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신앙> 이신성 기자】   중세철학이 마무리될 때 서양은 세 가지 중대한 흐름을 경험한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이다. 르네상스(Renaissance)는 흔히 ‘재생’ 혹은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14세기부터 16세기초까지 진행된 그리스-로마 문화의 복권 운동이라고 여길 수 있다. 르네상스는 인문주의(人文主義, humanism)와도 연결된다. 종교개혁의 대표자였던 마르틴 루터(1483-1543)의 모토는 “오직 성경으로, 오직 믿음으로”였다. 그는 당시 로만 가톨릭 교회의 맹목적인 신앙을 극복하기 위한 합리적인 성경해석을 주장했다.

과학혁명은 천문학적 관측과 연관이 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주장하고 중세교회가 떠받들던 지구중심설(소위 천동설)이 아닌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하고 케플러와 갈릴레이가 확인한 태양중심설(소위 지동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구가 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한 태양계의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으며 인식을 전환시켰다. 이러한 시기에 나타난 서양철학을 흔히 근대철학이라고 부른다. 중세에서부터 현대 가까이 넘어왔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명칭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천동설(지구중심설, 위)과 지동설(태양중심설, 아래)의 비교, 위키백과 갈무리

르네상스를 통해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지구 중심에서 태양 중심으로 관점이 전환한 상황에서 근대철학은 우리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근대철학은 인식론에 초점을 맞췄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인식의 근원과 방식을 고찰하고 설명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다.

근대철학은 크게 세 방향으로 나타났다. 이성을 신뢰하는 합리론(rationalism), 감각적 경험을 강조하는 경험론(empiricism), 이성과 경험을 종합하려는 관념론(idealism)이다. 합리론은 인간의 인식능력으로 선천적 이성을 신뢰하고, 어떤 하나의 명제로부터 개별적 명제를 도출하는 연역적 방법을 사용한다. 이와 달리 경험론은 모든 인식은 감각 경험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후천적이라고 본다. 이와 함께 삶에서 경험하는 개별적인 사례들을 종합해서 결론을 내는 귀납적 방법을 애용한다. 관념론은 이러한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경험을 해석할 때 관념적인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합리론은 인식의 확실성의 근거를 인간 안에 이는 오직 이성만을 강조한 철학 유형이다. 유럽 대륙의 프랑스와 네덜란드, 그리고 독일에서 발전했기에 흔히 대륙의 합리론이라고 부른다. 데카르트는 프랑스 출신으로 연고지였던 푸아투 지방은 위그노교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북서유럽을 여행하며 여러 학문을 접하며 저술활동을 했다. 스피노자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유대인이었으며, 스페인의 박해 속에서 종교의 자유를 위해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피난하여 생활했다. 라이프니츠는 독일의 라이프치히대학과 뉘른베르크의 알트도르프대학에서 공부했으며, 파리와 하노버 등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이러한 파리, 암스테르담, 라이프치히와 뉘른베르크, 하노버가 근대 서양철학의 올레길과 둘레길 일곱 번째 코스이다.
 

◎ 의심에서 확실성으로, 데카르트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기 때문에 늦잠과 낮잠이 많았고 이로 인해서 침대에 누워 사색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철학은 흔히 ‘방법론적 회의’라고 불리는데, 철학을 하기 위해서 회의, 즉 그것이 진짜인지 철저하게 의심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서 들은 말, 심지어 내 눈앞에 있는 것들까지도 정말 존재하는지 항상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가장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수학적 공식도 의심해야 한다. 즉, 원래는 1+1=3인데 악마가 1+1=2라고 모든 사람들을 한꺼번에 속였다고 일단 의심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  데카르트, 다음백과 갈무리

이러한 끝없는 의심 속에서 데카르트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고 확실한 한 가지를 발견했다. 다름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의심을 하고 있는 나’라는 사실이다.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지만, 내가 지금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도저히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의심을 생각으로 전환해서 유명한 명제를 만들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틴어로 코기토 에르고 줌(cogito, ergo sum)이다.

이러한 명제를 바탕으로 데카르트는 확실한 인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경험적인 사실은 우리를 속이거나 불확실했지만, 이성은 참된 지식으로 우리를 이끈다는 믿음을 보였다. 이러한 인식이 가능한 이성적 판단을 ‘명석 판명’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분명하고 뚜렷한(clare et distincte) 것을 의미한다. 무엇인가 ‘명석 판명’하게 안다는 것은 확실하게 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보통 사람들은 새라고만 생각하지만, 그 새가 참새이고 그 참새 중에서도 참돌이 혹은 참순이인지 아는 것이 ‘명석 판명’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철학의 합리론은 ‘존재하기 위해 다른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실체(實體)에 집중했다. 이러한 실체에 대한 인식은 다른 경험으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이성으로만 가능하다.

