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최은수 교수(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Ph.D), IME Foundation 이사장, 아르메니아조지아연구소(AGSI)와 남장로교연구소(SPSI) 대표
대담: 조재태 목사(광주은광교회 원로목사)
최은수 교수: 가족과 본인의 신앙 배경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조재태 목사: 저는 대대로 종교가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우리 가족과 일가친척 대소가 중에 기독교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대대로 무속신앙의 가정이었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인 첫 신자인 셈입니다. 순천 대대교회에서 동네 앞산 수덕산(208m)으로, 야외예배를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도사초등학교를 졸업한 친구 4~5명이 전도하기 위하여 우리집에 들렀습니다. 저는 부재중이었으나,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그다음 주일부터 대대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이때 아무도 반대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한 주일도 빠짐없이 4km의 먼길을 출석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학습은 1956년에 순천중앙교회 김순배 목사님께 받았고, 군에서 제대하기 3일 전인 1960년 12월 2일, 강원도 홍천 성산교회 임명호 목사님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1962년에 이정숙과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습니다. 두 아들은 목사로, 나머지 자녀들은 섬기는 교회의 기둥들로서, 신실하고 충성스런 일꾼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최은수 교수: 목회자로서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점을 두고 하신 작업은 무엇인지요?
조재태 목사: 제대 후 주위 목사님들과 가족들의 권유로 1964년에 고려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신학공부 전에는 순천사범학교 3년 수료하였고, 순천농림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68년에 신학공부를 마친 후 목회사역에만 전념하였습니다. 2002년 5월에는 미국 코헨신학교에서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습니다. 이웃의 추천이 있었고, 고신총회 임원을 두루 거쳤으며,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장직을 잘 수행한 일과, 특별히 설교집 37권을 집필 출판한 것을 인정받았습니다. 전라고려신학교 교장직을 13년 동안 헌신적으로 봉사한 것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신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던 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만나 주셨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식비 때문에 끼니를 거르는 학생들도 많았고, 소금국으로 식사를 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경건회 시간은 언제나 눈물로 범벅이 된, 은혜충만 성령충만한 가슴 뜨거운 시절이었습니다. 신앙으로 중무장한 뜨거운 가슴은, 농어촌 어디든지 찾아 나섰습니다. 그 시절에 무장한 신앙으로 사역을 준비했습니다. 영혼 구원과 복음전파는 전도자의 사명임을 깨닫고 배웠습니다.
신학교 재학 중에 진성교회, 하이교회, 칠암교회, 구자제일교회 등 네 교회를 섬겼습니다. 농어촌교회이면서 미자립교회들입니다. 사역에 전념할 수는 없었지만, 복음전파에 최선을 다하여 교회를 성장시켰습니다. 어렵고 힘든 농어촌 교회였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목사가 된 후의 네 교회 벌교중앙교회, 여수충무동교회, 포항대흥교회에서는 교회의 성장이 뚜렷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광주은광교회의 23년 사역(1983-2005)은 축복의 사역이었습니다. 그 어렵고 힘든 전도주일을 봄과 가을, 두 차례씩 44번을 지켰습니다. 눈물의 사역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이었기에 교인들을 설득하고, 교회의 사명임을 일깨우면서 온 교회가 곁눈질할 수 없게 했습니다. 전도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혔습니다. 주께서 축복해 주셨습니다. 교회의 성장이 뚜렷했습니다. 복음전파 영혼구원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속한 고신총회는 호남지역 교세가 매우 약한 편입니다. 따라서 지역 출신 교역자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런 사실은 교회 성장에서 가장 큰 장애요인입니다. 이런저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여기저기에 개척교회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광주은광교회의 몸부림치는 모습은 다른 교회들을 일깨웠습니다. 모든 교회들이 최선을 다하였을 때, 그 위에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전남동부노회와 전북노회가 조직됨으로 호남지역에도 세 노회가 설립되는 축복의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최은수 교수: 사역하신 분야의 추세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이런 흐름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조재태 목사: 정말 어렵고 힘든 사역이 목회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정말 인기 없는 직업(?)이고,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습니다. 언제나 경건의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열매 때문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성도의 신앙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감격했습니다. 교회가 부흥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과 긍지를 느꼈습니다. 복음전파에 올인하는 교회마다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하신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광주은광교회에 재임한 23년 동안에 개척한 교회는, 해외 3처(산티시모교회, 마닐라 은광교회, 올림피아 은광교회), 국내 12처(곡성은광교회, 신가은광교회, 목포은광교회, 무안은광교회, 서부은광교회, 연동은광교회, 오치은광교회, 용산중앙교회, 하남은광교회, 새울림교회, 장산중앙교회, 경신교회), 개척에 준하는 세 교회(첨단은광교회, 곡성연화교회, 반석교회)가 있습니다. 부채에 시달리면서 어려운 중에 개척한 교회들이 힘을 얻는 것을 보았고, 교인들을 40여 명씩 파송한 교회들은 금방 크게 성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척비용은 하나님이 다 갚아주셨고, 마중물로 파송한 교인들의 빈 자리도 넘치게 채워 주셨습니다.
