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수 교수의 교회사 이야기 목록 ( 총 : 10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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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류 선교사의 해외 독립유공자 추천 자료를 찾아서 (2)
드류 선교사의 한국과 한국민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그가 한국 기독교 초기 문헌들을 소중하게 간직하였다가 그 가치를 알아줄 곳에 기증하였고, 현재 잉글랜드 케임브릿지 대학교 도서관의 훌륭한 시설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나 있다. 드류 선교사는 안식년도 제대로 갖지 못하고 한국에서 무리하게 사역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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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 현장(1)
노아의 방주가 아르메니아 땅인 아라랏산에 도착한 이후, 노아의 식구들이 아르메니아의 옛 수도인 바가르샤팟, 지금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총본산이 자리잡은 곳에서 포도농사를 지으며 살면서, 그 이후로 그 땅에서 살아오고 있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변함없이 말한다. ´역사적 에덴동산은 아르메니아에 있었다´고. 그들은 그런 연관성 속에서 노아의 방주가 역사적 에덴동산을 아우르는 민족의 영산, 아라랏산에 도착한 것이라고 말이다. 유력한 성경학자들도 역사적 에덴동산과 아라랏산을 동일시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문화명령을 대홍수 이후 살아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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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류 선교사의 해외 독립유공자 추천 자료를 찾아서 (1)
알레산드로 다말 드류(Alessandro Damar Drew)는 미 남장로교 파송 최초의 의사 선교사였으며, 1895년 3월부터 호남 최초로 한국의 나사렛, 군산에서 의료 선교 사역을 펼친 분이었다. 그는 군산의 지정학적 위치가 향후 호남 선교의 교두보로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한국선교부의 군산 스테이션 존속을 강하게 주장하여 군산이 호남 선교 최초의 의료 선교 기지가 되도록 결정적 역할을 감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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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로연구소 개설
비슷한 시기에 연구 카페를 두 개나 개설하게 되어 필자 본인도 쉽게 믿겨지지 않는 일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가 아니고는 이런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모든 일들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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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에 열광하는가?
성경과 역사에 근거하여 아르메니아 조지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지도 어언 3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에는 교회 역사를 강의하면서 피상적으로 언급하던 것이, 2017년부터 코카서스 지역을 오가면서 역사적 현장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고, 2021년부터는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가다'(아르메니아)와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 국가를 가다'(조지아)를 기술하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기 시작하였다. 2023년 들어서 새로운 형태의 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를 구체적으로 시작하면서 점점 더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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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니가조 역사문화 순례길을 걷다
필자는 ‘일본의 조선인 노동자 학살 현장을 가다’를 통해, 1926년 1월 3일에 기노모또 터널 공사를 하던 이기윤 씨와 배상도 씨가 지역의 일본인들에 의해 무참히 학살되었던 사건에 대하여 기술했었다. 이 글을 통해 필자가 명명한 ‘최은수 교수의 오니가조 역사문화 순례길’이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보편화 되어 역사의식을 견지한 신앙인으로 성장해 가기를 소망했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이 순례길을 다녀갔는지 알 수는 없다. 이번에 필자를 포함한 네 명의 순례자들이 함께하여 기독교인의 역사의식을 함양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들은 필자를 포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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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조지아 연구소 개설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아르메니아 조지아의 중요성을 알리고 구체적인 연구활동을 위해서 ‘아르메니아 조지아 연구소’(The Armenia Georgia Studies Institute, AGSI)가 개설되어 활동에 들어갔다. 대표인 최은수 교수를 중심으로 국내외의 저명한 학자와 목회자들이 자문위원과 연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본 연구소 최은수 교수는 ‘아르메니아는 주후 301년에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조지아는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 국가이며 326년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기독교 국가가 되었는데, 이런 역사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고, 창세기 1장부터 시작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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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에덴동산, 현재 예루살렘에 있지 않다
역사적 에덴동산은 현재의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지 않았습니다! 백 투 예루살렘도 아닙니다!특히 성경을 알레고리적으로 이해하거나 영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 가운데서 은근슬쩍 또는 뭉뚱그려서 예루살렘을 직접적으로 거명하거나, 역사적 가능성이 있는 지역과 엮어서 말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식의 성경해석은 초대교회 당시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영향 때문입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수많은 이단들과 비정통적인 성경핵석들이 이런 전통에 근거하여 표출되었고, 이와 더불어 직통계시를 통한 주관적이고 인위적인 것들을 통하여 성경과 역사를 왜곡하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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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
필자는 이 글을 쓰는 현재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예레반에 머물고 있다. 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 순례를 올바로 정립하기 위해 특별히 구성된 순례자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쓴 글들로 인하여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이 일고 있는 가운데 있다: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가다’(아르메니아),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 국가를 가다’(조지아), ‘코카서스의 예루살렘, 애니를 가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현장을 가다’, ‘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 순례의 중요성 I, II’, ‘아르메니아 조지아와 노의의 예언 I, II’, ‘아르메니아 조지아와 예레미야의 예언 I, II, III’. 이번에 필자가 직접 현장에서 순례팀과 함께 정통 아르메니아 조지아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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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의료 선교사, 다말 드류 (1)
