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이단&이슈 > 안식교
       
[ 안식교(재림교) 교리비판 ⑤ ] ‘조사심판’에 대한 시비곡직
조사심판이란 구원을 조건으로 받는다는 율법주의 정수(精髓)이다.
2017년 02월 01일 (수) 13:06:18 곽정환 목사 hosanna6408@hanmail.net

곽정환 목사

심포지엄 책 내용 중 재림교 하계상 목사의 글 “대속죄일과 십자가 그리고 조사심판: 히브리어 ‘카파르’의 신학적 함의”와 가장 많은 분량으로 비평한 재림교 이국헌 목사의 “‘십자가와 조사심판’에 대한 역사신학적 평가”에 대한 글을 종합적으로 두 번에 걸쳐 비평함으로서 심포지엄에 대한 필자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가장 성스럽고 엄숙한 절기 속죄일

자연 현상적으로 태양이 뜨고 지는 날이란 점에서 24시간 하루는 다를 것이 없지만 나라마다 연중 특별한 의미가 담긴 절(節), 일(日), 날이 있다. 구약 이스라엘에도 많은 절기들과 축제들이 있었는데 맞을 때마다 의미를 깊이 반추하며 궁극을 소망했다. 많은 히브리 기념 축제와 절(기)들은 ①산술역법에 따른 절기(안식일, 안식년, 희년, 월삭, 신년절, 속죄일) ②사건에 따른 절기(유월절, 무교절, 수전절 등) ③농경역법에 따른 절기(초실절, 칠칠절, 장막절(초막,수장))로 나눌 수 있다.

히브리 모든 절기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구원 행동을 기념하는 성격과 실체를 대망하고 예표하는 그림자 성격을 가지고 있다. 7대 절기 중 가장 성스럽고 엄숙한 절기는 민간력으로 신년인 티쉬리(Tishiri) 7월 10일 속죄일(욤 하키푸림)이다(레 16:30, 33~34; 23:27).

평일의 성소 봉사도 속죄 개념을 담고 있지만 7월 10일은 대제사장이 몸소 지성소에서 국가적으로 죄를 토탈 속죄하는 특별한 하루라서 대(大)자를 붙이지만 성경은 속죄일이다.


조사심판도 속죄일의 원형이 된다는 개념은 지구상에 재림교만의 유별난 신학이다.

이국헌 목사는 십자가를 속죄일의 원형으로 적용시키면서 십자가에서 속죄사역이 “성취”되었다, 심지어 “완전한 속죄”가 이루어졌고 재림교 보수신학자 앤드리어슨과는 달리 “십자가에서 속죄가 완성되었다”고 말하면서도 도말을 위하여서는 조사심판이 필요하다면서 용서와 도말 분리를 주장했다(조명, pp.92-93). 완성된 속죄라면 왜 도말이 필요하고? 최종 도말을 위하여 사람이 할 회개(업적)가 태산이라면 어찌 완성된 속죄라 할 수 있는가?

이는 “그리스도의 피가 회개한 죄인을 율법의 정죄에서 풀어 줄 것이지만 완전히 없이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 죄는 최종적 속죄 때까지 성소의 기록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모형에 있어서도 속죄 제물의 피는 회개한 사람에게 죄를 제거하였으나 그것은 속죄일까지 성소에 남아 있었다.”(PP 356) 이 말씀에 기초해 볼 때 속죄사역이 십자가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이 목사는 화잇 말씀을 성경말씀보다 노골적으로 의존하여 글을 구성하고 있다.

170~183쪽에 걸쳐 하계상 목사도 ①평소(매일)의 봉사와 ②속죄일 봉사 ③아세셀 염소에 히브리어 핵심 동사 ‘카파르’의 의미를 분석 제시하면서 카파르(속죄)의 핵심적 함의는 ‘카파르는 속죄의 전 과정을 포함’(p.176, 179, 180, 183, 184)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속죄일의 실체는 ①십자가 사건만이 아니라 ②조사심판, ③사탄의 멸망, ④지구의 정결을 넘어 ⑤‘우주적 속죄’(p.184)까지 포함된다고 했다.

“대속죄일의 원형과 실체를 십지가로 결코 한정시킬 수 없으며 조사심판, 나아가서는 최후의 심판(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기 이후에 있을 악인들, 악한 천사들 그리고 사탄에 대한 심판)과도 반드시 연관시켜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사셀 염소의 원형과 실체인 사탄이 최종적으로 파멸되어야 비로소 죄와 악, 그 전체와 더불어 그 근원 자체가 가려져 온 우주가 완전히 정결하게 되기 때문이다”(조명, p.184).

