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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연구논문 ] ‘밭의 가라지 비유’ 이해 ④
2017년 11월 18일 (토) 08:17:26 양용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 신학연구논문 ] ‘밭의 가라지 비유’ 이해 ④

- 마태복음 13:24-30, 36-43 의 의미와 적용

양용의 교수 /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

3. 석의적 고찰

3.1. 비유(13:24-30)

3.1.5. 종들의 문제 해결 질문(28하절)

   
▲ 양용의 교수
ⓒ<교회와신앙>

집주인의 답변을 들은 종들은 집주인에게 질문 겸 제안을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모으기를 원하십니까?’ 그들의 이러한 제안은 당시 농부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자연스런 제안이다.52) 양분과 햇빛을 가로채서 밀의 성장을 저해하는 가라지들은 당장 제거하는 것이 최종적인 밀 수확량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3.1.6. 집주인의 문제 해결 답변과 명령(29-30절)

① ‘아니다 밀도 뽑지 않도록 ...’(29절)

종들의 당연해 보이는 제안에 대한 주인의 답변은 부정적이다(29절):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모으다가 그것들과 함께 밀도 뽑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주인의 이러한 답변은 일반적인 농사 방식에 비추어보면 의외이다.53) 주인의 부정적 답변 이유는 분명하다. 가라지들을 제거하기 위해 뽑다보면 필연적으로 밀도 뽑히게 되기 때문이다. 가라지가 열매를 맺을 때쯤 되면 뿌리가 강하고 깊게 뻗쳐 있어 밀의 뿌리와 뒤엉켜 있기 때문에 밀에 피해를 주지 않고 가라지만 뽑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54) 집주인의 이러한 답변은 그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농사의 수확량보다는 밀 하나하나의 안전에 관심을 둔다. 이는 일반 농부들의 관심에서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세상 농사법과 다른 하나님 나라 농사법의 비밀이다(참조 13:11). 실제로 누가복음에서 제자들은 자신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마리아 한 마을 사람들을 하늘의 불로 멸망시켜버릴지 묻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가신다(눅 9:52-56).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그 마을에 적어도 잠정적인 ‘그 나라의 아들들’이 있다고 판단하시고, 자신들을 거절하는 가라지들과 그들 가운데 섞여 있을 밀이 함께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듯하다. 더 나아가서 지금 그들을 거절하는 가라지들 가운데도 (아직은 그 열매가 미숙하여 확실히 구별되지 않지만) 종국에는 하나님 나라 선포를 받아들이게 될 잠정적인 밀이 있다고 보시고, 가라지로 보이는 자들을 향한 선교적 가능성을 열어놓으신 것으로도 볼 수 있다.55) 하나님의 복음 선포를 거절하는 자들에 대해 제자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그들을 떠나갈 때 자신들의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심판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마 10:14-15). 이제 예수님의 명령은 이처럼 심판 날을 기다리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② ‘둘 다 추수까지 함께 자라도록 하여라’(30상절)

