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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는 교리 사기를 전문하는 집단인가
[ 이단연구 / 김홍기 ] 지방교회 교리 비판 - 재반론 ①
2016년 05월 30일 (월) 13:38:03 김홍기 목사 yesusarang@shaw.ca

[ 김홍기 목사의 연재 ‘지방교회(위트니스 리) 교리 비판’에 대한 ‘지방교회 진리변증위원회’의 반론이다. 김홍기 목사의 연재글 10개에 대해 지방교회 측의 ‘반론’과 김홍기 목사의 ‘재반론’이 각각 10회씩 게재될 예정이다. 이는 당초 김홍기 목사의 글을 연재하면서 밝힌 ‘반론권 보장’에 따른 것이다. / 편집자 주 ]


김홍기 목사 / Ph.D., D.Min., 밴쿠버필그림교회 담임, 글로벌기독교이단연구원장

   
▲ 김홍기 목사

필자는 재반론을 함에 있어서 지방교회의 반론의 몇 가지 핵심 쟁점에 집중할 것이다. 먼저 지방교회의 말을 인용한 후 그 말에 대하여 반박을 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다.

존 앵커버그와 존 웰던에 대한 중상모략

지방교회: “존 앵커버그와 존 웰던은 1999년에 <이단과 신흥종교 백과사전>을 집필하여 ‘하비스트 하우스 출판사’를 통해 출간했다. 저자들은 . . . 지방교회를 끼워 넣은 후 . . . 이 책 안에 담긴 이단들은 인신매매, 사람을 제물로 바침 등 윤리적,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는 식의 인상을 독자들에게 주려고 했다.”

반박: 이 말은 앵커버그와 웰던에 대한 명백한 중상모략이고 명예훼손이다. 텍사스 항소법원과 대법원 및 미연방대법원은 지방교회의 이런 일방적인 주장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연거푸 기각했다. 아래는 필자의 글(#6: ‘1,650억을 요구한 지방교회의 참담한 패소’에서 한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이 재판의 결과에 대하여 지방교회는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지방교회와 그들의 열혈 옹호자들은 이 재판의 결과에 대하여 가시 돋친 불평과 원망을 지금도 쏟아 낸다. 그러나 미국의 텍사스 주 항소법원과 대법원 및 미연방대법원 세 곳이 동일한 판결을 내렸다면 이제는 비난을 그치고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이 정정당당한 자세이다. 필자는 지방교회가 승소했던 앞선 두 번의 재판들에 관한 법정의 판단을 존중했을 뿐 아니라, 그 문제가 된 책들을 쓴 사람들을 책망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방교회와 그들의 옹호자들은 중립에 선 미국 최고의 베테랑 법관들의 객관적인 판단을 받아들일 뜻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방교회와 그들의 옹호자들은 항상 자신들이 옳다고 말한다. 회개할 줄 모르는, 자신들만이 의롭다고 주장하는 현대판 바리새인들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아래는 필자가 번역해서 소개한 가이슬러와 로즈의 글[#8: 가이슬러가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이유 (2)]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앵커버그와 웰든 및 하비스트 하우스가 지방교회를 사회학적인 의미에서 중상모략적으로 딱지를 붙였다는 그들의 나머지 고소에 대하여, 응당 그래야 했었던 것처럼, 법정은 이것 역시 거부했다. 그들[앵커버그와 웰든]은 지방교회에 대해 거짓된 혹은 중상모략적인 고소를 어디에도 하지 않았다. . . . 참으로 CRI가 그들[지방교회]의 주장을 지지하여 말할 수 있는 최선은 앵커버그와 웰든이 지방교회를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정확한” 진술들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부정확한 주장들이 인격 살인과 따라서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43). 그러나 이러한 근거 위에서라면 내가 아는(수많은 찬송가 작사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신학자들과 그리스도인 저술가들이 감옥에 들어가야만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글[#6: 1,650억을 요구한 지방교회의 참담한 패소; #7: 가이슬러가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이유 (1); #8: 가이슬러가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이유 (1)]을 참조하기 바람.

정통 교리로 이단 교리를 가리려는 어리석은 시도

지방교회: “위트니스 리는 . . . 성경의 무오성, 주 예수님의 처녀 탄생, 대속의 죽음, 육체적 부활, 재림 등 소위 ‘근본주의 5대 원칙’을 굳게 믿는다.”