이는 조사심판의 당위성을 말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하늘 성소의 메타포로 기독교의 속죄론을 객관적, 주관적, 우주적 차원으로 심화, 승화시킨다고 하지만 발생한 대실망에 대한 변명신학일 뿐이다. 속죄에 대하여 “그의 행위에 따라 각 사람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된다”는 조사심판은 은혜를 뒤엎고 행위를 구원의 원인으로 놓고 있는 것이며 율법주의라고 비판받고 있는 큰믿음교회 변승우 목사의 주장과 정확히 똑같다. 그는 루터의 ‘오직믿음’ 구원은 착각이라고 매도하며 극우로 치우쳐 “행위 심판”이 복음의 사활적 중요한 요소라며 행위를 조건으로 넣었다.


조사심판 개념 발원지

전술했듯이 성경에 ‘심판’사상은 분명히 있다. 재림전 심판이란 단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속죄의 후반부라는 의미의 ‘조사심판’이란 태어날 필요가 없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사전에도, 세계기독교역사에도, 성경에도 없는 이 단어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역사적 발원점은 1844년 10월 22일 시한부 종말론 대실망의 그 날이다. 이 날은 보통으로 뜬 해가 서쪽으로 진 평범한 날인데 목숨을 걸고 기다렸던 지도자들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밀러주의자들은 다니엘 8장 14절 ‘성소 정결’ 해석에서 ‘성소’는 지구로, ‘정결’은 불로 여기고 지구가 불로 정결(멸망)케 되는 날이 있다면 그날은 바로 재림의 날 일거라 확정하고 예수님의 지구 ‘이동’(재림)을 간절하게 기다렸던 것이다.

마침내 불발되자 대허탈과 총체적 실망의 충격을 완화시킬 돌파구가 절실했던 그들은 14절 ‘성소 정결’이라는 단어에 착안해서 속죄일 설명인 레16장으로 점프했다. 여기엔 다행히 대제사장의 지성소로 ‘이동’이라는 개념도 있어 안성맞춤이었다. ‘이동’과 ‘정결’ 컨셉은 대실망이란 절벽의 탈출구로 딱이었다. 즉 “재림운동의 실패를 극복”(조명, p.68)하고 관심을 이동시키려고 , 대실망의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조명, p.70)으로 조사심판 교리를 만들었다는 객관적 진실이 왜 재림교인들에겐 안 보이는 것일까?

   
▲ 재림교 한 강사의 사경회 슬라이드. ‘조심’교리의 반대들 답변에 뜨거운 고민이 묻어 있는 흔적이 보인다. 재림교 안팎의 그 많은 양심적 반대와 도전에도 포기를 못하는 것은 성경보다는 화잇 무오성을 지키려는 자존심으로 밖에 느끼지 않는다.

‘정결’사업이 하늘 지성소 봉사의 둘째 국면과 연결되자 대속죄일의 엄숙함과 융합되어 정결(속죄) 모티프가 ‘심판’ 모티프로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 ‘심판’에 천착하게 된 그들은 이것은 재림 직전에 “하늘의 지성소에서 모형인 속죄일에서 이루어졌던 것처럼 용서받은 사람들의 모든 죄들을 도말하고 구원받을 사람들을 신원하며 옹호하기 위해 그 죄들을 낱낱이 조사하는 심판”(조명, p.63)이 아닐까 해서 ‘조사심판’이라는 이름을 단독 제작하여 실망 탈출구를 마련했던 것이다.


조사심판 사상은 표적(標的)신학이다.

백방으로 수사하다가 순수하게 드러난 증거로 범인을 잡지 않고 범인을 미리 설정해 놓고 그 사람 쪽으로 몰아가는 증거를 무리하게 수집 제작하는 것을 표적수사라고 하는데 조사심판 신학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성경에서 심판이란 주제를 가지고 순수하게 연구하다가 1844년도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대실망 1844년을 당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별의별 신학적 살을 붙여 설명하는 중에 태어난 신학 총아(寵兒)가 조사심판인 것이다.

시한부 종말론이란 것을 깨끗하게 인정하면 좋았을 것을... 회개하는 대신 궁색하게 만든 변명 신학인 셈이다. 재림교 선구자들이 성구들을 점프시켜 가까스로 조사심판의 신학적 연결 포물선은 그렸지만 정통신학에서 보면 객관성, 보편성, 역사성과는 너무 거리가 멀고 그 허접성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신학이기에 내외적으로 집중 포화를 받았던 것이다.

조사심판에 대해 나름 “심오한 신학적 내용들이 있다”(조명, p.90)지만 아무리 봐도 대실망을 경험한 변방의 촌장 몇 명이 주먹구구식으로 조합한 신학(조명, pp.120-124)일 뿐임은 시간이 갈수록 드러날 것이다. 심포지엄 교수들이 그때 자리에 있었더라면 동의하지 않았을 수준의 신학들이다. 조사심판 신학을 놓고 재림교 선구자들이 그 당시 타교파 정통 신학들과 대화한 흔적 기록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

100년에 걸쳐 거센 비판을 받을 때마다 재림교는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수정하는 대신에 그 점에 대해서 조사심판 신학을 수정 보완 첨삭하여 다듬어 왔다(조명, p.125). 원판과 비교할 때 성형수술을 거듭해서 지금은 이름도 내용도 바뀌어 정통판, 수정판 등, 앞으로도 버전 업을 계속할 것이라 예상된다.


