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와신앙> : 김정언 기자 】 해외판 표절 의혹 사건이 터졌다. 해당 저술가는 사과했고 출판사들은 신속히 인쇄와 판매를 중지했다. 향후 얼마든지 '표절 발각 도미노 현상'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상황, 상당수의 사람들이 떨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주의 저명 성경주석가 겸 신학교수가 표절 의혹을 받은 나머지 이미 오래 전 발행된 그의 주석서 여러 권이 올해 하반기에 3개 출판사들이 줄줄이 인쇄, 판매를 중지하는 등 일련의 조치를 당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그의 표절 의혹은 한국에서 근래 문제시돼온 신학계의 표절 문제와 연결돼 제기되기 시작했다.

▲ 표절 의혹으로 주석 다수를 폐간 당한 피터 오브라이언 박사 ⓒMoore College

물의를 빚은 인물은 성공회 시드니 대교구 소속의 사제인 신약학자, 피터 토머스 오브라이언 박사(81세). 주석 출판으로 유명한 미국 윌리엄 어드먼스사와 기타 존더밴 사 등 주요 출판사를 통해 발행된 에베소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등 신약 서신서에 대한 주석들이 오브라이언 신부의 주된 저술물이다. 그는 모교인 무어 신학대학의 명예교수이며, 과거 부총장을 역임했다. 이전엔 인도의 유니온성서신학대 교수로도 재직했다.

신학도나 설교가라면 누구나 잘 아는 명 클래식 주석서 출판매체인 어드먼스(Wm. B. Eerdmans)사는 지난 7월초, 자사의 '필러(Pillar) 신약주석 시리즈' 중 오브라이언의 저술인 <히브리서 주석>(2010년)에 관하여 표절 의혹이 역시 주석가인 한국의 모 신학자의 표절 의혹과 연계되어 제기되자, 이를 중시하고 조사에 들어가 8월 15일 자사 웹사이트를 통해 해당 주석서에 대한 인쇄 중단 조치를 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유는 출판사 안팎의 평가를 거친 결과 해당 주석서가 "2차적 출처의 활용과 인용에 있어 학계에 널리 수용돼온 일반 표준에서 벗어난"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

웹사이트에 따르면, 제임즈 어네스트 편집장이 리드하는 어드먼스 편집팀은 이 히브리서 주석서와 거기 인용된 다양한 이차적 출처 문헌을 비교한 내용에 대한 검토를 외부 전문가들에게 의뢰한 데 이어, 같은 저자의 <에베소서>(PNTC, 1999년)와 <NIV 성경 빌립보서 주석서>(1991년) 역시 비록 "정도는 덜하지만 지지할 수 없는" 같은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하고 오브라이언의 다른 2권의 주석서까지 모두 판매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아니타 어드먼스 사장은 "본사는 학적, 기업적인 관행에 있어 최고의 윤리적 표준을 지탱하기에 꾸준히 힘써왔다."며 "해당분야 최고 학자들이 쓰고 편집한 본사 주석서 시리즈에 관하여... 이 상황에서 부정적 영향을 받은 모든 분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어드먼사는 구체적인 후속조처로 3권의 문제 주석서들에 대한 판매와 인쇄를 모두 중지하고 재고품은 몽땅 펄프화하는 한편, 해당 주석서들을 구입한 소비자와 판매상들에게 보상 크레딧 옵션을 제공하는(해당 연락처: commentarycredit@eerdmans.com) 한편, 전체 출판 편집팀과 시리즈 편집진, 저자들과 함께 향후 출판물의 질적 개선을 위해 최선을 경주하기로 했다.

한편 이에 대하여 저자 오브라이언은 "내가 여태 써온 신약주석들 가운데서 남의 저서를 고의적으로 오용한 적은 없었어도, 저작 과정 중 때때로 과오가 있어 분명히 비의도적 표절이 이뤄졌음을 보게 된다."며 "이 점을 유보 없이 사과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인터바시티 출판사(IVP)도 덩달아 '새 성경신학' 시리즈(NSBT)의 일부인 오브라이언 저작물 2권에 대한 유사한 성명서를 냈다. 가장 최근인 11월 4일에는 역시 미국의 유명 기독교 출판사인 존더밴사가 '워드성경주석'(WBC) 시리즈 가운데 오브라이언이 쓴 <골로새-빌레몬서>에 관하여 비슷한 입장을 발표했다.

