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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말론 심층연구 ] 초기 한국교회의 종말신앙 ③
초기 종말신앙… 외향화에서 내세화 타계화로
2017년 10월 23일 (월) 11:21:32 박응규 교수 ungkpak@acts.ac.kr

초기 한국교회의 종말신앙 ③

박응규 교수 /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교회사

III. 초기 한국교회의 종말신앙 형성과 특성

III. 1. 외향화(Outwardness): 종말론, 민족주의 & 독립운동

   
▲ 박응규 교수

한국교회의 종말신앙은 한말과 일제 치하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형성되고 확립되어 갔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종말론적 유형들”(eschatological paradigms)이 나타났다.57) 한국 기독교 역사 초기부터, 교회나 기독지도자들이 민족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는 일반인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인 인상을 심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결과 1895년부터 1910년의 기간 동안, 어느 시기보다도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교회로 유입되었다. 그리고 1905년에서 1910년의 기간에는 선교사들의 숫자가 급증하는 추세였는데, 대체적으로 그들은 한국 백성들의 고통에 동정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기독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교회 성장의 주요 요인은 바로 기독교회가 민족주의적이며, 독립에 대한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 시켜 주었기에 가능하였다.

이런 면에서 한국에서의 기독교 선교는 서구 제국주의와 연결되지 않고, 오히려 일본의 군국주의적 팽창세력에 대한 견제의 역할을 담당한 것은, 기독교회가 역경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외부적 요인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이, 선교사들과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민족주의들과 연합하는 계기를 자연스럽게 제공하였다. 이러한 연계는 일제의 통치기간 동안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기독교 신앙뿐만 아니라, 선교정책이나 선교자체가 자연스럽게 반일정신을 고취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한글의 재발견과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고 한글로 성경연구 및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이런 추세를 가속화 시켰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네비우스 선교방법(Nevius Mission Methods)의 핵심 중의 하나인 자립정책은 한국 성도들로 하여금 일제 치하의 상황에서 독립의지와 함께 자긍심을 함양하 는 계기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3.1 운동은 비록 한국의 독립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교회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 운동에 의하여 하나의 민족으로서 한국민족이 독립되어야 한다는 민족의식이 형성되었다.58) 민족에 대한 관심은 길선주 목사를 비롯한 교계 지도자들에게 현저하게 나타났다. 특히 일제에 의한 국권찬탈이 가시화되는 시기에 종말사상이 민족운동과 연결되어지는 고리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59)

1905년에서 1910년 사이 기독교인들의 민족운동으로 주종을 이룬 것은 국가를 위한 기도회 운동이었으며, 이런 면에서 길선주의 사상은 이런 사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설명을 해 준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독립정신은 기도모임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었고, 독립운동의 기반이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민족을 향한 기도문에서 우리는 그러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활화 되지 아니한 시기에 그는 이렇게 간구하였다, “한국을 구하소서! 한국민을 회개시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독립국가가 되게 하소서! 아멘.”60) 이렇게 한국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독립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61) 당시 의 길선주의 현실관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당시 조선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었고, 국가 상태로는 민족적 비극을 되 돌이킬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할 일은 교육과 민족 개선운동 을 전개하는 동시에 기독교를 민족의 마음바탕에 뿌리 깊이 심어 놓는 길 밖에 없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리스도는 민족의 유일한 희망이며 기독교 는 세계무대에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예견한 것이다.”62)

