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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총균 목사의 특화목회론 3
2023년 04월 14일 (금) 10:38:31 오총균 목사 skoh1112@hanmail.net

1969년 미국의 남부 명문 사립대인 밴더빌트 대학교(Vanderbilt University)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던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교수는 조국 방글라데시에 귀국에서 가난 속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며 버티다 결국 길거리로 내몰리는 자국민의 처참한 현실을 목격했다. 그는 대학 교수직을 과감히 내던지고 빈곤의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그라민 은행(Grameen Bank)’을 설립, 무담보 대출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라민 은행’은 1175개 지점으로 그 수를 확장하였고 240만 명에게 3조 6000억 원의 대출금을 제공하였다.

무함마드 유누스 교수가 보여준 삶의 정신과 가치와 방식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것과 동시에 사도 바울이 보여준 삶의 철학과 방식, 그리고 목회의 핵심가치와 실천적 방식에 대해서도 연구하여 목회자들이 직면한 고통(아픔) 극복을 위한 가치실현 방법과 삶의 성취 동력을 살펴보는 오총균 목사(시흥성광교회 담임, 한국특화목회연구원장)의 <특화목회론>을 연재한다. 이를 통해 한국교회 안에서 다양하게 수행해 왔던 일반적인 목회개념(concept)을 뛰어넘는 종합적인 목회개념과 내용(contents)을 포함하는 「특화목회론」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오총균 목사/ 시흥성광교회 담임, 한국특화목회연구원장, 미국 풀러신학대학원 목회전문 박사, 시흥시서구기독교연합회부회장

   
 오총균 목사


  3. 나만의 목회 역사를 써 나가라

  “사람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경제 이론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고민하던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의 경제학 교수직을 내 던지고 가난과 빈곤이 난무하는 삶의 현장에 뛰어들었다. 실물 경제와의 괴리를 해결하는데 교수라는 직위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내린 결단이었다. 가난을 해결하지 못하는 경제 이론은 실제 가난으로 고통 받는 빈민들에게 무용지물이며 한낱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실제 빈민을 죽음과 고통에서 건져내고 비참한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빈곤의 원인과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그리하여 이론 중심의 삶의 현장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실제 중심의 고통의 현장에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뛰어들었다. 마치 모세가 애굽의 종살이를 하며 절규하며 고통 받는 자기(히브리) 민족을 위해 과감히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히11:24), 동족의 노예 살이 고통 현장에 뛰어든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성육신하심과 같이 말이다(빌2:6-7). 그는 삶의 차선(車線)을 바꾸어 삶의 주도성을 스스로 찾아 자기 결정권을 확보함으로서 남이 설계해 놓은 각본과 연출을 따라 연기하는 부속품 인생을 청산하였다. 부모 혹은 스승, 사회 등 타인이 자신에게 설계하여 그려준 삶에서 과감히 벗어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삶의 운영 방식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삶의 밑그림을 재설계하였다. 그는 자신이 세운 계획에 따라 움직여 갈 수 있는 무대의 주인공으로 삶을 전환하였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쓰는 연출자로 자신만의 인생 공연을 펼쳐 나갔다.

   
 

많은 목회자들이 자기가 없는 타인의 삶을 살고 있다. 부모, 스승, 선배가 선정해준 편견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실제로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목회현장을 성경적으로 아름답게 가꾸는데 유익되지도 않는 비생산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말씀에 따라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충실히 따르는 자로 살고 있다. 자기결정권(self-determination)이 부재(不在)한 가운데 프로그램화 되어진 기성 틀 안에서 획일화된 삶을 살고 있다. 부름 받은 소명에 근거한 신적목적(神的目的)에 부합된 진정한 자신만의 삶은 빠진 채, 타인이 설정해준 방식과 방향을 따라 ‘바람’처럼 살고 있다. 이 같은 삶은 마셔도 갈증을 느끼는 바닷물처럼 자신의 갈증이 아닌 타인의 갈증을 채우며 사는 삶이다. 정작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려는 신전의식(神前意識)에 기초한 삶이 아닌, 사적(私的) 욕망의 틀에 묶여 이를 충족시켜가기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롬10:2-3). 많이 추구하고 더 빨리 달려가도 진정한 만족이 없는 공허한 목양의 길을 걷고 있다. 정작 목회자 자신은 배제된 채 목회라는 일(job)에 얽매여 나 없이 굴러가는 바쁜 세월에 자신을 방임하고 있다. 이제 목회자도 자신만의 목회 역사를 써 나가기 위한 주체적인 삶을 위한 용기 있는 결단이 요구된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 입혀준 사울의 갑옷을 벗고 자신만의 물매와 돌로 무장하듯이 말이다(삼상17:39-40).
 

