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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교 교리 분석 ] 재림교 구원론을 바로 세운다 ①
‘교회지남’ 조사심판 옹호… ‘이상구’ 사실상 축출
2017년 03월 13일 (월) 13:38:56 곽정환 목사 hosanna6408@hanmail.net

곽정환 목사

‘교회지남’ 이슈를 비판한다 (2017년 2월호)

삼육대학 교수들의 이상구 비판 심포지엄을 전후로 재림교 내부의 공식 잡지인 ‘교회지남’에서는 이신칭의와 조사심판에 대한 것을 연재 이슈로 다루고 있다. 이는 교단 차원에서 이상구 쪽으로의 이탈방지를 위한 전략적 사상단속(?)으로 보인다. ‘교회지남’ 2017년 2월호에서 “심판이 복음인가?”란 제하에 조심교리의 당위성을 논하면서 비복음적 퓨전 구원론으로 재림교인들로 하여금 복음에 눈멀게 하여 진리를 가리는 어둠에 가두는 것을 보고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로 자체 개혁을 시도한 데스먼드 포드 목사를 축출한 미국 본부의 역사가 지금 한국에서 반복 되는 바, 수 십 년 재림교에 헌신적 지도자였던 이상구 의사를 “조사심판이 없다는 이설로 한국 교회를 다시 혼란”케 하는 자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축출한 상태다.

재림교는 근 150년간 조사심판에 대하여 제기된 모든 반대와 의문에 대하여 “이미 다 정리되어 새삼 이슈가 될 여지도 재림교 신학에 걸림돌이 될 이유도 전혀 없다”(2017년 2월호, p.5)고 못 박으며 요지부동을 재 다짐했다. 이는 한 집단이 어둠에서 깨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2월호 교회지남에서는 재림교 내부로까지 침입한 신천지 집단을 이슈로 보도하며 그들의 오류를 지적하며 경계령을 발령했다(pp.26~27). 주지하는 대로 신천지 집단의 성경 해석은 오로지 총회장이라 직함을 가진 이OO 교주의 의견으로 파도를 이룬다. 그런 것을 빤히 지적까지 하면서 재림교는 왜 화잇이란 안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편견과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이것은 화잇 자신도 반대한 일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 재림교(안식교)의 잡지 ‘교회지남’에 ‘조사심판’ 교리를 옹호하는 삼육대 교수의 글이 실렸다. ⓒ교회지남 해당 기사 일부

필자는 교회지남 2017년 2월호 이슈인 – 재림교 도현석 목사의 [심판이 복음인가?]라는 기고와 3월호 재림교 임봉경 목사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와 재림 전 심판의 관계(1) - 칭의와 심판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은 서로 조화 되는가?]라는 이슈 시리즈를 비판하고자 한다. 교회지남 기고 원문은 재림교 시조사 홈피(http://sijosa.com/) 정기 간행물 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비판 기사를 통하여 생각있는 재림교인들이 부디 생명의 복음으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한다.


어째서 심판이 복음인가?

제목 “심판이 복음인가?”라는 글에서 도 목사는 “그렇다!”고 강변했다. 도 목사는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복음 속에 심판을 포함시켰다.”고 했는데 이것이야 말로 틀린 전제다. 연결시킨 성구도 그런 의미도 아니다. 왜 그런가?

복음이란 기쁜 소식이다. 죽(었던)을 사람이 살았다(산다)는 것이다. 사망의 영역에서 생명의 영역으로 옮겨진다는 것(구원)은 엄청난 기적이고 엄청난 은혜다. 왜 은혜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거저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적 은혜, 무조건적 은혜, 완전한 선물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어떤 계산(deal with) 없이 아들 자격(칭의)을 주신다는 것이니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이에 반해 심판이란? 무엇인가? 통상적으로 심판이란 하나님 앞에 진노의 대상이며 정죄(定罪)로서 극형에 처해져 죽는다는 것이다. 내가 죽는다는 게 어째서 기쁜 소식이란 말인가? “심판이 복음이다?” 복음이 심판이다? 이 무슨 해괴한 연결인가? 성경에 없는 얘기다. 심판은 절대 복음 아니다. 심판은 저주이고 복음은 은혜다. ‘심판’이란 단어와 굳이 ‘복음’을 연결시키려면 “심판이 없다는 것이 복음”이다.


