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수 교수 /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대학교 교회사(Ph.D.), IME Foundation 이사장, 아르메니아 조지아연구소(AGSI)와 남장로교연구소(SPSI) 대표, 버클리 연구교수
역사적 감각은 역사(History)에서 출발한다. 역사는 ‘시간’(Time)과 ‘공간’(Space)으로 구성된다. 태초는 시간이고, 천지는 공간을 지칭하는데, 창조가 역사의 시작인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역사를 말할 때 창조주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이해한다. 일반적으로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서도 역사적 센스를 견지한 경우가 많았다. 하물며 역사의 시작을 가능케 하신 창조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둔 기독교인들의 센스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역사적 감각 또는 센스가 차원이 다르고 독특한 것은 ‘친밀감’(Intimacy) 또는 알기 쉽게 ‘친한’ 관계에서 차별화된다. 창조주 하나님과 이런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경우는 그 감각과 센스를 감히 말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경지에 근접조차 불가능하다. 신적인 선물로 주어지는 ‘믿음’이 없이는 그런 관계 자체를 형성할 수 없다. 더군다나 기독교의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풍성함은 기독교인들의 역사적 센스를 극대화시켜 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강림은 그런 센스가 구체화되고 실현된 것이다. 성령님의 내주 하심과 교회와 함께 역사하심은 항상 생생한 감각을 유지시켜 준다.
기독교인들의 역사적 감각 또는 센스가 일반적인 것과 완전히 다른데, 신적 ‘친밀감’과 ‘친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 기억해야 한다. To Remember.
믿음을 선물로 받은 기독교인들은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순종의 자세로 기억하기 위해 헌신한다. 기억함은 최선의 예의이자 헌신이다. 창조 이후, 성삼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서 기억함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했다. 기억하여 행동으로 실천할 때는 모든 일들이 형통하였다. 반면, 기억함에 소홀했을 경우에는 준엄한 댓가를 치루어야 했다. 신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신앙의 사람들은 기억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기억해야 될 내용들로 가득찬 성경을 붙들고 살았던 기독교들은 잊지 않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하면 살고, 망각하면 죽는다. 죽지 않기 위해서 사생결단하고 기억해야 한다. 구체적인 행동지침은 1) 개인사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2) 가족사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3) 개별 교회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4) 성지순례 등의 방법으로 역사 현장을 방문한다.
둘째로, 묵상해야 한다. To Meditate.
묵상함은 기억함의 신앙적 실천이다. 이 두 가지 모두 실제적이고 인격적이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역사의 창조주이며 주관자 되시는 성삼위 하나님과 친밀해져서 친한 관계가 더욱 발전하게 된다. 모든 신앙적 실천들이 역사적이어서 감각과 센스는 더욱 구체화 된다. 교회와 관련된 모든 활동들이 역사적이다. 개인적인 성경읽기, 가족예배, 공예배, 성경공부, 기도모임, 찬양, 전도와 선교, 봉사와 구제, 성도의 교제 등 하나도 예외 없이 역사적이다. 신앙인으로서 일상적인 삶 자체가 묵상함이다.
시간과 공간의 창조자를 믿는 기독교인들은 역사의 흐름을 온몸으로 반응하는 직감적이고 감각적인 존재들이다. 그래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것이고 그 어느 누구도 기독교인들의 이런 특권을 능가하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는 기독교인들에게 절대적인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