길선주에게 있어서 종말신앙과 민족에 대한 관심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그가 관여한 평양에서의 기도 모임이 후에 3.1 독립운동의 주요 인물들을 배출하는 산파 역할을 하였다.63) 이렇게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기도와 신앙운동이 한국의 독립에 기초가 될 것을 확신하였다. 독립 선언문에 기록된 “구원, 해방, 새 시대, 소망” 등의 개념은 기독교 신앙의 종말론적 기대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전거(典據)는 미국의 독립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천년왕국 사상과 민족주의가 결합된 사실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며, 그것이 다양한 표현으로 명명될 수 있지만, 후에는 영혼을 구하고 선교하는 열정을 제공하는 동기로서의 복음적 천년왕국사상으로 변화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64)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길선주의 초기 종말사상을 “메시야적 민족주의”(messianic nationalism)이라고 언급할 수 있다.65) 이런 면에서 길선주를 비롯한 기독교 인사들의 부흥운동에의 적극적인 참여와 독립운동에서의 지도적인 역할은 양립할 수 없는 두 개념이 아니라, 적어도 이 시기까지는 한국이 처한 특수한 상황에서 기독교 신앙을 통한 민족의 문제를 개선해 보려는 의지가 강하여, 전천년적인 세계관이 강하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들이 부흥운동 이후에 사회 개혁운동에 참여 하는 것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도 부흥운동이 내포하는 개혁적 성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혁에 대한 길선주의 확신은 3.1 운동을 기점으로 크게 변화되어, 사회참여보다는 묵시론적인 종말론에 심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는 독립 운동 이후의 암울한 시대상황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하다.

그 때(3.1 운동)를 경과하면서, 한국은 미증유의 좌절과 시련을 아프게 겪기 시작하였다. 국제적 질서는 신흥 강대국 일본에 간섭할 의사가 없었고, 파리 평화회의는 조선에 냉담하였으며, 윌슨의 민족자결원칙은 전승 연합국의 유럽 영토분할을 위한 외교적 의도가 있었다는 사실들이 우리 겨레에게 소외와 약소의 패배감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교회에 대하여도 3.1 운동의 결말은 세계사의 도덕적 질서에 대한 초조한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66)

길선주의 종말론, 특히 천년왕국설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었음을 그의 행적이나 남긴 기록을 통하여 인지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종말사상이 메시야적 민족주의라고 정의 한다면,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고, 독립운동 참여로 인한 옥고는 그에게 종말론에 있어서의 변화가 있었음을 그의 생애에 대한 증언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그의 아들, 길진경의 <영계 길선주>에 의하면, 그의 부친이 2년 동안 옥고를 치르는 동안 성경을 숙독하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계시록을 만 번 이상 읽게 되었으며, 그 내용을 거의 다 외워 자유자재로 인용할 수 있는 경지라고 하였다. 그 후 길선주의 새벽기도회 및 사경회의 설교내용 90% 이상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재림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다고 증언한다.67) 다음은 그의 대표적인 설교내용이다.

“주의 재림이야말로 우리 신앙의 과녁이요 소망의 영역이다. ... 주의 재림은 하나님의 경륜[세대]을 완성시키는 최후의 시기임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 주께서는 반드시 오셔서 천년안식세계를 건설하실 것은 성경 전부를 자세히 연구하면 할수록 더 확실히 깨달을 뿐더러 주께서 빨리 재림하실 것이 사실임을 더욱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오 형제들이여. ... 신자들의 변함없고 썩지 않는 무궁한 소망은 주님이 다시 오셔서 평화의 낙원을 건설함에 있는 것이다. 깨어 준비하고 믿음에 굳게 서서 소망 가운데 즐거움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기를 바라나이다.”68)

길선주의 종말관에 있어서의 변천은 한국 장로교회의 천년왕국 사상이 시대의 독특한 역사적 상황으로 인하여 외향화를 지향하던 방향에서 내세화 및 타계화 되어가는 방향으로 변하게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69) 이런 변천의 배후에는 독립운동이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일어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2000 여년의 교회의 역사에서, 그리고 미국의 종말론의 변천의 저변에는 항상 성경해석학적인 요인과 더불어 시대정황이라는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 할 수 없다.


III. 2. 내세화 ․ 타계화(Otherworldliness): 독립운동의 실패와 부흥사들의 메시지

1919년의 독립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의 1920년대의 한국 전체 사회의 방향은 그야말로, 슬픔과 암흑의 시대요, 자조와 불평의 시기요, 또한 절망의 기간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의 성도들은 이미 선교사들을 통하여 알려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계시록에 기록된 내용에서 무한한 위로와 소망을 얻었으며 임박한 재림에 대한 강력한 기대는 복음전파 외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다른 방도가 없음을 강조하였다. 이 시기에 일어난 전진 운동 및 백만인 전도운동 등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다.