반박: 지방교회를 비판하는 이유는 성경의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론’을 비성경적으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통 삼위일체론에 의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존재론적으로나 경륜적으로나 삼위’이시지 일위가 아니시다. 반면에 지방교회는 삼위는 ‘경륜적으로 일위’이시라고 주장한다. 즉 아들이 아버지이시고 성령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을 하나님의 경륜(역사, 활동, 기능)에 실제로 적용해 보면 당장 그 모순이 드러난다. 지방교회의 주장을 따르면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가 ‘아버지를 보내신 아들’이 되는 것이다. 지방교회의 말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경륜적으로는 위격상 동일하다고 주장하면 위와 같은 모순이 나온다. 이것은 결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이런 이단 교리 때문에 지방교회를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단 교리(지방교회의 ‘경륜적 양태론’)를 정통 교리(근본주의 5대 원리)로 가리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행위인 것이다.

양 도둑질을 부흥으로 미화하는 파렴치하고 뻔뻔스런 행위  

지방교회: 아울러 그가 이러한 성경의 핵심 진리를 토대로, 말씀을 기도로 읽기 등 주님을 주관적으로 체험하도록 돕는 실행을 보급하자, 새신자는 물론 활력있는 신앙생활을 갈급해오던 기존 성도들이 지방 교회들과 함께 하는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부흥 내지는 ‘성도들의 수평 이동’ 현상은 점차적으로 기득권 세력이던 복음주의와 은사주의 진영의 주목과 견제를 받기 시작했다.  

반박: 양 도둑질로 몸집을 늘리는 것은 교회의 부흥이나 성장이 아니라 정통교회를 파괴하는 행위인 것이다. 대형교회가 소형교회의 성도들을 흡수하여 소형교회들을 무너뜨리는 행위가 강력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정통 교리를 가진 대형교회들은, 지방교회가 하는 것처럼, ‘음녀’니 ‘큰 바벨론’이니 ‘사탄의 조직’이니 하는 표현들을 사용하여 다른 정통교회들을 매도하고 비하하지는 않는다! 신약성경에서 주님과 사도들이 정통교회를 ‘음녀’나 ‘큰 바벨론’이나 ‘사탄의 조직’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정죄하신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가! 만약 있다면 신약의 어떤 책 몇 장 몇 절에 그런 내용이 있는가? 정통교회를 악마시하고 비판하여 끌어모은 신자들을 모아 놓고 교회의 부흥을 이루었다고 자와자찬을 하는 모습은 보기에 역겹고 가증스럽다!

문장의 일부를 떼어 내고 본래의 뜻을 왜곡하는 가증한 사례

지방교회: 실상이 이러함에도 몰몬교와 여호와의 증인들을 들먹이고, 지방 교회측이 ‘소송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심각한 사실 왜곡이다. 김 목사가 참으로 피먼트의 자료를 신뢰한다면, 지방 교회측이 여호와의 증인과 몰몬교보다 더 많은 "소송을 제기했다” 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대한 입증 책임은 김 목사 본인에게 있다(단지 뜬 소문을 나열할 것이 아니라 소송을 제기했다는 증거를 제시하기 바란다).

반박: 페멘트는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소송을 제기하거나 소송의 협박을 한 횟수”라고 말했다. 이렇게 문장을 제멋대로 조작해 놓고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했다고 매도하는 이 뻔뻔스러운 거짓말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인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제자들은 이러한 ‘교활한 문장 사기’를 니와 리에게서 배웠는가? 아니면 거짓의 아비 사탄에게서 배웠는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페멘트의 말은 가이슬러와 로즈와 같은 복음주의의 대표적인 신학자들이 인용한 것이다. 여기 페멘트의 말 그대로를 인용해 본다.

몰몬교와 여호와의 증인이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소송의 협박을 한 횟수를 모두 합해도 [지방교회가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을 상대로 소송을 일으킨 것처럼] 그렇게 많은 소송을 제기했을지 의문이다. (Norm Geisler and Ron Rhodes, A Response to the Christian Research Journal’s Recent Defense of the “Local Church” Movement, p.1).

