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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욕쟁이 정광훈 씨를 두둔하는 것을 비판한다(시리즈2)
전광훈 씨, ‘욕쟁이 목사’가 ‘예배는 섹스요 오르가즘이다’란 사탄적 주장 하고 있다
2023년 05월 04일 (목) 10:33:00 최삼경 목사 sam5566@amennews.com

최삼경 목사 / <빛과소금교회> 원로목사, 본지 편집인

   
▲ 최삼경 목사


 전 씨의 욕설 설교와 섹스 얘기 가득한 설교는 비기독교적, 비역사적, 비성경적인 이단 사상이다.

구체적으로 비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앞의 글(1번)만 보아도, 전 씨는 이단적이고 비성경적임을 평신도도 충분히 알 것으로 본다. 요즘 <나는 신이다>(넷플릭스)의 성폭행범 정명석 씨 문제를 취급하며 전광훈 씨와 비교하고 조롱하는 TV 토론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헌금(?)까지 하며 “아멘”을 외치는 성도들은 누구일까? 전 씨와 함께 강단에 서서 들러리를 서는 분들(서요한, 장경동 등), 그리고 뒤에서 그를 옹호하고 선전하고 다니는 목사들과 책까지 써서 전 씨의 욕쟁이 설교를 성경적으로 옳다고 백업해주는 신학자(정성구)를 보면 필자와 믿는 하나님이 다르지 않나 생각된다.

정성구 교수가 욕쟁이 전광훈 목사를 옹호해준 내용을 그대로 소개할 필요를 느낀다. <목사가 왜 욕을 해?>(킹덤북스, 2021)라는 책 제목이 말해주듯, 전광훈 씨의 추잡하고 더러운 혀가 마치 선지자의 혀라도 되는 것처럼 옹호해 주기 위하여 쓴 책이다.

   
▲ 정성구 교수 책 <목사가 왜 욕을 해?>

[ 광화문 토요집회에서 전광훈 목사의 설교는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기독교인이던 타 종교의 사람이건, 심지어 불신자들에게까지 오늘의 한국의 혼란한 정국에 부정한 세력을 강력히 비판하고, 자유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면서 성경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광화문 집회 특히 주일 오후의 청와대 앞 광야교회의 설교는 점점 그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그런데 유튜브의 댓글에는 전광훈 목사의 설교에 감동을 받고 적극 지지 한다고 하면서도, 설교 중에 막말과 욕설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이 많다. 유튜브에는 다 좋은데 설교 중에 거침없이 욕설 또는 독설을 퍼붓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 전광훈 목사의 설교를 반대하는 집단에서는 “목사가 왜 정치를 하는가? 목사가 왜 욕을 하는가?”라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강단은 신성한 것이어서 목사가 설교시간에 상소리나 욕설을 퍼붓는 것은 금기 사항이다. 또한 설교시간에 타인을 비판 또는 비방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 설교학의 기본이다. 또 그것은 강단의 윤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설교가 어디서, 무엇 때문에, 어떤 청중이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가 있다. 즉 교회의 개혁 또는 국가의 혁명적 대변혁을 요구하는 시대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설교자가 욕설을 했던 것을 살펴보자. 우선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귀에 거슬리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리고 예수님의 설교에는 오늘의 청중들이 들어도 간담이 서늘한 말씀을 했다. 예수님은 당시의 부패하고 타락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일갈했다. 예수님은 기득권 세력을 먼저 개혁하는 것이었다. 당시 그들은 율법주의자들로 개혁의 대상임에도 그들의 마음은 콘크리트처럼 굳어 있어서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겉껍데기는 아름답고 화려하나 그 속은 썩어 냄새나는 송장이라고 일갈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부패한 정권과 교권에 대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이었다. 즉 정치적 종교적, 기득권자들을 향해 썩은 송장이라고 말했다. 욕 중에서도 대 욕이다.

한편 세례 요한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큰 무리들 앞에서 회개하지 않는 자들, 부패한 관리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퍼부었다. 사실 이보다 더 큰 욕설은 지금까지 없었다. 만약 오늘날 어느 설교자가 청중들에게 그리 말했다가는 당장 강단을 떠나야 할 것이고, 명예 훼손으로 고발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거친 표현을 할 수 있는 분의 「권위」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교회사적으로 보면 제일 욕을 잘 했던 사람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였다. 마틴 루터는 대 설교자였고, 음악가이기도 했다. 루터는 강단에서 욕설과 독설을 많이 퍼부었다. 왜냐하면 루터가 설교하는 동안, 로마 가톨릭의 방해꾼들이 뒤에서 발을 굴리고, 고함을 치고, 예배 분위기를 망가뜨리고 예배 방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터가 설교를 시작하던 시기는 대변혁의 시기이고 교회개혁의 시기였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과 거기에 결탁된 정권들 앞에 서 있었다. 그래서 루터는 그들과 기 싸움에서 질 수가 없어서 과격한 욕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루터가 설교 중에 욕설이 심해지자 루터를 보좌하는 참모진들이 루터에게 “제발 욕을 그만하라!”는 건의도 했다. 그러나 루터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영적 전쟁을 하는데, 사탄의 세력과 반대자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그런 욕을 했었다. 말하자면 루터가 설교 도중에 그리한 것은 변화와 개혁의 시기에 청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것이었다.