데카르트는 실체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하나는 정신이고 다른 하나는 물질이다. 그는 정신의 속성은 사유이며, 물질의 속성은 연장(extension)이라고 설명했다. 즉 정신은 생각함으로써만 존재하고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며, 물질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으로 존재하지만 사유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데카르트는 이 두 가지 실체는 서로 독립적이며 상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사람은 정신(영혼)과 물질(육체)로 이루어진 존재다. 두 실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데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 것일까?

데카르트는 뇌 속의 송과선(松果腺, pined gland)을 통해 이 두 가지 실체가 서로 만나면서 외부의 물리적 자극이 신경계통으로 전달되어 감각을 일으키기도 하고, 내면의 의지가 육체에 전달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송과선 이론은 비판에 직면했다. 송과선은 사유하는 실체인 정신인가 아니면 연장하는 실체인 물질인가? 만일 물질이라면, 어떻게 다른 실체인 정신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해서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실체 이론은 일원론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두 개의 실체를 하나로, 스피노자

▲  스피노자, 위키백과 갈무리

스피노자(Benedict de Spinoza, 1632-1677)는 유대인이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유대교 랍비를 목표로 삼고 성장했다. 하지만 성경의 모든 내용이 철자 하나하나까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니며 성경은 기록된 시대를 염두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이단성이 있다고 낙인 받고 유대교에서 출교당했다. 그가 24살 때의 일이다. 결국 안경 렌즈를 손질하는 기술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렌즈를 깎는 일로 인해서 결국 폐병을 얻었다.

실체를 ‘다른 것의 도움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라 설명했던 데카르트와 달리, 스피노자는 ‘모든 사물의 근저나 배후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모든 존재를 자체 안에 융합하거나 포괄하는 일자(一者) 또는 무한자’라고 주장했다. 이런 실체는 신이었으며 또한 자연이었다.

데카르트는 실체를 두 가지로, 즉 정신과 물질로 나눴었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눈 실체를 하나로 합쳤다. 그에 의하면 실체인 신은 사유와 연장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이 세상의 모든 존재 역시 이 두 가지로 파악될 수 있다. 사유의 관점에서 보면 정신으로, 연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물질로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설명함으로써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실체가 직면한 문제를 피할 수 있었다.

이런 가운데 그는 인간 역시 육체와 정신이라는 두 개의 실체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는 동일한 하나의 존재가 지닌 두 개의 측면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데카르트의 정신과 물질이라는 이원론은 스피노자에서 일원론이 됐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정신적 힘은 육체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변하며, 반대로 정신적 상태에 따라 육체가 맞춰 변하기도 한다. 물론 스피노자 역시 데카르트의 ‘송과선’과 비슷하게 정신과 육체를 합일시키는 ‘코나투스’를 말하기도 했지만 이것은 두 가지 측면을 함께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자연의 필연성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관된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서 의지의 자유 혹은 결단의 자유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서 인간의 모든 행동은 불변의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의지와 결단의 자유가 없는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스피노자는 자연이 자연법칙을 따를 때 최고 상태에 도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그 본연의 법칙을 따를 때 최고의 덕에 도달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 본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은 당연히 인간의 이성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가능하다. 이와 함께 육체의 욕망까지도 이성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점에서 스피노자는 합리론의 전통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 창 없는 이성적 정신 ‘모나드’, 라이프니츠

▲  라이프니츠, 위키백과 갈무리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4-1716)는 실체는 모나드(monad)라고 주장했는데, 이런 모나드를 한국에서는 단자(單子)라고 번역했다. 그의 책은 <단자론>(monadology)으로 불린다. 그의 단자론(모나드론)은 고대 서양철학에서 등장했던 원자론을 연상시킨다. 모나드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일단 모나드는 점(點)이다. 물질을 공간적 자리를 차지하는 연장으로 설명했던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와 달리, 라이프니츠는 물질은 ‘무수한 점의 집합체’라고 설명했다. 점이 합쳐지면 선이고, 선은 면으로, 그 면이 다시 다면체로 변화하기 마련이다. 라이프니츠는 이 세상의 물질을 수학에 기초한 공간이해로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체를 하나로 보았던 스피노자와 달리 라이프니츠는 실체가 무수히 많다고 생각했다.