페멘트의 말이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고 “뜬 소문”이라면 왜 소송에 능한 지방교회가 가만히 앉아만 있는가? 지방교회의 주특기를 사용해서 밝혀내면 되지 않는가? 왜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가? 페멘트의 말이 거짓말로 밝혀낼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개신교를 배교 집단으로 정죄한 사실을 은폐하려는 교활한 시도

지방교회: 또한 “타고난 논쟁가”와 관련하여 소개한 ‘배교’ 문제도 원문에서는 그것이 ‘로마 천주교’를 가리킴에도, 김 목사는 중간에 일곱 줄이나 생략한 후 뒤의 내용을 임의로 끌어다 붙여 조작한 ‘오픈 레터’의 비양심적인 자료를 근거로, 위트니스 리가 ‘개신교’를 배교라고 공격했다며 호전적 논쟁가로 몰아갔다.

반박: 위트니스 리가 개신교를 ‘배교한 집단’(큰 바벨론)으로 정죄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필자의 글(#4: 지방교회를 왜 영적 음행자요 이단종파라 하는가)에서 아래의 두 가지 내용만 인용해도 대번에 지방교회의 거짓이 드러난다.

더 나아가 인용한 본문의 문맥에서 리가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를 ‘큰 바벨론’으로 지칭하고 있다는 사실도 명약관화하다. 이와 같은 입장은 리가 다른 진술들에서 개신교와 가톨릭을 ‘큰 바벨론’과 동일시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분열들과 교파들은 큰 바벨론 안에서 완성된다”(Witness Lee, Life-study of Genesis, 463). 또 다른 진술을 보자. “바벨론이 무너졌다. ... 가톨릭이 무너졌다, 그리고 모든 교파들이 무너졌다”(Witness Lee, The Seven Spirits for the Local Churches, 97).

왜냐하면 리는 개신교와 가톨릭과 동방정교 모두를, 즉 세상의 모든 기독교인들을 싸잡아 ‘큰 바벨론’으로 정죄한 분명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리의 다음과 같은 진술을 보라. "계시록 17장과 18장에서 우리는 큰 바벨론, 즉 배교한 기독교 세계(Christendom) 위에 임하는 심판을 본다.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 외에 주님은 기독교 세계(Christendom), 즉 큰 바벨론을 특별히 심판하실 것이다"(Witness Lee, Revelation, 22).

정통 신학자 웨인 그루뎀의 주장을 정반대로 왜곡한 교리 사기

지방교회: 웨인 그루뎀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구별된 위격을 인정하지만, 분리되지 않는 존재(being)로서의 하나님의 유일성(unity)을 좀처럼 인식하지 않음으로, 어쩌면 오늘날의 수많은 복음주의자들은 무심코 삼위일체에 관한 삼신론적인 견해를 향하여 나가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경고했다. . . . 그런데 김 목사는 여기서 언급된 “분리되지 않은 존재”(one undivided being)는 곧 ‘분리되지 않은 본성’을 의미한다고 크게 착각한다. . . . 우리는 김 목사에게 위 인용문 바로 위 두 단락을 다시 주의하여 읽어볼 것을 권유하겠다. 그렇게 한다면 웨인 그루뎀이 김 목사의 오해처럼 ‘본질의 단일성’ 부정론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대신에 웨인 그루뎀은 “분리되지 않는 존재’(being)로서의 하나님의 유일성(unity)”을 소홀히 하면서, ‘세 위격들’이심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그 “각 위격이 온전한 하나님”(each person is fully God)이라고 주장하면, 결국 본의 아니게 “세 하나님들”(three Gods)로 빗나갈 가능성을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반박: 웨인 그루뎀의 주장을 완전히 곡해하여 또 교리 사기를 하고 있다. 그루뎀의 신학적 입장을 정반대로 뒤집어서 설명하고 있다. 지방교회는 참으로 후안무치한 미혹의 집단이 아닐 수 없다! 지방교회는 영어를 사용하는 정통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존재’(being)를 말할 때는 ‘하나님의 본성’(essence)을 말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상습적으로 왜곡한다! 지방교회는 ‘하나님의 존재’(being)를 자신들의 ‘이단적인 상호내주론’에 의거하여 ‘위격의 상호내주’(mutual indwelling)로 바꾸어 버린다. 이것은 저자들의 본래의 뜻을 완전히 왜곡하는 것이다. 이런 왜곡 행위가 상습적으로 반복되면 교리 사기가 되는 것이다! 웨인 그루뎀은 미국의 복음주의의 명문인 트리니티신학대학원에서 다년간 조직신학을 교수한 정통 신학자이다. 그의 역작인 ‘Systematic Theology’(조직신학)를 (가급적 영어 원서로) 직접 읽어 보라. 그는 다른 정통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존재 (being)를 말할 때는 항상 하나님의 본성(essence)을 말한다. [더 자세한 설명은 필자의 글 #9(이단의 본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지방교회)에서 볼 수 있음]