일사부재리 원칙

믿는 자에게 왜 심판이 없는가? 믿기 전에는 죽을 운명이었던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대신 심판을 받으셨기에 나에겐 더 이상 멸망과 구원을 가르는 운명적 심판이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대신 심판을 받으셔서 그것이 곧 내 심판이 되었는데 무슨 심판을 또 받는단 말인가? 이런 의미에서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받은 심판을 내 죄의 심판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완결된 심판의 결과로 과거와 미래의 모든 죄가 완전 도말 되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곧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십자가에서 끝났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에게 또 다른 진노의 심판을 말하면 십자가를 심히 깔보는 처사이다.

고후 5:10에서 말하는 심판은 멸망과 구원을 가르는 운명적 심판이 아니라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는 상급심판이다. 성경에서 심판이라고 할 때 내용적으로 크게 운명 심판과 상급 심판으로 나눌 수 있는데 진정으로 믿는 자는 일사부재리원칙에 의하여 운명적 심판은 없다.

비신자에게 전도할 때는 물론 심판을 말할 수 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현재 심판(정죄)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이 아니라 복음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이다. 상대가 성령님의 인도로 죄인임을 마침내 깨닫고 마음으로 “그럼 어찌할꼬?” 물으면 그 때 우리는 “당신을 위한 복음(기쁜소식)이 있습니다.”고 하며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당신이 받을 심판을 대신 받아준 분이 있습니다. 믿는 당신에게 운명 심판은 없습니다.”라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요 5/24). 그리하여 그에게 더 이상 심판이 없다고, 죄가 완전히 용서(도말)되었다고 믿어지는 것이 구원이고 감격이고 기쁨인 것이다.


믿음과 행위를 합해서 구원받는다는 주장은 퓨전 복음이다

재림교의 구원론은 [오직 믿음]으로는 일차 구원일 뿐이고, 이차는 예수님과 같은 완벽한 품성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즉 십자가 믿음으로 시작한 구원을 행함(순종, 헌신, 봉사)으로 완벽하게 마무리(증명)했는지 그 여부를 십계명으로 재심사하여 최종적으로 구원여부를 가른다는 구원론은 완전 퓨전 복음이다. 이런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동차 연료통에 물과 기름을 반반 섞어서 넣는 것과 같다. 그 차는 고장나고 말 것이다. 믿음과 행함을 섞어 구원 받는다는 가르침은 퓨전 복음이고 이 복음이며 주입되면 그 영혼이 고장 난다.


조사심판이 단순히 언행일치의 신앙을 강조하는 교리라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

“조사심판이 없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은 모름지기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야 하고, 그 삶은 계시된 거룩한 말씀을 따르는 사상이 실천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도 목사의 지적은 당연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고백과 삶의 일치가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당연하다. 사실상 언행일치 요구의 말씀 앞에 과연 누가 자유로울 수 있으며 감히 이의를 달겠는가?

도 목사는 “조사심판은 의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실천하는 신앙이 살았는지 확인하는 기회다. 언행일치의 신앙을 강조하는 아름다운 교리”라고 했는데 이것이 조사심판의 본질이라면 구원의 확신을 잃게 하는 교리라는 시비도 일어나지 않으며 비판의 여지도 없다. 언행일치의 신앙을 강조하는 교리를 누가 왜 비난한단 말인가? 그러나 재림교의 조심교리가 정말 그러냐? 절대 아니고 거짓말이라는 것이 문제다.

