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훈 교수 / 신학대학원대학교

교회가 오랜 동안 인정하여 온 교리적 이해에 따르면, 페리코레시스 교리는 신적 본질의 동일성에서 비롯된다. 몰트만이 주장하고 있는 삼위일체의 단일성에 대한 삼신론적인 문제점은 여기로부터 출발한다. 몰트만이, 세 위격이 신성에 있어서 차이가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세 위격들의 동일본질 개념이 페리코레시스의 개념과 충돌이 된다고 생각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페리코레시스 교리와 관련한 몰트만의 이러한 이해는 페리코레시스 교리의 기초를 세 위격들의 본질이 동일하며 단일하다는 교리에 두고 있는 고대 교회의 정통신학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몰트만은 세 위격들의 위격상의 차이들이 세 위격들의 본질상의 차이들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고대 교회는 위격상의 차이들을 어떠한 의미에서이든지 본질상의 차이들로 환원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몰트만의 생각에는 세 위격들의 동일본질의 개념은 사실상 세 위격들의 개별적이며 독특한 본질들을 부정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세 위격들이 인격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대와 중세 교회의 정통신학의 기준에 따르면 이러한 몰트만의 생각은 삼위일체론의 신학적 문법을 파괴하는 것이다.

4세기에 삼위일체의 교리를 정립한 이후로, 교회는 세 위격들이 위격상의 차이들로 말미암아 위격들 간에 서로 서로 구별이 된다고 생각은 하였으나 이러한 위격상의 차이들로 인하여 위격들이 본질적으로 구별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세 위격이 서로 다른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던 아리안주의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아블라비우스에 대하여 갑바도시안 교부들 중의 한 사람인 그레고리 닛사는 세 위격들의 특성을 하나님의 본질로 이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옳지 않음을 확고히 하였다.

비록 아버지 하나님은 위격들의 기원에 있어서 ‘원인(the Cause)’이시며, 아들 하나님은 ‘그 원인에 기인하시는 분(of the Cause)’이심이라는 견해는 정확히 옳은 것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원인관계성(the cause-relationship)은 위격들의 존재방식의 차이를 가리키는 것일 뿐, 결코 본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레고리 닛사는 가르쳤던 것이다.

갑바도시안 교부들은 위격들의 위격상의 개별 특성들이 하나님의 본질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점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질을 서로 다른 셋으로 보는 어떠한 시도들도 인정하지를 않았다. 갑바도시안 교부들의 이러한 위격과 본질의 구별에 힘입어, 교회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한 본질의 한 위격’의 하나님이거나 ‘세 위격들의 세 본질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한 본질의 세 위격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정하여, 콘스탄틴노플 공의회(381년)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확정하였다.

따라서, “세 위격들은 서로에 대한 관계성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으로서 그들의 개별적이며 독특한 본질들 가운데 존재하며, 그들의 관계성으로 말미암아 결정된다”라고 쓰고 있는 몰트만은 삼위일체의 교리를 정립한 4세기 신학의 문법에 분명한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각각의 위격이 서로에 대한 관계성으로 인한 위격상의 차이 때문에 각각 개별적이며 독특한 본질을 소유한다는 몰트만의 이해는 자신이 힘주어 강조하는 페리코레시스의 교리에 대한 초대 교회의 바른 이해와도 충돌이 된다. 6세기 중반에 단성론자인 필로포누스(John Philoponus)는 “각각의 위격은 자기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소유하여야만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필로포누스는 공통본질(common nature)과 개별본질(individual nature)의 두 가지 본질의 개념을 상정하고 나서, “공통본질은 각각의 종(species)에게 있어서 독특한 것이지만 이러한 종(species)들에 속한 각각의 개체들은 자기 자신 만의 본질을 소유하고 있음으로 종(species)은 결국에 여러 본질들로 구성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이해를 삼위일체의 이해에 적용하여, 필로포누스는 세 위격들이 존재하는 바, 세 본질들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더욱이, 필로포누스에게 있어서 공통본질은 사실상 실체가 없이 이름만 존재하는 명목론적인 관념에 불과한 것이었다. 필로포누스에게 있어서 본질과 기체(基體, hypostasis)가 동일한 실체였으며, 개별본질들은 곧 개별기체들로 이해가 되었던 반면에, 공통본질은 자체의 위격이 없어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며, 오직 사유 가운데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위격상의 특성을 위격의 개별본질로, 그리고 위격들의 신성을 공통본질로 이해하면서, 공통본질의 실체를 부정하며 단지 명목론적으로만 이해하였던 필로포누스의 주장을 교회는 제 3차 콘스탄틴노플 공의회(680년)에서 삼신론의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필로포누스의 삼신론을 정죄하는 데에 이르기까지의 신학적 분별의 과정 가운데, 수도(僞, Pseudo)-씨릴은 페리코레시스의 개념을 적용하면서 세 위격들이 모두 동등한 신성을 지닌 세 가지의 개별적인 본질들이라는 필로포누스의 주장을 논박하였다. 수도(僞, Pseudo)-씨릴은 페리코레시스의 교리를 제시하면서, 세 위격이 본질에 있어서 단일하며 기원의 관계성에 있어서만 구별이 될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몰트만이 페리코레시스 교리를 오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몰트만과 필로포누스 두 사람은 모두 세 위격의 신성의 동등함을 나타내는 공통본질을 주장하면서 단일본질을 부정하고 세 위격들이 서로 구별이 되는 독특한 세 본질들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을 한다. 교회는 삼위일체의 신학을 정립하고 가르쳐 나아가면서 필로포누스의 주장이 삼신론의 오류에 빠져있음을 페리코레시스의 교리를 들어 밝히었음을 생각할 때, 필로포누스의 생각과 유사한 주장을 전개하는 몰트만이 삼신론의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은 분명하다.

