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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교리 사기 문서
[ 이단연구 / 김홍기 ] 지방교회 교리 비판 - 재반론 ⑤
2016년 06월 28일 (화) 09:33:25 김홍기 목사 yesusarang@shaw.ca

김홍기 목사 / Ph.D., D.Min. / 밴쿠버필그림교회 담임, 글로벌기독교이단연구원장

   
▲ 김홍기 목사

지방교회의 글들은 (신천지 문서 같은 것은 별도로 하고) 교회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교리 사기로 점철되어 있다. 이 말은 가장 혹독한 비판이지만 과장이나 논쟁을 위한 레토릭이 결코 아니다. 독자들은 아래의 글을 읽으면서 필자의 발언의 정당성의 유무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교회의 반론은 대부분 동일한 내용을 계속 반복하고 있으므로 이미 필자의 이전의 글들에서 충분히 반박을 한 내용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여기서 반복해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Godhead(신성-神性)에 관한 불법적 해석에 따른 참람한 이단 교리

지방교회: “우리는 먼저  골로새서 2장 9절에 단 한번 언급된 ‘신격’(神格)(데오테스, 2320)이 로마서 1장 20절이 말하는 신성(데이오테스, 2305)과 전혀 다른 단어임을 볼 필요가 있다. 즉 신격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6:4)라고 할 때의 '오직 하나’에 해당되며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전체가 포함된 개념인 반면, 신성은 그 하나님의 본성을 가리킨다. . . . 이 신격(Godhead)개념은 김홍기 목사를 포함하여(그는 골2:9의 데오테스를 위 ‘신성’으로 오해함)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것 같다. 그러나 김석환 박사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인 <교부들의 삼위일체론>에서 닛사의 그레고리와 가이샤랴의 감독이었던 바실(Basil, 330-379)의 말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 . . (바실)성경은 한 신격에 대하여 언급하는 어디서나 신격을 단수로 말한다. … 내가 한 신격을 고백한다고 비난하는 이 비난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위의 책, 144쪽). . . . 따라서 이러한 정통 교부들의 가르침을 따라 웨스트민스터 신조 3장 2절도 ‘단일하신 신격(神格) 안에 삼위(三位)가 계시는데,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일하시다’(In the unity of the Godhead there be three persons, of one substance, power, and eternity)라고 이 세 개념을 각각 구분하여 말하고 있다.”

반박: ‘Godhead’라는 단어는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에 나오는 단어로서 신약의 세 구절(행 17:29 ; 롬 1:20 ; 골 2:9)에서 사용되었다. 개정 성경은 Godhead를 하나님(행 17:29), 신성-神性(롬 1:20), 신성(골 2:9)로 번역해 놓았다. 이스턴 성경사전(Easton's Bible Dictionary)에 따르면 Godhead는 “본질적 존재 혹은 하나님의 본질”(the essential being or the nature of God)을 가리킨다. 또한 고명한 칼빈주의 신학자 벤자민 워필드(B.B.Warfield)에 따르면, “그것[Godhead-神性]의 인정된 어법 중의 하나는, 삼위일체의 가르침에서 그것[Godhead]의 공통의 소유를 공유하는 세 ‘휘포스타시스’ 혹은 세 ‘위격’과 구별하여, 그와 같이 신적 본질(the Divine essence)을 가리키는 것이다. . . . 이러한 어법으로 그 단어는 오랫동안 기술적인 용어의 지위를 지켜왔다. 예를 들어 . .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질문 6 (Godhead 안에 삼위가 계시다)”(International Standard Encyclopedia of the Bible).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Godhead’는 ‘하나님의 본성 혹은 본질’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런 어법(語法)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교회는 불법적으로 Godhead를 사용한다. 즉 자신들의 입맛에 맞추어 Godhead를 자신들이 창안한 불법적 개념인 소위 ‘신격’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나님의 본질’을 ‘삼위의 상호내주’로 둔갑시켜 놓은 것이다. 이렇게 어법까지 제멋대로 바꾸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불법적인 해석이며, 이러한 형태의 불법적인 해석은 성경의 이해에 있어서 치명적인 혼동을 유발한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Godhead(神性)를 ‘하나님의 본질’로 이해하고 있는데 지방교회는 이것을 불법적으로 ‘신격’이라는 개념으로 바꾸어 버렸다. 본래 웨스트민스터 신조 3장 2절은 “하나님(혹은 하나님의 본성)의 단일성 안에 하나의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을 가진 삼위가 계시다”(In the unity of the Godhead there be three persons, of one substance, power, and eternity)라고 번역하고 이해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방교회는 이것을 자신들의 불법적인 ‘신격’ 개념을 따라 ‘단일하신 신격(神格) 안에 삼위(三位)가 계시는데,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일하시다’라고 번역하고 개념을 바꾸어 버렸다. 달리 말해 ‘하나님의 본성’을 ‘삼위의 상호내주’로 둔갑시켜 놓은 것이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웨스트민스터 신조의 Godhead를 ‘신격’으로 번역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지방교회가 말하는 ‘신격’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한 불법적 해석인 것이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번역 시 사용한 ‘신격’이라는 말은 (벤자민 워필드가 말한 것처럼) 신성(神性)을 말하는 것이지만, 지방교회가 말하는  ‘신격’은 삼위의 상호내주를 뜻하는 것으로 완전히 다른 개념인 것이다!

