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와신앙> : 김정언 기자 】 로이 무어(Roy Moore). 그가 누구였던가? 앨라배마 주법원장 재직 당시 주법원에 설치된 십계명 석판을 절대 보존해야 한다고 투쟁하면서 보수파와 근본주의 교계의 열렬한 지지를 받긴 했지만, 교회-정부 분리파의 입김으로 끝내는 해임된 뒤, 상당기간의 공백기를 거쳐 현재 연방 공화당 앨라배마주 상원의원이 되려고 나선 사람이다.

무어는 적어도 십계명에 목숨을 건 사나이처럼 보였다. 그는 동성애를 절대 반대하는 우파에 속한, 열혈 복음주의 크리스천이고, 그의 정치적 신념은 주로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언론의 분석이다.

그런데 그가 정치 후보로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 영락없는 반작용(?)이 시작됐다. 그의 30대 초기에 그로부터 '성 폭행․추행'을 당했다고 무려 10명 안팎의 여성들이 나선 것. 그 대다수는 10대 소녀 시절 동네 몰 등 다양한 곳에서 젊은 시절의 무어에게 성추행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겉보기엔 경쟁당의 많은 후보들이 겪는 상투적 수순 같기도 하다.

▲ 앨라배마 지역 연방 상원의원 후보로 나선 뒤, 여러 '옛 소녀'들의 성적 지탄을 받고 있는 무어 판사. 배지에 십자가가 보인다. ⓒHP

피해자들은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매우 "근거 있는" 고발을 해, 실상 무어가 현재 상당히 곤경을 겪고 있는 참인데도 그는 '이건 순 음모'라며 자신의 "절대 무혐의"를 고수하고 있다. 현재 무어의 점수는 많이 깎이고 있어 이번 선거에 승산이 있을지 날로 의혹스러워져가고 있다. 공화당도 이를 의식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교계에서는 워싱턴 DC에 사무소를 두고 오래 정치윤리를 가장 부르짖어 온 남침례교 윤리종교자유위원회(ERLC)의 러슬 무어 의장이 반대쪽에 서서 "무어 후보를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보수파와 교계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나섰다.

공교롭게도 이름이 둘 다 '무어'인 데다 이니셜까지도 R.M.-똑같다. 교계의 R. 무어가 법조계의 크리스천 R. 무어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이 형국을 보던 일부 공화당 사람들은 무어 후보가 현재는 아무 법적 하자가 없으니, 그냥 두어야 한다고 말리고 나선 상황이다.

11월 초순 시작된 워싱턴포스트의 무어 후보 '성 폭행․추행' 고발 기사는 그야말로 일파만파로 번져, 현재 구글에 약 500만 건이나 떠있다. 무어 까발리기에 맛들인, 또는 신들린(?) 듯한 포스트는 줄줄이 수십 꼭지의 기사를 통해 이 여성들의 폭로 내용으로 무어와 공화당을 마치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연합군 함포들처럼 연속 포격하고 있다.

무어는 오는 12월 12일 앨라배마 주니어 상원의원직을 놓고 민주당 쪽 덕 존스 후보와 우열을 가리는 특별선거를 갖게 된다. 주니어 의원이란, 같은 지역의 두 의원 중 후배를 가리킨다. 본래 이 자리는 제프 세션즈 법무장관의 것이었다가 루터 스트레인지 전 앨라배마 주법무장관에게 임명 형식으로 이양됐으나 올해 8월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무어에게 패배했다.

전국 공화당 사람들은 무어에게 후보직을 포기하라고 거듭 조언해 왔으나 무어는 끝까지 가겠다는 입장. 그런 무어에게 언론을 통한 찬반 입김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경선자인 존스 민주당 후보 역시 크리스천이다. 연합감리교 소속. 그러나 동성애나 낙태 등의 문제에 대해 진보적 견해를 갖고 있다. 한동안 무어 이슈에 관해 침묵하고 있던 백악관은 20일 존스에 대한 비난 발언을 했고, 21일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대해 "우리는 거기에 진보 인사가 필요치 않다."고 말해 무어에 대한 지지를 나타냈다. 기자들의 의아심이 해소되지 않자 트럼프는 "무어 자신이 그 모든 의혹을 부인하지 않았냐? 부인해도 아주 전적으로 부인했다!"고 덧붙였다.

