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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연구논문 ] ‘밭의 가라지 비유’ 이해 ①
- 마태복음 13:24-30, 36-43 의 의미와 적용
2017년 11월 09일 (목) 10:49:08 양용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밭의 가라지 비유’ 이해 ①

- 마태복음 13:24-30, 36-43 의 의미와 적용

※ <성경과 교회> 15/1 (2017), pp. 78-120.

양용의 교수 /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

   
▲ 양용의 교수
ⓒ<교회와신앙>

‘밭의 가라지 비유’는 마태복음 13장에 소개되는 여덟 개 비유들 중 두 번째 비유로서, 공관복음서들 중 마태복음에만 독특하게 나타난다.1) 이 비유는 씨 뿌리는 자 비유처럼 비유와 더불어 해설을 수반하는데, 씨 뿌리는 자 비유와 달리, 해설(36-43절)이 비유(24-30절)에 이어서 제시되지 않고, 다른 두 비유들(31-32절: 겨자씨 비유, 33절: 누룩 비유)이 소개된 이후에 제시된다. 이러한 배열은 가라지 비유의 기원 및 비유와 해설 사이의 관계에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 일으켜 왔다. 무엇보다 가라지 비유가 씨 뿌리는 자 비유와 겨자씨 비유 사이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은 그 기원이 마가복음에서 씨 뿌리는 자 비유(막 4:3-20)와 겨자씨 비유(막 4:30-32) 사이에 나타나는 알지 못하게 자라는 씨앗 비유(막 4:26-29)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불러일으켜왔다.2)

그런가 하면 비유와 비유 해설이 이처럼 떨어져 제시될 뿐 아니라 둘 사이에 구조와 내용상의 강조점 등이 매우 다르다는 점에 근거하여 비유와 해설이 별도의 기원을 갖는다는 주장도 제기되어 왔다.3) 이 비유와 해설은 그 기원과 관련해서뿐 아니라 그 의미와 관련해서도 적지 않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무엇보다도 밀과 가라지가 함께 뿌려진 밭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가와 관련된 논란은 교회사를 통해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켜 왔고, 오늘날까지도 그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4) 이와 관련해서는 밭의 의미를 밝혀주는 38절의 ‘세상’(κόσμος, ‘코스모스’)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그 ‘세상’과 41절의 ‘그의 나라’(τῆς βασιλείας αὐτοῦ, ‘테스 바설레이아스 아우투’)와는 어떻게 연관되는지 등과 관련된 구체적인 해석적 논의가 뜨겁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적 결과는 30절의 ‘둘 다 추수까지 함께 자라도록 하여라’라는 명령을 세상에 적용해야 할지 아니면 교회에 적용해야 할지와 관련된 첨예한 적용적 논의로 연결된다. 그런데 이처럼 그 기원과 해석 그리고 적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이 비유와 비유 해설을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본문이 나타나는 13장의 문학적 구조와 그 문맥적 위치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와 관련하여 이 비유가 전제하고 있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역사적 정황, 그리고 이 비유와 해설을 복음서에 독특하게 소개하는 마태의 관심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에 근거하여 이 비유가 오늘날 세상과 교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지를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1. 본문

1.1. 마가복음의 알지 못하게 자라는 씨앗 비유(막 4:26-29)와 비교

마태가 마가복음을 자료로 사용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 중 어떤 이들은 마태가 마가복음의 알지 못하게 자라는 씨앗 비유(막 4:26-29)를 가라지 비유로 개작하였다고 제안해 왔다.5) 마가복음에서 알지 못하게 자라는 씨앗 비유는 씨 뿌리는 자 비유와 겨자씨 비유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마태복음에서 알지 못하게 씨뿌리는 씨앗 비유 자리를 가라지 비유가 대신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제안의 가능성을 지지해 준다. 게다가 이들 두 비유 사이에 다양한 유사점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이러한 제안에 힘을 실어 준다. 실제로 두 비유 사이의 유사점은 인상적이다. 두 비유는 기본적인 구성이 평행을 이룬다. 1) 씨앗을 뿌린다. 2) 잠을 잔다. 3) 씨앗이 자라나서 열매를 맺는다. 4) 추수를 한다. 게다가 두 비유에 사용된 공통 어휘들이 많다. ‘나라’(βασιλεία, ‘바설레이아’; 마 13:24//막 4:26) ‘사람’(ἄνθρωπος, ‘얀뜨로포스’; 마 13:24//막 4:26), ‘잠을 자다’(καθεύδω, ‘카뮤도’; 마 13:25//막 4:27), ‘밀’(σῖτος, ‘시토스’; 마 13:25, 29, 30//막 4:28), ‘[싹이] 나다/싹트다’(βλαστάνω, ‘블라스타노’; 마 13:26//막4:27), ‘싹’(χόρτος, 코르토스’; 마 13:26/막 4:28), ‘열매’(καρπός, ‘카르포스’; 마 13:26//막 4:29), 추수’(θερισμός, ‘떼리스모스’; 마 13:30//막 4:29). 이러한 사실들은 가라지 비유가 마가의 알지 못하게 자라는 씨앗 비유의 개작이라는 제안의 타당성을 지지해 주는 듯하다.