지방교회는 김석환 교수의 책에 인용된 바실에 관한 말도 제멋대로 왜곡하고 불법적으로 해석했다. 지방교회는 바실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바실)성경은 한 신격에 대하여 언급하는 어디서나 신격을 단수로 말한다. … 내가 한 신격을 고백한다고 비난하는 이 비난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지방교회는 여기 ‘신격’이라는 말은 자신들이 창안한 ‘신격’과 동일 개념인 것처럼 교리 사기를 한다. 그러나 문맥을 통해 보면 지방교회가 속인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러면 이제 문맥을 통해 바실의 말을 이해하도록 해보자.

김석환은 바실의 말을 인용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계속해서 바실은 자기가 신적 본성의 단어들을 단수로 사용한다는 비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론, 144). 따라서 김석환은 다음에 올 바실의 말은 신적 본성에 관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제 바실의 말 전체를 인용해 본다.

두 번째 비난에 대하여, 성경은 신격[신적 본성-神的 本性]에 대하여 언급하는 어디서나 신격[신적 본성]을 단수로 말한다. 가령 ‘그 안에는 신격(qeo,thj, Godhead)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 2:9)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qeio,thj)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롬 1:20)등이 그 예이다. 그렇다면 만일 신격들을 증가시키는 것이 다신교 오류의 희생물들의 특별한 표시이고 또 신격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이 무신론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일진대, 내가 한 신격[신적 본성-神的 本性]을 고백한다고 비난하는 이 비난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Ibid., 144)

이처럼 바실의 신격에 관한 언급은 ‘신적 본성’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도 지방교회는 이러한 사실을 속여서 카파도기아 교부 바실은 자신들이 불법적으로 창안한 개념인 ‘신격’과 동일한 개념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속인 결과는 참람한 이단 교리로 나타난다! 지방교회가 위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을 보라. “따라서 이러한 정통 교부들의 가르침을 따라 웨스트민스터 신조 3장 2절도 ‘단일하신 신격(神格) 안에 삼위(三位)가 계시는데.” 여기 단일한 신격은 ‘한 신격’ 혹은 ‘한 인격’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 말은 ‘일위(一位) 안에 삼위(三位)가 계신다’는 말이 된다. 지방교회여, 참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조가 3장 2절이 이런 이단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말인가?

지방교회는 Godhead에 관한 어법을 제멋대로 불법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Godhead는 ‘하나님의 본성(the Divine essence)’을 뜻하는데 이것을 ‘위격(person)’으로 함부로 불법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성을 위격으로 불법적으로 바꾸어 놓으면 괴물 같은 이단 교리가 나온다.즉 ‘하나님의 본성(essential nature) 안에 삼위가 계시다’는 정통 교리가 ‘하나님의 한 위격(a person) 안에 삼위(three persons)가 계시다’는 이단 교리로 바뀌어 버린다. 이것이 바로 지방교회의 이단 교리의 흉악한 실상이요 참담한 종착역인 것이다!  

정통 신학자들에 대한 반복되는 교리 사기

지방교회: 세 위격들의 상호내재를 이단 사상이라고 배척하는 김목사는 "성부만 참 하나님이시다"라고 여호와 증인처럼 이해하지 않는 한 답을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 . .  ‘상호내재’(요14:10-11) 개념을  반복적으로 거부한 김홍기 목사의 잠재적 삼신론 사상이 “세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아타나시우스 신조에 정면 위배되고 있다. . . . 김목사는 어이없게도 이러한 정통 삼위일체를 담보하는 핵심 안전장치에 해당되는 상호내재 개념(요14:11)을 “지방교회측의 이단적인 주장”이라고 폄하하고 거듭 거부해 왔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김홍기 목사를 잠재적 삼신론 신앙의 소유자로 보는 주된 이유이다.