복음 진리는 영원히 변함이 없지만, 이를 전파하는 방법은 그 시대와 문화에 따라 지혜롭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중대형교회를 지향하는 시대는 지냈습니다. 이제 교회는 외적 성장보다는 내적 성장을 지향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를 분립 개척하여 든든히 세워감이 더 중요합니다. 요즈음 그런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어 다행입니다. 작지만 강한 교회로 성장해 가야 한국교회의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합니다.
최은수 교수: 한국교회에 던지고 싶은 화두는 무엇인가요?
조재태 목사: 예배의 회복입니다. 시대는 변해도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통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은 예배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배 없는 신앙생활은 불가능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친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회개요 감사요 찬양이요 헌신이 예배입니다. 진정한 예배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도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진정한 응답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가인의 형식적인 예배 정신이 만연해 있음이 우리를 탄식하게 합니다. 따라서 잃어버린 영성 회복과,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정신의 회복이 한국교회의 과제입니다.
최은수 교수: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한국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조재태 목사: 한국교회는 한때 급속한 성장 때문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점을 지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점은 많습니다.
1) 외적인 성장주의와 물질주의에 치우친 경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 목회자의 독선적인 권위주의가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3) 지나친 개인주의 때문에 공동체의식이 부족합니다.
4) 세대 간의 갈등도 교회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5)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는데, 사회적인 책임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중요합니다.
1) 만연한 물질주의를 극복하고 영적인 성장을 추구해야 합니다.
2) 서로 돕고 함께하는 공동체의식을 강화해야 합니다.
3) 목회자와 성도가 함께 참여하는 민주적인 교회 운영이 필요합니다.
4) 세대 간의 소통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5) 포용하는 교회로서 글로벌시대를 대비해야 합니다.
최은수 교수: 은퇴 지도자로서 평생 과업으로 삼고 하시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요?
조재태 목사: 제가 현역시절에는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최선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그러는 중에 노회의 일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노회장으로 8회를 섬겼습니다(경동노회 2회, 전라노회 6회) 부흥집회도 200여 회 섬겼습니다. 총회의 일에도 정성껏 수종들었습니다.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장으로 섬겼고, 전라고려신학교 교장으로 13년을 섬겼습니다. 총회의 여러 기관 임원으로 섬겼고, 고신총회 총회장으로도 섬겼습니다. 지역사회를 위해서는 기아대책 광주지역 회장을 역임하였고, 광주직할시 기독교단협의회 회장 사역도 감당했습니다.
지금 내 나이 90입니다. 영성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말씀 묵상과 가정과 교회와 한국교회를 위한 기도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습니다. 현역시절 교회에서 펼쳤던 성경필사 운동을 은퇴 후에 실천하였습니다. 신약성경은 볼펜으로 필사하였고, 구약성경은 컴퓨터에 입력하여, 신구약 성경 필사를 완료하였습니다. 많은 페이지가 예상되는 회고록을 집필 중이며, 수필집 3권도 출판하였고, 제4집을 준비 중입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영성을 잃지 않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은수 교수: 신앙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또는 다음 세대에 주시고 싶은 명언 한마디는 무엇인가요?
조재태 목사:
“사람의 마음을 뒤집고 불을 지르는 것은, 곱게 다듬은 아름다운 문장이 아니라 투박하지만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