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수 교수 /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아르메니아조지아연구소(AGSI)와 남장로교연구소(SPSI) 대표
미 남장로교회의 일본 선교는 1885년 11월 10일에 두 명의 선교사가 일본으로 파송되어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에 승선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시작되었다. 미 남장로교회의 일본 선교부는 주로 관서지역, 즉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고베의 이진칸을 중심으로 선교 사역을 펼쳤다. 일본 선교부는 1921년에 58명의 선교사가 활동하면서 최고의 정점을 찍었고, 그 이후 점차적으로 위축되다가 태평양 전쟁의 와중에 모든 선교사가 미국으로 철수하였다. 사실 일본의 패망 전까지 일본 선교의 획기적인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참으로 의아한 부분이다.
요도가와 기독 병원의 탄생은 일본의 패망 이전에는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었던 의료선교의 가능성 타진에서 출발하였다. 비록 미 남장로교회의 한국 선교가 1892년에 시작되어 시기적으로는 일본보다 늦었지만, 선교의 열매들은 일본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기념비적이고 획기적이었다. 특히 의료선교와 관련하여, 한국의 전라도 주요 거점에는 5개의 선교 스테이션에 병원들이 세워져 선교의 세 날개 중 한 축을 담당함으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획기적인 결과들을 양산하였다. 군산에는 애킨슨 기념병원인 예수병원, 전주에는 맥고완 기념병원, 목포에는 프렌치 기념병원, 광주에는 그래함 기념병원, 순천에는 알렉산더 기념병원 등이 위대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일제의 패망과 독립을 맞은 한국에서는 군산 예수병원이 전주 예수병원, 즉 장로교 메디컬센터(Presbyterian Medical Center)로 통합되었고, 전라남도에서는 목포와 순천의 병원이 광주기독병원으로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요도가와 기독병원은 1949년 11월에 의사인 프랭크 브라운(Frank Brown) 선교사가 의료선교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오사카에 파송되면서 꿈이 실현되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955년 1월 26일에 개원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이나 한국에서 펼쳐진 의료선교와 관련하여 미 남장로교 산하의 여전도회연합회로부터 답지한 물심양면의 후원이 큰 성과로 이어졌다. 당시 오사카시 전체를 놓고 볼 때, 요도가와 지역은 슬럼가를 방불할 정도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였다. 그런 도시 빈민들의 전인적인 치료와 돌봄을 위해 요도가와 기독병원이 세워지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