반박: (어거스틴과 존 칼빈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서방 신학자들은 동방 신학자들인 카파도기아(cappadocia) 교부들이 창안한 상호내주론(페리코레시스)을 말하지 않는다. 서방 신학자들은 정통 삼위일체론을 설명할 때 ‘삼위는 한 본질의 하나님으로 존재하신다’라고 설명한다. 이 말은 노먼 가이슬러(Normal Geisler) 박사의 표현을 빌자면 ‘삼위는 본질적으로 상호내주하신다’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카파도기아 교부들은 ‘삼위의 실제적 상호내주’를 뜻하는 ‘페리코레시스 원리’를 창안했다. 이 페리코레시스 원리는 정통 교리로 인정이 된다”(Scott Horrell, “The Self-Giving Triune God,” www.bible.org). 필자는 카파도기아 교부들에 의해 수립된 상호내주론(페리코레시스)은 정통의 범주로 보지만 지방교회의 ‘상호내주론’은 이단 교리로 규정했다. 그 이유는 이미 지난 글(#4: 그리스도 안에 죄가 거한다는 흉악한 이단 교리)에서 답한 바 있으므로 글의 일부를 여기 인용토록 한다.

소수의 서방 정통 신학자들이 신봉하는 ‘삼위의 상호내주(페리코레시스)’는 지방교회가 주장하는 ‘삼위의 상호내주(페리코레시스)’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삼위의 상호내주론’을 신봉하는 소수의 정통 신학자들은 ‘한 본질의 삼위’를 신봉하는 정통 삼위일체론을 ‘분리된 위격들’을 주장하는 ‘삼신론 이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반면에 ‘삼위의 상호내주론’을 말하는 지방교회는 ‘정통 삼위일체론을 ‘분리된 위격들’을 주장하는 ‘삼신론 이단’으로 정죄한다.

‘삼위의 상호내주’를 신봉하는 소수의 정통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본질적 통일성(essential unity)은 신적 속성의 내적인 동등함과 상호 내주(mutual indwelling)에서 오는 강렬한 인격적 통일성(personal unity)에서 발견된다”(Scott Horrell, “The Self-Giving Triune God,” www.bible.org)고 주장한다. 반면에 지방교회는 ‘삼위의 상호내주’가 아니면 ‘삼위의 분리’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곧 ‘삼위의 본질적 하나됨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통 삼위일체론을 ‘삼신론 이단’으로 정죄한 것이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필자는 지방교회의 ‘삼위의 상호내주론’을 이단 교리로 규정하는 것이다.

댈러스 신학대학원의 조직신학 교수인 스코트 호렐에 따르면, “동방정교의 전통에 속한 많은 사람들과 서방교회 안의 점증하는 학자들”이 ‘삼위의 상호내주론’을 신봉하고 있다”(Scott Horrell, “The Self-Giving Triune God,” www.bible.org). 즉 서방교회 안에서 ‘삼위의 상호내주론’을 믿는 학자들은 다수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정통 신학자들이 ‘삼위의 실제적 상호내주’를 신봉한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이는 그들이 ‘삼위의 본질적 상호내주’를 믿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다. 삼위일체에 관한 정통 신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그들이 ‘삼위의 상호내주’를 신봉하지 않고 있는데 마치 그들이 그렇게 믿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그들의 신학적 입장을 왜곡하는 것이다. 또한 이런 왜곡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면 학문적 사기  및 교리 사기 행위가 되는 것이다!

지방교회는 삼위일체에 관한 정통 신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그들이 ‘삼위의 상호내주’를 지지한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밝히지 않은 채 그들의 신학적 입장을 “삼위의 상호내주”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한다. 이것은 지방교회가 학문적 사기 혹은 교리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물증이 된다! 앞으로 만약 지방교회가 삼위일체에 관한 정통 신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그들이 “삼위의 상호내주론”을 신봉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입증하지 않은 채 그들을 ‘삼위의 상호내주’를 주장하는 사람들로 둔갑시킨다면 필자는 지방교회를 가차 없이 ‘교리 사기꾼’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지방교회가 그들의 글에서 반복해서 인용하는 정통 신학자들의 삼위일체에 관한 아래와 같은 견해들은 ‘삼위의 본질적 상호내주론’의 관점에서 완벽하게 소화해 낼 수 있다.

 “거룩한 삼위일체의 위격들은 분리된 개체들이 아니다. 각 위격은 다른 두 위격을 포함하며, 한 위격의 오심은 다른 위격들의 오심이다. “(A. H. 스트롱, Systematic Theology, p.p.332-333).

“상호내재는 세 위격들의 상호내주를 의미하고, 그들이 하나 안에 있는 것처럼 하나가 다른 둘 안에도 변함없이 있는 것이다.”(George Bull, Defense of the Nicene Creed, Oxford, 1851). 4)

“성부는 전적으로 성자 안에 있고 성자는 전적으로 성부 안에 있다”(존 칼빈, 기독교강요, 169쪽, 성문).