실제로 웨인 그루뎀은 지방교회의 교리를 비판하는 데 있어서 선봉에 서 있는 신학자이다. 그루뎀의 다음과 같은 비판을 보라.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모순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할 필요가 있다. 모순은 이런 것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삼위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삼위가 아니시다(God is three persons and God is not three persons). . . . ‘하나님은 삼위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일위 혹은 한 인격이시다(God is three persons and God is one person)”(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256) 그루뎀이 지적한 모순은 지방교회의 교리의 모순을 아주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다. 지방교회는 그루뎀이 지적한 바로 그대로 주장을 하고 있다! 이것은 가이슬러와 로즈도 동일하게 지적을 한 것이다. 실로 지방교회는 혼돈과 미혹의 큰 바벨론이 아닐 수 없다!

완벽한 거짓말을 꾸며 내어 중상모략하는 악독한 교리 사기의 실례

지방교회: “김 목사는 웨인 그루뎀의 말을 인용하여, 마태복음 3:16-17에 따라 성부(하늘), 성자(물 위), 성령 (공중)은 ‘세 분리된 위격들’(three separate persons)이시다 라고 말한다.”

반박: 필자가 해당 글(#1: 정통 삼위일체론을 삼신론으로 정죄한 지방교회)에서 이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지방교회는 위의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 증거를 제시할 수 없으면 지방교회는 ‘중상모략자요 악한 교리 사기꾼들’이다! 물론 지방교회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방교회는 없는 말도 만들어 내어 파렴치한 교리 사기를 쳐서 필자를 삼신론자로 만들려고 기를 쓰는가? 이 악독한 ‘교리 사기꾼들’이여! 확실한 물적 증거를 내놓으라! 물론 지방교회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 필자는 위와 같은 말을 한 적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방교회는 악독한 ‘교리 사기꾼들’이라는 말은 취소될 수 없다. 이와 관련된 필자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도록 한다.

위의 진술[그루뎀의 말]에서 지방교회는 “분리된 삼위(three separate persons)”라는 표현을 대하며 아마 눈이 크게 떠졌을 것이다. 지방교회는 “삼위의 상호내재를 통한 분리 불가”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 . . 따라서 삼위의 다른 기능과 활동을 설명하며 “분리된 삼위(three separate persons)”를 주장한 웨인 그루뎀 교수는, 지방교회가 볼 때, 분명한 삼신론자이다. . . . 위의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루뎀은 결코 ‘삼신론자’일 수 없다. 그 이유는 그가 “분리되지 않는 존재(one undivided being)로서의 하나님의 유일성(unity)”을 언급했을 때 그는 삼위의 ‘분리될 수 없는 본질적인 유일성’을 말했기 때문이다. 그루뎀은 양태론을 비판하는 중에 ‘분리된 삼위(three separate persons)’라는 표현을 통해 ‘구별된 삼위(three distinct persons)’를 강조한 것이다. 그루뎀과 정통 삼위일체론자들은 ‘삼위의 구별’과 ‘삼위의 본질적 유일성’을 동시에 믿는다. 그러나 지방교회는 그루뎀과 정통 삼위일체론자들을 ‘삼신론자들’로 정죄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지방교회의 독특한 ‘상호내재론’을 신봉하지 않는 사람들을 ‘삼신론자’로 정죄할 수밖에 없는 ‘이단적인 교리 체계’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지방교회는 그루뎀의 말을 삼신론으로 왜곡하여 필자가 말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전투에도 교전 수칙이 있는 법이다. 아무리 치열한 교리 논쟁을 하더라도 상대방이 하지 않은 말을, 게다가 이단 교리를 제멋대로 만들어 상대방에게 뒤집어 씌우는 행위는 악독한 교리 사기 행각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방교회는 ‘전문적이고 악독한 교리 사기꾼들’이다! 결코 이런 악행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이런 사악한 짓이 반복되어서도 안 된다.

