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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
김남국의 <창조가 쉬워지는 모방의 힘>
2018년 08월 20일 (월) 14:22:34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교회와신앙> 장운철 기자인생의 모방의 연속이다. 갓난아이는 부모를 그대로 따라한다. ‘엄마, 아빠, 맘마, 도리도리’ 등을 똑같이 복사해 간다. 그게 삶의 기준이 된다. 아이가 성장해 가면서 선생님을 모방해 간다. 학교, 교회 심지어 친구 관계에서도 선생님을 발견해 그들의 어떠함을 따라한다. 책, TV, 영화 등이 선생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모방은 올바른 인생살이의 지름길 역할을 해 준다. 물론 잘못된 모방은 모든 것을 거꾸로 돌린다. 공부는 어떤 면에서 모방하기다. 선배들의 결과물들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누가 빠르고 정확하게 모방하느냐가 평가의 기준인 셈이다. 적어도 대학까지의 공부는 계속된 모방의 단계다. 모방된 것을 기초로 자신의 무엇을 접목시키는 게 대학원에서 요구하는 바가 아닐까?

기업 경영기법의 1순위는 ‘벤치마킹’이다. 작은 구멍가게를 차린다거나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를 설립한다고 할 때, 경영자로써 제일 처음 하는 일이 같거나 비슷한 업종의 다른 기업을 참고하는 일이다.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무엇을 따라할 것인지를 배우게 된다. 그것이 첫 번째다.

애플과 삼성의 특허전쟁이 계속 진행중이다. 애플은 삼성이 자신의 아이폰을 따라했다며 미국, 한국, 일본, 유럽 등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그 중 한 가지가 디자인이다. 아이폰의 사각형 모서리 디자인은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특허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그와 같은 디자인은 아이폰이 나오기 전 LG의 핸드폰 등에서 발견된다. 애플이 그것을 참고했다는 증거들도 나왔다. 인터넷 누리꾼들 사이에 재미있는 패러디물이 유행하고 있다. ‘아이폰=깻잎폰’이라고 한다. 이미 오래전에 나온 우리나라의 깻잎 통조림 디자인이 아이폰과 동일하다는 판단에서다. 직접 시장에서 그 깻잎 통조림을 사 보았다. 그리고 아이폰과 비교해 보았다. 하하. 정말 웃음이 나온다.
 

   
 

<창조가 쉬워지는 모방의 힘>(김남국, 위즈덤하우스, 2012)은 벤치마킹의 예를 잘 들어주었다. 자동차하면 ‘포드’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반대로 포드하면 ‘자동차’다. 포드에 의해 자동차가 대중화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포드가 도축장엘 방문했다. 포드는 그곳에서 컨베이어 시스템의 원리를 보았다. 도축된 돼지들이 갈고리에 걸려 천장에 매달린 봉을 따라 작업장에서 이동하고 있는 것이었다. 일꾼들은 한 자리에서 주어진 자신의 한 가지 일만을 하면 그만이었다. 포드는 무릎을 쳤다. 도축장 방식을 자동차 생산에 적용하면 ‘딱’이겠다는 판단을 했다. 포드의 벤치마킹은 적중했다. 자동차가 대량생산될 수 있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인류의 10대 사건을 들면,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손가락으로 꼽는다. 그 금속활자로 인해 인쇄술의 혁신이 이루어졌고, 그것은 곧 책의 보편화를 가져왔다. 그 결과 지식이 특정인에게서 대중으로 빠르게 흘렀다. 누구나 원하는 지식을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앙생활에서도 급변화가 이루어졌다. 성경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결국 종교개혁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했다. 고려시대 직치심체요절이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훨씬 앞선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쿠텐베르크는 어느 날 와인 만드는 곳엘 방문했다. 그곳에서 와인프레스라는 기계를 보았다. 포도를 위에서 찍어 눌러 즙을 짜내는 기계다. 이것을 본 그는 환호성을 질렀다. 자신이 만든 금속활자와 와인프레스 기계를 합치면 인쇄기가 만들어질 것임을 보았기 때문이다. 쿠텐베르크의 벤치마킹도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최근 우리는 의미 있는 뉴스를 접했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일본을 추월했다는 소식이다(2012/9/7 조선일보 등).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인 피치(Fitch)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A+에서 AA-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이로 인해 같은 A+ 등급에 있던 일본보다 위로 올라서게 된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특히 일본인들에게는 그리 큰 소식이 아닐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소식이다. 6.25전쟁 후 우리나라는 남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폐허 그 자체였다.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가 재건을 위해 땀을 흘렸다. ‘잘 살아보게,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등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당시 일본은 우리들의 롤모델이었다. 경제개발도 일본의 그것을 그대로 따라했다. 관료주도형개발과 함께 중화학공업육성이 그 중 하나다. 그래서 조선, 철강, 반도체, 자동차 등의 산업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던 것이 반세기만에 그 대상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다. 국가 차원에서 일본을 넘은 것은 스포츠, FTA 분야 외에 이번의 국가신용등급 평가를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모방은 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교회가 주일예배 시간을 오전 11시에 갖는다. 왜 그럴까? 앞선 선배들의 모본을 따라한 것이다. 찬양, 대표기도, 성가대, 설교, 축도 등의 순서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설교 직전에 어린이들을 단상 앞으로 불러낸다. 그리고 설교의 핵심을 1-2분을 축약, 전달한 후 기도해 준다. 이후 주일학교 교사들이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공과공부하러 나간다. 부모님과 함께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와 함께 선생님에 의한 전문 공과공부 시간도 갖도록 한 것이다. 이 시스템을 미국 유학 시절 한 교회에서 보았다. 그것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미 많은 부분에서 모방해 온 것들이다. 모방은 올바른 신앙생활의 지름길인 셈이다.