또 한국의 유명한 부흥사 가운데 설교 중에 욕을 잘하기로 소문난 목사님이 있었다. 바로 이천석 목사님이시다. 그는 설교 중에 막말과 상욕을 마다하지 않는 분이다. 그는 상이 군인 출신으로서 철저한 애국심과 한국사회와 교회의 개혁을 외치며 한때 한국교회의 영성 운동의 한 획을 그었다. 그의 설교 중에 <나는 다리 하나를 조국에 바쳤는데 남은 다리 하나를 못 바친 게 한>이라고 했다. 그는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었고, 죄를 보면 견딜 수 없었다. 그의 주 메시지는 인간의 부패와 죄에 대해 질타였다. 그런 맥락에서 이천석 목사님의 설교에 상욕이 나왔다. 그러나 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것이 욕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1988년 이천석 목사가 옥외 집회 중에 뇌출혈로 쓰러져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일 때, 그가 시무하던 성복중앙교회에서 6개월 동안 대리 설교를 했다.

한편 오늘날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소프트 아이스크림만 먹이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설교자들은 주로 긍정적 사고방식과 예수 믿고 복 받고 성공하여 이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살자는 메시지만을 전하고 있다. 오늘의 어떤 사람들은 나라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상관 없고, 국가의 정체성이 위태로워도 나만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든든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팽배해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멀어져 간 교회, 사회, 국가, 개인에게 제대로 된 선지자적 메시지가 살아져 버렸다. 그러기에 깨어있는 성도들과 시민들은 전광훈 목사님의 설교에 추위와 눈보라에도 모두 환호하고 그를 따르고 있지 않은지그는 기울어진 나라를 살리려고 생명을 내어 걸고 피를 토하듯 설교하기 때문에 그의 설교의 몇 군데 상욕이 있기는 해도, 그것은 정상적인 일반교회 강단에서의 설교가 아니고, 신 불신을 막론한 공개적 대형집회를 이끌어 가다가 정권을 향해 나온 말투였다. ]

위 글을 읽으며 이런 분이 필자의 스승이었다는 점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위의 주장이 성경적으로는 물론 객관적, 논리적으로 틀렸지만, 혹 옳다고 해도 그것이 더러운 욕에서 욕으로 이어지는 전 씨의 설교가 옳다는 객관적이고 성경적인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이는 전 씨가 말하고 자주 사용하는 ‘빨갱이’론과 뜻을 같이 하는 치우친 극우파 코미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비판하겠다. 먼저 본 글은 다른 주제는 후론하기로 하고, 전 씨의 욕설 설교가 얼마나 비논리적이며, 비학문적이고, 비성경성인 것만 밝히려고 한다. 필자가 이렇게 정 교수의 글을 비판하는 것은 정 교수의 잘못을 밝히는 것으로 그를 의지하여 욕설과 섹스 얘기를 서슴없이 해대 대는 전 씨의 설교가 잘못이란 점은 자연히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아래와 같이 예수님과 구약의 선지자, 예수님, 세례요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 그리고 이천석 목사를 실례로 들어 전 씨의 욕 설교에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욕의 대상과 내용과 방법은 전광훈 씨 욕 설교와 다르다.

때로 필자가 보기에도 예수님마저 지나치게 보일 정도로 서기관, 바리새인, 제사장을 향하여 욕을 하셨다고 본다. 모두는 아니지만, 구약의 선지자들과 세례요한도 때로 욕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광훈 씨와는 다르다. 이를 일곱 가지로 분석하여 답하겠다.
 

   
▲ 전광훈 씨

1) 구약의 선지자 중에 전광훈 씨와 같이 욕을 잘 한 선지자는 누구이며 몇이나 있는지 밝히고, 있다면 그 대상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성경에서 제시해 주기 바란다.