자기 결정권을 확보하라

‘가치실현’이라는 특화목회 관점에서 ‘목회’란 남들이 설정해 놓은 그들의 설계 밑그림을 복제하여 가져와 실행하는 목회개념이 아니다. 그동안 한국교회에서는 목회에 관한 창의적인 밑그림을 목회자 자신 스스로가 독자적으로 개념 설계하기보다, 이미 남들이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그려놓은 밑그림을 받아와 실행만 하는(두 날개와 G12, 제자훈련 등) 목회가 성행하였다. 자기만의 독창적인 개념의 목회를 설계하기보다 소위 성공한 기성(旣成)교회가 제시한 밑그림만 모방하여 실행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러나 타인의 목회 밑그림을 복제하여 시행하는 목회는 타인이 연출하는 각본에 따라 연기하는 조연(助演)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의 꿈을 위해 연출하는 조연 연기만으로는 목회의 능력 확장과 완성된 목회 성취가 불가능하다. 결코 만족스러운 충실한 목회사역을 수행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타인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자신의 삶을 사는 자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사는 자가 된다. 복제(複製)목회에 적응하면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밟는 것이 된다. 곧 목회자 자신은 없는 목회가 진행되는 것이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삶과 사역은 바람에 일렁이는 수면(水面)과 같다. 늘 외부의 바람에 의해 춤추며 내면의 확신 없이 요동친다. 사람은 자기가 세운 계획에 따라 일하면서 자기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결정할 때 생산성(生産性)이 증대된다. 즉 ‘자기 결정감(self-determination)’에 기초하여 일을 할 때, 활력과 만족을 경험한다. 사람은 자신이 삶의 「주체자(主體者)」가 되고 중심인물로서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때, 존재 이유에 대한 희열을 느낀다. 사람은 자신이 선택하여 원하는 바를 성취해 나갈 때, 흥미와 즐거움을 갖게 되고 생산성이 극대화되며 삶의 의욕이 증대된다. 원함을 스스로 결정할 때 만들어지는 흥미와 즐거움은 그 일에 스스로 몰입하게 만들어 능력을 확장한다. 그리고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게 되고 자신이 주도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며 식지 않는 열정을 유지하게 된다. 곧 성취동기가 강화되는 것이다. 목회의 주인공은 바로 목회자 자신이다. 목회자 자신이 빠진 목회로는 진정한 목회나 목회다운 목회를 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의 의식적, 무의식적 선택이 오늘의 자기 자신을 만든 것이며, 앞으로의 선택이 역시 내일의 자기 자신을 만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선택이 중요하다. 후회 없는 선택이 필수이다. 만들어진 규칙이 싫다면 가장 먼저 개척하라. 그러면 그것이 곧 규칙이 될 것이다.