좐 메릴 앨라배마 주무장관은 무어에 대한 의혹적 진술의 타이밍이 무어 자신보다 더 의혹스럽다는 입장. 그는 "앨라배마 사람들이 목청을 높일 기회가 왔다는 건 변함없다."면서도 "무어 판사가 과거에도 10여 차례 다양한 직책을 놓고 출마했는데도 이제 와서야 이런 고발들이 출몰하는 것이 아주 이상야릇하다."고 운을 띄었다.

메릴 장관은 또 "앨라배마 출신의 탁월한 언론인들이 많은데도 그동안 아무도 이 스토리를 진작에 캐내지 못했다니 왠일일까?"라고 물었다. 하지만 '언저리 언론'의 하나로 꼽히는 드러지 리포트(DR)는 로이 무어를 '음남(淫男) 판사'라고 단정했다.

여전한 무어 지지 그룹

그런가 하면 무어를 지지하는 수십 명의 앨라배마 여성들이 지난 17일 앨라배마 먼가머리 주 의사당 계단에 서서 가진 언론모임에서 무어의 '무죄'를 주장하며 지지를 외쳤다. 보수파 여성들로 똘똘 뭉친 '친 무어 여성그룹(WRM)'은 이 컨퍼런스에서 "무어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경건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 옹호했다.

이들은 대체로 무어 판사가 한 번도 역스런 언행을 보인 적이 없다며,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단 한 명, 단 한 마디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행사 도중 무어의 아내 케일라 무어 여사는 자신과 여성들이 언론의 공격과 스토킹을 당한 기분이라며, 백악관 대신 자신의 가족이 뉴스의 초점에 된 데 대해 "고맙다"고 반어적으로 말했다.

모인 여성들은 또 덕 존스 앨라배마 주지사 민주당 후보에게 초점을 돌려 그가 만기낙태를 지지하는 등 초진보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공격하기도. 존스는 “여성의 몸을 갖고 법제화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한 말이 보수계에서 와전되자, 뒤늦게 "만기낙태는 의료적인 필수시 외엔 대체로 금기시된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참가자들 중 마타 쉬버 여인(79)은 한 기자와의 대담에서 "(무어에게 '성추행' 당했다는)소녀가 당시 부모에겐 왜 알리지 않았냐?"고 묻고, "로이(무어)는 아름다운 아내를 두고 있다. 왜 추하게 뵈는 여인과 노닥거리며 속이려 들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쉬버는 "(무어)비난자들이 지난 수십년간 침묵해온 게 왜 거짓말의 증거가 되나?"는 물음에 "똥은 저을수록 더 구리다."라는 아리송한 답을 했다.

무어 판사의 주변은 십계명판 탓에 진보그룹으로부터 공격받은 것 외엔, 이번 선거에 나설 때까지는 한동안 대체로 평온했다. 정가에 입문하려고 선거에 나설 때마다 언론의 노르망디 함포 식 발포로 후보의 경력과 삶이 '만신창이'가 되는 사례들이 이젠 눈과 귀에 익다.

전적으로 무어를 옹호해온 보수언론 <브라이트바트> 편집인은 "로이 무어가 설령 아동 성애자인들 본지는 전적으로 차분할 것이다."며 "그가 그랬을 때는 아직 싱글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다수의 네티즌들은 적지 아니 분노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브라이트바트>는 트럼프가 신뢰점수를 많이 주는 언론이다.

"당한" 여성들이 입을 여는 시대

요즘 남자에게 "당했다"는 여자들의 폭로전이 과거보다 훨씬 진보화 돼 간다. 요즘은 남성 명사들에게 주변 '피해여성'들이 '시한폭탄' 또는 '뇌관' 같은 존재가 돼 가고 있어 전전긍긍하고들 있다.