영국 런던 오크힐 신학대학에 있는 래티머 재단의 연구디렉터, 제럴드 브레이 박사는 "이 표절 의혹은 한국의 한 학자가 7년만에 무려 22권의 주석서를 잇달아 펴낸 사실과 연계되어 거론되기 시작했다며, 단기간의 이런 과다 저작 자체가 자연스럽게 의혹을 불러일으키게 됐고... 결국 오브라이언의 히브리서 주석을 들추어 내용상 윌리엄 레인 박사의 <워드주석> 상당 부분을 적절한 출처소개도 하지 않고 포괄인용한 사실을 갖고 자기변호에 활용하려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강해설교가로도 유명한 레인 박사는 방한 강연도 한 적이 있다.

브레이 박사는 "피터 오브라이언에게 아무도 직접 불평한 적이 없다. 이번 문제점도 다른 책을 갖고 논란중인 두 한국인들 사이에 일어난 논전 끝에 포착된 것이다."면서 그러나 "오브라이언이 자신과 무관한 무엇인가의 피해자가 되어 있다. 그에게 잘못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점이다."고도 주장했다.

캐나다의 네티즌 댄 씨는 곧 사라지게 될 오브라이언 주석에 대해 "그분의 저작물들은 이번 문제만 아니라면 참 좋았는데"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필명 더블유콤 씨도 "표절 문제에 대해 별 할 말이 없지만 그분의 주석들은 최고 수준의 것이다."며 해당 주석들을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이왕이면 해당 출판사와 저자가 협력해 개정판을 내면 더 좋지 않겠냐는 식의 제언을 하기도.

오브라이언 옹호자도 나타났다. 침례교 계열인 캐나다 맥매스터 신대원의 스탠리 포터 총장(신약학)은 마케트엔 두 종류의 성경주석들이 있다고 전제하고, "자칭 문법적, 역사비평적, 해석적 주석"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실상 별로 새로울 것도 다를 것도 없는 해석으로 점철돼 있을 뿐"이고, 다른 한 종류는 "실재 여부조차 의심스러운" 실천응용적 주석이라며 출판사들이 기존 주석과 입장이 다르면 팔리지 않을까봐 전전긍긍하기에 기존 라인과 별 다름없는 주석들이 양산되는 판국인데 표절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한심하다는 식으로 논평했다.

포터에 대한 반론도 나온다. 가톨릭계인 시카고 로욜라대학교의 크리스토퍼 스키너 교수(신약학, 초기교회사)는 "포터 교수는 시방 이 시대의 모든 주석가들에게 오브라이언이 저지른 것 같은 종류의 죄과가 있는 양 과대 포장하여 단죄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과장죄를 저지르는 모순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 교계 출판사들이 이 주석서들을 직접 편찬 발행하여 여지껏 다년간 다량 판매해오면서, 더구나 이 책들을 저마다 구입해 성경연구와 설교 등에 열심히 참조해온 소비자인 수많은 설교가들과 학자들이 유명 주석가의 이런 중대한 과오를 한국의 신학계의 표절 사태와 연계되어 지적되기까지 까마득히 몰랐거나 침묵해온(?) 사실은 큰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명성에 개의치 않고 재빠른 반응과 명쾌한 후속 대처를 한 점은 사뭇 명 출판사들답고, 오브라이언 자신의 민첩한 사과 태도 등은 국제 교계에 하나의 모범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과 집적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한국 교계에서 최근 크게 문제시돼온 이종윤 목사의 몽고메리 보이스 저서 표절 논란과 비교해 볼 때 무척 대조적이며 따라서 큰 귀감(龜鑑)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다만 자신의 표절 방식이 '비의도적'이었다고 애써 고집하고 변명하면서 속 밑바닥까지 좀 더 진솔하게 드러내지 않고 표면상 '유보 없이'(without reservation) 사과한다고 한 오브라이언의 발언은 사실상의 유보적(?) 태도를 감추려는 의도로 엿보여 안쓰럽다는 것이 학계 일각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