성경의 진술을 삼신론 이단으로 정죄한 사례   

지방교회: “이처럼 경륜적인 삼위일체를 말하는 본문을 근거로, 사실상 <장소적으로 분리된 세 위격들>을 강조하면, 결국 ‘세 하나님들’(three Gods), 즉 삼신론으로 기울 수 밖에 없다.

반박: 지방교회는, 위에 있는 바와 같이, 다음의 말씀을 가리켜 “<장소적으로 분리된 세 위격들>이라고 말한다. “예수께서 세(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즉 지방교회는 성경 말씀을 가리켜 “분리된 세 위격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장소적으로 분리된 세 위격들’이라는 말과 개념은 삼위 하나님의 ‘편재의 속성’에 비추어 볼 때 ‘삼신론 이단 사상’이다. 달리 말하면 지방교회는 ‘성경 말씀을 삼신론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으로 볼 때 삼위가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인간적인 생각일 뿐이다. 삼위는 ‘편재의 신적 특성’을 포함해 동일 본질을 소유하신다. 따라서 삼위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분리되실 수 없다. 성부가 하늘에 계시고 성자가 물 위에 계시며 성령이 공중에 계시는 것으로 성경이 묘사를 한다 해도, 그것은 성경이 삼위의 공간적 분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본질적으로 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늘에 함께 계시고, (본질적으로 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함께 물 위에 계시며, (본질적으로 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공중에 함께 계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동일 본질을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동일한 본질이 나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삼위는 동일 본질 안에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결코 분리되실 수 없다! 그러나 ‘위격의 나타나심’은 다른 것이다. 마 3:16-17의 말씀은 삼위가 동시에 ‘나타나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정통교회는 마 3:16-17에서 ‘삼위의 구별된 나타나심’과 (동시에) ‘삼위의 본질적 하나됨’을 본다. 반면에 지방교회는 그들의 (이단적 상호내주론에 의거하여) 마 3:16-17에서 “<장소적으로 분리된 세 위격들>”을 본다. 이런데도 지방교회를 이단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성령의 본질에 관한 완전한 무지의 실례 (1)

지방교회: “세 위격들은 각각 분리되지만, 삼위가 각 위격 안에 ‘편재’ 하심으로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은 순환논법에 빠진 억지이다. 그렇다면, 어디든지 편재하시는데 성령이 비둘기 같이 성자에게로 ‘내려오실’ 필요가 무엇인가?”

반박: 이것이 바로 ‘성령의 나타나심과 본질을 혼동’하는 대표적인 실례이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성자에게 내려오신 것은 ‘성령의 나타나심’이다. 성령이 이처럼 나타나신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부의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즉 성부는 소리로 성자에 대한 사랑과 기쁨을 표현하셨고, 성령은 내려오심(혹은 나타나심)으로 성자에 대한 사랑과 기쁨을 표현하신 것이다.

성령의 본질에 관한 완전한 무지의 실례 (2)  

지방교회: 또한 성령은 또다른 보혜사로서 하늘에서 땅으로 보냄을 받으셔야 하는데, 위에서 내려 오셨던 성령은 언제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는가’? 성경에 주 예수님의 승천은 있어도 ‘성령의 승천’을 기록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반박: 이것 역시 ‘성령의 나타나심과 본질’에 관한 완전한 무지를 드러낸다. 성령은 본질상 편재하시다. 아들 위에 계신 때도 (본질상) 하늘에도 계시고, (본질상) 스올에도 계시고, (본질상) 바다 끝에도 계신 것이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 138:8-10). 지방교회는 하나님의 본질에 관해 아주 무식한 집단이다. 이런 성경에 대한 무지를 기초로 마구 칼을 휘두르는 ‘교리 백정’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 분리된 위격들’이라는 표현에 담긴 이단 교리

지방교회: “더구나 ‘세 분리된 위격들’ 사상은, 성육신 하신 아들께서 여전히 ‘아버지 품 속에 계신다’(동사시재[제]가 현재임)(요1:18),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하늘에 있는 인자”(요3:13) 같은 성경 본문을 소화할 수 없다. 여기서 ‘하늘에 있는 인자’는 ‘위격’을 가리킴으로 ‘본질상의 상호내재’ 혹은 ‘편재’ 와는 무관하다.)”