 “주기도문에서 … ‘아버지’라는 단어는 … 배타적으로 첫째 위격만 아니라, 한 하나님인 세 위격들을 가리킨다.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다.”(Loraine Boettner, Studies in Theology, p. 107).

(어거스틴) “최고의 삼위일체의 경우에는 하나가 셋을 합한 것 만하며, 둘을 합해도 하나보다 더하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자체가 무한하시다. 그래서 하나 하나가 다른 하나 안에 계시며, 모든 이 안에 계신다. 또 모든 이가 모든 이 안에 계시며, 모든 이가 한 이 안에 계신다(… and all in each)”(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 299쪽, 어거스틴,  On the Trinity(VI), p.103).

어거스틴이 지방교회의 성육신 교리와 동일한 교리를 신봉했다는 교리 사기

지방교회: “어거스틴 등은 삼위의 ‘페리코레시스’(상호내주)를 인정함으로 어느 한 위격은 그 특정 위격임과 동시에 다른 두 위격들을 포함한 삼위 전체라고 보는 반면, 김목사는 그것을 부인하고 성육신하신 분은 성부와 성령이 배제된 제2격 성자만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삼위 각각을 분리시켜 1/3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것이며 김목사가 ‘페리코레시스’ 이론을 부인한 당연한 결과이다.”

반박: 어거스틴은, 지방교회가 불법적으로 주장하는 바와는 다르게, 삼위일체(성부와 성자와 성령)가 성육신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성자만이 성육신하셨다고 주장했다. 아래의 글이 이 사실을 증명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일체를 강조하여 삼위일체가 다 함께 일한다고 하여도 위격들에게 고유한 사역을 배정하였다. 즉 삼위일체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셔서 본디오 빌라도 아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장사되고 삼일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올리우신 것이 아니라, 오직 성자가 그렇게 하셨다. (서철원, 교리사, 403).

위에서 보듯이 어거스틴은, 지방교회가 불법적으로 주장하는 바와 달리, 삼위일체가 성육신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성자가 성육신하셨다고 주장한다. 결국 지방교회는 어거스틴의 교리를 왜곡하고 사기를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이가 한 이 안에 계신다”는 어거스틴의 말은 ‘삼위의 공간적 상호내주’(지방교회의 이단 교리)가 아닌 ‘삼위의 본질적 상호 내주’(정통 삼위일체론)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필자의 신학적 입장과 일치한다.

어거스틴이 지방교회의 상호내주론과 동일한 교리를 신봉했다는 교리 사기

지방교회: (어거스틴) “최고의 삼위일체의 경우에는 하나가 셋을 합한 것 만하며, 둘을 합해도 하나보다 더하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자체가 무한하시다. 그래서 하나 하나가 다른 하나 안에 계시며, 모든 이 안에 계신다. 또 모든 이가 모든 이 안에 계시며, 모든 이가 한 이 안에 계신다(… and all in each)”(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 299쪽, 어거스틴,  On the Trinity(VI), p.103).김홍기 목사는 결코 어거스틴이 위에서 고백한 것처럼 “삼위의 모든 위격들이 한 위격 안에 계신다”라고 고백하기 어려울 것이다. . . . 그렇다면 명백히 다른 두 관점들 중 누가 정통이고 누가 이단인가? 어거스틴인가 아니면 김홍기 목사인가?

반박: 어거스틴은 카파도기아 교부들 중 하나가 아니다. 그는 라틴 교부이며 페리코레시스 원리를 창안한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어거스틴이 카파도기아 교부들의 페리코레시스 원리를 따라 위에 인용한 말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교리 사기이다. 어거스틴이 위에 한 말은 삼위의 동일 본성을 근거로 한 발언이다. 이것은 김석환이 어거스틴의 위와 같은 말을 인용한 후 다음과 같이 한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그의 삼위일체 논의가 위격들의 삼위성보다도 본질의 단일성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생기는 특징이기도 하다”(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 299). 또한 김석환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쨌든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에 위대한 동등성이 있기 때문에 성부께서 그 신성에서 성자보다 더 크시지 않을 뿐 아니라, 성부와 성자가 합하여도 성령보다 더 크시지 않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삼위일체 내의 어느 한 위격도 전체 삼위일체보다 더 작지 않으시다. 삼위일체의 존재양식은 하나님의 실체 자체와 동일하다. 각 위격은 신적 존재 전체와 동일하시고, 또 다른 두 위격을 합한 것이나 세 위격 전체와도 동일하시다. 이 세 위격은 모두 합하여 각자와 동일하시다. (Ibid., 300).