한평생을 자기 없이 살아온 삶을 인생의 종착역에 가서야 깨닫는다면 이는 큰일 날 일이다. 인생이 다 지나가기 전에 깨닫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야 한다. 어느 교수의 말처럼 인생은 'Best one'이 아니라 'Only one'이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단 일생(一生)동안, 그것도 길어야 40년 진행되는 목회이다. 목회자가 자기만의 삶을 사는 원칙을 추구하며 일단 자기 결정권(self-determination)을 가지고 나다운 목회사역을 시작한다면 목회의 반은 성공한 것이다. 이에 서둘러 자신만의 목회에로 진입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하나님께서 자신만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그 뜻을 찾고 그 목회사역에 몸담아야 한다(요4:34,6:38). ‘특화목회란 자기만의 개념설계를 통하여 창의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그 그려진 밑그림의 바탕 하에서 독창적으로 나만의 강점을 살려 목회를 실행하는 주체성을 띤 사역이다. 타인이 규정해 준 틀 안에서 남의 꿈을 따라 실행하는 대중의 보편적 사역과는 구별된다. 남들을 따라 하는 방식의 복제와 모방목회는 흉내내기 수준의 목회에 불과하다. 모방과 복제 목회는 목회의 겉만 맛보는 목회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는 진정한 목회가 될 수 없다. 모방과 복제 목회 방식으로는 새로운 기회의 바다에 다다를 수 없다. 이 같은 방식의 목회로는 결코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목회자는 적어도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서 길을 발견하고 남들이 시도해 보지 않는 곳, 남들이 뛰어들지 않는 자신만의 곳으로 가야 한다(행1:8). 그리고 그곳에서 열정을 불태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냄으로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경계선을 허물고 독창적인 자신만의 나다운 목회에 진정으로 몸을 던져 새로운 기회의 바다에 다다라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 토마스 아 캠피스는 “지금이야말로 일할 때다. 나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 때다. 오늘 그것을 못한다면 내일 그것을 어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벤 스타인은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모든 목회자들이 먼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곧 자기 결정권(self-determination)을 확보하는 것이다. 즉 목회의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필수품이다. 오손 웰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정하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라고 하였다. 순자(荀子)가 말한 것처럼 “아무리 가까운 길도 걷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고, 아무리 간단한 일도 실행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가 대학의 교수직을 버리고 독창적인 삶의 밑그림을 그렸듯이, 한국교회 모든 목회자들도 자기 결정권(self-determination)이 확보된 가운데 진행되는 나다운 목회에로의 진입을 시도하기로 결단해야 한다.
 

두려움과 의심을 정복하라

목회자가 남의 것을 모방하여 그 밑그림을 도입할 경우, 약간의 변형만 생겨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속수무책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내부가 아닌 외부에 목회 중심이 있게 되면 외부 변화에 의해 요동치게 된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이같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목회를 실행하고 있다. 예기치 않는 순간 폭풍이 몰아치면 자칫 목회근간(牧會根幹)이 뿌리 채 흔들릴 수 있다. 만일 목회자가 자신만의 목회개념을 설계하고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밑그림을 스스로 그렸다면 얼마든지 ‘돌연변이(突然變異)’에 대한 대처가 가능하다. 조금도 요동치 않고 흔들림 없이 변화에 대응하여 미래 목회에 대처해 갈 수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부닥쳐 온 파도 앞에 압도당하고 가치실현의 비전을 잃어버리고 작은 변형에도 갈 바를 몰라 하는 이유는 두려움의심때문이다(수1:9). ‘두려움’이란 어떤 현상이나 사건에 직면했을 때 지니는 불안한 감정이다.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멸, 신체의 일부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절단, 자신이 더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다는 자유상실, 자신이 버려질 수 있다는 분리, 창피와 수치심으로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는 자아죽음에 이르기까지 두려움의 형태는 다양하다. 두려움에 의해 심리적 충격을 받아 갈팡질팡하게 되면 직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출구가 보이지 않아 불안해하고, 지금 가는 길에 대하여 계속하여 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을 잃고 의심하게 된다(출20:20). 때로는 오던 길을 되돌아 가려하기도 한다(출14:4). 그동안의 공든 탑이 일순간에 허물어질 위기의 순간을 맞기도 한다. 작고 사소한 일에 매여 버리면서 크고 중대한 일을 놓쳐 버린다. A∼E까지의 일이 존재하는 가운데 A와 E라는 개별적 부분에 집착하다 보면 B∼D까지의 일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린다. 부분을 전부화하여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단정해 버린다. 결국 부분을 전체로 비화시켜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위기를 자초한다(민14:31). 두려움은 우리 두뇌를 파고들어 지각과 행동을 억제하고 판단을 흐리게 하며 좋은 기회마저 날려버린다. 지금 만난 비본질(非本質)의 일에 매여 본질(本質)을 놓쳐버리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눅10:41-42). 목회자가 지닌 어설픈 지식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일을 자초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목회자는 자신이 만난 일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말고 위기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그 위기의 순간과 별개로 객관화해야 한다. 곧 두려움과 의심에 자신을 몰아넣지 말고 문제와 별개로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거기서 탈출하여 두려움과 의심을 정복하고 자신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 두려움이란 어떤 현상, 경험 하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며, 의심은 미래의 삶의 안정적 전개에 신뢰를 보낼 수 없다는 부정적 자기 인식이다. 이 두려움과 의심의 근원은 무지무력감이다. 대다수 목회자들은 관련 지식에 대한 무지 때문에 두려워하고, 상황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무력감 때문에 의심한다. 무지를 극복하는 해결 방안에 관한 지식을 체득하면 두려움과 의심은 사라진다. 그리고 목회의 자신감은 회복된다(민13:30). 목회자가 남이 그린 밑그림을 모방하는 데서 벗어나고 자신만의 창의적인 밑그림을 그려 독창적인 목회를 실행한다면 무지와 무기력은 극복된다. 무지의 극복은 관련 지식의 연구와 습득을 통해 가능하고, 무력감의 극복은 동기 회복을 통해 가능하다. 동기(動機)는 행동을 일으키는 내적 요인이다. 중요한 의미’, 해야만 하는 확신’, 즐거움을 지닐 때 동기가 유발된다. 이상의 동기 유발 요소를 통하여 용기와 열정에 활력을 불어넣을 때 무력감은 정복된다. 목회자 자신의 내면에 만족감을 더해 갈 수 있는 에너지원을 생성시켜 자신만의 목표지점을 정조준하고 목표를 향해 나가면 어느새 두려움의 감정은 사라지고 의심은 자신감으로 바뀌고 용기와 확신이 마음 한 가운데 넘치게 된다(민14:9).