미 남장로교 파송 최초의 의료 선교사는 알레산드로 다말 드류(Alessandro Damar Drew, 유대모)였다. 그는 부인 루시 드류 선교사와 함께 1894년에 내한하였다. 드류는 1895년 3월에 윌리엄 전킨(전위렴) 선교사와 함께 군산에서 호남 최초의 의료 사역을 시작하였다. 드류는 한국과 한국인들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선교사로서, 한국에서의 사역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건강의 회복을 위해 잠시 들리려 했던 미국에서 한국인들과 동고동락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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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조지아와 예레미야의 예언(3)
예레미야가 말한 북방의 고지대에는 반 호수(Lake Van)를 중심으로 세력을 떨치고 있었던 아라랏(우라투) 왕국이, 우르미아 호수(Lake Urmia)를 끼고는 마네안(민니) 왕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네안(민니) 왕국은 영산인 아라랏산을 중심으로 동남부에 위치하였다. 마네안(민니)이 역사의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대략 주전 828년 경이었다. 당시 앗시리아 제국의 살마네세르 3세(Shalmanesser III)가 통치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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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조지아와 예레미야의 예언(2)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아스그나스(스키타이) 군대는 정말 신기하게도 남조 유다 왕국을 공격하지 않았고 엄청난 공포심만 남긴체 그냥 스치듯 지나갔다. 필자는 이런 모습을 대하면서 아스그나스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섭리적 인연’ 또는 ‘역사적 복선’이라고 표현코자 한다. 이전 글들에서 여러 번 밝힌 대로, 향후 이스라엘의 다수가 아스그나스(아르메니아 조지아)의 땅으로 이동하여 토착화 된 후, 그들이 유럽으로 흩어져서 아스그나스(유럽)의 대륙으로 불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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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조지아와 예레미야의 예언(1)
두 번에 걸쳐 기록한 ‘아르메니아 조지아와 노아의 예언’(I, II)을 통해서 노아의 증손이자 야벳의 장손인 아스그나스가 유럽 전체를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이는 당대와 후대의 역사가들이 이런 점을 기술했다는 것과 유대교의 대표적인 분파가 아스그나스 유대인(Ashkenazi Jews)이라는 점 등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필자는 야벳이 노아의 장남임을 언급하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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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조지아와 노아의 예언(2)
아르메니아 조지아와 노아의 예언(1)에서 언급했던 대로, 노아의 장자 계열에 주목해 보면, 노아의 장남인 야벳, 야벳의 장남인 고멜, 고멜의 장남인 아스그나스(Ashkenaz)가 장자의 복을 특별히 받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조지아 역사에서 고멜의 후손들은 시메리안(Cimmerians)이라고 불리웠고 역사 속에서 다양한 족적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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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조지아와 노아의 예언(1)
필자가 지금까지 쓴 글들을 통하여 아르메니아 조지아를 이해하는 성경적, 역사적 견해들을 비교적 쉽게 소개하여 왔다. , , , , . 항상 역사가의 관점에서 성경과 교회사를 보아온 필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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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의 중요성 2
‘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의 중요성 1편’에서 필자가 다루지 못했던 내용들이 있어서 먼저 다루고 다음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조지아에 예수님의 옷을 가지고 왔던 엘리야도 유대인이고, 아르메니아 조지아 역사에서 양국에 황금기를 가져왔던 중세시대 바그라티드 왕가도 다윗왕의 직계라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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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조지아 성지순례의 중요성 1
성경과 역사에 근거한 성지순례, 즉 역사 현장 탐방은 주로 이스라엘과 주변, 사도 바울의 선교지, 그리고 16세기 종교개혁의 현장들을 찾아가는 것으로 이루어져 왔다. 필자가 지금까지 네 개의 시리즈를 통하여 서술한 대로 이제는 성지순례의 패턴이 바뀌어야 하고, 실제로 변화의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가다’,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 국가를 가다’, ‘코카서스의 예루살렘, 애니’, 그리고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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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인 노동자 학살 현장을 가다
최근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잊을 만하면 새로운 이슈들이 대두되어 한일관계의 골은 깊어져 왔고 상호 민족 감정은 치유되지 못하고 현재진행형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역사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To Remember)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를 바르게 사실해서, 현재를 사는 올바른 판단의 근거를 삼고, 왜곡되거나 굴절되지 않은 바른 역사의 미래를 열어가야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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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대학살의 현장을 가다(7)
동부 아나톨리아의 중심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반(Van)에 가면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반 호수(Lake Van)와 그 호숫가에 우뚝 솟은 반 성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바다와 같은 소금 호수라서 그렇고 다른 하나는 길게 늘어져 있는 바위산이기 때문이다. 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아라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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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대학살의 현장을 가다(6)
필자가 시간 되는 대로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을 돌아보면서 상당히 궁금했던 점이 ‘과연 이 지역의 박물관에는 무엇이 소장되어 전시되고 있을까였다. 왜냐하면 앞선 글들에서 언급하였듯이 오토만 투르크 제국과 쿠르드족이 자손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오고 있었던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하고 축출하면서 그들의 문화까지도 철저하게 파괴하였고 오랫동안 방치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옛 아르메니아인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