여기 “삼위일체에 대한 위대한 동등성”이라는 말은 ‘삼위의 본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거스틴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입증된다. “성부와 성자께서 동등하시다. 어찌하여 동등하신가? 그의 본성이 동등하신 것이 아닌가?”(Ibid., 297). 어거스틴은 성부와 성자가 하나인 것은 본성이 하나이시기 때문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부와 성자의 ‘essentia’[본성]”가 서로 하나임은 요한복음 10:30의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는 말씀으로 우리가 판단할 수 있다. . . . 그러므로 확실히 성부와 성자께서는 본성이 하나이시기 때문에 서로 하나이시다(Ibid., 297).

따라서 “모든 이가 한 이 안에 계신다”는 어거스틴의 말은 ‘삼위의 공간적 상호내주’(지방교회의 이단 교리)가 아닌 ‘삼위의 본질적 상호 내주’(정통 삼위일체론)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필자의 신학적 입장과 일치한다. 따라서 어거스틴이 지방교회의 이단적인 상호내주론과 동일한 교리를 신봉했다는 말은 명백한 교리 사기인 것이다!

존 웨슬리에 대한 명백한 학문적 사기

지방교회: “존 웨슬리는 1775년 한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삼위일체’(Trinity)나 ‘인격’(Pers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라고 감히 강요하지 않는다. 나 자신은 더 좋은 용어를 알지 못하기에 그 말들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 용어들을 사용하기를 꺼려한다면, 감히 누가 그런 용어들을 사용하라고 그에게 강요할 것인가? 나는 할 수 없다”(존 웨슬리 전집, vols. 5 and 6, 3rd edition (Grand Rapids, MI: Baker Books, 1872, 2002). pp. 200-201. . . . 위에서 보듯이 ‘동일 본질을 공유하시는 삼위’를 인정하면서도 ‘위’() 즉 ‘페르소나’라는 단어 사용을 꺼려하는 것은 위트니스 리 만이 아니라 밀리아드 에릭슨, 루이스 벌콥, 그리피스 토마스, 요한 웨슬리, 이종성 박사도 마찬가지이다.

반박: 지방교회는 위에서 웨슬리가  ‘위’ ()라는 단어 사용을 꺼려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자신들이 위에서 인용한 웨슬리의 말에 의해 사실이 아님이 입증된다. 지방교회는 존 웨슬리의 말을 이렇게 인용했다. “나 자신은 더 좋은 용어를 알지 못하기에 그 말들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여기서 보듯이 지방교회는 심지어 자신들이 인용해 놓은 말의 뜻마저 바로 다다음 문장에서 정반대로 뒤집어 놓는 참으로 기막힌 학문적 사기를 하고 있다!

루이스 벌코프를 악용한 명백한 교리적 사기

지방교회: 칼빈 신학교 교장을 역임한 루이스 벌콥(Louis Berkhof)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 . . ‘인격’이라는 말이 그 개념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다는 점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Louis Berkhof, 조직 신학, 4판.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1939, 1941), p. 87). . . . 위’() 즉 ‘페르소나’라는 단어 사용을 꺼려하는 것은 위트니스 리 만이 아니라 밀리아드 에릭슨, 루이스 벌콥, 그리피스 토마스, 요한 웨슬리, 이종성 박사도 마찬가지이다.

반박: 지방교회는 개혁교회의 신학자인 루이스 벌코프(Berkhof, Rouis)의 신학적 입장도 완전히 왜곡하고 있다. 벌코프는 지방교회가 제멋대로 주장한 바와는 전혀 달리, 위’라는 용어를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사용했다. 이것은 그의 책인 Systematic Theology(조직신학)에 있는 삼위일체에 관한 부분(p. 82-99)을 읽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여기 벌코프의 진술 몇 가지만 인용하도록 한다.

이 한 신적인 존재 안에 삼위 혹은 세 개별적인 존재인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계신다.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87).

그러므로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위격이란 신적인 본질 안에 있는 한 존재, 즉 다른 둘과 관련되어 있으나 공유할 수 없는 속성에 의하여 그들과 구별된 한 존재를 뜻한다[Inst. I, XIII, 6]”(“By person, then, I mean a subsistence in the Divine essence. — a subsistence which, while related to the other two, is distinguished from them by incommunicable properties.). 이것은 완전히 허용할 수 있는 것이며 오해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신적인 존재 안의 자아의 구별은 하나님의 존재 안에 있는, 서로에게 인격적인 관계를 상정하는, ‘나’와 ‘너’와 ‘그’를 뜻한다는 사실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마 3: 16; 4: 1; 요 1: 18; 3: 16; 5: 20-22; 14: 26; 15: 26; 16: 13-15).(Ibid., 87-88)

하나님의 분리되지 않는 본질은 삼위의 각자에 동일하게 속한다. (Ibid., 88)