종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 이어 이제 주인의 명령이 나온다(30상절): ‘둘 다 추수까지 함께 자라도록 하여라.’ 이 명령은 가라지 비유의 핵심 사상을 결론적으로 선언한다. 가라지와 밀을 인위적으로 구분하여 가라지를 제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종들은 마지막 날 추수까지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비유 해설은 ‘추수’를 ‘시대의 끝’이라고 확인해 준다(39절). 신구약성경에서 ‘추수’는 마지막 심판의 상정으로 자주 사용된다(사 27:12; 호 6:11; 욜 3:13; 마 3:12; 계 14:15 등). 예수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제자들은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는 ‘밭’ 곧 ‘세상’ 가운데서, ‘가라지’ 곧 ‘악한 자의 아들들’을 섣불리 제거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대신 그들은 인자의 최종 심판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적지 않은 학자들은 38절의 ‘밭은 세상’이라는 해설에서 ‘세상’(κόσμος, 코스모스)을 ‘교회’(ἐκκλησία, ‘에클레시아’)와 일치시키는 해석을 취하곤 한다.56) 하지만 세상을 교회와 일치시킬 경우 30절의 명령은 교회 내에 죄인을 치리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는 18:15-18의 교훈과 조화되기 어렵다. 더욱이 마태의 문맥상 11-12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교회 내의 참 신자와 거짓 신자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 선포의 대상인 이스라엘(10:5-6;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온 세상; 참조. 28:19-20) 가운데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받아들인 제자들(=궁극적으로 교회)과 거부하는 적대자들 사이의 문제인 것이 분명하다.57) 그렇다면 여기서 세상은 문맥상(11-12장), 그리고 예수님 당시의 삶의 정황상, 일차적으로 복음이 선포되는 대상인 이스라엘(참조 10:5-6)이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을 지칭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마태복음 전체의 시각에서(28:19-20), 그리고 이미 마태 공동체의 정황상, 궁극적으로 복음이 선포되는 온 세상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58)

다만 밭을 세상으로 볼 경우 41하절의 ‘그들이 그의 나라로부터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들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모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왔다.59) 이 말씀은 마지막 심판 상황에서 인자가 보낸 천사들이 밭에 자라는 악한 자의 아들들(38하절), 곧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들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모으는 곳이 ‘그의 나라’(βασιλείας αὐτοῦ, ‘바실레이아스 아우투’)라고 지칭한다. 밭을 교회로 보는 이들은 여기서 ‘그의 나라’가 교회를 지칭하기 때문에, 그의 나라(41절)와 같은 세상(38절)은 교회를 지칭한다고 본다. 하지만 적어도 마태복음 안에서 ‘나라’와 ‘교회’가 서로 대체될 수 있는 방식으로 언급된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60) 실제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교회와 나라는 엄연히 구별된 실체들로 드러난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성된 공동체를 뜻하는 구체적인 개념인데 반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왕권과 연관된 다양한 요소들을 포괄하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61) 따라서 ‘그의 나라’를 단순히 ‘교회’와 일치시키는 시도는 결코 자명하지 않을뿐더러 타당하지도 않다.62) 그런데 요한계시록 11:15하는 ‘그의 나라’를 이해하는데 큰 지침을 준다. ‘세상(κόσμου, “코스무”)의 나라가 우리 주님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분께서 영원 무궁히 다스리실 것이다.’ 여기서 ‘세상의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 때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이 선언된다(참조. 단 7:13-14).63)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모든 악한 자들을 심판하실 때(계 20:11-15), 세상 나라는 이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41하절은 시대의 끝에 인자가 재림하셔서 이미 ‘그의 나라’가 된 ‘세상’(38절)에서 모든 악한 자의 아들들을 모으는 상황으로 적절히 이해될 수 있다.64) 그리고 악한 자의 아들들을 모으는 이유는 지금 제자들이 그처럼 고대하고 있는 순수하게 그 나라의 아들들로만 이루어진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함이다(30하, 43절).

③ ‘먼저 가라지를 ... 그리고 밀은 ...’(30하절)

집주인의 답변은 계속된다: ‘그리고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할 것이다. 먼저 가라지들을 모아 그것들을 불태우도록 그것들을 단들로 묶어라. 그리고 밀은 내 곳간에 모아라.’ 일반 농사에서는 씨를 뿌리는 자들이 대개 추수꾼 역할도 수행한다.65) 하지만 가라지 비유에서는 이들 둘이 구분된다. 씨 뿌리는 단계에서 나타났던 ‘종들’은 ‘그 나라의 아들들’ 곧 제자들인데 반해(38절), ‘추수꾼들’은 ‘천사들’(39절)이기 때문이다.66) 비유의 이러한 이례적 상황 설정은 제자들이 심판을 상징하는 추수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점을 부각하는 듯하다. 제자들의 역할은 이 정도로 심판과는 상관이 없으며, 그들의 임무는 심판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다. 추수꾼들은 가라지를 먼저 모아 불태우는 땔감으로 사용하도록 단들로 묶는다. 나무가 귀한 팔레스타인에서 가라지들은 아주 유용한 땔감이었을 것이다.67) 끝으로 밀은 인자의 곳간에 모은다. ‘내 곳간’은 ‘아버지의 나라’와 일치될 수 있으며(43절) 궁극적 구원의 영역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참조. 3:12).68) 최후 심판에 대한 30절의 간략한 묘사는 비유 해설에서 매우 길게 확장 설명될 것이다(39하-43절)‘