장애물과 난관을 돌파하기 위한 관련 지식을 습득하고 목회자가 만난 상황을 통제하게 되면 반드시 「이기는 힘」을 지니게 된다. 결국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하게 되고 내적확신의 충만(充滿)에 이르게 되어 자신만의 목회 역사를 써나가기에 충분한 역량을 구비하게 된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정신이다. 때로는 어리석어 보여도 한 우물을 깊이 파나가는 우직함을 보이며 한 가지 일에 매진하다 보면 위대한 큰일도 해낼 수 있다. 에픽토테스는 “우선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자신에게 말하라. 그리하면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하였다. 마크 트웨인은 “앞으로 나가는 비결은 일단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워싱턴 의과대학의 임상 심리학자 로버트 마우어(Robert Maurer)에 의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변화의 시도에 나설 경우, 대다수는 중도에 포기하고, 결국 8%의 사람들만 새로운 변화시행에 성공한다고 한다. 그는 「아주 작은 반복의 힘-One Small Step Can Change Your Life」이라는 책에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일단 가장 단순하고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하라고 제안한다. 행동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보다는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작은 질문’, ‘작은 생각’, 작은 행동’, ‘작은 해결, ‘작은 보상, ‘작은 순간’ 등의 작은 것들의 시작이 마침내 성공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P. 시르스는 “최고에 도달하려면 최저에서 시작하라”고 말했다. 데모스테네스의 말처럼 작은 기회로부터 종종 위대한 업적이 시작된다. 이에 목회자가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며 큰 뜻을 향해 나아간다면 열정이 평정심으로 전환되고 곧 심적 안정화가 이루어지며 전진의 발전 토대가 마련된다. 이때! 시작이 반이 되는 의미가 무엇인지 터득하게 된다. 이로써 자신만이 쓸 수 있는 나다운 목회 역사를 써나 갈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된다.
 