반박: 여기 “세 분리된 위격들”이라는 말은 지방교회의 ‘이단적인 상호내주론’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세 분리된 위격들 사상”이라는 말은 성경의 진술을 문자 그대로 받아 들이는 자세를 비판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성경의 진술 자체를 비판한 것이다. 예를 들어, 마 3:16-17을 지방교회는 이렇게 이해한다. 즉 (위격적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함께 아들과 성령이 계시고, (위격적으로) 동시에 물 위에 계신 아들과 함께 아버지와 성령이 계시며, (위격적으로) 동시에 공중에 계신 성령과 함께 아버지와 아들이 계신다. 반면에 정통 삼위일체론은 (본질적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늘에 함께 계시고, (본질적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함께 물 위에 계시며, (본질적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공중에 함께 계시는 것이다. 정통 삼위일체론은 ‘삼위의 구별된 위격과 (본질상) 하나됨’을 믿는다. 또한 삼위의 나타나심이 어떠하든지, 예를 들어 마 3:16-17의 경우에도, “세 분리된 위격들”이라는 말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원천적으로 분리가 불가능한 동일 본질을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어떻게 성경의 진술을 “세 분리된 위격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떻게 성경의 진술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며 ‘삼위의 구별된 나타나심과 본질상 하나이심’을 굳게 신봉하는 정통 삼위일체론을 “세 분리된 위격들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정통 삼위일체론을 지방교회의 ‘이단적인 상호내주론’에 기초하여 삼신론 이단이라고 정죄하기 때문에 지방교회의 교리를 ‘이단적 상호내주론’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지방교회는 정통을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달려 들었기 때문에 이단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지방교회의 말을 다시 인용해 본다. “성육신 하신 아들께서 여전히 ‘아버지 품 속에 계신다’(동사시재[제]가 현재임)(요1:18),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하늘에 있는 인자”(요3:13) 같은 성경 본문을 소화할 수 없다.” 여기서 ‘하늘에 있는 인자’는 ‘위격’을 가리킴으로 ‘본질상의 상호내재’ 혹은 ‘편재’ 와는 무관하다.)” 무관하다니? 누구 맘대로? 성자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님의 속성인 편재와 무관하실 수 있는가? 아들이 하늘에 계시든, 물 위를 걸어가시든, 오병이어를 손에 쥐시고 축사하시든 어떻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속성과 분리될 수 있단 말인가? 신적 본질이 없는 위격이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도대체 이 무슨 괴이한 말인가? 신적 본질을 생각함이 없이 위격을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은 영혼은 빼고 몸만 드리라는 것인가? 이것은 정당한 신학적 사유가 아니라 괴상망측한 이단 사상이다. 이런 것을 가지고 와서 정통 삼위일체론을 우롱하려 들다니!

위격과 본질을 혼동하는 이단 교리

지방교회: 우선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김 목사가 존 맥아더의 말을 빌려 설명한 “성령에 의한 그리스도의 내주” 즉 ‘그리스도의 위격은 내주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반박: 지방교회는 위격과 본질을 혼동하는 이단이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것은 곧 (본질상) 그리스도가 내주하시는 것이다. 정통 삼위일체는 성령은 (본질상) 예수님이시라고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성령과 예수님은 동일 본질이시라는 것이다. 반면에 지방교회는 성령은 (위격상) 예수님이시라고 주장한다. 달리 말해서 성령은 예수님과 동일 위격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 인격’이라는 말을 스스럼 없이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방교회가 이단임을 명백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아들의 본질에 대한 완전한 무지에서 비롯된 이단 교리

지방교회: 거듭 강조하건대, 성경 어디도 성령에 의해 ‘대리된’ 그리스도의 내주를 지원하지 않는다. 도리어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면 버리운 자라고 말씀한다(고후13:5). 바울은 만대로부터 감취었던 비밀이 곧 “너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Christ in you) (골1:27) 라고 말했다. . . . ‘세 분리된 위격들’을 믿는 사람들은 이런 말씀들을 읽을 때, 자기 생각 안에서 “성령에 의해 대리된 그리스도” 라고 임의로 고쳐서 읽는다. 그러다보니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탁월하고” “그리스도때문에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빌3:7-9)를 힘쓴 신약의 대표적인 사도인 바울의 가르침과 삶의 간증은 이들에게는 그저 낯설기만 할 뿐이다. . . .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장의 분량에 이르게(엡4:13) 하시려는 하나님의 일하심에도 역행한다. 이처럼 김목사가 주장하는 “오직 성령만 내주 하신다’는 비진리가 우리에게 주는 후유증은 생각보다 깊고 넓다

