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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애 / 목사 아내 칼럼 ] 나는 야~ 영원한 천사 누나!
2017년 02월 07일 (화) 12:49:03 장경애 수필가 jka9075@empal.com

장경애 사모 /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사모

목사의 아내라는 것만으로 성도들은 나를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신학생과 결혼한 후, 처음 사모님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어색했는지 대답도 잘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담임목사 아내가 되어 전도사 아내시절부터 들어왔던 사모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하면서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 부목사의 어린 자녀들조차 나를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처음 어색했던 것과는 또 다른 어색함이 나를 머쓱하게 했다. 어른 성도들이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그 어린아이들마저 그렇게 불러야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부목사님 자녀들의 나이는 미취학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소속 교회학교가 있어 주일에도 서로 만날 기회가 적으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유치원에 다니거나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은 엄마의 치맛자락에 맴돌고 있으므로 매 주일마다 만나게 된다.

그렇게 아이들을 만날 때면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대신할 것이 없을까 생각해 보던 중, 생각해 낸 것이 그 나이와 상관없이 남자아이들에겐 나를 ‘누나’라 부르게 했고, 여자아이에겐 ‘언니’라 부르게 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생각이 여러 차례에 걸친 훈련을 통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1980년 후반기에 우리 교회 부목사님 자녀 중에 만 3세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매 주일 교회에서 만나면 한 번씩 안아주고, 말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이 말 저 말 시키며 재롱을 즐기곤 하였다. 어떤 날은 내 품에 안겨 자기 엄마를 따라 가지 않고 우리 집으로 나와 함께 가겠다고 하기도 하였다. 난, 이 아이에게 나를 언니라고 부르도록 강요하고 세뇌시켰다. 완전히 세뇌되었다고 확신했을 때, 성도들 앞에서 내가 누구냐고 이 아이에게 묻자 이 아이는 나를 서슴지 않고 ‘언니’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성도들이 너무하다며 ‘이런 억지가 어디 있느냐’ 하면서 즐거운 심술(?)을 부리기도 했지만 나는 나의 생각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짓궂은 행복을 느꼈다.

어느 날, 이 아이가 자기 엄마에게 언니네 집에 놀러 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아이의 엄마인 사모님은 이 언니가 나의 딸을 지칭하는 줄 알고 “언니는 지금 학교에 갔으니 언니 오면 놀아라.”고 했단다. 그러자 이 아이는 “아니, 큰언니와 놀 거야.”라고 했다는데, 여기서 말하는 큰언니는 물론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30살 어린 예쁜 여동생을 두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나의 계획은 성공했고, 계속해서 부교역자 자녀들이 나를 언니, 혹은 누나라고 부르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지내던 중에 아주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우리 교회에 2000년 초부터 2년 남짓 동안 계시던 목사님에게는 나이보다 의젓한 만 3살짜리인 아들이 있었다. 이 아이는 생긴 모습부터가 곱살스럽게 생긴데다 실제로 세심하고 예의바르고 신중한 아이였다. 나는 이 아이를 많이 귀여워했다. 아이들을 그다지 살갑지 않았던 내가 이상스럽게도 이 아이만은 별스럽게 사랑했다. 강아지도 저 예뻐하는 것을 안다는데 이 영리한 아이가 내가 자기를 예뻐함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아이 역시 무척이나 나를 따랐다. 다른 부목사님들이 질투하는 눈초리가 있어 애써 태연한 척 외면도 해 보았지만 사랑의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물론 나는 이 아이에게도 누나였다. 그 아이는 누나가 무엇인지, 누나에 대한 개념이 없을 나이였지만 나를 누나라고 칭하기에 한 치의 의심할 여지도 없이 만날 때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를 “누나.”라고 불렀다. 나는 자타가 인정하는 그 아이의 누나였다. 결국 나는 사십보다 더 많은 나이의 누나가 된 것이었다. 성도들은 질투의 눈으로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 그 아이로 하여금 “할머니”로 부를 것을 설득하고 또 강요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 아이는 나를 누나라고 확신에 차서 불렀다. 심지어 할머니라고 부르라는 성도들에게 “아니야, 누나야!”라는 볼멘소리로 할머니로 부를 것을 강요하는 성도에게 눈시울을 붉히며 대들듯한 표정과 몸짓으로 응수하였다. 나는 겉으로나, 내심으로나 많이 즐겁고 또 즐겼다.