남왕조와 북왕조가 망할 때, 유다와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은 최악이 분명하다. 지금의 영적상황보다 더 어둡다고 해야 옳다. 결국 북왕조도 남왕조도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각각 망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분열 왕국 시대에 활동하였던 그 많은 선지자들(아사랴, 하나니, 예후, 아하시엘, 엘리야, 스가랴, 요엘, 이사야, 미가, 나훔, 하박국, 훌다. 스바냐, 예레미야, 우리야 등)은 전 씨보다 10배 20배 더 진하고 많은 욕을 할 수 있고 했어야 옳은 일이었다. 위 선지자들 중에 전 씨처럼 계시를 전달한 선지자는 누구이며 그 내용이 무엇인지 정 교수와 전 씨가 밝혀주기 바란다.

한두 번의 특별한 경우를 가지고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전 씨를 선지자와 대등하게 비교하는 것 자체가 비논리적이고 불경스럽고, 전 씨 우상화라고 본다.
 

2) 예수님의 제자 사도들 중에 전 씨처럼 욕하며 복음을 전한 사도가 누구인지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밝혀 주기 바란다.

베드로 사도가 전 씨처럼 더러운 욕들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는가? 안드레 사도가 그랬는가? 야고보 사도나 요한 사도가 그랬는가? 빌립, 마태, 시몬, 도마, 나다나엘, 야고보 중에 누가 전 씨와 같이 욕을 입에 달고 복음을 전했는가? 이들 중에 자기 맘에 안 드는 사람은 아무나 욕을 해대는 전 씨의 모델은 없다.

“예배는 하나님과 섹스하는 것이며, 침상 이불 속에서 하나님과 뒹구는 것이다”라고 하며 “이 목사 새끼들아 니들은 하나님과 섹스해 봤어?”라고 할 때, “이 목사 새끼들” 중에 필자도 있음이 분명하다고 본다.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용감하게 하고,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교만하게 하고 더러운 사람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성령은 아니란 점이다.

필자도 전 씨에게 똑 같은 욕으로 갚아주고 싶은 더러운 충동을 느낀다. 만일 전 씨가 만일 광화문 집회나 그 교회 집회에 필자를 초청하고, 필자의 신변을 보호해 준다면 직접 가서 ‘누가 욕을 더 잘 하는 하나님의 사람인가’를 보여줄 수도 있다.
 

3) 사도 바울이 전 씨처럼 욕하며 복음을 전한 구체적 증거를 바울 서신에서 찾아내 밝힌다면 정 교수와 전 씨는 옳고, 대신 필자가 잘못임을 인정하겠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도 중에 사도인 바울에게 그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전 씨의 더러운 욕 중심의 설교는 옳은 것이 된다. 만일 그런 증거를 댄다면 전 씨는 지금보다 10배 100배 더 심한 욕을 해도 된다. 정성구 교수는 물론 필자도, 그리고 한국교회 모든 목사들은 전 씨로부터 우선 욕부터 배워야 참 목사가 될 것이 분명하다.

바울은 바울이 가는 곳마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율법주의자들에게 조차도 욕하지 않았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 밥을 먹지 않겠다는 결사대 앞에서도 욕하지 않았고,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아야 할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고후 1장)할 때도,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 이하)고 할 때도 욕하지 않았다. 바울은 욕 대신 오히려 감사했다.

전 씨는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누구나 ‘새끼’고 ‘빨갱이’가 된다. 전광훈 씨는 바울과 자신을 동격으로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바울보다 위의 사람으로 자처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2천 년 기독교 역사에, 하나님에게 ‘까불면 죽는다’고 하는 이단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정성구 교수도 가끔 “하나님 까불면 죽어”라고 말하시고, 설교하시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면 전 씨에게는 옳은 것이 정 교수에게는 옳지 않은 것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만일 이것을 혹 실수라고 주장한다면, 한 번으로도 저주를 받기에 충분한 실수가 아니고 무엇인지 모르겠다. 전 씨를 옹호하는 김진홍 목사조차 전 씨가 사과해야 한다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4) 속사도들 중에서 전 씨처럼 욕하면서 복음을 전한 실례나 주장을 찾아 밝혀 주기 바란다.

정 교수의 주장처럼 전 씨가 욕하면 설교하는 것이 옳은 것이요, 성경적이라면 사도 중에서 그 모델을 선명하게 찾을 수 없다고 하여도, 속사도들 중에서 그 모델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찾아야 한다. 비록 속사도 신학은 사도들의 계시에 비하면 낮은 것이지만, 성경을 ‘이렇게 해석해야 하느냐’, ‘저렇게 해석해야 하냐’를 결정할 때, 속사도들이 성경을 '어떻게 보냐'처럼,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를 결정하는 확실한 증거가 없고, 나아가 그것이 후대 정통신학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도 없다.