물론 모방의 대상이 잘못되었을 경우 심각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취재 차 여러 교회를 가 본 적이 있다(필자는 인터넷 신문 <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 등에서 이단 사이비 분야 전문기자로 20년 넘게 근무하고 있다). A라는 단체에서는 신도들이 기도 시간에 헛구역질을 해 댔다. 한 사람이 시작하자 점차 거의 모든 신도들이 따라했다. 옆 신도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자신의 속에 있는 죄가 헛구역질을 할 때 밖으로 나온다고 했다. B단체에서는 신도들이 설교 시간에 입을 크게 벌리고 양손으로 허공에서 무엇인가를 입으로 쓸어 담는 행위를 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목회자들이다. 이유를 들어보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해야 말씀의 은혜가 자신의 속으로 들어온단다. C단체에서는 기도시간에 신도들이 뒤로 넘어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한다. 평방에 앉아 있는 상태였기에 그 모습이 오뚝이가 왔다갔다하는 듯했다. 성령충만의 모습이라고 한다. D단체에서는 성경의 기름부음의 행위를 한다며 강사가 자신의 엄지손가락에 기름을 묻혀 신도들의 이마에 도장을 찍듯 자국을 내 준다. 신도들은 기름부음을 받았다며 감격해 한다. 터무니없는 행위와 이유들에 어처구니없어 그저 황망할 따름이다.
 

   
 

우리들의 올바른 모방의 대상은 ‘예수님’이다. ‘예수님 닮아가기’가 바로 신앙생활이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방향으로 갈 뿐 아니라, 그 발자국을 그대로 따라 밟고 갈만큼 그대로 따라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5)고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대로 따라하게 하신 것이다. 위 본문은 ‘유월절 전’에 하신 말씀이다(요13:1).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이라는 의미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달해 주셨다. 그런 후 위 말씀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모본대로 우리도 사랑을 전달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따라할 수 있을까? 그분의 사랑을 누리고 또 그것을 실천해 볼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범위가 너무도 넓다. 예수님의 기도의 본은 물론, 복음 선포, 논쟁, 치유하심 등등.

지난 주 누가복음 말씀을 묵상하다가 그 중 한 가지를 발견했다(눅 18:35-43).
한 맹인이 있었다. 걸인이다. 어느 날 그가 사는 마을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맹인은 근처에 오신 예수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변 사람들이 ‘잠잠하라’며 꾸짖었다. 그는 더욱더 소리를 질렀다. 아주 간절히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주셨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다. 당연히 맹인은 눈을 뜨기를 원한다고 했다.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주셨다.

흔히, 위 본문에서 ‘예수님의 자비로우심’과 ‘맹인의 간절함의 교훈’ 등의 교훈을 받게 된다. 옳은 묵상이다. 필자는 다른 것 한 가지를 더 발견했다. ‘예수님 닮아가기’를 묵상하다 성경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을 그대로 실천해 보고자 한 것이다.