삼위를 구별시키는 특정한 개인적 특징이 있다. . . . 그것들은 개인적인 역사로서 삼위에 의해 공동으로 실행되지 않으며 공유할 수 없는 것이다. 창출(generation)은 아버지만의 행위이시고, 자식임(filiation)은 아들에게만 독점적으로 속해 있으며, 발출(procession)은 오직 성령에게만 돌려질 수 있다. (Ibid., 88)

 ‘위격’에 대한 정통 신학자들의 견해에 대한 명백한 교리 사기

지방교회: ‘위’(位) 즉 ‘페르소나’라는 단어 사용을 꺼려하는 것은 위트니스 리 만이 아니라 밀리아드 에릭슨, 루이스 벌콥, 그리피스 토마스, 요한 웨슬리, 이종성 박사도 마찬가지이다.

반박: 지방교회가 인용한 위에 있는 정통 신학자들의 진술은 ‘위’ ()라는 단어가 불완전하다고 지적하는 것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벌코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격’(혹은 ‘인격’)이라는 단어가 그 아이디어에 관한 완전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은 널리 인정된 바이다”(It is generally admitted that the word “person” is but an imperfect expression of the idea)(Berkhof, Louis. Systematic Theology). 벌코프나 정통 신학자들은 ‘위’라는 단어의 불완전성을 지적한 것이지, 자신들이 ‘위’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를 꺼려한다고 말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위의 정통 신학자들의 저서들을 읽어 보면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처럼 지방교회는 자신들의 이단적인 견해를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정통 신학자들의 진술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왜곡하는 교리 사기를 상습적으로 하고 있다!

마틴 로이드 존스를 악용한 교리 사기

지방교회: 아래에서 보듯이 하나님을 한 인격이라고 말한 사람은 위트니스 리 만이 아니다. 아래에서 보듯이 정통 신학자로 평가받는 로이드 존스, 반 틸도 같은 표현을 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한 인격이시라고 말한다. 이 사실은 참된 의미의 경배를 드리는 데 있어서, 또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해 확신감을 갖는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Martyn Lloyd-Jones, .Great Doctrines of the Bible (Wheaton, IL: Crossway Books, 2003), pp. 55-56).

반박: 필자는 지난 글(‘1,650억을 요구한 지방교회의 참담한 패소’)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마틴 로이드 존스나 빌리 그래엄 같은 정통 설교자들이 마치 일위일체를 주장하는 것처럼 거짓으로 꾸민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나 그래엄 같은 정통 삼위일체론자들이 하나님을 한 인격(a person)이라고 지칭한 것은 ‘일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지, 정, 의를 소유하신 한 ‘인격적인 분’(a personal being)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진술이 들어 있는 문맥을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David Martyn Lloyd-Jones, God the Father, God the Son, 55-6).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이드 존스나 빌리 그래엄 같은 정통 설교자들을 마치 ‘일위’를 주장하는 양태론자들인 것처럼 둔갑시켜 놓은 지방교회의 행위는 확실한 ‘교리 사기’이고, ‘학문적인 범죄’인 것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또한 논의의 진전을 위하여, 이 글에서는 마틴 로이드 존스의 견해를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그러나 여기서 먼저 한 가지 분명히 지적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로이드 존스가 사용한 영어 표현(God is a person.)은 우리 말로 번역할 때 하나님은 인격이시다라고 번역하기보다는하나님은 인격적 속성을 가지신 분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우리 말의 특성상 자연스럽고, 신학적으로 오해의 소지를 없애며,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드러낼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래와 같은 저자의 말을 볼 때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본질적인 존재의 마지막 특징으로 데려가는데, 그것은 인격인 것이다(That, then, brings us to the last characteristic of God’s essential being and that is personality). 실제적인 용어[인격-pesonality]는 성경에서 사용되지 않았지만 성경 전체에 함축되어 있으며 나는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인격(personality)은 무엇을 뜻하는가? 인격은 마음과 지성과 의지와 이성과 개성과 자아 의식과 자기 결정이 있는 곳에 존재한다(Personality exists where there is mind, intelligence, will, reason, individuality, self-consciousness and self-determination.). 이러한 것들이 있는 곳에 인격(personality)이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인격적인 속성을 가지신 분이다(God is a person.)라고 주장한다. (David Martyn Lloyd-Jones, God the Father, God the Son, 55) (밑줄 강조는 필자의 것)