이미 언급한 길선주는 대부흥운동 이후부터 1935년까지 한국교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자요, 부흥사로 전국을 돌며 활동했으며, 장로교 안에서만이 아니라, 감리교와 다른 교파에까지 종말신앙이 파급되었다.70) 1919년 독립운동이 실패로 끝난 후, 옥중에서 심취했던 계시록은 그의 설교와 부흥회를 종말론적으로 이 끌어 가게 했던 요인이었다. 그의 “주 재림 연구”는 실의와 좌절에 빠진 한국의 성 도들을 위로하여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 그는 타협을 모르는 전천년주의와 함께 성경무오설를 신봉하였으며, 그의 설교는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이 핵심이 되어 한국교회의 수많은 강단에 외쳐지면서, 그의 신학사상은 한국개신교 신앙을 구형해 나가는 데에 기반의 역할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길선주를 “ 종말의 희망을 알리는 나팔수”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71)

또한, 1920년대에 전도 및 부흥운동에 앞장 선 이가 바로 김익두 목사(1854-1950)였다. 이러한 부흥사들의 메시지는 상처와 불안에 떠는 성도들을 시대를 치유하는 종말론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한국의 무디” 라고 불리워졌던 김익두 목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흥집회가 대중화 되고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돋움 하는 계기를 조성하였다. 김익두는 시대를 종말론적인 설교와 이적기사로 치유하는 사역을 행하였다. 절망과 상처의 시대에 병고와 암울한 국운 속에서 비탄에 신음하는 한국교회를 향하여 외쳐진 김익두의 종말론적 설교와 이적기사는 한국 성도들의 마음과 몸에, 소망의 새 시대가 오직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도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김익두의 부흥운동과 이적을 행하는 사역은, 고통과 압제 하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전했으며, 당시 팽배하던 반(反)기독교 세력과 물질주의적 경향에 대하여 그의 설교와 기사를 통해, 이 절망의 시대를 간과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신적 개입이라는 개념을 불어 넣었으며, 그리고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며 회개운동을 전개하였다. 희망을 걸었던 독립운동의 실패와 더욱 교묘하게 탄압정책을 펴는 일제의 식민정치, 그리고 비탄에 빠진 한국의 성도들에게 사경회나 부흥집회를 통하여 선포되어지는 내세지향적인 말씀은 그들의 가슴 속에 한 줄기의 소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경향과 함께 전국적으로 펼쳐 진 전진운동은 한국교회가 절망의 시기에도 성장하는 교회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하였다. 김익두의 설교 역시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으로 삼고, 시련의 순간을 이겨나가며, 성결한 삶으로 준비하자는 메시지가 그 중심으로 이루고 있다: “겁내지 말고 결사문에 서서 요단강 저 언덕을 보시라! 저기서 예수님이 생명의 면류관을 들고 기다린다. ... 천국은 이 육신을 벗고 불노하는 영혼이 장차 갈 나라이니, 그 나라는 영원이요 무궁이다. 오늘이야말로 참 천국이 가까웠다. ... 그러므로 부디 회개하라.”72)

이러한 종말론적 희망의 설교로 일제의 압제에 시달리고 찌들고 허탈에 빠 져있는 이들에게 피안의 세계를 바라보게 함으로 현실의 고통을 이겨 나갈 수 있는 초월적인 안목을 제공하였다. 예수의 재림에 대한 기대와 그리스도의 우주적 왕권 회복을 절대 신뢰하는 가운데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극복하였다. 재림의 임박성에 확실한 믿음은 당시의 한국교회의 성도들에게 교파를 초월하여 강한 종말적 신앙형태를 견지하게 하였다. 그러기에 이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며, 변혁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보다는,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되, 지체치 말고 회개해야 함이 무엇보다도 강조된 설교의 내용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는데 당신은 그러한 죄악된 삶을 계속 살아 갈 것인가?”라는 도전 앞에 한국교회의 신앙은 내세 및 타계지향적인 종말론으로 편향되어 갔다.

