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무종 편집부국장
가뜩이나 좁은 이스라엘의 국토 면적 상당 부분은 사막이고 광야다. 중앙 산악지대가 국토 중앙을 세로로 달린다. 그 사이에 요단 계곡이 있다. 하여 산이 많은 편이다. 그런 자연조건이기에 성경에 산이 많이 나온다. 모세가 율법을 받았던 시내산과 가나안을 멀리 바라보며 작별한 느보산,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맞짱을 떴던 갈멜산, 가나안 진입 후 여호수아의 그리심산과 에발산 등등. 이스라엘에게 산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
예수님도 산을 좋아하셨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윤리를 가르치신 곳이 산이었기에 산상수훈이다(마 5~7장). 선별한 세 제자들과 함께 찾아가신 곳도 변화산이며, 기도하러 가신 겟세마네도 감람산에 있다. 하기야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도 시온산에 있으니.
초등학교에서 국토 면적의 70%가 산이라고 배웠다. 지금도 그럴까? 며칠 전 ChatGPT(무료판)에 물어보니 남한은 70이고 북한은 80이라 한반도 전체는 75%로 추정한단다. 혹시나 하여 산림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한다. 지난 74년부터 5년마다 산림자원을 다양하게 조사하고 있는데 2020년 기준 629만ha, 62.6%라고 한다. 분단 속 남한만의 통계라 아쉬운데 이스라엘 산지는 민둥산이 많지만 우리는 울창하니 다행이다. 지구온난화를 지나 지구 ‘가열화’란 표현이 나오는 시대에 숲은 축복이다. 하여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에베레스트 복장’을 한 등산객도 많다. 등산은 정복이 아니라 등정일 뿐이다. 정상에 올랐다 하더라도 어찌 정복인가, 산의 허락일 따름이지. 과거엔 정상에서 다들 “야호~!”했지만 요즘은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해서 아쉬운가? 혹시라도 놀랄 숲속 생명들을 위해서라니 천만다행이다.
산 오르기가 정복이 아닌 등정이듯이 성경 읽기도 내가 읽지 않고 성경이 나를 읽도록 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말씀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말씀 앞에 내놓는 읽기가 바른 성경 읽기다. 오늘은 몇 장을 ‘읽었다’에서 오늘은 무슨 구절이 나를 ‘다듬었다’로 읽으면 좋겠다.
집 뒤에 도정산(道正山)이 있다. 멧부리(정상)가 288.2m로 비교적 낮은 산이다. 국립지리원 지형도에는 일제 잔재가 있는 ‘깃대봉’(총독부가 우리 국토 조사와 측량을 위해 깃대를 꽂았던 봉우리)이라 지역 안내도에도 그 이름을 쓰고 있어 눈에 거슬린다. 1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곳, 김밥과 물을 배낭에 넣고 산에 오르다 중턱에 앉아 아내와 먹는 점심은 꿀맛이다. 그동안 몇 번을 오르내린 산, 하지만 이번엔 혼자다. 하여 등산길 좌우에 서 있는 나무들을 만나고 싶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등산법이다. 과연 어떤 나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시인 고은이 <그 꽃>이란 시에서 그랬다지 않은가, 올라갈 때 보지 못했는데 내려갈 때에야 보았다고.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물병만 넣은 작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아파트 후문을 지나 익숙한 길을 간다. 횡단보도 1개만 지나면 바로 산 입구다. 이제 나무들을 만날 차례다.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를 작동시킨다. 나무들을 만나고 싶다. 내 마음을 알았을까. 여기저기 나무들이 나를 반긴다. 아니 반겨준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네가 그랬냐는 나무들도 있는 듯하다. 맞는 말이다. 그래도 오늘은 반겨주어야 한다. 숨이 차오르려는 데 나무들을 만난다. 도정산엔 참나무 밤나무가 많고 소나무와 가시나무도 더러 있다. 나머진 이름조차 잘 모른다. 죄송하다. 그래도 이제 한 그루 한 그루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소수자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나무가 있다. 참나무 네 그루 옆 소나무 한 그루다. 내쳐지지 않고 용하게도 살아남았다. 산림청 홈페이지에서는 소나무 신갈나무가 우리나라 최다 수종이라 했거늘 너는 여기서는 소수자구나. 참나무들이 배려해 주었나 소나무가 제힘으로 이겨냈나 궁금하다. 배려심 많은 나무들로 보인다. 참나무들이 고맙고 소나무는 장하다. 쪽수로 밀어붙이면 꼼짝도 못 할 텐데 저리도 꿋꿋하게 자란 걸 보니 소나무 너는 이웃을 참 잘 만났구나.
그렇다. 여기서는 다수자여도 저기서는 소수자일 수 있고, 여기서 소수자가 거기서 다수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소수자의 인권, 약자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아직은 멀었지만.