조사심판에 대한 모순들

심포지엄 책에서 하 목사의 속죄에 대한 히브리어 핵심 동사 ‘카파르’ 연구도 역시 다분히 조사심판 옹호를 의식하며 풀이한 흔적이 역역한데 이를 포함하여 조사심판의 총체적 모순을 아래와 같이 적어본다.

첫째, 차다크와 타헤르는 전혀 다른 단어다.

재림교는 단8장의 ‘깨끗하게 된 성소’가 레16장 ‘깨끗하게 된 성소’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이 목사 역시 차다크와 타헤르를 동의대구라고 하고(조명, 114) 언뜻 보면 이런 유추가 맞아 보이지만 단8/14절의 정결(차다크)과 속죄일 정결(타헤르)는 전혀 다른 단어다. 따라서 다니엘 8장과 속죄일 16장의 연결은 무리 그 자체다. 차다크 의미는 to be straight 로서 윤리적, 도덕적 표준과의 부합(符合)으로 올바름, 공의, 공정, 의로움을 말하고 타헤르는 be clean, pure로서 이 단어는 거의 오로지 의식적이거나 도덕적인 순결에 대해서만 사용된다.(바이블렉스, 디럭스바이블 참조)

쉽게 예를 들면 이렇다. 법정에서 판사가 그는 ‘깨끗’한 사람이라고 하면 그는 옳고 무죄하다는 얘기다. 그가 물에서 나오면서 나는 ‘깨끗’하다고 하면 몸을 잘 씻었다는 말이다. 차다크와 타헤르는 격과 차원이 다른 별개의 의미다. 계통이 다른 단어라서 혼용 여지도 없고 혼용해서도 안된다. 단 8장의 정결은 성소가 (제기능으로) 복구된다(NIV, reconsecrate)는 의미이고 레 16장 30절의 정결은 제의적으로 깨끗하게 된다(be clean)는 말이다.

그리하여 안토니 후크마는 ‘다니엘이 속죄일에 수행된 깨끗하게 하는 일을 언급하려고 했다면, 그는 차다크가 아니라 타헤르를 사용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차다크는 레위기에 나오지 않으며 타헤르는 다니엘서에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애초부터 언어상의 연결 고리가 빠져 있는 단8장과 레16장 가설위에 세워진 조사심판은 아주 허약한 신학적 토대위에서 출발된 것이다. 그리하여 도널드 반 하우스는 “지나친 상상체제에 의한 가공물”(조명, p.69)이라고 한 것 아닌가?

둘째, 티스리월 7월 10일 속죄일(레16장/ 23:26-32; 민29/7-11)에 심판 개념은 없다.

매일이든 연중이든 속죄제사의 기본은 죄의 해결(삭제)이다. 죄의 삭제는 거저가 아니라 반드시 그 값으로 피(죽음)가 흘려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나님께서 들판에서 놀던 무죄한 양이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것을 경험케 하면서 사람들에게 철저히 각인 시키고자 하는 것은 대속 개념이다. 매일의 속죄제가 죄를 소매로 처리하는 것이라면 속죄일의 속죄는 죄를 도매로 완벽하게 처리한다는 표상이다. 그러므로 대(大)속죄일은 대(大)대속일이며 대(大)삭제일이며 대(大)정결일이다. 이날 옴팡지게 심판(죽음)의 칼을 받는 대상은 양(표상)과 예수님(원형)이지 절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대속의 결과로 ①죄 값이 지불되고 ②용서되고 ③정켤케 되고 ④하나님과 화해되는 은택의 완벽한 수혜자이지 심판의 대상이 아니다 !

신자(信者)를 재조사해서 “여전히 미회개하고 불순종의 남은 죄가 있다면 너를 제물(심판) 삼아 그 갚을 물리겠다”는 조사심판 개념은 속죄일 모형에서 양에게 들이댄 칼을 사람에게 들이대는 것이다. [조심]은 결코 속죄일의 원형이 될 수 없다. 대속의 속죄일(복음)과 완전히 상반되는 비복음적 주장이다.     < 계 속 >

 

     관련기사
· [ 안식교 교리 분석 ] 재림교 구원론을 바로 세운다 ⑧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김기동과 결별 선언… ‘베뢰아연합
이종윤 측, 서울교회 대표자와 통
김상복 목사님의 성경관과 복음관을
“명성과 새노래명성 합병은 불법
신천지 측 “우리 나라는 지구촌을
무단침입 해 신천지 전단지 돌리다
진돗개 숭배 사이비교주… 징역 1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한국교회문화사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제호 : 교회와신앙  /  발행인 · 편집인 : 장경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청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