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8일 민족문제연구소가 출간한 <친일인명사전>이 한국사회는 물론 한국교계에도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 사전에 등재된 4천383명 중에 해방 전후 한국사회를 쥐락펴락했던 인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종교계도 예외는 아니다. 종교별로 보면 불교 54명, 개신교 51명, 유림 41명, 천도교 29명, 천주교 7명 등 총 182명으로 조사되었다. 이전 2008년 발표된 수록예정자 명단에는 202명이었으나 이의제기 등 재조사를 통해 최종 확정된 수가 182명이 된 것이다.
개신교 인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충격적이게도 개신교의 경우 각 교단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조선예수교장로회는 1938년 제 27차 총회 때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곧바로 신사참배를 단행했다. 이것을 주도했던 당시 홍택기 총회장을 비롯해서 부총회장 김길창 목사, 당시 서기로 결의문을 낭독하고 그 다음 해인 1939년에 총회장에 오른 곽진근 목사 등이 모두 포함된 것이다.
감리교의 양주삼 목사, 성결교의 이명직 목사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930년 남북 감리교회가 통합하면서 한국인 최초로 총리사(오늘날 감독회장)의 자리에 오른 양주삼 목사는 1938년 장로교가 신사참배를 가결할 때 동시에 “기독교인들은 종교인이기에 앞서서 국민”이라며 신사참배를 찬동했다. 더욱이 해방 후에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 없이 “출옥교인이나 그렇지 않은 교인이나 고생하기는 매 한가지였다”며 신사참배를 정당화하려했다는 것이다. 양주삼 목사는 이후 1949년 대한적십자사 초대 총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한국전쟁 중에 납북되었다.
3·1운동의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정춘수 목사도 그 명단에 들어갔다. 독립운동으로 애국 활동을 했지만 1939년 일본의 지원 아래 조선감리교 제 4대 감독으로 취임, 1941년에는 친일 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후신인 국민총력조선연맹에 가입, 신사참배를 독려했다. 고향인 청주에 독립선언서 민족 대표 33인으로 동상이 세워졌지만, 1996년 친일행적이 알려지면서 시민단체에 의해 철거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명직 목사는 한국성결교회 초대 총회장이자 성결교의 신학적 토대를 만든 성결교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도 위 명단에 들어갔다. ‘국민정신총동원성결교회연맹’과 ‘국민총력성결교회연맹’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신사참배에 앞장섰던 전력 때문에 친일인사 명단에 오른 것이다. 이명직 목사는 성결교 목회자 양성기관인 서울신학교 교장(1951년), 서울신학대학 명예학장(1965년)으로 활동했다. 이 목사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보다 일제에 협력하는 것이 더 낫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일제치하라는 사회에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친일인명사전> 출간에 대해 반발이 적지 않다. 기독교계도 마찬가지다. 이명직 목사 기념사업회는 위 사전이 발표되자마자 즉각적으로 항의성명을 발표했다. ‘과연 이명직 목사는 친일인사인가?’라는 소책자를 통해 “표면적인 것만을 가지고 고 이명직 목사를 친일파라고 운운하는 것은 교단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명직 목사도 이용만 당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일제로부터 특혜를 누린 것이 없으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히려 피해를 당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오히려 신사참배 이후 일제가 한국교회를 통합하고 구약성경을 폐기하려할 때 적극 저항하며 옥고까지 치르기도 했다는 것이다.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기독교인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다. 물론 기독교 역사를 통해 많은 부분이 이미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사전’이라는 그 이름과 행적이 소상히 공개된 것에 대해 놀라워하고 있다. ‘jsyyongin’란 이름의 네티즌은 얼마 전 용인에 위치한 순교자기념관을 방문한 바 있는데 그곳에서 순교자들의 명단이 사전에 포함되어 있다며 충격이었다고 했다. ‘hurray777’이란 이름의 네티즌도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라며 과거의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일인명사전> 앞에 서 보았다. 평소 존경했던 몇몇 분의 이름이 먼저 눈에 ‘확~’ 튀어 올라왔다. 마음이 무거웠다. 그 사전 앞에 선다는 게 누구에게나 부담일 게다. 그 명단의 인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건 없건 할 것 없이 말이다. 우리나라의 한 면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역시 ‘안티기독교’인들이 또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친일파와 개신교가 모두 없어져야 한다는 식이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종교인들 명단에 개신교인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개신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아닌데 ‘안티’들은 유독 개신교를 향해 독기를 뿜어내고 있다. 평소 하나님 없이는 죽을 것 같이 온갖 거룩한 척을 다하는 기독교인들이 정작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니까 친일행각을 벌였다는 게 ‘안티’들의 논리다. 바로 언행불일치다. 그럼 언행일치를 위해 우리가 ‘거룩한 복음의 외침’을 버려야 할까. 아니다. 더욱 우리들의 행위, 삶을 거룩함에 맞추어 가야할 일이다. 그래서 <친일인명사전>이 오늘 우리들에게 회개의 기회, 더욱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