한민족 백의민족 단일민족이 우리를 일컫는 이름이었다. 그걸 자랑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흰옷은 염색할 힘이 없어 그냥 입었던 탓이라는 말도 들린다. 단일민족은 다문화 가정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니 다민족으로 바뀌는 중이다. 실은 외침을 많이 받았으니 이미 단일민족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룻기는 어버이주일 단골 본문이다. 효성 깊은 며느리라고. 좀 달리 볼 수도 있겠다. 모압에서 온 룻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준 베들레헴 사람들이다. 우리 민족이 아니라고 피가 다르다고 내치지 않았다. 강 건너왔다고 말투가 이상하다고 ‘왕따’시키지도 않았다. 품었다. 배려해 주었고 축복까지 했다. 여전히 배타성을 부인할 수 없는 오늘날인데, 그 시절 그때 그들은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졌을까. 그저 놀랍다. 하기야 그런 마음 씀씀이를 가진 이들이 사는 곳이라, 하늘에서 내려오실 때 그곳을 탄생지로 하시지 않았나 하는 재미난 상상도 해 본다. 예언자 미가는 달리 보았지만(미 5:2).
동족상잔
저런, 얼마나 답답했을까. 큰 가지들 사이에 낀 작은 가지 하나, 숨이나 제대로 쉬었을까. 그대로 저만치 자라려면 나름 안간힘을 썼으리라. 두 강자가 사이에 낀 약자를 옥죄고 있었나 보다. 이종도 아닌 동종, 더구나 뿌리는 같은 한 나무인데. 동족상잔이구나.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가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22살 김민기가 만들고 21살 양희은이 부른 <작은 연못>이다. 한반도라는 작은 연못, 남한과 북한이라는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갈라지고 찢어진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큰 교회 옆 작은 교회가 있고, 작은 교회 옆 큰 교회가 있다. 크든 작든 함께 부름 받은 공동체라면서 갈라진다. 이웃교회가 시끄러워야 우리 교회가 성장한다는 얘기,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 교회 안에도 통한다면 동족상잔이다. 예수 안에서 모두 형제자매라면서 서로 싸매주고 감싸주면 얼마나 좋을까. 부디 저 나무처럼은 되지 않기를.
배려
와, 이런 나무도 있구나. 나를 비틀어 너를 살린다. 소나무, 너의 고매함이 그저 놀랍다. 나무 둥치로 보아 소나무가 훨씬 크다. 그럼 먼저 자리를 잡았겠지. 한참 지나 뭔가가 옆에서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솟아 나온다. 조금씩 조금씩 아주 천천히. 소나무가 그랬듯이. 무시할까 배척할까, 아니야 어른인 내가 비켜줘야지.
소나무 생김새를 좀 더 살펴본다. 이제 막 크기 시작할 즈음인데 벌써 비켜 준 모양새다. 좀 위쪽이면 모르겠는데 한참 아래쪽, 기초가 중요하고 기둥이 바르게 서야 튼튼하게 안전하게 자랄 텐데 저렇게 비켜주었네.
‘먼저 된 내가, 어른 된 내가 양보하면 되지 뭐. 나는 이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어.’
나무의 고백이 들리는 듯하다. 오늘 만난 나무들 중에 네가 가장 아름다운 나무라 부른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1950년대 후반, 이원수 선생의 시에 정세문 선생이 곡을 쓴 <겨울나무>의 1절이다. 얼어붙은 벼랑에서 푸른 하늘을 지붕 삼아 서 있는 겨울나무의 믿음직함을 담았다. 응달에서 힘겹게 지내는 사람들과 묵묵히 교단을 지키는 선생님들 모습을 떠올리며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겨울철 나무가 ‘올바른 교육자의 길을 가겠노라’ 다짐했던 자신의 처지인 듯해 설레는 맘으로 곡을 지었다고 한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
재산 증식으로 조카 롯과의 사이에 분쟁이 시작되자 아브라함이 제안한 말이다. 나이도 경험도 믿음도 부족한 롯에게 우선권을 양보한다. 이런 마음 씀씀이가 쌓이고 쌓여 하나님께 점수를 따고 마침내 모리아에서 아들까지 드리려 한 믿음으로 나아간 것은 아닐까.
충격적 사건
밑둥치 조금 위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나무, 이런 나무는 이산 저산에 흔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갈라진 곳에 돌이 보인다. 누가 올려놓았지? 돌을 내려놓으려는 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얹어놓은 돌멩이가 아니라 박혀있는 돌이다. 세상에나!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날개가 있어 날아와 박혔나, 아니면 누가 일부터 박아 넣었나. 개구쟁이들의 장난도 아닌 것 같다. 아니! 하나가 아니라 둘이네. 이쪽에 하나 저쪽에 하나, 큰 돌 작은 돌이 박혔다. 끔찍하다.
사노라면 이런 일을 겪기도 하리라. 산사태로 무너진 집, 지난 봄 산불 화재로 통째로 화마에 잿더미가 된 집과 축사, 돌진한 음주 차량에 치인 시민들... 학교도 병원도 미사일 앞에 안전하지 못한 가자 지구, 우크라이나의 폐허와 지구촌의 참상들. 이념과 종교, 국가와 민족을 앞세운 인간들의 잔혹함이 돌멩이 되어 날아든다. 말 그대로 날벼락이다. 이 사람 저 사람, 이집 저집, 이 나라 저 나라 가리지 않고 내려꽂힌다.