위의 인용문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로이드 존스는 여기서 삼위일체의 위격(Person) 논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삼위’(three Persons)이신가 혹은일위’(one Person)이신가를 논한 것이 결코 아니다! 삼위일체의 위격에 대한 논의는 이후에 나온다. 여기서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속성을 가지신 분’(“a personal being”)이시라는 것을 표명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위격 아닌 하나님의본성’(혹은 본질) 관련된 이다. 로이드 존스는 위의 진술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본질적인 존재의 마지막 특징으로 데려오는데, 그것은 인격인 것이다”라고 말함으로, ‘하나님은 인격적인 속성을 가지신 분이다’(God is a person.)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위격’과 관련된 표현이 아닌 하나님의 ‘본성’과 관련된 표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지성과 의지를 가리키는인격(personality)’ 하나님과 관련하여 쓰여질 하나님의 본성을 가리킨다. 아우그스투스 스트롱은 인격(personality)을 하나님의 절대적(혹은 내재적) 속성으로 분류한다(Paul Enns, The Moody Handbook of Theology, 190). 이와 달리, 루이스 벌코프는 인격을 하나님의 전달되는(communicable) 속성으로 여긴다(Ibid., 190). 한편 밀리아드 에릭슨은 인격을 하나님의 위대함(greatness)의 속성에 편입시킨다(Ibid.,190). 그러나 신학자들이 인격을 하나님의 어떤 속성(attributes)으로 분류하든지 속성은 하나님의 본성을 표현한 것이고, 그래서 인격(personality) 하나님의 본성의 일부인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하나님은 인격적인 속성을 가지신 분이다”(God is a person.)라고 말한 이다.

니케아 신조에 대한 명백한 거짓말

지방교회: “위에서 보듯이 위트니스 리는 결코 신조들에 대해서 삼신론 이단이라고 말한 적이 없고, 오히려 ‘신조에 이단적인 것이 전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김목사는 자신의 억지 논리를 근거로 거짓되게 다른 동료 믿는 이들을 정죄하고 있다. . . . 참고로 지방 교회측 성도들은 모든 참된 동료 믿는 이들과 함께 ‘니케아 신조’와 ‘아타나시우스 신조’가 명시하는 삼위일체론 관련 모든 진술들을 우리의 신앙으로 믿고 고백한다는 점을 밝혀 둔다.”

반박: 니케아 신조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비판을 직접 읽어 보면 위의 말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아래의 글은 리의 비판을 필자가 비판한 것인데 지난 글(#4: 그리스도 안에 죄가 거한다는 흉악한 이단 교리)에서 인용한 것이다.

삼위일체에 관한 전통적인 설명(The traditional explanation of the Trinity)은 대단히 부적절하며 거의 삼신론과 같다(borders on tritheism). 하나님을 이렇게 분리된 위들(separate Persons)로 가르치는 것은 성경의 계시가 아니라 니케아 신조의 교리이다. (Witness Lee, Life Messages, Vol. 2 (#42-75), Chapter 19, Section 2)

위의 인용문에서 리는 니케아 신조를 이렇게 네 가지로 폄하한다. 첫째, 이것은 ‘전통적인 설명’이라고 말한다. 즉 정통교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둘째, ‘삼신론’과 같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준()삼신론’이라는 말이다. 셋째, ‘분리된 위격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앞선 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니케아 신조는 삼신론(三神論)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분리된 세 위격’은 삼신론이기 때문이다. 넷째, ‘성경의 계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즉 비성경적이라는 말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리는 삼위일체에 관한 니케아 신조의 이해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한 필자의 말이 “거짓’이라는 말인가? 원참, 백주 대낮에 이런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돌아다니다니! 폐일언하고 이런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에 속한다. 판단력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중상모략꾼인 것이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런 거짓된 글을 상습적으로 쓰며 다른 사람을 중상모략하고 많은 사람들을 미혹의 길로 인도한다는 사실이다. 지방교회와의 논쟁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지적(知的)인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 것이다. 필자와 독자들이 이런 쓸데없고 몰상식하며 무책임하고 거짓된 글들을 읽고 분석하면서 참으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위 한 본질의 하나님을 부정하는 이단 사상

지방교회: “김홍기 목사는 삼위가 각각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강력하게 주장하되 그 세 위격의 상호내주를 이단사상이라고 거부함으로써 세 하나님들 신봉자라는 의심을 갖게 만들었다.”

반박: “세 하나님들 신봉자”라는 말은 곧 ‘삼신론자’라는 말이다. 삼신론은 ‘삼위가 각각 다른 세 본질을 소유하셨다’고 믿는 견해이다. 예를 들어 위르겐 몰트만(1926-) 같은 신학자가 여기에 속한다. 김병훈 교수는 몰트만의 삼신론적 개념을 비판하며 몰트만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했다. “세 위격들은 서로에 대한 관계성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으로서 그들의 개별적이며 독특한 본질들 가운데 존재하며, 그들의 관계성으로 말미암아 결정된다”(김병훈,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적 단일성’ 개념에 담긴 삼신론적 특성, 교회와 신앙,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214).

