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신앙】박무종 편집부국장

우리 음악 선생님이 서울에서 유명한 성악가의 연주회가 있으면 다녀 오신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선배에게 들은 얘기였다. 충격이었다. 당시만 해도 서울 다녀오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야말로 김 서방 한양 구경이다. 안동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음악회를 다녀온다니, 대학입시 원서를 사기 위해 처음 서울을 밟았던 나로서는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얼마 전이다. 지난 1월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KSPO Dome)에서 열린 나훈아 씨 콘서트장을 다녀왔다는 분을 만났다. 티켓 판매 예약 사이트는 오픈한 지 몇 분 몇 초 만에 매진되었다고 하니 열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1만 명이 넘는 객석이니 얼굴이나 제대로 볼 수 있었겠는가? 예상대로 나훈아 씨는 보인다고 할 수 없을 정도여서 대형 스크린으로 보아야 했단다. 현장에 갔지만 현장이 아니다. 한데도 왜 갔을까? 비싼 입장료는 물론 오가는 시간과 교통비에 한겨울 추위까지 견뎌야 했을 것이다.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집에서 얼마든지 영상으로 클로즈업된 가수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까지 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TV 화질과 음질이 얼마나 좋은가. 뭣 때문에 거기까지 갔어, 바보들인가? 아니다. 집에서는 그 무엇으로도 현장에서 느끼는 열기와 분위기까지 맛볼 수는 없다. 현장은 현장이다.

사진은 현장이다. 부지런히 찾아가야 한다.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순간을 맞이하는 사진도 있지만 그런 것은 우연 중의 우연이다. 평생 한두 번일 뿐이다. 찾아 나서야 한다. 나가면 있고 나가지 않으면 없다. 발품을 팔아야 한다. 팔되 부지런히 팔아야 한다.

24년 12월에 개봉했던 ‘시빌 워’(Civil War)는 미국의 내전을 가상한 영화이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내란을 일으키자,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워싱톤까지 달려가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끝내 내란 우두머리 대통령을 사살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곧 내란군에 맞선 진압군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여기서 감독은 내란 동조 세력이나 진압 세력의 시각이 아니라 현장에 뛰어든 사진 기자의 시각으로 영화를 보여준다. 종군 기자 경력이 있는 베테랑 기자와 그런 기자를 존경하는 새내기 기자가 동행하며 목숨을 걸고 사진을 찍는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영화를 보는 내내 자연스럽게 감정이입 상태였다. ‘나라면, 나라면 저 순간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며...

현장에 답이 있다. 형사는 사건 현장을 찾는다. 기자도 사건 사고 현장을 찾는다. 멀찍이 바라보고 작성했던 ‘광주사태’ 기사는 시간이 흐른 뒤에 비판받는다. 현장이 아닌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한 채 작성한 기사요 관망 사진이기 때문이다. 반면 노먼 소프(Norman Knute Thorpe) 사진은 현장이다. 전 <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 기자로서 현장을 누비며 찍었기 때문이다. 그가 기증한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자료 특별전에 전시된 사진은 모두 광주와 전남 목포 등지의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들이다. 외신기자로서 전남 도청까지 찾아갔다. 그곳이 계엄군의 진압 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시민군들이 끝까지 남아 있던 현장이다.

노먼 소프(Norman Knute Thorpe)
노먼 소프(Norman Knute Thorpe)

사진은 현장이다. 스튜디오에서 찍는 사진도 있지만 대부분 현장이다. 아니 스튜디오에서 찍는 사진은 스튜디오가 현장이다. 현장을 벗어난 사진은 없다. 물론 현장 아닌 현장도 있을 수 있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플라톤의 제자요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는 마케도니아의 왕으로서 아들에게 당대 최고의 석학인 아리스토텔레스를 가정교사로 붙여주었다. 공부엔 별 뜻이 없었던 알렉산드로스였지만 스승의 영향을 어찌 받지 않았으랴. 일설에는 알렉산드로스가 지중해 주변 전역을 정복했던 이유 중 하나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배운 헬라 사상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늘이 자신을 왕가에 태어나게 하신 이유는 스승으로부터 배운 위대한 헬라 사상을 전하게 하기 위한 사명감이 있었다나. 알렉산드로스는 정복 길에 군인들만 데리고 가지 않았다. 학자들도 동행시켰다. 정복지의 식물을 채집하게 하고 채집한 식물은 본국에 있는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보내 연구하게 했다는 것이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떻게 식물까지 연구할 수 있었을까? 당시 학문은 세분되어 있지 않았고 철학자들은 모든 분야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레스보스 섬을 찾아가 3년 동안 어류와 조류를 연구했고, 그곳에서 만나 수제자이자 동료가 된 테오프라스토스는 광물학과 식물학을 연구했다. 연구 결과를 다시 철학과 정치학에 적용하여 만물을 무생물과 생물로 구분 짓고 생물 안에는 다양한 계층이 있다는 계층적 존재론을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레스보스 섬은 연구 현장이었다. 그런 바탕 위에서 알렉산드로스가 정복지에서 보내오는 채집자료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책상 위에서 연구한 것이다. 곧 자신이 현장에서 연구한 지식이 바탕이 된 상태에서 알렉산드로스가 현장에서 채집한 식물들을 책상에서 연구한 셈이다. 결국 그의 책상은 간접적 현장인 셈이다.