이제 더 이상 방해하는 자 없는 자타로부터 공인된 다정한 오누이로 지내던 어느 날, 가슴 철컹한 일이 생겼다. 그것은 이 아이가 나를 누나라고 부르질 않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하며 숨을 죽이는 순간, 정말 듣기에 미안하고 민망스러운 호칭으로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 호칭은 다름 아닌 ‘천사’라는 호칭이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아니, 다른 사람이 들으면 그것도 내가 세뇌시킨 것으로 알고 더 열렬히 질투할 것이 분명했다.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그 아이 엄마인 사모님에게 물었다. 그러나 사모님 역시도 가르치기는커녕 그런 말을 해 본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단지, 유치원에서 천사에 대해 배운 것 같다고 했다.

   
▲ ⓒpixabay_com / Alexas_Fotos

어린아이로부터 듣는 천사라는 말이 아무리 어린아이가 하는 말이라도 은근히 기분은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천사 같지 않은 내 마음이 스스로 부끄러웠고 또한 못된 내 성품이 도리어 보이는듯하여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부터인가 그 아이는 천사 뒤에다 누나라는 말까지 넣어 '천사 누나'라고 부르니, 그렇지 않아도 사랑스러웠는데 더 사랑스러워갔다. 나의 남편인 목사님은 어린아이가 무슨 거짓말을 하겠느냐며 짓궂게 은근히 그 말을 즐기며 놀리기도 했다.

처음엔 놀랄 일도 시간이 지나면 별 것 아닌 것이 되는 것처럼 그 말이 익숙해질 무렵, 성도들은 그 말을 확인하고 싶어 그 아이에게 나를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다. 당연히 천사누나라고 말 할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만 천사 누나가 아닌 그냥 누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모두들 깜짝 놀라 왜 천사 누나가 아니고 그냥 누나냐고 묻기 시작했다. 나는 내 속에 있는 더러운 마음이 아이에게 탄로라도 난 것 같아 부끄럽기까지 했는데, 이 아이의 사려 깊은 설명을 듣고 우리 모두는 웃음보를 터트리고 말았다.

이 아이의 말이 “천사는 날개가 있어야 하는데 누나는 날개가 없잖아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한참을 웃다가 나는 “날개가 거추장스러워 집에다 놓고 왔어.”라고 즉흥적으로 말했더니 그 말을 이 아이는 진실로 받아 들였는지 자못 수긍하는 자세로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 그렇구나.” 하면서 아주 태연스럽게 다시 천사 누나로 환원시켜 주었다. 전혀 천사 같은 맘씨도 아닌 내가 어린아이에게 천사 소리를 들으며 웃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린아이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아이의 아빠 목사님은 우리 교회를 떠났다. 떠난 후, 전화로 사모님과 안부를 묻는 중에 이 아이가 나를 기억하느냐고 했더니 기억한다고 했다. 나는 약간의 강요성을 띤 특별 주문을 했다. ‘잊지 못하도록 잘 지도하라고…’

그리고 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느 날, 자기 엄마에게 “엄마, 내가 어릴 적에 누구에게 천사 누나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사람이 누구야? 그리고 이제 만나면 지금도 천사누나라고 불러야 돼?” 이렇게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모님의 대답이 아주 걸작이다.

“아들아! 한 번 천사 누나는 영원한 천사 누나란다!”

참고로 이 아이는 지금 의젓한 대학생이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를 겸연쩍게 대한 기억이 난다. 지금 나를 만나면 뭐라고 부를지 그것이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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