김병훈 교수에 의하면 몰트만은 세 위격들의 “개별적이며 독특한 본질들”이라고 말함으로 ‘세 본질과 삼위’의 하나님을 신봉하는 삼신론자임을 드러냈다. 그러나 몰트만과는 달리, 필자는 ‘한 본질과 삼위’의 하나님을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을 지방교회는 잘 알고 있다! 이미 지난 글들에서 여러 번 분명하게 이 믿음을 천명한 바 있다. 예를 들어 필자는 이전 글(#1: 정통 삼위일체론을 삼신론으로 정죄한 지방교회)에서 다음과 같이 필자의 신학적 입장을 표명했다.

지방교회는 ‘한 위격, 한 본질의 하나님’(양태론)이 ‘상호내재’를 통해 동일한 공간에 존재하지 않을 때 이것을 ‘분리된 위격들(separate Persons)’이라고 규정하고, 이런 개념을 ‘삼신론’으로 정죄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 . . 영원하시고 무한하시며 편재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감히 제한된 공간에 가두어 버리다니! . . . 반면에 정통 삼위일체론자들은 위격, 본질의 하나님 신적 본질 안에서시간과 공간에 전혀 구애됨이 없이 (영원히, 어디에나) 상호내재하심을 믿는다. 따라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이 땅에 오신 아들’ 및 ‘성도들 안에 거주하시는 성령’을 ‘분리된 위격들’로 여기지 않고, ‘동일한 신적 본질 안에서 구별된 위격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영원히 또한 완전히 연합되어 계심’을 믿는다. 이런 맥락에서 로즈와 가이슬러는 “구별된 위격은 각각 동일한 신적 본질 안에서 상호내재하신다”(Geisler and Rhodes, A response, p. 8)라는 말로 삼위의 ‘본질적 연합(essential unity)’을 설명한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셨을 때에 “하나님은 그분의 편재(遍在/in His omnipresence) 안에서 함께 하셨다”(Ibid., p. 5)라고 주장한다. 물론 지방교회의 이단적 ‘상호내재론’으로 보면 정통 삼위일체론자들인 가이슬러와 로즈 역시 틀림없는 ‘삼신론자들’이다.

삼신론은 위격, 본질의 하나님 주장하는 이단 교리이다. 따라서 위격, 본질의 하나님 주장하는 정통 삼위일체론자는 결코 삼신론자가 없다. 정통 삼위일체론자가 용어나 예화의 부주의한 사용으로 인하여 삼신론자로 오해를 받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가 ‘세 위격, 한 본질의 하나님’을 주장하는 동안에는 그를 ‘세 위격, 세 본질의 하나님’을 주장하는 삼신론자로 결코 정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또한 절대로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지방교회는 ‘삼위와 한 본질의 하나님’을 신봉하는 필자를 삼신론자로 의심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결국 ‘삼위와 한 본질의 하나님’을 믿는 정통 삼위일체론을 삼신론 이단으로 의심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말은 지방교회가 이단임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 출처: (Norman Geisler, Systematic Theology, Vol. 2: God, Creation, p. 298)

위격에 관한 ‘경륜적 양태론자’의 질문

지방교회: 아래에서 말씀하신 분은 성부, 성자, 성령 중 어느 위격이신가?

1.”나는 주요, 아무도 다른 이가 없나니 나 외에 다른 하나님이 없느니라. 네가 나를 모를지라도 내가 너를 띠로 동였노라”(사45:5).

2. “너를 지으신 분이 네 남편이니 만군의 주가 그 이름이며, 너의 구속주,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라. 그가 ‘온 땅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리라(사54:5).

3. “이는 너희가 내가 그 인줄 (I am he) 알지 아니하면, 너희는 너희 죄들가운데서 죽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시니라. 그러자 그들이 주께 말하기를 “네가 누구냐”?”고 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해 온 그니라”(요8:24-25).

4. “그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의 형태로 거하시나니”(골2:9).

5.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셨기 때문에 성령이 아직 계시지 아니하였음이더라”(For the Spirit was not yet)(요7:39).

6.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느니라”(고전15:45).

7. “이제 그 영은 주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Now the Lord is that Spirit)(고후3:17).

8. “한 어린양이 섰는데,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졌더라. 그(어린양의)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5:6).

반박: 어거스틴에 의하면, “성부 자신만을 말할 때에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쓴다.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모두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 296). 어거스틴의 말을 적용해 보면 1과 2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모두를 포함하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3, 4, 5, 6, 8은 그리스도이시며, 7은 성령이시다. 물론 지방교회는 필자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가 아닌 일위일체론을 주장하는 양태론 이단 교리를 신봉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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