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 전경. 저 멀리 사메바 교회, 즉 삼위일체 교회가 보인다
코카서스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 전경. 저 멀리 사메바 교회, 즉 삼위일체 교회가 보인다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최은수 교수
최은수 교수

  제2의 천국으로 불린 나라

  1950년대 코카서스를 방문했던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이 했던 말이다. ‘에덴의 동쪽’과 ‘분노의 포도’ 등 수많은 명작을 저술했던 그가 난생 처음 보는 코카서스의 웅장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감탄하였다. 존 스타인벡의 표현의 연장 선상에서 조지아는 ‘코카서스의 에덴동산’과 같다고 하는 표현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한다. 그만큼 유사이래로 오랜 역사를 간직한 조지아는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자긍심이 되고 있으며, 그런 곳에 매료된 외지인들에게는 한 번의 방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발걸음을 하게 되는 신기한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므츠헤타에 있는 스베티츠코벨리 교회의 모형. 교회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므츠헤타는 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조지아의 중심지 역할을 오랜동안 감당해 왔다
므츠헤타에 있는 스베티츠코벨리 교회의 모형. 교회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므츠헤타는 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조지아의 중심지 역할을 오랜동안 감당해 왔다

자연환경이 뛰어나고 청정지역으로 알려져서인지 조지아 사람들은 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필자가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에서 만난 사람들은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된다고 말하곤 했다. 그만큼 자국의 물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각 개인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 보르조미는 탄산수로 정평이 자자하여 유사한 물건들보다 가격이 더 높다. 물이 좋은 나라로 불리운 조지아는 ‘제2의 천국’ ‘코카서스의 에덴동산’ 등과 같은 이미지와 더불어 상큼하고 신선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코카서스의 화약고, 그러나 지금은 평화와 안정

조지아는 21세기 최초의 전쟁이라고 하는 러시아-조지아 분쟁을 겪었다. 일반적으로 발칸반도를 ‘화약고’라고 부른다. 종교적으로 인종적으로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어서 언제든지 무력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발칸반도와 비교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는 지역이 바로 코카서스다. 코카서스 산맥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공존하고 있으므로 아직까지 독립을 이루지 못한 민족들이 물리적인 방법도 마다하지 않고 홀로서기를 추구하고 있는 중이다. 뉴스를 통하여 많이 접한 ‘체첸 반군’이라든지 체첸 출신의 과격분자들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테러를 자행하여 왔다.

조지아가 동서양의 교차로에 위치했기 때문에 다양한 이민족들의 침략을 받아왔다. 이 훼손된 십자가 돌판이 그런 고통의 시절을 말해주는 듯 하다. 동굴마을인 우플리츠케 박물관 소장
조지아가 동서양의 교차로에 위치했기 때문에 다양한 이민족들의 침략을 받아왔다. 이 훼손된 십자가 돌판이 그런 고통의 시절을 말해주는 듯 하다. 동굴마을인 우플리츠케 박물관 소장

아울러 조지아가 독립할 때 포함되었던 압가지아(Abkhazia)와 남오세티아(South Ossetia) 등이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고 분리를 감행하였다. 러시아가 코카서스의 소수민족들에게 파격적인 자치권을 부여하고 당근과 채찍으로 자국 영토 안에 머물게 하였으나, 워낙 각 민족들이 정체성이 강해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약해질 경우 그들은 언제든지 분리독립을 선언할 것이다. 그만큼 코카서스 주변의 민족들이 태생적으로 갈등의 불씨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언제든지 폭발할 소지는 다분하다. 게다가 인종적으로도 다양하지만 종교적으로 코카서스의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를 빼면 나머지 민족들과 나라들은 모두 이슬람의 영향이 강하여 언제든지 종교 간 충돌로 인한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불씨를 안고 있다.

동굴마을인 우플리츠케는 원랜 이교신당이었으나 조지아가 기독교화 된 이후에는 침략자들을 피하는 은신처 역할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동굴마을인 우플리츠케는 원랜 이교신당이었으나 조지아가 기독교화 된 이후에는 침략자들을 피하는 은신처 역할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2020년 후반기에 이슬람권인 아제르바이잔이 동질성을 가진 터키의 지원으로 아르메니아를 공격하여 나고르노-칼라바흐 지역의 주도권을 거의 대부분 가져갔다. 코카서스의 기독교권인 조지아조차도 자국의 이득을 위해 아르메니아의 패배를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이 펼쳐졌다. 러시아와의 분쟁으로 탈러시아를 목표로 서방과 긴밀한 관계를 지향해 온 조지아가 석유와 천연가스를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공급을 받기 때문에 섣불리 아르메니아 편을 들 수가 없었다. 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인종적으로 얽키고 설킨 코카서스는 각 민족과 나라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화약고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조지아를 비롯한 주변국들은 이제 평화와 안정을 누리고 있다.