많은 부흥사들의 집회를 통하여, 특히 “한국의 무디”라는 별명이 붙은 김익두의 전국적인 집회를 통해서 피안적인 종말론은 한국교회의 신앙의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길선주의 종말론과 비교해 본 다면, 김익두의 종말 사상은 더욱 타계화 되어가는 경향이 짙게 나타나며, 이러한 현상은 한국교회의 성도들에게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을 고착시켰다. 김익두에게는 천국은 이 육신을 벗고 불노하는 영혼이 장차 갈 나라로 인식되면서, 천국과 이 세상 그리고 육신과 영혼을 나누는 이원론과 천국을 단지 미래적인 차원으로만 이해하는 특징을 볼 때, 강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영향을 감지하게 된다.

1920년대에 불어 닥친 위기 상황 속에서 김익두는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전례 없이 복음의 능력에 압도될 수 있도록 전도운동에 향도적 위치를 점유하면서 3.1 운동으로 초래된 통절한 시련을 신앙으로 극복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하나님과 천국, 그리고 인간과 역사를 양편에 대립시킴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신앙을 타계지향적 메시지를 통하여 분출했다. 인간과 역사는 본질상 죄악 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회개와 겸손, 그리고 자제와 극기를 통한 성결에서 비로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설 수 있다고 외쳤다.73) 김익두는 철저하게 무디의 부흥운동 전통을 이어 받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강하게 그의 사역 속에 반영 되었다. 그의 설교 속에서 강조한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 사상은 시련 속에 처해 있던 한국 성도들에게 무한한 소망이 되었으며, 이러한 특성은 당시 불어 닥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그리고 1930년대에 최악의 박해 요인이 되었던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핵심으로서도 작용하게 된다. 평양신학교 출신인 길선주와 김익두야말로 1920년대의 한국교회 신앙적 특성과 종말론적 유형, 즉 타계지향적 천년왕국 사상을 형성해 나가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74) 김익두의 재림신앙 강조와 함께 성결과 신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세대주의 신학을 고리로 하여 성결교 신학과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관심은 성결교에서 보다 강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한국에 대한 성결교회의 선교는 무디성경학교 출신들인 카우맨(Letti B. Cowman)과 킬번(E. A. Kilbourne)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동경성경학교를 통해 이들의 신학을 배운 김상준과 정빈이 한국교회에 성결교 교리를 소개하였다.75) 그리고 이러한 영향 하에 한국에서 최초의 계시록 주석은 김상준에 의해 1918년에 출판된 <묵시록 강의>라는 저서였으며 그의 종말사상은 이명직 목사(1890-1937)에 의해 저술된 <묵시록약해>(1938), <그리스도 내림>(1939)을 통하여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보다 광범위하게 소개되었다.76)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결을 비롯한 신유와 중생의 성결교회의 사복음을 설교를 통하여 한국교회에 확산시킨 인물은 바로 1930년대 후반부터 부흥사로 활약했던 이성봉 목사(1900-1965)이다. 그는 김익두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부흥운동이나 신앙적 특성을 1930년대 이후에 교파를 초월하여 한국교회에 각인 시켰다.77) 이런 면에서 세대주의 신학의 영향은 장로교와 성결교 등 한국교회의 초기부터 강하게 확산되었다고 할 수 있다. < 계 속 >


각주 )-------------

57) 졸고, "Eschatological Paradigm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1910-1945) in Korea," Journal of Asia Evangelical Theology 12 (2004): 49-71.

58) 그레이슨, <한국종교사>, 239.

59) 민족대표 33인 중의 15인의 서명자들이 천도교인이었는데, 천도교의 신념 중의 하나가 “현재, 이 곳에다 지상천국, 또는 완전한 세계를 실현시키려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매우 애국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특성이 기독교인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협력하는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Ibid., 302. 길선주의 종말사상에 대해서 다음을 참고하라. 이덕주, “영계 길선주 목사의 말세신앙 (I)” <살림> 3 (1989, 2): 65-73; “영계 길선주 목사의 말세신앙 (II)" <살림> 4 (1989, 3): 65-74.

