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수 교수 /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대학교 교회사(Ph.D), IME Foundation 이사장, 아르메니아 조지아연구소(AGSI)와 남장로교연구소(SPSI) 대표, 버클리 연구교수
6. ‘전설’ 또는 ‘신화’와 같은 말들은 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의 용어로 사용할 수 없다. 비전문가들에 의해서 온라인상에 언급된 내용들 가운데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가 ‘성경의 진리’와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강조하는 바를 깊이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성경에 엄연히 명시되어 있는 내용을 ‘신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울러 고대의 그리스 역사 기록이나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로 기록되어 있고, 더군다나 종합적인 근거가 ‘사실’을 증명하는 역사적인 근거를 ‘전설’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성경의 말씀과 역사적 기록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잘못된 용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7. ‘토착화된 이스라엘인’ 또는 ‘토착화된 유대인’은 노아의 예언, 즉 ‘야벳은 셈의 장막에 거하고’라는 말씀의 성취를 증명한다. 창세기 12장에서 셈족인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 ‘히브리’등의 용어가 사용되었고,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유대인’이 보편적으로 쓰이면서 이 세 가지 용어들이 동의어처럼 인식되었다. 창세기 10장에서 노아의 세 아들을 중심으로 신인류가 생육하고 번성했고, 야벳에게만 특별히 축복한 지정학적 ‘창대’의 면면들을 볼 수 있다. 야벳의 후손들은 지정학적으로 광활한 영토를 기반으로 생육하고 번성해 갔다.
지정학적으로 크게 보자면, 아르메니아 하이랜드, 대코카서스, 지중해 섬들,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대륙, 그리고 실크로드를 따라서 더 넓게 분포하였다.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여 역사에서 사라졌던 10개 지파 이스라엘인들과 바벨론 포로 후에 귀국하지 않은 2개 지파의 이스라엘인들의 상당수가 야벳의 후예들의 광활한 땅에서 정착하고 토착화되었다. 사복음서에 나타난 유대인의 명절 포함, 예수님의 십자가 달리심, 사도행전의 오순절 성령강림, 그리고 주로 야벳의 후예들의 땅에서 온 성경의 증인들까지 이러한 사실들을 증명한다. 토착화된 유대인들은 사도들의 직접 전도로 아르메니아 조지아에 가옥교회가 설립되어 발전하고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토착화된 유대인들이 기독교의 예수님을 거부하고 유대교에 속하여 이교도로 살아간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유대인들은 구속사의 흐름에 순종하여 기독교의 초석을 놓는 데 헌신적이었다면, 다수의 유대인들은 기독교의 복음을 거부하고 이교도로 살았다.
8. 성경에 직접적으로 언급된 ‘아라랏 왕국 또는 제국’, ‘민니’, ‘아스그나스’, 그리고 ‘사이티안’ (Scythians, 스키타이, 히브리어로 아스그나스) 등의 용어에 주목해야 한다. 앞의 세 용어는 구약에, ‘사이티안’은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3장 11절에 언급한 단어다. 구속사의 큰 흐름 속에서 셈족에서 야벳 족속에게로 전환되는 성경의 복선으로 이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기에 그렇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처럼, 복음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전파되었다. 다른 지역으로 간 복음 전파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성경과 역사에서 야벳의 후예들을 통한 복음의 폭넓은 전파와 수용, 그리고 기독교 국가화될 정도의 획기적인 큰 흐름에 주목하는 것이다. 서쪽으로 간 복음의 역사 말고, 다른 방향으로 복음이 전파되어 역사에 남을 정도로 괄몰할 만한 기록이 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고 교회사를 다시 기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큰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는 초대교회사의 기록이 미미한 상태다. 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의 내용을 보면,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엄청난 사실들을 이미 내포하고 있었던 것을 이제야 대중들이 알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하여튼 위의 용어들에 주목하면서 구원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파악해야 성경과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겠다.
9. 구원의 역사, 복음의 역사가 야벳의 후손들이 살던 땅에서 대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광대한 지역에서는 12개 지파의 이스라엘인 또는 유대인들이 토착화되어 살고 있었다. 거의 사도들과 제자들이 이 드넓은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만큼 유대인의 회당이 많았다는 말이 된다.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는 사도들의 직접적인 전도로 국가적인 차원의 ‘사도교회’가 탄생하였고, 각 지역에 ‘가옥교회’ (House Church)들이 설립되어 성장하였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와 ‘조지아 사도교회’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주후 301년에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조지아는 주후 326년에 세계 두 번째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조지아는 역사의 질곡 속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을 받아서 정교회라는 명칭이 일시적으로 병행되어 사용되기는 했지만, 조지아 교회는 자신들이 사도교회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근에 발표된 조지아 종교회의의 결정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조지아는 시작부터 사도교회였으므로 그런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온라인상에 무분별하게 퍼져있는 비전문가들의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아르메니아나 조지아 모두 2,000년이 넘는 교회사 그 자체이다. 이는 로마 가톨릭, 즉 천주교보다도 훨씬 빠르고, 정교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오래되었고, 이 두 국가는 교회사의 시작과 맥을 같이 하여 왔다.
10. 2,000년이 넘는 교회사에서 단 두 명만이 ‘조명자’(Illuminator)라고 불린다.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의 조명자 그레고리 (Gregory), 세계 두 번째 기독교 국가인 조지아의 니노 (Nino)가 그들이다. 조명자란 한 나라가 기독교 국가가 되는 데 영적이며 실제적인 리더십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한 인물에게 부여하는 거룩하고 명예로운 호칭이다. 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는 ‘성’(Saint) 그레고리와 성 니노 대신에 조명자를 그들의 공식적인 호칭으로 사용한다.
11. 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는 ‘카세드럴’(Cathedral), 큰 교회 또는 대교회를 뜻하는 명칭을 원어 그대로 사용한다. 이를테면, 조지아의 영적 수도인 므츠헤타에 있는 스베츠호벨리(생명을 주는 기둥) 카세드럴,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총본산이 있는 바가르샤팟에 있는 에치미아진(부활하신 주님의 강림) 카세드럴로 부른다. 그 외의 일반 교회당들은 단순히 ‘교회’라고 한다. 크고 작은 교회당을 가르키는 용어로 ‘카세드럴’과 ‘교회’를 사용하는 것이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와 조지아 사도교회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수도원에 교회라는 용어를 더해서 ‘수도원교회’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수도원들하고는 다르게, 아르메니아 조지아에서는 수도원이 수도 생활만 하는 곳이 아니고, 처음부터 예배의 장소로 사용되어 왔고, 아무리 산간벽지에 있는 곳이라도 원근 각지에서 예배자들이 찾아오는 관계로 ‘수도원교회’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하다. 이는 오랫동안 현장을 누비며 이론적으로, 실제적으로 터득한 지식과 경험에서 얻은 결론이기도 하다.
12. 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는 ‘노아의 음료’와 ‘하나님이 내린 음료’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보편적으로 아는 대로, 조지아는 포도 음료인 와인의 역사가 8천 년이 넘을 정도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고 알려져 있다. 대홍수로 처음 인류가 멸종되었고, 신인류인 노아가 포도 농사를 지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아르메니아 조지아는 현존하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먼저가 되었다. 포도 관련 음료가 단순히 알코올, 즉 술의 종류가 아니라, 하나님이 신인류에게 주신 음료의 차원에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라랏 꼬냑을 노아의 음료라고 부르고, 와인을 하나님이 내린 음료라고 일컫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