할리우드 영화계 거물 하비 와인스틴에게 "당한" 연예인들의 폭로가 줄이은 데 이어, 지난 20일 다이애나 드게트 연방하원의원(민주당-콜로래도)은 밥 필너 전 하원의원 및 전 샌디에고 시장(민-캘리포니아)이 엘리베이터 속에서 자신에게 강제키스를 하려 했다고 '뒷북'성 폭로를 했다. 드겟은 "그 후로 다시는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다."고 밝혔다.

필너는 1993년부터 주욱 하원의원을 해오다 2012년 12월 샌디에고 시장이 됐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 10여명의 여성들로부터 과거 성희롱․폭행 의혹을 제기 당하자 사임한 뒤 그해 12월엔 다른 중범죄로 3년 유예형과 3개월 자택 구금형을 받기도 했다.

바야흐로 조용히 성희롱을 겪고 나서 속으로 앓기만 하던 여성 인사들이 이젠 적극 입을 여는 시대가 됐다. 11월초엔 재키 스피어 하원의원이 한 현직 남성 의원이 연방의회 여직원을 성희롱했노라고, 바브라 콤스탁 의원도 한 의원이 여직원에게 자신의 몸을 드러냈다고, 또 메리 보노 의원도 한 의원이 자신에게 다가와 "당신이 샤워하는 모습이 어떨까 생각했다."더라고 각각 밝혔다.

스피어와 컬스텐 길리브랜드 등 두 여성의원들은 최근 의원들과 의회 직원들의 성추행․희롱 피해 신고를 좀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상정한 바 있다. 드게트는 여 의원들이 상대의 이름을 밝히는 등 좀 더 적극 신고해주길 주문하고 있다. "그냥 누군가 누구에게 당했다는 주장만 하면 막연하다"며 "현직 의원가운데 성 포식자가 있다면, 우린 그가 누군지 알아야 한다."고 드게트는 강조했다.

앨 프랭컨 상원의원도 지난 2010년 한 젊은 여성과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그녀의 엉덩이를 손으로 집는 등 성희롱․성폭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주요 인사의 하나다. 좐 코니어 하원의원의 경우 심지어 고발자와 협상하는 데 세비를 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다름 아닌 언론계의 '스타'라는 뉴욕타임스의 백악관 출입기자, 글렌 트러쉬 씨도 동료기자인 20대 여성 등 여러 명을 "성추행"하려 한 의혹을 받아 현재 정직 당한 상태다. C BS, PBS 등에서 활약해온 명 TV호스트이자 저널리스트인 촬리 로즈도 그와 "원치 않던 성적 접근"를 겪은 8명의 여성들이 줄줄이 폭로하는 통에 두 방송국에서 모두 해임됐다. 로즈는 피바디 상 등을 받은 쟁쟁한 수상경력자이기도 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1970년대 중반 이후 성적인 문제로 부각돼, 사임하거나 남아있던 연방의회 의원들이 7명. 1980년대는 남성동성애에 연루된 의원들을 포함해 모두 11명이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도 각7명이 그랬다. 2010년대엔 6명이었다. 이들 전체 가운데 일부는 재선되거나 아무 징벌도 받지 않기도 했다.

그밖에 역대 의원들 가운데 성적인 문제가 있어도 피해자들이 무언중이거나 별 큰 '잡음'없이 무난히 넘어간 케이스들도 물론 많다. 이런 문제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한 계속 발생할 여지가 있다. 로이 무어가 당선되면, 앞선 사례들처럼 적당히 무마되거나 계속 문제로 남아 그를 따라다닐 가능성도 있고, 차라리 그가 사전 패선하고 그것으로 그치는 게 자신과 의회에 더 유익할 수도 있다. 그 판단은 오는 12월 12일 앨라배마 주민들이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