재림 전 조사심판은 언행일치의 신앙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언행일치의 삶을 십계명으로 재조사해서 구원의 자격여부를 최종결정한다는 것이 핵심이고 치명적인 독이라는 것이다. 헌신, 순종, 율법일치, 품성변화의 실적을 가지고 구원의 자격을 가늠하겠다고 하니까 이렇게 배운 재림교인들 90%이상이 구원의 확신이 없거나 타 교파에서 개종한 사람도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철저하게 적어둔 일생 기록을 재조사해서 심판하면 재림교 그 어떤 목사도 그 심판 통과 못한다.

도 목사의 진술이다

화잇 여사의 조사심판 광경은 매우 두렵다. “하나님의 기념책에는 의로운 행위가 빠짐이 없이 영원히 기록된다. ...” 거기에는 또한 사람들의 죄악을 기록하는 책이 있다. … 모든 사람의 선행과 악행이 다 기록되어 있다. 국회 청문회에서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무조건 모른다고 얼버무릴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감출 수 없다. 모든 기록이 백일하에 드러나니 두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감추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감출 것이 없는 사람은 두려울 일이 없을 것이다. ... 화잇 여사의 기록책에 대한 묘사는 매우 자세하다. “각 사람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심사되어 성실한 것과 불성실한 것들이 기록된다. 하늘의 책들에는 각 사람의 이름 아래 온갖 악한 말, 모든 이기적 행위, 온갖 의무 태만, 모든 은밀한 죄, 모든 기만 등이 무섭게도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하늘의 경고와 견책을 등한히 한 것, 시간을 낭비한 것, 기회를 놓친 것, 선악 간의 감화와 그 결과가 멀리까지 미친 일이 모두 기록하는 천사에 의하여 기록된다.”

도 목사의 글에 “기록”이라는 말이 열 번도 더 나온다. 모기 한 마리도 통과하지 못할 빽빽한 그물로 평생 행실을 걸러 철저히 기록해 놓고서 그 자료를 마이크로적으로 촘촘하게 분석하여 통 심판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누가 합격이 된단 말인가? “감출 것이 없는 사람은 두려울 일이 없을 것이다.”라는 대목은 파격적이고 코미디이다. 그 엄중한 조사심판 때에 과연 감출 것이 없는 완벽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렇게 행동의 동기까지 철저히 기록되는 줄 안다면 “아무것도 기록되기 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 삶의 지침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과연 “사람에게 아무것도 기록”되기 전의 시간이 어떻게 존재한단 말인가?


용서와 도말을 선명하게 구분하는 재림교 구원론

조사심판 기간에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크게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그들의 속죄 제물로 주장한 사람에게는 하늘 책에 기록된 그들의 이름 아래 용서받았다는 말이 기록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들의 품성이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된다는 것이 나타날 때, 그들의 죄는 도말되고 그들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될 것이다”(483).

도 목사는 여기서도 용서와 도말을 철저히 구분한다. 회개와 믿음을 주장한 사람들에게는 1차 용서되고, 2차로 [그들의 품성이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된다는 것이 나타날 때, 그들의 죄는 도말되고 그들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될 것이다]


믿음으로 시작하여 행함으로 마치는 재림교 진화론적(進化的) 구원론.

2차에서 불합격이면 1차 합격은 무용지물이다. 1차가 아무리 선물이어도 2차가 행위면 행위인 것이다. 이는 믿음으로 시작하여 행위로 마무리하는 전형적인 갈라디안 율법주의의 화신이다. 다음의 내용을 보자.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듣고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시작된 구원이, 우리 각자의 조사심판이 끝나는 순간에 완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완결된 결과를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모두가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여기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욱 간절히 사모하는 심정으로 회개와 순종의 삶을 살기 위하여 성령의 능력을 붙들고, 성령의 지도를 받아야 할 것이다.”

십자가로 시작된 구원이 조사심판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조사심판은 지금도 진행 중이니 재림교인들 중에는 구원이 완성된(확실한) 사람이 아직 한명도 없는 셈이다. 그러므로 “구원(영생) 받았다(얻었다)” 즉 과거형으로 된 찬미가사는 모조리 교리적으로 거짓말이다. 그런 찬미는 교리적으로 부를 수 없는 교단이라는 사실을 그 교단에 속해 있는 재림교인들이여 아는가?

