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철 목사 / 초원교회 원로, 부산외국어대학교 초빙교수
지난날 고신총회 분열의 원인은 성도 간의 불신 법정 소송 문제였다. 분열된 고려총회와 고신총회가 합동함에 우선하는 중요 건에도 이 문제가 관여되었다. 양 총회는 불신 법정 소송 문제에 뜻을 같이한 후 2015년 통합되었다. 이제 고려 교단(1975-2015)과 고신교단(1946-현재)의 역사가 잘 정리되어야만 한다. 이 부분에서 고신총회의 역사가 바로 정리되면 고려의 역사를 잘 합하면 된다. 문제는 고신총회의 역사가 아직 온전히 정립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간의 기술에서 굴절되거나 왜곡된 부분의 역사를 현재 정립하면서 정향으로 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본다.
고려신학교를 매개로 고신총회가 결성되는 시기인 1950년대 초 기존 총회로부터 예배당 명도소송을 당하였다. 이때 박윤선 박사는 시종이 여일하게 소송 불가를 주장하다가 1960년 고신교단을 떠났다. 송상석은 교단이 다름으로 교단 내부에서 해결이 어렵다고 보고 소송 불가피론으로 응소하여 재산권을 지킴에 일조했다. 한상동은 초량교회를 비우고 삼일교회를 개척함으로 소송을 피하는 처신을 보였으나 박윤선을 지지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송상석을 비판하지도 않음으로 소송 문제에 있어 분명한 견해를 피력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70년대에 고신교단 내부에서 소송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는 한상동 측에서 송상석을 불신 법정에 소송함으로 교단 분열이 가속화되었다. 아직도 적지 않은 고신교단 인사들이 이때의 일에 관하여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채 송상석 목사의 잘못으로 돌리고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2024년 12월 7일에 기독교보 고신 역사기획 시즌 3의 고신 자매교회 이야기(44)의 송도 본관 신축과 내분 문제(2)에서 기술자는 아예 송상석 목사가 잘못한 일로 규정짓고 기술하고 있다.
한상동 목사는 고려신학교 교장 박형룡 박사와 한 학기 만에 결별했다. 이후 박윤선 목사와도 14년 만에 갈라섰다. 이후 바로 합동측과 합동을 시도했으나 2년 후 다시 결별했다. 송상석은 합동 때도 다시 환원 때도 반대했음에도 한상동의 결단에 반하지 않고 동역함으로 고신교단을 위해 크게 유익을 주었다. 송상석이 자신의 이사장 임기 주장 문제로 교단과 마찰이 있었다고 해도 이를 고신총회는 교단 내부에서 해결하는 노력이 없이 법정 소송을 한 것은 성경 진리를 범한 일이다. 송상석은 당시 고려신학대학원을 수도권으로 이전하기를 원하였다. 이런 혜안을 고신교단이 수용했다면 오늘날 어떤 결과가 생겼을까? 역사는 가정이 무의미하기에 더 이상의 피력은 생략한다. 1970년대 소송 문제가 불거졌을 때 소장파 목사로서 하찬권 목사가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고신교단에 박윤선의 소성이었다. 총회와 노회로부터 하찬권은 이 문제로 유일하게 벌을 받았다. 결국 한상동 측은 하찬권 목사와도 결별한 것이다. 송상석은 고신총회에서 면직을 받은 상태에서 외길에 서서 반고소 고려 교단을 만들고 추종자들과 함께 사역하다가 그의 사후 이 교단은 고신교단과 통합했다.
고신교단에서는 한상동 기념강좌를 12회나 시행했다. 이를 통해 한상동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연구는 송상석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을 입증했다. 공정한 역사 연구와 기술에 결핍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2차례의 한상동 강좌가 이루어지고 합신교단에서 박윤선 강좌가 34차례가 진행되기까지(현재 36회) 송상석 강좌는 없었고 고신교단에서 송상석을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도 제한되었다. 그러나 제일문창교회와 허성동 목사 그리고 이성만 장로가 축이 되어 제1회 송상석 기념강좌가 2023년 10월 31일에 부산 세계로교회에서 개최되었다. 이때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신재철), ‘송상석 목사와 고신교회’(나삼진),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이상규)가 발표되었다. 이를 통해 송 목사가 소송이나 하는 목사란 인식을 벗고 그가 참된 개혁주의 목사임을 밝혔다. 허성동 목사는 경남권의 고신 8개 노회가 이 강좌에 협력하게 함으로 단 한 차례의 강좌로 고신 역사의 정립에 송상석과 관련된 역사가 계속하여 연구되어야 함을 인식시켰다.
이어 2회 강좌가 서울영천교회에서 2024년 10월 31일에 있었다. 이때 ‘송상석과 소송 문제’(신재철), ‘고신 교회와 송상석 목사’(이성호), ‘절제운동가 송상석’(이상규)이 발표되었다. 고신교단의 취약지로 여겨진 수도권에서 기념강좌가 열렸다는 의미가 있었고 수도권 8개 노회가 협력하였다는 의미도 있었다. 이는 송상석 목사의 후임인 허성동 목사의 신앙 인격과 은사 활용이 주효했고 어린 시절 송상석 목사의 사랑을 받고 자란 이성만 장로의 동역이 중요했다. 고신교단을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이 이들을 통해 나타난 열매였다.
두 차례의 강좌를 통해 송 목사가 정치꾼 목사가 아니었고 진정한 목회자요 고신교단을 넘어 한국교회를 위해 선용을 받은 거목 목사임이 밝혀졌다. 이제는 고신 안에 송상석 연구 전문가도 생겨났다. 가음정 교회 강종환 장로로 교회사학자인 이상규 교수가 붙여준 별칭이다. 이는 고신교단의 역사가 바르게 정립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이 드러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한상동과 박윤선 그리고 늦었지만 송상석에 대한 강좌가 계속되면서 고신총회의 분열과 통합에 관한 역사는 물론 고신총회의 역사 자체가 정립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주님의 바람이자 고신총회 구성원들의 기대임을 안다. 그간에 왜곡된 역사가 정립되어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신앙 정신으로 세워진 고신교단의 영적 위상을 회복하기를 바라고 있다.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