하지만 그러한 제안은 잘 살펴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무엇보다도 위에서 나열된 유사점들은 언뜻 매우 인상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킹스베리(J.D. Kingbury)도 지적하였듯이, 농사를 비유의 소재로 사용하는 비유가 씨 뿌리는 일로 시작해서 씨앗이 자라나고 열매를 맺으면 추수한다는 그림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6) 게다가 두 비유 사이에는 유사점들뿐 아니라 괄목할 만한 차이점들도 드러난다. 알지 못하게 자라는 씨앗 비유에서는 농부가 잠을 자지만 가라지 비유에서는 사람들이 잔다(물론 집주인도 포함되겠지만!) 자라는 씨앗 비유에서는 잠자는 동안 씨앗이 자라나지만, 가라지 비유에서는 잠자는 동안 가라지가 뿌려진다. 자라는 씨앗 비유는 농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씨앗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는데 초점을 맞추는 데 비해, 가라지 비유는 밀과 가라지가 추수까지 함께 자라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7) 이러한 차이점에 비추어볼 때, 마태가 마가의 알지 못하게 자라는 씨앗 비유를 재구성하여 가라지 비유를 저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다수의 학자들은 마태가 활용한 전승 가운데 가라지 비유가 이미 존재했다고 간주한다.8) 그리고 적지 않은 학자들은 마태가 사용한 전승이 예수님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제안한다.9) 끝으로 두 비유의 유사한 기본 구조와 관련해서 웬함(D. Wenham)은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소재의 비유를 유사한 구조와 어휘를 사용하여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수차에 걸쳐 제시하셨을 가능성을 적절히 지적한다.10)


1.2. 가라지 비유와 비유 해설 비교

밭의 가라지 비유(24-30절)는 그 해설(36-43절)과 상당 부분 연관되어 있지만, 그 관심의 초점에 있어서는 독특한 차이를 보인다. 이 비유와 비유 해설을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들 둘 사이의 연관성과 상이점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비유와 비유 해설이 갖는 각각의 메시지가 상호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위의 평행 대조를 통해 다음 세 가지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첫째, 비유 해설은 먼저 비유의 이야기 부분 핵심 요소 다섯 가지(24-25절)와 대화의 결론부분 두 가지 요소(30상절)를 사전적으로 해설한다(37-39절). 이러한 사실은 비유와 그 해설 사이에 긴밀한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11) 둘째, 비유 해설은 비유의 관심 초점에 해당하는 대화의 대부분(27-29절)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또한 종들에게 주어진 집주인의 결론적 명령(‘둘 다 추수까지 함께 자라도록 하여라’ - 30상절)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셋째, 비유 해설은 대화의 결론부, 곧 집주인이 추수꾼들에게 준 명령(30하절)에 대해서는 매우 자세하게 확장 설명한다(40-43절). 이러한 차이들은 비유와 그 해설 사이의 상이한 기원 때문이라는 설명도 가능하지만, 앞의 긴밀한 연관성을 고려할 때 비유와 비유 해설의 상호 보완적 기능을 위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실제로 비유는 인내 주제에 초점을 맞추는 데 반해(27-30상절), 비유 해설은 밀과 가라지, 특히 가라지가 맞게 될 심판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40-43절).

그렇다면 비유와 비유 해설 사이의 차이점에 근거하여 비유 해설의 기원을 마태 자신의 것으로 돌리려는 시도는 그리 결정적이지 못하다.12) 그런데 비유 해설의 진정성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13) 특히 웬함은 비유 해설이 비유와 실제로는 놀라울 정도로 잘 들어맞는다는 점, 비유 해설이 예수님의 사역 현장인 팔레스타인 상황과 잘 어울린다는 점, 그리고 복음서들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과 어울리지 않는 점이 전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비유 해설의 진정성을 설득력 있게 피력한다.14) 여기에 더하여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마태가 교회에 대해 독특한 관심을 보인다는 점(참조 16:18; 18:17)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혹자들이 주장하듯이,15) 마태가 자신의 교회 공동체 안에 진짜 신자와 가짜 신자의 공존 상황을 인내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자 이 해설을 창작한 것이라면, 38절에서 ‘밭’을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라고 규정한 것은 설명하기 어렵다. 이처럼 비유 해설의 진정성을 부인할 충분한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아래 논의에서는 비유 해설을 예수님께 기원을 두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리고 비유와 비유 해설 사이의 긴밀한 상호보완적 기능을 염두에 두고서, 비유를 다루는 가운데 그와 연관된 해설의 내용들을 참조하여 해석해 나갈 것이다. 그 결과 비유 해설은 비유 해석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들을 중심으로 다소 간략하게 다룰 것이다.