모나드는 개별적이며 똑같은 모나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나드가 분량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지만 성질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모나드의 성질 차이가 없다면 모나드를 서로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모나드는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는 창이 없다. 창이 없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에 의하여 변질과 변화를 받는 일은 절대 없다. 이렇게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다른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실체라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모나드에는 창이 없어서 외부로부터의 변화가 아닌 내부 변화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모나드 안에 변화하는 원리가 있으며 이런 원리 외에 모나드를 특수화시키거나 다양화시키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라이프니츠는 모나드가 ‘이성적 정신’이라고 설명하는데, 이를 통해서 스피노자처럼 데카르트의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극복하려고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뿐만 아니라 라이프니츠는 이성적 정신은 어느 것이나 자기의 관할 영역에 있어서 작은 신(神)과 같은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따라서 모든 이성적 정신이 집결하면 신의 나라 곧 가장 완전한 군주가 다스리는 가능한 한 가장 완전한 국가가 형성된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그는 이 신의 나라가 참된 보편적인 왕국이며, 자연계 가운데 존재하는 도덕적 세계라고 주장한다.

개별적이면서도 성질이 다른 모나드들은 창이 없기 때문에 영향도 받지 않지만, 반대로 다른 모나드에 영향을 줄 수도 없다. 그런 모나드들이 어떻게 서로 협력하듯 집결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이런 비판에 대해서 라이프니츠는 ‘시계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이 세상에는 무한히 많은 시계가 있는데, 그 많은 시계들이 같은 시각에 울리는 이유는 시계들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 아니라 정확하고 정밀한 기계 장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는 신이 모든 시계가 같은 순간에 울리도록 예정했다고 언급한다. 이와 같이 각각의 모나드는 서로 영향을 주거나 받지는 않지만 동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신이 각각의 모나드가 그렇게 움직이도록 예정하고 조화를 이루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라이프니츠의 예정 조화설이다.

라이프니츠가 언급한 ‘신의 나라’와 ‘신의 예정 조화’는 기독교의 ‘하나님 나라’와 ‘섭리’를 떠올리게 된다. 이는 그가 루터교 철학자였기 때문에 철저하게 신앙 안에서 철학을 했음을 보여준다고 이해할 수 있다.
 

◎ 합리주의적 사고 속에서 크리스천은?

오늘날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빛’은 ‘파장’이며 또한 ‘입자’라는 사실이 실험으로 밝혀졌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에 합리론 철학자들은 ‘실체는 정신과 물질’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은 ‘빛은 파장이며 입자’라는 것과 유사하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그들이 오직 이성만으로 그러한 인식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데카르트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원리와 원칙대로 움직이는 하나의 기계’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을 흔히 ‘기계론적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라이프니츠의 ‘시계 비유’를 보면 그 역시 데카르트적 생각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합리주의를 표방한 이 시대의 철학자들은 이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이성적 원리가 있으며 그것을 토대로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  추천 도서. <다시 쓰는 서양 근대 철학사>와 <철학과 굴뚝청소부>

다만 이러한 이해가 결정론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라이프니츠의 ‘시계의 비유’와도 같이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상태로 움직인다면 거기에는 우연이 자리 잡을 여지가 전혀 없다. 모든 것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필연적인 결과를 바꾸려 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불가능하다. 여기서 인간의 자유와 선택,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여지는 사라진다. 모든 것이 결정된 것이라는 것은 결국 운명론 혹은 숙명론으로 기울게 되고, 현 상태를 변화시키려는 의지마저 꺾어 버린다.

이런 가운데 합리적이라는 것이 크리스천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날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성의 기능 중 계산적인 면에 집중되어 사용되는 경향이 적지 않다. 득실 여부를 따지고 손해를 보지 않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보면 어떻게 될까? 정말 합리론의 철학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확실한 인식을 하고 이 세상의 보편적 원칙을 알게 되며 결국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될까?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오히려 사람들은 이해득실에 따라서 행동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은 정해진 것이고 바꿀 수 없다고 합리화하기 쉽다.

이런 분위기에서 크리스천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을 해야 할까?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때로는 손해 보더라도 해야 할 일이 있다. 또한 매사에 합리화하기보다는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크리스천의 모습이 아닐까?

추천 도서
1)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다시 쓰는 서양 근대 철학사>(오월의봄, 2012)
2) 이진경, <철학과 굴뚝청소부>(그린비,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