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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바르트, 샬로테와 육체 사랑도 했을까?①
20세기 '신정통주의' 최고 신학자 칼 바르트 비평
2018년 05월 30일 (수) 11:45:58 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교회와신앙> 김정언 기자】 이 글은 비록 논거를 위해 아랫주를 통해 인용 출처나 배경 등을 중간 중간 밝히긴 했어도, 논문은 아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필자 자신의 독자적 견해를 곁들인다거나 서론, 본론, 결론 등 논문 형식 또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저널리즘의 일부이다. 그래서 논문에 필요한 모든 각주를 일일이 달지 않고 중복되는 출처와 쪽은 생략하기도 했다. 이 점을 양해하기 바란다.
 

   
▲ 샬로테 폰 키르쉬바움<교회와신앙>

 둘의 합일..어디까지?

 

칼 바르트와 샬로테 폰 키르쉬바움의 정신적 합일의 기쁨은 바르트의 <교회교의학>(Die kirchliche Dogmatik 이하 교의학 또는 KD) 3권 안에 내포된 ‘인간관’과 더불어 절정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바르트의 <교의학>, 특히 인간관은 비서이자 반려동지 격인 폰 키르쉬바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저작이었음은 자타가 공인한 바이다. 바르트는 심지어 <교의학>의 흰 표지를 샬로테의 치마폭에 비유하기까지 했단다1).

바르트에게 있어 인간의 실존은 오직 '나-너'(I-thou) 관계에서만 의미가 있다2). 그래서 만남(encounter)이 필수이며 따라서 중요하다. 상대방과의 만남 없는 인간 실존은 무의미하다는 것. 그런데 바르트에게 있어 '나-너' 관계는 그 무엇보다 우선 바르트-키르쉬바움 사이를 뜻했다고 하면, 과언일까3)? 놀랍지 않게도, 바르트는 <교의학> III/4(1951년)에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남녀 사이의 '나-너' 관계로 보면서 이 점에 대한 한 권위자로 키르쉬바움을 내세웠다.

실존주의 철학과 신학적 인류학을 연구한 바르트만큼 신학적-철학적으로 기독교 인간학을 깊이 다룬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이해에 있어, 마르틴 부버 사상의 핵심인 바로 이 '나-너' 공식을 폭넓게 활용하였다4).

바르트에게 외로운 인간이란 개념은 한 마디로 ‘불가능’이었다5). 신앙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인간적으로 키르쉬바움은 바르트만의 외로움을 이기게 해 주고 '나-너' 관계를 실감하게 해 준 장본인이었다. 이 점에서 바젤 철학 선배의 하나인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빌린다면6), 바르트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이었다.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전집 초판. 이 하얀 자태를 바르트는 샬로테의 '치마폭'으로 비유했다.ⓒ<교회와신앙>

자신의 말에 의하면, 바르트는 이른 바 '군중 속 고독'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 넬리 및 자녀와 늘 함께 살았어도 외로움을 느꼈고, 그 외로움을 비로소 온전히 채워 주고 달래 준 이가 바로 샬로테였다는 게 바로 바르트 자신의 주장이다. 본 시리즈 앞부분을 읽은 독자는 충분히 감득(感得)되었을 내용이다.

이렇게 볼 때, 실로 넬리 아닌 샬로테야말로 그의 정신적 반려자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바르트의 육체적 반려자는 누구였는가? 바르트의 육체적 반려자는 단지 그와 침실을 나누고 자녀를 낳아 길러 준 합법적인 아내였을 뿐, 정신적 반려자였던 키르쉬바움은 아니었던 것인가? 과연 바르트에게 키르쉬바움은 '플라토닉 러브'의 대상이었을 뿐, 에로스적 대상은 아니었는지?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둘이 서로 성적 대상 내지 성생활 상대는 아니었냐는 것. 어차피 오래 함께 지내다보니 서로 성적 유혹은 받았겠지만, 도덕 양심상 거기 치심하거나 몰입하진 않았던 것일까?

수잰 셀린저가 보기에, 키르쉬바움은 "여집사 같은" 보수주의자였음에도 동시에 매우 신사고적인 '신여성(New Woman)'이었다. 키르쉬바움의 삶은 오픈돼 있었고, 세계주의적(cosmopolitan)이었다. 나치즘에 대한 저항의식에서도 바르트와 맥을 나눴다7). 다름 아닌 바르트에 대한 성애욕 때문에도 그녀가 겪은 내적 갈등이 있었다면−있었음이 분명하겠지만(!)−그것의 실상이야 어쨌든, 샬로테의 존재가 바르트의 집안에 몰고 온 갈등의 폭풍과 약 40년간이나 지속된 소용돌이는 유독 둘의 성생활과는 무관했다고 봐야 할까? 