60) <대한매일신보>, 1905, 11, 19. Cf. 민경배, <교회와 민족>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1), 21. 61) 길진경, <영계 길선주>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8), 240. 62) 길진경, <영계 길선주>, 94.

63) 평양을 중심으로 서북지역에서 기독교인들에 의한 구국기도회, 교육을 통한 국민계몽, 그리고 정치적 결사를 통하여 추구했던 독립운동이 신민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서북지역의 기독교인들이 105인 사건으로 탄압을 받게 되었다. 양낙흥, <개혁주의 사회윤리와 한국 장로교회>, 140. Cf. 윤경로, <105인 사건과 신민회 사건> (서울: 일지사, 1990).

64) Buss, "Meeting of Heaven and Earth," 10-11. 부스는 그의 논문에서 천년왕국 사상과 민족주의가 결합된 개념을, “civil millennialism," "republican millennialism," 그리고 patriotic millennialism"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언급하기를, “Very importantly, the breakdown of patriotic millennialism led those with an evangelical millennial vision to redirect their efforts away from a political agenda to concentrating, instead, on their fellow citizen's conversion and the preaching of the Gospel overseas."

65) In Soo Kim, "Protestants and the Formation of Modern Korean Nationalism, 1885-1920: A Study of the Contributions of Horace Grant Underwood and Sun Chu Kil" (Ph. D. diss., Union Theological Seminary in Virginia, 1993), 154-155.

66) 민경배, <한국기독교 사회운동사>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200.

67) 길진경, <영계 길선주>, 282, 329.

68) 세대주의적 시대구분에 의한 마지막 세대는 천년왕국 세대임과 임박한 종말에 대한 인식이 매우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정성구, <한국교회 설교사> (서울: 총신대학 출판부, 1986), 152에서 재인용.

69) 이러한 길선주의 종말론적 변천을 간과하게 되면, 그의 종말론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게 인지된다. 즉, 그의 종말론을 후천년설로, 역사적 전천년설로, 혹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로 이해하며 심지어 그에게는 특정적인 천년왕국 사상이 없다고 하는 학자까지 있다. 그러나 길선주의 종말사상이 표현된 글 속에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적인 특징이 농후하게 발견되어진다. 길선주의 종말론을 분석 한 것은 졸고, "From Fear To Hope," 213-226에 있으며, 길선주의 종말론이 세대주의적 전천년 설적인 특성이 반영된 것은 그가 가르친 내용을 김정현이 기록하여 출판한 <말세론> (경성: 강대사, 1935)에서 발견할 수 있다. Cf. 길진경, <영계 길선주>, 155.

70) 심창섭,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종말사상,” <목회와 신학> 10 (1990, 4): 47.

71) 졸고, "From Fear To Hope," 216.

72) 이성호 편, <김익두 목사 설교집> (서울: 혜문사, 1969), 111, 113.

73) 김익두, <김익두 목사 설교집> (서울: 성광문화사, 1976), 96-98, 105-106.

74) 송길섭, <한국신학사상사>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273-278. 송길섭도 재림신앙이야말로 한국교회가 당한 일제말기의 역경을 극복해 나가는데 중요한 요인임을 인정하고 있다.

75) 정상운, <한국성결교회사 I> (서울: 은성, 1997), 55-65. 1923년부터 세대주의에 관련된 글들이 성결교단의 신학잡지인 <활천>을 통하여 활발하게 소개되었다.

76) 김상준, <묵시록 강의> (평양: 기독서원, 1918). 김상준의 견해를 거의 동일하게 따르면서 후에 이명직이 <묵시록 약해>와 <그리스도 내림>이라는 저서들을 1938년, 1939년 각각 출판하였고, 나중에도 예언서에 관련된 저서들이 출간되었다.

77) 졸고, "From Fear To Hope," 232-235. 최근에 출판된 이성봉 목사에 관한 논문집으로, 이성봉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편, <이성봉 목사의 부흥운동 조명>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0)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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