메테히 교회에서 바라본 트빌리시 구시가의 고풍스러움과 현대적인 조화
메테히 교회에서 바라본 트빌리시 구시가의 고풍스러움과 현대적인 조화

교회는 민족적 정체성의 원천

필자가 코카서스 조지아를 방문하면서부터 해를 거듭할수록 신비한 매력에 푹 빠졌던 가장 큰 이유를 말할 것 같으면 당연히 교회라고 주저없이 말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전통이 다르게 발전되어 왔지만교회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조지아 정교회(Georgian Orthodox Church)도 그런 견지에서 이해함이 좋다고 본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조지아, 더군다나 세계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기독교 전통을 가지고 있는 국가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가 조지아다. 코카서스 지역이 동방과 서방의 교차로에 있던 관계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온갖 굴곡의 삶을 살아야 했던 특성상 조지아라는 나라의 정체성은 교회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만큼 현재의 조지아가 독립국가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근저에는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에서 어디를 가든 크고 작은 교회들로 넘쳐난다.

역사의 질곡 속에서 수 많은 교회들이 건립되었다가 이민족의 침입으로 파괴되었고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순교의 제물이 되었거나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그렇게 파괴하고 살육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조지아의 현재가 존재하는 데는 민족적 정체성의 원천인 교회가 우뚝 서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십자가 사건의 생생한 증인들

니노(Nino)라는 여성의 전도로 조지아는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였다. 조지아는 여성 조명자를 통해 기독교 국가가 된 세계 최초의 국가이다. 니노가 들고 있는 포도나무 십자가가 조지아 교회의 상징이다
니노(Nino)라는 여성의 전도로 조지아는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였다. 조지아는 여성 조명자를 통해 기독교 국가가 된 세계 최초의 국가이다. 니노가 들고 있는 포도나무 십자가가 조지아 교회의 상징이다

주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오순절 성령강림 후 땅끝을 찾아 조지아를 찾았던 사도들은 안드레, 가나안인 시몬, 즉 열심당원 시몬과 맛디아 등이다. 아르메니아에 복음을 전했던 바돌로메와 유다 다데오 사도 등도 조지아에서 사역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도들이 조지아 땅에 와서 복음을 전하기 전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했던 장본인들이다.

이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조지아 사람들은 조지아 엘리오즈 므츠케텔리(Georgia Elioz Mtskheteli)와 론지노즈 카스넬리(Longinoz Karsneli) 등이라고 조지아 교회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특히 엘리오즈의 모친은 아들로부터 전해 들은 바 주님이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시는 모습으로 인하여 큰 충격을 받았고 견디기 힘든 비통함에 빠졌었다고 전해진다.

형제 엘리오즈의 십자가 사건을 전해 들었던 그의 누이는 조지아 교회의 역사적인 중심지인 므츠헤타에서 죽었고 소중한 신앙의 유품들과 함께 거기에 안장되었다. 그녀의 무덤 위에 세워진 교회가 바로 스베티츠코벨리(Svetitskhoveli) 카세드럴이었다. 그 뜻은 생명을 주는 기둥이다. 이런 사실들은 조지아 교회가 사도들의 복음 전도와 순교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는 권위와 함께 두 명의 산 증인들이 전한 십자가 신앙에 근거하여 시작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조지아에 복음을 전했던 맛디아 사도는 바쿠미 근처에서 순교하였고 시몬 사도도 국제법상 조지아 영토인 압카지아에서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여성의 전도로 기독교 국가를 선포한 세계 최초의 나라, 조지아

물론 조지아 교회도 사도들의 직계라는 점에 대하여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조지아가 기독교 국가로 공인되는 데까지는 약 3세기 전후의 시간이 걸렸다. 조지아 교회 역사에 의할 것 같으면, 기독교 공인 이전에도 교회와 기독교인이 존재했었다는 증거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거국적인 복음화는 주후 326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조지아 교회 역사는 한 나라가 기독교 국가로 우뚝 서는 데 있어서 한 여성 전도자의 비전과 열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음을 증거한다.

그 여성이 바로 니노(Nino)이다.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에서 복음의 빛을 거국적으로 전하며 비추었던 인물이 조명자 그레고리였다. 조지아는 특이하게도 여성 조명자(Illuminator) 니노를 통하여 복음의 밝은 빛을 쪼이게 되었던 세계 최초이자 세계 교회 역사상 유일한 나라이다. 평생 교회사를 연구해 온 필자의 견해로 볼 때, 세계 어느 국가도 한 여성 전도자의 사역으로 복음을 수용하고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나라가 조지아를 빼고는 한 군데도 없다. 그래서 아르메니아의 그레고리와 함께 조지아의 니노도 사도들과 동등한 반열에 추대하여 존경을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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