만일 전 씨처럼 더러운 욕을 하며 설교를 하는 것이 그렇게 옳고 성경적이라면 주후 155-240년까지의 터튤리안(Tertullian)도 그랬어야 하고, 그의 신학에서 그 타당성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전 씨처럼 욕을 퍼 부으며 설교하는 것이 옳다면, 주후 354-430년의 어거스틴(Augustin)의 신학에서도 그 근거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거스틴에게 전 씨를 지지해 줄 신학적 근거가 있는가? 없다. 아니 전 씨의 욕 설교가 옳은 것이 되려면, 신학이 현대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주후 1509-1564년까지의 장로교의 창시자 칼빈(Calvin)의 신학에서 그 근거를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누구보다 칼빈신학을 강조하고, 잘 아시고, 최고의 권위자로 자처하시는 정 교수님은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정 교수님이 직접 칼빈에게서 욕으로 설교해도 된다는 근거를 찾아 제시해 주셔야 할 의무가 있다. 루터의 욕에 대하여는 필요하면 따로 언급하려고 한다.

정 교수나 전광훈의 말이 맞으려면 기독교강요 페이지마다 욕설로 가득 차 있을 수밖에 없다. 칼빈은 이단들과 논쟁을 할 때도 논리적이고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방법으로 하였다. 결코 욕으로 싸우지 않았고, 외설적인 방법은 더욱 사용하지 않았다. 기독교강요 213장에서 재세례파 메노 시몬스(Menno Simons) 다툴 때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칼빈은 욕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칼빈은 전광훈 씨와 정성구 교수와 다르다. 달라도 180도 다르다. 전 씨의 그 입을 이사야를 지진 숯불보다 100배 더 강한 지옥불로 지져야 하고, 정 교수는 한국교회 앞에 사과해야 한다.
 

5) 전 씨의 욕 설교가 정당한 것이라면, 성경이 그에 대하여 직접 계시한 기록을 찾아 제시해야 한다.

전 씨처럼 욕해도 되고, 또 욕을 해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다면, 욕의 기준과 방법과 범위를 성경이 조금이라도 직접 계시했어야 한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계시는 없다. 전 씨를 기준으로 하여 성경을 보고, 역사를 보기 때문에, 선지자와 세례요한과 심지어 이천석 목사까지 긍정적 모델이 되고 만 것이다.
 

6) 정성구 교수가 이천석 목사를 모델로 삼는 것을 보고 필자는 입이 닫혀지지 않을 정도이다.

정 교수의 학문성과 경건성과 칼빈관과 성경관까지 의심이 간다. 필자는 이천석 목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지만, 필자가 굳이 지금 그걸 비판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이천석 목사가 욕을 많이 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 목사가 욕을 잘 해서 존귀한 목사가 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욕을 잘 하여 천한 목사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정성구 교수식으로 모델을 찾는다면 이 세상에 어떤 악한 행위나 어떤 악한 사상이라도 합리화할 그 근거를 찾는 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다. 어디에나 그런 기준, 논리, 모델은 넘치고 넘칠 것이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살인과 유대인 핍박도 얼마든지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고, 동생을 죽인 가인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고, 아마 가룟 유다의 배신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7) 그렇다면 전 씨가 자신의 정치 활동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모델로 자주 인용하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의 신학에서 전 씨의 욕 설교가 옳다는 신학적 근거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비록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을 향하여 입에 담지 못할 저주를 하셨지만, 그러나 십자가 죽으실 때를 보면, 아무도 욕하지 않으셨다.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빌라도를 욕하시지 않았고,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었던 제사장들을 욕하지 않으셨고, 더욱이 자신을 창으로 찌르고 조롱한 로마 군인들에게 조차 한 마디 욕을 하시 않으셨다. 만일 예수님이 전 씨라면 아침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십자가에서, 전 씨가 광화문에서 했던 저주와 욕보다 더 심하고 진한 저주와 욕을 붓다가 운명하셨어야 할 것이다.
 

결론: 전광훈 씨는 성경과 기독교 역사에서 ‘욕 설교’가 옳다고 하지만, 전 씨가 욕하는 대상과 방법은 주님과 다르고 성경적이지 않고 역사적 기독교와 180도 다르다.

세상 사람도 교양과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더 험한 상황속에서도 그렇게 더러운 욕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욕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법이다. 전 씨의 욕쟁이 신학은 하나님의 권위를 이용하여 천하고 추잡한 것들을 거룩하게 보이려고 포장하는 죄이며, 냄새나는 것의 냄새를 제거하려고 그 위에 향수를 뿌려 놓은 것과 같다. 결국 그 더러운 냄새는 뿌린 향수를 타고 더 멀리멀리 퍼지게 될 것이다. 이어서 비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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