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에게 딸을 빼앗긴 아버지가 피눈물로 쓴 글을 연재한다. 보내 온 기고자의 글을 읽는 내내 눈물과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아무리 이단이라도 이럴 수는 없지 않느냐'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단들과 나눈 대화는 물론 수십 차례 받은 협박 문자 내용을 날짜와 시간까지 기록하고 있다. 오랜 공직 생활로 기록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이단에 빠진 딸을 구하려면 철저한 물증이 필요하리라 판단한 결과라고 했다. 한 권의 장편 실화 소설책으로 생각해도 될 만한 A4 160여 페이지 분량이다. 하지만 글의 성격상 당사자들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한다. - 편집자 - 

김민수(가명) 집사 / 이단에게 딸을 빼앗긴 아버지

3장 끝이 없는 악마들의 공격

3-13 잃어버린 영혼 / 잊고 싶은 분노

내 딸 미선이는 이제 사탄의 자식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눈물로 호소를 하고 설득을 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집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둘째 딸은 친구 집으로 막내딸은 수유리에 있는 작은 고모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강남금식기도원으로 올라가 금식하며 기도를 드렸다 .

“주님, 죄 많은 이 녀석이 주님 품에 왔으니 긍휼히 여기사 용서해 주십시오.”

천보산민족기도원
천보산민족기도원

말씀을 듣고 찬양을 드리는데 하염없는 눈물과 회개의 기도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그 후에 강남금식기도원은 거리가 멀어 남양주에 있는 천보산기도원으로 옮겨 숙박하면서 집회에 참석하였다. 천보산기도원에서 저녁집회 때 찬양 팀이 찬양을 하고 있었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한걸음씩 나가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네.”

찬양을 들으면서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어린아이가 되어 엉엉 울었다. 매일 집회 때마다 엉엉 울었다. 가슴을 치면서 울었다. 울지 않고는 하루하루를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울면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있는 아내와 나를 본 기도원 원장인 권사님이 집회가 끝나 휴식하는 시간에 나와 아내에게 다가와 물었다.

“왜 매일 눈물을 흘리세요. 무슨 일이 있어요?”

아내가 권사님에게 그동안 있었던 사연들을 말하자 권사님은 아내와 내 손을 꼭 잡으시며 기도해 주셨다.

“우리와 같이 눈물을 흘리시는 주님, 우리 집사님 내외분 따님이 사이비 이단에 빠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부모를 대적하고 있사오니 하루속히 따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거듭나게 하시고 가정으로 돌아오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권사님의 간절한 기도가 끝나자 권사님이 우리에게 말했다.

“집사님, 이제 걱정 마시고 우리 기도원에서 숙식하시고 편안하게 계세요. 제가 직원들에게 말하겠습니다.”

어느 날이었다. 갈아입을 옷이 필요해서 잠깐 집에 들렀다가 안방에 있는 장롱문이 예리한 쇠톱으로 잘린 흔적을 발견하였다. 기도원으로 올라갈 때에 장롱 안에 있던 고소장과 그들이 나에게 보낸 공갈, 협박 문자 메시지, 사건 기록문서 등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아 보관하고 있었다. 만약 장롱 안에 그대로 있었다면 이 기록물들은 그들이 전부 소각해 버렸거나 아마 가지고 가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가 결혼반지를 장롱 안에 두었는데 결혼반지는 없어지고 빈 갑만 놓여 있었다. 나는 즉시 경찰서에 신고했다. 잠시 후에 가방을 든 지문 감식반 경찰관이 집으로 들어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혹시 도난당한 물건이 있습니까?”

“네, 결혼반지가 없어졌고 그 외는 없는 것 같습니다.”

지문 감식반 경찰관은 하얀 장갑을 끼고 장롱문을 눈으로 보고 만져보면서 말했다.

“누군가 손을 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지문을 찾기가 힘이 듭니다.

나는 쇠톱으로 자른 열쇠 구멍을 가리키며 말했다.

“선생님, 여기 이 구멍 근처를 자세히 찾아보시지요.”

“그곳에는 지문이 나오지 않습니다.

나는 지문 감식반 경찰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범인이 장롱문을 열려면 먼저 열쇠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어 돌려야 한다. 그런데 지문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지문 감식반 경찰관의 지문 감식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 후 나는 10일 동안 전단지 돌리는 일을 하다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만 두고 벼룩신문을 우연히 보다가 직업소개소에서 경비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직업소개소로 전화하고 찾아갔다.

“어떻게 오셨어요?”
“취직 좀 하려고요.”
“그러세요, 여기에 잠깐 앉으세요.”

이력서를 직업소개소 소장에게 주자 직업소개소 소장은 나에게 이력서를 보면서 말했다.

“공직생활을 하시다가 퇴직하셨네요. 그런데 경비 일하실 수 있으세요?”
“네.”

나는 대답하고 직업소개소 소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마침 자리가 하나 났는데 가서 면접 보시겠어요?”

면접 결과 근무하라는 통보를 받고 천보산기도원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취직되었어!”

아내는 취직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무척 기뻐하였다.

“여보, 이제 어떤 어려움과 아픔이 있다 해도 참고 견디는 거야.”
“그래요, 여보!”
“그러면 언제부터 출근하는데요.”
“내일부터 하래.”

삼양동에 있는 5층 상가 빌딩인데 낮에는 주차 요금을 받고 저녁에는 순찰하는 곳이었다.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사회에 나와서 직업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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