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와신앙> : 김정언 기자 】 취임 초 트럼프에 잔뜩 기대를 걸었던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실망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한 가지 건덕지라면 오바마 때 확고히 굳혀진 성수소계(LGBTQ) 보호정책을 뒤집는 획기적 조처를 취할 것으로 여겨졌던 그가 기존 정책을 그냥 유지하겠다며 맥없이 손을 놔버렸기 때문.

국무부가 오바마 행정부가 해외에서 성소수자들을 폭력과 죽음으로부터 지켜줄 목적으로 지난 2014년에 임명했던 랜디 베리 LGBTI 인권특사를 유임하겠다고 발표하자, 복음주의자들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 캠페인 당시 복음주의권이 몰표를 준 것을 이미 후회하는 인사들도 있다.

압도적인 보수 지지세를 업고 취임 불과 한 달 채 못 되어 막대한 보수 정책의 칼을 휘두르며 복음주의권을 끼고 승승장구하는 듯한 모습인 트럼프였지 않은가. 특히나 닐 고어서치 판사를 대법관으로 내세우고 아울러 강단에서 정치발언을 금지해온 좐슨 개정령도 전복시키겠다고 기염을 토했으나 LGBTQ 이슈에선 자리를 내주며 그답지 않은-사실은 그다운(?)-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평판이다.

오바마 정권의 성소수계 보호 이니셔티브를 트럼프가 그냥 유지하기로 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사실 그는 반 LGBTQ행정령에 거의 서명할 참이었지만 성소수계에 호의적인 자신의 딸 이반카와 사위 재리드 쿠슈너가 막은 것으로 드러난 것. 쿠슈너는 장인의 캠페인을 열나게 도왔지만 친민주당 쪽이기도 하다. 이러다 미국판 '최순실 케이스'가 되는 건 아닌지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아울러 골드만삭스 사장을 지낸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장의 진보적 입김도 한 몫 했다.

▲ 트럼프의 행정령에 변수 입김으로 작용한 이반카 트럼프와 쿠슈너 부부 ⓒRS

정치 매거진 폴리티코는 트럼프에게 '딴 영향력'이 계속 개입함에 따라 트럼프 지지세인 복음주의권이 다소 경계와 우려의 눈길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복음주의 명사로 트럼프를 지지해온 가족연구평의회(FRC)의 토니 퍼킨스 의장은 이에 대하여 "실망스런 진전"이라면서 새 행정부가 그런 데 신경쓰기보다 기독교 박해 및 학살과의 전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퍼킨스는 또 베리 특사를 유지한다는 것은 곧 기존의 극도의 진보적 어젠다가 국무부에 여전히 탄탄히 뿌리박고 있다는 인상을 세상에다 주고 있을 뿐이라고 개탄했다.

FRC은 애당초 반가족, 반생활적 어젠다를 증진하는 직원들을 국무부에서 제명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정교회 교인이자 미국보수주의자(AC) 소속인사인 롸드 드레어 작가는 종교보수파는 이제 트럼프에 대한 충성심을 "재고할 때"라고 말했다.

드레어는 "도널드 트럼프가 해외 문화전쟁 용병들에게 계속 기금지원을 바라지 않냐?"며 "모양새가 좋지않다."고 평가하고 "보수파 신자들이 조만간 깨어나 자기네가 얼간이들처럼 이용당한 것을 깨달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성명서는 이에 대해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내내 그러셨듯 LGBTQ 권리를 계속 존중하고 뒷받침할 것이다."며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인으로선 최초로 지명수락 연설에서 LGBTQ 공동체를 언급하면서 그들을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보호하기로 하신 데 대해 자랑스러워 한다."고 자평했다.

애매한 것은 트럼프가 동성혼을 미국의 법으로 수용하기로 했다고 해도 정작 성소수자 지도자들은 보수적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과히 신임하지 않는다는 점. 펜스는 인디애나 주지사일 당시 동성혼을 반대하고 '종교자유주의' 옹호자이기에 반동성애자로 비판받은 바 있다. 더욱이 기업계의 비평을 들은 뒤 동성애자 보호법 개정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해외정책(FP) 매거진은 동성애자 지도자들이 오히려 정부의 친근한 제스처에 "벙 찧은" 기분임을 전하고 이번 일이 사회보수주의자들의 분노를 자아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성소수자 단체인 글라드(GLAAD)의 프로그램 담당 로스 머레이 디렉터는 "정말 놀랍다."며 "의무감에서 한듯한 이번 조치가 행정부에서 실천되는지 보기까진 칭찬을 삼가겠다."고 유보했다.

한편 네티즌 터레사 코너 맥다널드 씨는 "화난 것은 아니나 트럼프는 전쟁 상대를 좀 더 조신하게 고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은퇴한 수전 스트롬 쉴로 네티즌은 "이 경우 트럼프를 지지한다며 물론 게이들을 박해 대상으로 삼아선 안되지."라면서도 "퍽 좋은 단체들이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게 불편스럽다. 죄인은 사랑하되 죄는 미워하라."고 타이르기도.

조이스 스미스 누리꾼은 "외교적으로 적절한 매너가 필요한 때문이기도 하다."며 "허구한 날 적과 싸우기가 버거운 대통령님을 기도로 돕자."고 제안. 수전 매조 씨는 폭력과 살해 예방을 하겠다는데 구태여 거슬릴 필요가 있냐고 묻고, 오바마는 크리스천을 보호하지 못했으나 현 대통령은 크리스천들을 박해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긴 했어도 "크리스천이 지배하는 정부를 약속한 적 없다."고 말했다.

수잰 매조 씨도 "트럼프가 종교자유뿐 아닌 생명을 지키는 것도 고마운 일."이라고 찬하했다. 헨리 윌슨 네티즌은 "적어도 오바마처럼 동성애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는 식으로 기독교 교리를 바꿔야 한다고 그가 말하는 건 아니잖냐?"고 묻고 "고맙게도 기독교인들이 바라는 것을 98% 공감해 주니 나머지 2%야 봐 드려야 하지 않냐."고 애교 있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