필자가 재림교가 조심교리를 두고 “언행일치의 신앙을 강조하는 아름다운 교리”라고 하는 것이 거짓말이라고 한 이유는 이것이다. “조사심판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겪는 구원 경험의 하이라이트다. 왜냐하면 우리 구원의 확정이 여기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말로 시작하여 마침내 무서운 율법주의 덫으로 영혼을 끌고 가는 속임수라는 것을 재림성도들은 깨달아야 한다.


재림교에서는 은혜가 은혜가 아니라 품성 변화의 한 수단으로 말한다.

재림교인들은 “은혜가 우리에게 더욱 필요함을 깨닫고, 더 깊은 회개로 들어가야 한다.”는 진술을 읽을 때 좋을 말로 포장되어 있으니 “아~멘.” 하지만 실상은 그런 은혜를 받아서 회개를 더 많이 해서 품성을 예수님과 똑 같이 이루라, 그래야 비로소 구원에 합격된다는 독소적 율법주의의 수단으로서 은혜를 말하는 경향이 아주 많다. 그런 은혜는 참으로 부담스런 은혜이다. 아무리 은혜 받고 평생 회개해도 주님과 똑같은 품성은 불가능하다.

예수님과 같은 품성변화를 목표를 두고 하는 끝없는 회개는 종교적 좌절감과 매너리즘 신앙생활, 피곤한 허탈감을 줄 뿐이다. 이런 은혜와 그런 회개는 성경과 관계없는 것들임을 알아야 한다. 얼마나 많은 재림교인들이 이런 은혜와 회개를 강요받아 지쳐 있는가? 해마다 12월에 하는 연말 기도주간은 그래서 괴롭고 답답한 것이다.


심판은 복음이 아니며 [조심]교리는 반복음적 오류이다.

‘재림교 조사심판의 교리는 구원의 확신을 빼앗는가?’라는 질문에 답은 ‘넉넉히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순종, 헌신, 품성)를 예수님의 품성(율법)을 기준으로 해서 현미경적으로 조사해서 구원을 최종 결정한다고 하니 어느 누가 확신을 갖는단 말인가? 이런 실상을 모르고 생각 없이 반복음적 교리를 따르고 믿는 것은 절대 성경적이 아니다. 이 문제는 영혼의 구원 문제임으로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재림교인들이 왜 이 사실을 모를까? [조심교리]를 그저 언행일치 강조 교리쯤이거나 상급 교리라고 했다가 글 중에는 은혜스런 진술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읽다보면 오류의 포도주(율법주의)로 세뇌되는 것이다.

만들어지면서부터 양심적인 재림교 목사들로부터도, 또 외부 건전한 신학자들로부터 그토록 비판을 받아왔던 조사심판 교리, 일선 교회 현장에서는 사실상 사장된 교리에 대하여 재림교는 정직하게 반성하고 수정하는 대신에 이것이 무너지면 재림교가 무너진다는 빗나간 섹트적 자존심 때문인지 모든 성경적 진언(眞言)에 귀를 막고 “무조건 옳고 여하튼 옳소!”라며 오로지 방어일색으로 나가는 재림교는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심판이 복음”이니, “심판의 복음”이란 진술 자체가 성경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말이다. 심판은 복음이 아니다. 믿는 자는 십자가에서 속죄가 끝났고 심판이 없다는 것이 복음이다.

다음은 잘 아는 찬미(송)가 - “주 안에 있는 나에게”이다.

♪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 ♬

그러나 조사심판을 믿는 것은, 십자가로 죄 짐이 풀렸다고 방심하지 말고 은혜를 지렛대 삼아 죄를 피땀으로 극복하여 완전한 품성을 만들어 합격 받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니 높이뛰기 하여 별을 따보라는 가르침이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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