몰트만은 세 위격들의 세 본질들의 이해를 강조하여 나아가면서, 이러한 이해가 오히려 페리코레시스의 교리에 대한 전제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러한 주장은 페리코레시스의 교리사적 전개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페리코레시스 교리는 세 위격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경우에서처럼 세 본질이 아니고 한 본질일 수 있는 가를 말하여 주는 맥락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페리코레시스 교리는 몰트만의 “세 위격, 세 본질론”을 삼신론의 오류로부터 보호하기 보다는, 필로포누스의 경우에서 보듯이 삼신론의 오류를 오히려 드러내어 준다.

게다가 몰트만은 마치 필로포누스가 그러했듯이 공통본질을 단지 명목론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세 위격들이 위격상의 차이들로 인하여 서로 구별되는 세 본질들을 소유함을 주장한 몰트만은 위격 혹은 인격이라는 개념 자체가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까지에 이른다.

몰트만의 동일성 개념에 대한 혐오는 단일한 동일본질에 대하여 나타날 뿐만 아니라 류적(類的) 의미(generic sense)에서의 위격 개념마저도 거부하기에 이른다. 만일 삼위일체 위격들이 각각 별개의 독립된 상태로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관계성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면, 그들 중의 누구도 위격과 같은 류적 용어로 표현될 수 없다고 몰트만은 주장한다. 그들이 서로의 관계성 안에서 차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관계성 안에서 이해되는 그들은 서로 다르며, 독특하며, 개별적이다.

그러한 그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때,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 서로 다르며, 구별되며, 개별적인 위격-개념을 적용하여야 한다고 몰트만은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그가 말하는 세 위격들 간의 공통본질의 개념이 단지 사유적 개념에 그치는 것임을 드러내 준다. 왜냐하면 그의 주장은 세 위격들이 그들의 개별성과 차별성으로 인하여 어떠한 존재론적인 동일성을 지니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어떠한 류적 용어로도 표현이 되지를 않는다면, 그리고 만일 그들이 특별하며, 독특하며, 개별적인 본질들로서 존재론적으로 구별되는 존재들이라면, 전면에 드러나는 것은 단지 특별성, 독특성, 그리고 개별성일 뿐이며, 이들 사이의 어떠한 공통본질이라는 개념은 뒤로 사라지게 된다. 결국 몰트만이 말하는 세 위격들의 공통본질이라는 개념은 필로포누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한낱 명목론적인 것에 그치게 된다. 이것은 페리코레시스 교리에 의해서 부정되었던 결론이었다.

또한 교리사적인 흐름 안에서 볼 때, 하나님의 순일성(純一性, divine simplicity)의 교리의 틀 안에서 조차도 인정되어 왔던 하나님의 ‘위격들(persons),’ ‘관계들(relations)’ 등의 류적 개념들을 부정함으로써, 몰트만은 삼신론의 오류를 범하였다는 결론을 결국에 피할 수 없게 된다.

나가는 말
페리코레시스 교리는 몰트만을 삼신론으로부터 보호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삼신론의 오류를 밝혀 준다. 몰트만이 말하는 세 위격의 신성의 공통본질은 단지 사유 속에서 개념적으로만 존재하는 명목론적인 것에 불과하다.

몰트만은, 위격을 포함하여 그와 같은 의미로 해석되는 어떠한 용어도 삼위일체 이해에 적용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세 위격들의 존재론적 구별성에 대하여서는 실체적인 이해를 강조하는 반면에, 존재론적 공통성에 대해서는 명목론적 개념으로 희석시킨다. 따라서, 몰트만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론적 단일성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인하여 어긋나고 있는 몰트만에 대한 상반된 평가에 대한 결론은 한 가지로 수렴이 되어야 한다.
즉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은 페리코레시스 교리를 활용한 삼위일체론적, 연합적, 페리코레시스적 단일성의 개념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신론의 구조적 제한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