잠재 능력을 키워 보여라

사람에게는 능력의 씨앗이 심겨져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발견하고 개발하는가에 있다. 그 능력을 발아(發芽)시켜 잘 키워 표출해야 한다. 잠재 능력을 발견하는 길은 실행에 있다(히10:36). 어떤 일에 계기가 발생하여 ‘실행’을 하다 보면 자신이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고 재능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약2:22,26). 해보지 않고 성취되는 것은 없다. 순자(荀子)의 말처럼 반걸음도 꾸준히 내딛지 않으면 천리를 갈 수 없고, 적은 물도 모으지 않으면 강과 바다를 이룰 수 없다. 내가 지닌 재능과 능력을 나만 알고 내 속에 지니는 것만으로는 인정받지 못한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재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그 능력을 알아챌 수는 없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지닌 내면의 능력을 표출해야만 그 능력이 드러난다. 능력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할 수 없다. 유명한 그림도 액자에 끼워지지 않으면 박물관에 전시되어 진가를 발휘할 수 없듯이 나의 가진 능력과 재능도 남에게 드러나 알려지지 않으면 그 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능력을 인정받으려면 보여주어야 한다(마25:20). 능력을 키워 간직하는 것만으로는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능력은 밖으로 드러내어 보여주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진리이다. 베냐민 프랭클린은 “자신의 재능을 감추지 말라. 그늘 속의 해시계가 무슨 소용이랴!”라고 하였다. 그늘 속의 해시계는 시계로서의 의미가 없다. 숨기는 미덕으로는 삶의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 나만의 재능과 능력을 사람들이 알도록 표출되고 발휘되어야 한다. 마치 도끼가 자루에 끼워질 때 제 역할을 할 수 있음 같이 말이다. 그때 목회자의 가치가 인정받고 능력이 존중받게 된다. 모든 목회자는 자신만이 지닌 그 재능과 능력을 개발하고 표면화하여 타인들이 알도록 표출해 나갈 필요가 있다. 숨겨진 잠재 능력 개발과 함께 개발된 능력을 표출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표출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이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드러내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확인된 것만 믿는 경향이 있다. 이를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 부른다. ‘확증편향’(確證偏向)이란, 선택적 사고의 일종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신념을 확실히 증명해주는 것들을 쉽게 찾는다.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목회자는 ‘확증편향’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자신은 이 방면에 최고의 실력자라고 말하면서 이를 입증하여 확증편향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나의 능력을 판매해 줄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다. 이는 자신의 능력을 타인들에게 홍보해주고 부각시켜 주어 주변 인물이 자신의 능력을 홍보하도록 활용하는 방법이다. 곧 능력을 돋보이게 해 줄 액자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주변 사람들 중 나의 능력을 홍보해 줄 수 있는 홍보대사가 필요하다. 이는 얄팍한 처세술이 아니다. 고도의 처세술이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홍보해줄 역할을 수행할 사람의 확보는 중요하다. 목회자가 지닌 능력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표출하여 ‘특화목회’를 성취하기 위한 전략이다. 목회자는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유감없이 펼쳐 보여야 한다. 때로는 타인의 도움으로 목회자의 능력을 표출해야 한다. 그리하여 독창적인 나만의 목회 역사를 특화하여 써 나가야 한다. 소극적인 자세로는 자신만의 목회 역사를 써 나갈 수 없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승자만이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지도력이라는 리더십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주체만이 역사를 이끄는 줄기를 형성한다. 결국 나만의 목회 사역 역사를 써 나가야만 목회의 주체가 된다. 이를 위해 잠재능력을 개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과감히 발휘하는 용기와, 미래의 남은 일생 속에 삶의 전체를 지속적으로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는 나만의 목회 사역을 수행할 용기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들에게 특유의 재능 씨앗을 심어 놓으셨다(마25:15). 목회자는 자신을 내보이기를 두려워 말고 재능과 능력을 사장(死藏)시키지도 말고 용기 내어 과감히 드러내야 한다. 서울대 황농문 교수는 그의 저서 「몰입」에서 “지적 재능은 후천적 노력으로 발현(發現)된다”고 하였다. 재능은 올바른 교육방식으로 발아(發芽)시키기만 하면 얼마든지 발전 가능하다. 가능성에 도전하며 열심히 실행하다 보면 능력의 정점에 다다르게 된다. 도전과제에 응전하여 자신 안에 있는 자신만의 가치를 세상에 꺼내 보여준다면 숨겨진 능력이 드러날 것은 자명하다. 필립 애덤스는 “사람은 잠재력을 지녔다. 용기 내서 해내면 위대한 일도 한다”고 하였다. 발타사르 그라시안은 “자신을 내보여라. 그러면 재능이 드러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목회자들이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드러낸다면 자신만의 역사를 써 나가는 주체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L. 론 허바드의 말처럼 “절대 어제를 후회하지 마라. 인생은 오늘의 나 안에 있고, 내일(tomorrow)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목회자가 용기 내어 자신의 재능을 키우고 하나님께서 주신 잠재 능력을 개발하며 자신만의 비전과 꿈을 성취해 나간다면 나만의 목회 역사를 써 나가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목회는 달란트를 사용하여 영적 재생산을 창출하는 소명 사역이다(마25:14-17). 사역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서 ‘조연’이 아닌 ‘주연’ 무대에서 자신만의 절대 경지를 경작하는 독특한 특성을 지닌 사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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