작해 보자. 스마트폰에도 여러 기능이 있다.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내가 가진 폰으로 얘기하자면 플래시를 터지게 할지 안 터지게 할지, 아니면 자동으로 할지, 화면 비율을 어떻게 할지, 1:1 3:4 9:16 Full 중 선택할 수 있다. 셔터 누르는 것도 2초 후, 5초 후, 10초 후를 설정할 수도 있다. 화소를 어떻게 할까? 일반 사진과 인물 사진을 선택할 수 있고, 야간에 찍을 경우, 음식을 찍을 때, 파노라마 사진을 찍을 때를 설정할 수 있다.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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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스마트폰 사진은 프로 모드도 있다. ISO 조정과 셔터 속도 조정, 초점을 중앙에 둘지 멀티로 할지 수동으로 할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또 WB(white balance)도 조정할 수 있다. 렌즈도 울트라 와이드렌즈, 와이드렌즈, 망원렌즈, 슈퍼망원렌즈 중에 선택해서 촬영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거기까진 생각하지 말자. 우선 스마트폰의 카메라 아이콘을 누르고 이것저것 살펴보자. 겁내지 말고 망설이지 말자. 손해 볼 것없고 돈 드는 것도 아니니.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필름이 아까워 한 장 찍기가 조심스러웠다. 촬영 후 바로 확인할 수도 없었고 카메라 가게에 필름을 통째로 맡겼다가 현상이 되면 필름을 보고 인화지에 옮길지 말지를 또 결정해야 했다. 디지털은 얼마든지 찍을 수 있다. 즉시 확인 가능하다. 즉석에서 지워도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같은 위치에서 얼마든지 여러 장 찍을 수 있다. 웬만하면 카메라가 알아서 자동으로 찍게 해 준다. 정말 편한 세상이다. 물론 그 때문에 생기는 아쉬움도 많지만.

아기가 우리말 문법을 알고 입을 열던가. 옹알이부터 시작한다. 문법의 문을 몰라도 말은 한다. 승용차의 구조와 기능을 다 알고 운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운전의 기본만 알아도 시작할 수 있다. 차종이 바뀌고 옵션이 다양해져도 조금만 운전하다 보면 점점 더 기능을 익힐 수 있고 그 다음엔 자연스러워지고 그 다음엔 눈 감고도 손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은가. 반복이다. 시작이다. 몇 가지 기본만 알아도 훨씬 더 나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봄이 막 시작되었다. 카메라를 들고 나가자. 폼을 잡아도 좋다. 촌티가 나도 좋고 아마추어 냄새를 풍겨도 좋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사진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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