결론적으로, 종들의 질문에 대한 집주인의 최종적 답변은 종들의 질문과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사항들을 밝혀 준다. 첫째, 밀과 가라지, 곧 의인들(43절)과 악인들(41절) 사이의 구분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구분은 최종적인 것이다. 둘째, 그 구분의 시점은 지금이 아니라 ‘시대의 끝’(39절)이다. 셋째, 그 구분은 종들, 곧 제자들이 아니라 추수꾼들, 곧 ‘천사들’(39절)의 몫이다. 그렇다면 종들인 제자들에게는 악인들에 대한 심판과 관련해서는 그 어떤 역할도 기대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기대되는 것은 단지 시대의 끝에 있게 될 인자의 심판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악한 자들을 제거하려는 현재적 시도들은 인자의 명령을 거스르는 불법이 될 수밖에 없다. < 계 속 >
 

각주)------------

52) 참조. Luz, Matthew 8-20, p. 255, 특히 n. 31; Nolland, Matthew, p. 546.

53) 참조. Luz, Matthew 8-20, p. 255.

54) Hagner, Matthew 1-13, p. 384; Hultgren, Parables, p. 296

55) 참조 Kingsbury, Parables, p. 74.

56) 이러한 이해는 교회사적으로 긴 역사를 갖는다. 일찍이 초대교부들로부터 시작해서, 어거스틴, 칼빈을 포함한 다수의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최근에는 비유 해설을 예수님의 것으로 보지 않는 대부분의 편집비평학들이 이런 입장을 견지한다. Carson, ‘Matthew’, p. 373; Osborne, Matthew, p. 533 n. 3을 보라. ‘밭’에 대한 다양한 이해 및 그에 따른 다양한 해석의 역사에 대해서는 Luz, Matthew 8-20, pp. 271-74를 보라.

57)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MeIver, ‘Parable’, pp. 651-53의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예를 들어, 그는 18:15-17을 그 앞뒤 문맥의 교훈들에 비추어 용서와 회복에 무게를 두고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8:15-17 자체의 치리(治理)에 관한 엄연한 교훈은 여전히 가라지 비유와 긴장 관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58) 참조. Kingsbury, Parables, p. 97; Hagner, Matthew 1-13, p. 393.

59) 예. MeIver, ‘Parable’, p. 646.

60) 참조. Stein, Parables, p. 146; Carson, ‘Matthew’, p. 373.

61) Ladd, Presence, pp. 263-64를 보라.

62) 참조. Davies and Allison, Matthew, II, p. 430.

63) 요한계시록의 이런 사상 배경에 단 7:13-14이 있었으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Beale, Revelation, p. 611을 보라. 마태가 41하절에서 ‘그의(=인자의)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도, 그는 분명 단 7:13-14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참조 France, Matthew, p. 536; Osborne, Matthew, p. 534.

64) Stein, Parables, pp. 145-46을 보라. Ladd, Presence, p. 233-34의 설명도 주목하라. 참조. Wenham, Parables, p. 58-59.

65) 물론 추수 때는 추가적인 추수꾼들이 동원되기도 한다(참조. 9:37-38). France, Matthew, p. 526을 보라.

65) 이는 9:37-38 에서 제자들이 추수꾼 역할로 부름을 받는다는 점과도 구분된다.

67) Jeremias, Parables, p. 225.

68) 참조. France, Matthew, p.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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