하나님도 현장이다. 히브리 백성들이 파라오 치하의 애굽 노예살이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셨다. 부르짖음을 들으셨다. 근심을 아셨다(출 3:7). 하나님이 못 보실 리 없고 못 들으실 리 없다. 다 아셨다. 이제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된다. 간단하다. 어떻게 개입하실까? 그저 말씀 한마디면 끝이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겨나지 않았던가(창 1:3).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데, 출애굽시키시는 것은 간단하다. 그런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나. ‘현장’으로 내려오셨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출 3:7~8).

‘내려가겠다’고 하신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백성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방관도 관망도 참관도 아니다. 현장이다. 현장에 내려가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현장이다.

아브라함을 찾아온 세 사람, 하나님이 천사의 모습으로 찾아오셨다. 죄로 멸망의 임계점에 다다른 소돔과 고모라 현장을 찾아오셨다. 하나님은 현장에 계신다. 히틀러의 학살로 처참하게 몰살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유태인들이 외쳤다고 하지 않은가.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당신이 택한 백성들이 가스실에서, 고문실에서 저렇게도 고통당하며 죽어가는데 도대체 당신은 어디 계시느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지 않은가. 죽어가는 이들과 함께 계시다고. 하나님은 현장에 계신다.

그러니 하나님이 현장을 떠나시는 것은 심판이다. 예언자 에스겔이 본 환상이 여럿 있다. 그중 에스겔서 10장에는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를 떠나시는 장면이 있다.

4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와 성전 문지방에 이르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18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19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눈 앞의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23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가운데에서부터 올라가 성읍 동쪽 산에 머무르고 24 주의 영이 나를 들어 하나님의 영의 환상 중에 데리고 갈대아에 있는 사로잡힌 자 중에 이르시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지성소의 그룹에서 올라와 문지방에 이르고, 문지방을 떠나 성전 동문에 머물고, 동문을 떠나 예루살렘 동쪽 산에 머무르다가 결국 갈대아로 떠나신다. 여호와의 영광, 곧 하나님께서 좌정하셨던 지성소를 떠나실 때 한 번에 못 떠나신다. 자꾸 머뭇거리신다. 떠나시면서도 떠나지 못하신다. 곧 심판받을 예루살렘 때문이 아닐까? 어쩔 수 없이 떠나신 것이다. 그럼 떠나신 것이 끝인가? 그럴 하나님이 아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간 백성들 곁을 떠나지 못하신다. 에스겔에게 그들에 대한 약속을 먼저 들려주신다.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겔 11:16)

바벨론으로 끌려갔지만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그들의 성소가 되어 주겠다는 말씀이다. 쌓이고 쌓인 죄악, 임계점을 훌쩍 넘어버린 죄악 탓에 끌려간 바벨론 강제노역 현장에서도 하나님은 성소가 되어 주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현장을 떠나지 않으셨다. 그럼, 그뿐인가? 또 아니다.

약속하신 대로 때가 되자 하나님은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신다.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맑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하나님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겔 43:1~2; 4)

예루살렘 성전의 부패와 타락 때문에 도저히 지성소에 머물 수 없었던 하나님은 머뭇거리시다가 성전을 떠나가셨다. 그럼에도 나 몰라라 하지 않으시고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 현장까지 찾아가셔서 그들의 성소가 되어 주셨다. 때가 되자 다시 예루살렘 성전, 에스겔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신 새 성전으로 돌아오셨다.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고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 떠나실 때는 머뭇거리고 또 머뭇거리셨던 하나님이 돌아오실 때는 새 성전으로 곧장 돌아오셨다. 하나님은 현장이다.

예수님도 현장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시니”(요 1:14)이다. 성육신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보내셨다. 내려오셨다. 찾아오셨다. 아기의 몸으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으로 오셨다. 흑암에 앉은 현장의 백성들에게 빛으로 오셨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마 4:16).