10여 년 전에 만난 한 목회자가 생각났다. 서울의 한 큰 교회 담임목사다. 미국 유학 중 한 지인의 소개로 짧게 인사한 적이 있었다. ‘한국 가면 한 번 뵙죠’라는 말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를 만나 이런저런 지난 날의 일들로 기쁨을 나누었다. 그러던 중 그가 “제가 무엇을 좀 도와드릴까요?”라고 말했다. 조금은 엉뚱해 보이기도 했지만, 순간 적지 않게 충격도 받았다. 그에게서 ‘위엄’과 같은 무엇이 보였기 때문이다. 겸손함, 자신감 등도 섞여 있었다. 그가 매우 커 보였다. 사실 무엇인가를 도와달라는 부탁의 말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어떤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것을 꺼내지도 못했다. 그냥 ‘아! 이런 것 닮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이후 필자도 종종 그러한 표현을 써먹었다. 성도들과 대화 중에 필요를 발견하곤 그보다 먼저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좋을까요?”라고 제안을 해 보았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네, 잘 되었네요. 이런 것, 저런 것을 도와주세요”라고 말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제가 해보겠습니다”, “제가 목사님을 도와드려야죠” 등으로 반응을 보였다. 이후 그와의 인간관계는 더욱 두터워졌다. 신뢰 관계가 조금씩 더 쌓아져 감을 맛보았다. 이런 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하나의 노력 아닐까?

“나를 본 받으라”고 외친 성경의 인물이 있다. 바로 사도바울이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다(고전 11:1). 한 번이 아니다. 여러 번 말했다. 이는 자신감이다. 또한 강조의 의미도 있다. 자신의 무엇을 본 받으라는 말일까? 그의 취미, 외모 등과 같은 것일까? 결코 아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신의 모습을 본 받으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고전 11:1절 윗 구절에 그 힌트가 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삶’이다. 24절과 33절에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다. 목적은 ‘구원’에 있음도 명확하게 말했다(33절).

어떻게 하는 게 자신의 유익이 아닌 남의 유익을 구하는 일일까? 구체적인 실행도 알려주었다. 시장에서 물건 살 때, 물건의 어떠함을 묻지 말고 그대로 구입하라고 했다. 또한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음식의 어떠함을 묻지 말고 고맙게 먹으라고도 했다. 각각의 상황에서 ‘양심을 위하여’라는 말이 붙었다. 이때의 양심은 나의 것이 아닌, 상대의 것이다. 상대의 양심을 위해 행동하라는 말이다. 이는 자신의 얄팍한 신앙지식이나 규칙에 따라 비판하며 행동하지 말고, 상대를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행하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어떤 것이 진정으로 상대의 구원과 회복을 위한 일인지 생각하며 따르라는 말과도 같다.

최근 신문을 보다 ‘일본 기업 취업 박람회’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IT계통 일본 기업들이 한국 청년들을 뽑겠다는 것이다. 순간 한 형제가 생각났다. 대학 졸업반은 그는 취업 때문에 고민이 많다. 그의 전공도 IT계열이다. 그 기사를 사진 파일로 만들어 곧바로 전송해 주었다. 스마트폰이 이럴 때는 효자노릇을 한다. 대단히 고맙다는 인사 문자가 왔다.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 좋겠다.

어느 날 서점에서 이 책, 저 책을 둘러보고 있을 때다. 스마트폰 앱(Application) 제작과 관련된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책을 보고자 한 게 아니었다. 그 앞을 지나가다가 멈춘 것이다. 순간 한 성도의 기도제목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직 믿음이 없는 가족 구원을 위한 기도부탁이었다. 그 가족은 컴퓨터를 전공했다. 관련된 직장을 다녔고 이후 사업을 했지만 실패했다. 지금은 반쯤 자포자기의 상태에 있다고 했다. 어떻게 위로를 해주고 믿음을 갖게 해 주어야 할 지 기도해 달라고 한 것이다. ‘그가 앱 제작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그 책을 스마트폰 사진으로 촬영했다. 그리고 그 성도에게 전송했다. 앱 제작이 그 성도의 가족 분에게 적합한 일인지 그렇지 않은지 전혀 모른다. 하지만 최소 가족이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이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구원으로 가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취업, 미팅 등 사람 소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잘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곤란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의 인격과 체면에 적지 않은 타격이 올 수 있다. 그러나 가능한 범위에서 적극적으로 소개해 주려는 게 필자의 마음이다. ‘사람 소개’가 나에게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경우가 많지만, 상대에게는 매우 절실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는 각양각색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자료, 기회, 재능, 지혜, 물건 등 말이다. 모든 것이 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이지만, 어떤 것들은 나보다는 이웃에게 꼭 알맞은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나누는 것이 결국 예수님을 닮아가는 길이지 않겠는가?

‘나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는 삶은 상대를 위한 기도가 선행될 때 잘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필요가 내 눈 앞에 보여야 한다. 그의 안타까움이 내 것으로 전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나에게도 용기가 생긴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필자에게도 자식과 후배들이 있다. 어느 날 그들이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며 다가온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 본다. ‘나를 닮은 게 뭐 있니, 그렇게 해서는 안 돼, 우리 주님을 닮아야지’라고 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분은 참 좋을 것 같다. 인생 사는 맛도 날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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