성경 속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들이 죽어간다. 남편 잃고 하나 남은 아들만 붙잡고 살았는데 그 아들마저 죽었다. 손 쓸 틈조차 없었다. 이런 날벼락이 없다. 어찌하라고, 어찌 살라고. 꺼이꺼이 나인성 여인은 서럽게 울었다. 시신 된 아들 넣은 관을 붙잡고 무덤으로 간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배 아파하며 낳은 자식을 내 손으로 묻어야 하나. 가슴에 묻느니 차라리 내가 묻힐 수만 있다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마저 혼미하다.
나인 성 과부만일까. 늦둥이로 얻은 아들 금지옥엽으로 키워 추수하는 들판에 구경 갈 만큼 자랐다. “아버지, 머리가 아파요!” 하기에 급히 어미에게 데려주라 했다. 예언자 엘리사를 극진히 대접했던 수넴 여인이다. 무릎에 앉아 있던 아들이 손쓸 사이도 없이 죽어버렸다. 날벼락도 유분수다.
흉년 만나 국경 넘어 먹고 살겠다고 찾은 이방 땅 모압, 입에 풀칠하려나 했더니 남편이 죽는다. 자식들 위해서라도 살아야지 했으나 두 아들마저 죽을 줄이야.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 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나만 남기고 다 떠났구나, 다 죽었구나. 나의 기쁨(나오미)이 나의 괴로움(마라)이 되었네(룻기 1장).
이상하게 앞서가던 운구 행렬의 걸음이 느려지는 것 같다. 웬일이지. 내가 무슨 소릴 들었나. 울지 말라니. 나더러 울지 말라고? 아니야 분명 들은 거야. “울지 말라!”. 이분이 누구시기에 관 위에 손을 대는가. 시신을 가까이하면 부정해진다는 율법도 모른단 말인가. 낮은 소리로 말한다. 아니 작지만 큰 소리, 천둥 같은 울림이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 7:14). 아들이 살아났다. 나도 살아났다. 가슴에 박힌 대못이 빠졌다. 가슴을 짓누르던 바윗덩이가 굴러갔다. 나인성이 살아났다.
그렇다. 그분을 찾으면 마라된 여인이 나오미로 돌아오고, 그분이 손을 대시면 죽은 자식이 살아난다. 그분의 말씀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꺾이고 꺾여도
한 번이 아니다. 두 번도 아니다. 꺾이고도 꺾이고 또 꺾였다. 둥치가 그다지 크지도 않은데 이토록 여러 번 꺾이다니 대체 그 동안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걸까?
<청계천박물관>에 전시된 사진과 설명을 보았다. 격변기 밀리고 떠밀려 겨우 청계천변에 판잣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청계천을 복개한다며 집단 이주를 해야 한단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 말처럼 쉽던가. 악을 쓰며 버티고 버텼지만 서슬 퍼런 공권력에 끝까지 버틸 수는 없었다. 떠밀려 간 곳은 경기도 성남,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을 할 정도로 질척한 지역. 정부 말을 믿고 이주했건만 도착해 보니 준비해 놓은 것이라곤 천막 같은 가건물뿐이었다. 투쟁했다. 받아들일 정부가 아니었다. 또다시 밀려났다. 어찌어찌 살던 사람들인데 성남 개발이 시작되자 또 다시 짐을 싸야 했다. 어찌 그들만이겠는가.
내 둘째 아이는 반지하방 시절에 태어났다. 장마철 방바닥에 스며든 물을 대야로 퍼내야 했다. 30여 년 지났지만 아직도 달동네, 쪽방촌, 반지하가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아직도 현재형이다. 가진 것이 없어서 꺾인 인생, 돈이 없어서 꺾인 인생, 배운 게 없어서 꺾인 인생, 뒷배가 없어서 꺾인 인생, 올라갈 사다리가 없어서 꺾인 인생들이 있다. 한 번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꺾이고 꺾이고 또 꺾이는 인생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 나무야! 용케도 버텨냈구나. 장하다. 너야말로 의지의 한국인, 아니 의지의 ‘우리 나무’로구나!
***
이렇게 나무마다 사연이 있고 이렇게도 할 말이 많았구나. 우리만 그런 줄 알았는데 너희도 그렇구나. 이제 산 초입인데 이렇게도 듣고 싶은 이야기가 쌓였을 줄은 정말 몰랐다. 너희들 말을 듣기나 했는지, 듣고 싶은 말만 들은 건 아닌지, 아니 내 생각을 너희들에게 투사해 놓고 내가 할 말을 너희들이 하는 것처럼 포장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더 들어야 겠다. 좀 더 들어가면 또 얼마나 많은 사연이 숨어 있을까. 아직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한참 더 들어야 겠다. 사진에 담고, 그 담긴 사진에서 너희들 소리를 들어야 겠다.
사진은 나무고 사진은 관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