어둠에 싸인 이 땅을 건지기 위해 빛으로 찾아오셨다. 현장을 누비면서 빛을 비추셨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경계선 지역을 찾아가셨다. 세겜 지방 야곱의 우물을 찾아가셨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광인을 고치시기 위해 땅거미가 지고 밤이 시작되는 시각에 제자들을 대동한 채 갈릴리 바다 풍랑을 뚫고 거라사를 찾아가셨다. 귀신을 쫓아내시고는 어느 곳도 들르지 않고 바로 되돌아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다. 사람 아니라며 집에서 내쫓기고 무덤가에서 손발 쇠사슬에 묶인 채 괴성을 지르며 살던 그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현장을 찾아가셨다. 사랑은 현장에 있고 예수님은 현장이다.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가셨다. 38년째 실패를 거듭하며 좌절과 절망에 빠진 한 사람을 고치시려고. 멀리서 부르기만 해도 내려올 수 있었을 텐데 삭개오가 올라간 돌무화과나무 아래로 걸어가셨다. 찾아오는 사람도 만나주셨지만 찾아가셨다. 두로와 시돈도 찾아가셨고 데가볼리도 찾아가셨다. 유대만 아니라 이방 지역도 찾아가셨다.

무엇보다 땅으로 찾아오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이었다. 현장으로 보내셨다. 당신의 때가 끝나고 승천하실 때가 되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탁하신다. 땅끝까지 가라. 모든 민족에게 찾아가라. 사랑은 현장에 있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한다. 현장이라고 다 현장이 아니다. 그저 거기 그 자리에 있다고 모두 현장은 아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760m의 고지대이지만 여리고는 해발 -250m로 최저지대이다. 종려나무 성읍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살기 좋은 곳이다. 헤롯도 이곳에 겨울 궁전을 지었을 정도였으니. 그 탓일까?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은 여리고에 많이 살았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까지는 36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거리는 짧은데 해발고도 차가 1000을 넘으니 얼마나 가파르겠는가. 길옆에는 암석들도 많았고 민가도 없어 강도들이 나타나기 딱 좋은 길이다.

바로 이 길에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 흠씬 두들겨 맞고 죽어가던 사람이 있었다. 제사장도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 레위 사람도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머문 것이 아니라 지나갔다.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눅 15:31).

‘그’ 길로, 현장이다. ‘피하여’ 지나가고, 방관도 아닌 외면이다.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눅 15:32). ‘그곳’에 이르러, 현장이다. ‘피하여 지나가되’, 역시 외면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현장은 현장이 아니다. ‘피하여 지나가고’로 번역된 헬라어는 ‘반대’란 단어와 ‘지나가다’란 두 단어가 만난 합성동사이다. ‘반대편으로 돌아가다’, ‘다른 쪽으로 지나가다’는 뜻이다. 더욱이 동사 시제가 부정과거형이다. 즉각적인 행동이다. 망설임도 잠시의 주저함도 없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

반면 사마리아 사람에게 현장은 현장이었다. 그‘도’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눅 15:33~34).

개역개정 성경으로 봐도 9개 동사가 이어진다. ‘이르러’,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동사 모두 구체적 현장이다. 여기서 ‘불쌍히 여겨’는 신약 성경에 12번 나오는 데 모두 절박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쏟아부어야 할 인간의 기본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특히 동사 시제가 같은 부정과거형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즉시’ 피하여 사라졌는데, 사마리아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불쌍히 여기고 구체적으로 돕는다. 물리적 공간이 바뀌어도 떠나지 않고 강도 만난 사람과 계속 함께 있다. 사마리아 사람은 모두 현장이다. 현장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튿날까지도 이어진다. “데나리온 둘을 내어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눅 15:35). 그는 철저히 현장이다. 사랑은 현장에 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던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레지스탕스에 가입했고, 헤밍웨이(E. Hemingway)는 해외특파원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으며, 에밀 졸라(Émile Zola)는 국가 폭력의 희생자인 드레퓌스 대위의 간첩조작 사건을 짊어졌다.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그들 모두 현장을 외면하지 않았다. 사진은 현장이다. 사진가는 현장을 외면하지 않는다. 지금도 현장에서 발로 뛰고 가슴으로 담는 사진가들이 있다. 사진은 현장이다.

우리들 현장은 ‘여기 지금’이다. Here and Now! 모든 시간은 현재이다. 3차원에 사는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으로 살아간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단선적 시간이다. 하지만 차원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시간은 그걸 초월한다. 하나님께는 과거 현재 미래가 아니라 모두 현재이다. 과거적 현재, 현재적 현재, 미래적 현재이다. 알파와 오메가이다. 처음이요 나중이시다.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그분은 언제나 현장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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