보수적이면서도 개방적인 키르쉬바움의 사고의식이 바르트 및 넬리의 가족과 공존할 수 있게 만들었다면, 그 '오픈주의('Openism')가 성(性)과는 전혀 무관했던 것인가? 아니 그 무엇보다도 기회만 있으면 수시로 늘 함께 했던 둘 사이에 있었을 명백한 성적 유혹에도 서로 넘어가지 않고 무사히 극복할 만큼 경계선이 철저하고 분명했던가?

   

▲ ‘나-너’의 관계를 공식으로 정립한 부버의 저서(1923년) 초고와 초판 표지, 부버 기념우표(표지와 별도).<교회와신앙>

이렇게 캐묻는 이유는 바르트가 기독교 윤리학에 깊이 천착했기 때문이다. <교의학>의 내용 다량이 신학적 윤리학을 전개하고 있다. 만약 어디까지나 단순히 학적인 파트너십을 나누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선을 넘나드는 정도의 관계였다면, 둘은 바르트가 강조한 바로 그 기독교 윤리학의 선도 초월해 버렸다는 얘기가 된다.

키르쉬바움은 표면상 처음부터 끝까지 처녀였다. 그러기에 애당초 성생활을 비롯한 모든 부부생활에 아무 경험이 없는 편이었다. 대조적으로 바르트는 엄연히 여러 자녀를 포함한 가족을 둔 기혼자였고, 따라서 성생활을 익히 안다는 점에서 '범부'로서 가족생활을 영위해 나아감과 동시에, 처녀인 한 이성을 늘 곁에 두고 최소한 정신적으로, 또는 그 이상으로 상대방을 탐험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처지였다. 물론 완전히 스스로 초래한 상황이지만 말이다.

한 마디로 바르트는 키르쉬바움을 함께 데리고 살 정도로 모든 면에서 그녀를 가족원 이상으로 여겼고, 넬리를 비롯한 그의 진짜 가족은 이를 감수해야 했다. 문제는 그런 정도의 처지이면서 둘이서 유독 성적으로는 초월할 수 있었겠냐는 물음이다. 둘 아닌 나 홀로의 실존이 바르트에게 불가능했듯 이 역시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하면 과언일까?

바로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바르트의 인간관, 더 나아가 그와 키르쉬바움-두 사람의 성애관(性愛觀)을 살펴 볼 동기를 품게 된다. 


<각주>
1) 바르트의 이 은유를 서울신학대학교 이신건 교수(조직신학)의 한 서평 속에서 발견했다. http://www.sgti.kr/bookreview/41.htm
2) ‘I-thou’ 공식은 바르트가 마르틴 부버에게서 빌린 것. 유대계 독일 철학자인 부버는 자신의 책, ‘Ich und Du’(1923)에서 이 관계 공식을 정립했다.
3) 글을 쓰면서 본 필자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했다가, 프레더릭 허작(Frederick Herzog, 1925-1995, 독일식: 프레데리크 헤어초크) 역시 그런 이해를 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바르트는 I-thou 관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 자신들을 거기 비견했을 수 있다고 보았다. 셀린저, 91(재인용). 필자의 이 글은 셀린저를 많이 참고했다. 이하 인용도서의 원명이나 기타 관련사항들은 기존 시리즈 각주를 참조하기 바람. [참고로, 개혁교 해방신학자인 허작은 원래 독일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나, 독일과 스위스에서 공부하면서 한때 바르트의 조력자의 한 명으로 있다가 귀국해, 프린스턴대에서 연구한 후 듀크신대원에서 죽기까지 35년간 기독교신학을 가르쳤다. 또 해방신학자로서 북미주의 민권운동과 남미주 신학계의 해방주의에 관심을 갖고 관련 저서를 펴냈다. 바르트의 레지스탕스 정신에 영향 받았음을 암시해 주는 대목이다. 

4) 물론 '나-너' 관계 이전에 하나님/그리스도와 인간의 'Thou-I' 관계가 선재하며, 그것을 전제로 한다. 신화와 이교는 신을 'it(그것)' 아니면 'he(그)'로 다루지만, 기독교는 'Thou' 곧 당신/주님/님으로 대하고 섬긴다.
5) 이 표현을 벤저민 더하임의 글에서 차용했다. Derheim, Benjamin, The Human as Encounter: Karl Barth’s Theological Anthropology and a Barthian Vision of the Common Good, 7.
6) 니체는 1869-1879년 십 년간 바젤 대학교 교수였다.
7) 셀린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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