1.3. 도마복음 평행 본문과 비교

   
 

예수님의 어록을 수집해놓은 영지주의 성향의 외경복음서인 도마복음에 가라지 비유의 평행 비유가 나타난다. 위의 평행 대조를 통해 도마복음의 형태가 마태복음의 형태에 비해 매우 간략하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특히 도마복음에는 싹이 나서 알곡을 맺을 때 가라지가 나타났다는 언급(26절)이나 종들과 집주인 사이의 첫 번째 대화(27-28상절)와 종들의 두 번째 질문(28하절)은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집주인의 두 번째 대답(29-30상절)의 평행구에서는 생략된 언급과 대화 내용이 전제된다. 특히 ‘그 사람은 가라지를 뽑지 못하게 하였다’라는 언급은 앞서 사람들이 뽑으려는 제안 내지는 시도를 했다는 점을 전제함으로써만 그 의미가 통한다. 이처럼 도마복음의 형태는 그 이전에 좀 더 충분한 내용을 담은 자료(예. 마태복음 비유)를 요약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도마복음의 형태는 마태복음의 형태보다 원래적이라기보다는 마태복음 형태의 전승을 간결하게 요약한 것으로 보인다.17) 도마복음의 심판상황 묘사는 마태복음(30절)에 비해 매우 간략하며, 특히 밀에 관한 내용은 생략되어 있다. 도마복음에 가라지 비유의 해설은 나타나지 않는다.    < 계 속 >
 

각주)----------

1) 외경 도마복음 57장에는 보다 간략하지만 유사한 형태의 비유가 나타난다.

2) 대표적으로 Manson, Sayings, pp. 157-93; idem, Teaching, pp. 222-23을 보라. 이와 관련해서는 아래(1.1) 논의를 참조하라.

3) 예를 들어, Kingsbury, Parables, pp. 65-66을 보라. 이와 관련해서는 아래(1.2) 논의를 참조하라.

4) ‘밭’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역사에 대해서는 Luz, Matthew 8-20, pp. 271-74를 보라.

5) Jülicher, Gleichnisreden, II, pp. 561-63; Bacon, Studies, pp. 85, 97; Manson. Sayings, pp. 192-93; idem, Teaehing, pp. 222-23; 참조 Gundry, Matthew, p. 261 – 그는 마태가 마가의 알지 못하게 자라는 씨앗 비유와 씨 뿌리는 자 비유를 융합하여 가라지 비유와 그 해설을 저작했다고 제안한다.

6) Kingsbury, Parables, p. 64.

7) 김득중, <복음서의 비유들>, p. 168을 보라.

8) McNeile, Matthew, p. 196; Dodd, Parables, p. 183; Beare, Earliest Records, p. 118; Schweizer, Matthew, p. 302; Stein, Parables, p. 143; Lambrecht, Treasure, p. 165; Hagner, Matthew 1-13, p. 382. 이 비유가 마태의 편집적 창작물일 수 없는 이유들에 대해서는 Davies and Allison, Matthew, II, p. 409를 보라.

9) Kingsbury, Parables, p. 65; Stein, Parables, p. 143; Wenham, Parables, p. 57; Lambrecht, Treasure, p. 165; Hagner, Matthew 1-13, p. 382; Hultgren, Parables, p. 300. 참조 Jeremias, Parables, p. 227 n. 90.

10) Wenham, Parables, p. 57.

11) 참조. Wenham, Parables, p. 65.

12) 물론 비유 해설이 마태의 창작이라는 주장의 다른 주요 근거들도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Jeremias, Parables, pp. 87-84는 마태적인 어휘를 37개나 나열한다. 하지만 이러한 어휘적 경향은 마태가 자신의 자료를 재기술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는 현상이다. 게다가 Brown, ‘Parable and Allegory’, pp. 39-40은 Jeremias의 어휘 통계 기준들의 문제를 적절히 지적한다. Lambrecht, Treasure, p. 169도 보라. 한편 Jeremias, Parables, p. 85는 도마복음에 비유만 나타날 뿐 해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도 해설이 마태의 저작이라는 점을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쩌면 마태복음을 자료로 사용했을지도 모르는 도마복음에 해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토대로 해설을 마태의 저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편 비유 해설이 알레고리적이기 때문에 그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고전적 경향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Brown, ‘Parable and Allegory’, pp. 36-45를 보라

13) Brown, ‘Parable and Allegory’, p. 39-40; Ladd, Presence, pp. 231-32; Kistemaker, Parables, p. 38; Wenham, Parables, pp. 65-66; 참조. Lambrecht, Treasure, p· 169.

14) Wenham, Parables, p. 65.

15) 예. 김득중, <복음서의 비유들>, p. 171(참조. p. 173).

16) 이 번역은 송혜경, <신약 외경> 상권, p. 333에서 온 것이다.

17) Davies and Allison, Matthew, II, p. 415; Hagner, Matthew 1-13, p.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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