반박: 위의 진술에서 지방교회는 세계적인 강해 설교가인 존 맥아더 목사의 다음과 같은 말과 견해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은 그리스도가 성령에 의해 모든 신자들 안에 영원히 거주하신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The New Testament is clear that Christ, by the Holy Spirit, takes up permanent residence in all believers (참조. 롬 8:9; 고전 6:19, 20; 엡 2:22). 지방교회에 의하면 존 맥아더 목사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삶의 간증”에 “낯설기만 할 뿐”이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복음주의의 대표적인 설교자나 그와 같은 모든 복음주의자들이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삶의 간증에 낯설 뿐이라니.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는가?

지방교회에 의하면 성도 안에 아들의 위격이 거하지 않으시면 아들이 거하시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리된 그리스도”(지방교회의 표현)는 진짜 그리스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지방교회에 의하면, 성도 안에 성령이 거하신다고 말하면 ‘위격의 분리를 주장하는 삼신론’이 다. 지방교회의 관점에서 볼 때는 성령의 위격과 아들의 위격과 아버지의 위격이 다 함께 거하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격의 분리’를 주장하는 ‘삼신론 이단’이 된다. 그러나 상호내주론(mutual indwelling)을 믿는 정통 신학자들은 결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삼위의 공간적 상호거주를 믿지 않으면 ‘위격의 분리’를 주장하는 ‘삼신론 이단’이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삼위의 본질적 상호내주’를 믿는 정통 삼위일체론을, 지방교회처럼, ‘삼신론 이단’으로 결코 정죄하지 않는다! 이것이 필자가 지방교회의 가르침을 ‘이단적인 상호내주론’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정통 삼위일체론에 의하면, 성도 안에 아들이 성령에 의해 (본질상) 거주하시면 아들이 성도 안에 (실제로) 거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질은 곧 실제이기 때문이다. 본질상 거주는 대리적 거주가 아니다. “대리된 그리스도”라는 말은 지방교회가 창안해 낸 불법적 용어인 것이다. 성령은 (본질상) 그리스도이시다. 성령은 또한 (본질상) 그리스도와 분리되실 수 없다. 왜냐하면 한 본질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령이 계시는 곳에 (본질상) 그리스도도 함께 계신다. 그래서 성령의 내주는 곧 (본질상) 그리스도의 내주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령은 곧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곧 성령이시다. 이런 의미에서 성도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곧 그리스도이시다.

‘한 본질 삼위’의 개념(정통 삼위일체론)에는 ‘위격들의 분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방교회가 정통 삼위일체론을 비판할 때 항상 사용하는 용어인 ‘위격들의 분리’라는 말은 지방교회의 ‘이단적인 상호내주론’에 의해 제조된 불법적인 공격 무기인 것이다. 지방교회는 자신들의 ‘이단적인 상호내주론’을 따르지 않는 정통 삼위일체론자들을 ‘삼신론 이단자들’로 정죄한다. 그러나 정통 삼위일체론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따라서 성경과 정통 삼위일체론을 이단으로 정죄한 지방교회는 이단이 될 수밖에 없다.

어거스틴의 교리에 대한 아전인수적 해석

지방교회: “그들은 각각 자체가 무한하시다. 그래서 하나 하나가 다른 하나 하나 안에 계시며, 모든 이 안에 계신다. 또 모든 이가 모든 이 안에 계시며, 모든 이가 한 이 안에 계신다(…So both are in each, and all in each… and all in all』(어거스틴, On the Trinity(VI), p.103).

반박: 어거스틴의 말은 ‘삼위의 한 본질 개념’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어거스틴이 지방교회와 같은 ‘이단적인 상호내주론’을 신봉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지방교회는 그 증거를 제시함이 없이 어거스틴을 제멋대로 해석한다. 지방교회여, 어거스틴이 지방교회와 같은 ‘이단적인 상호내주론’을 신봉했다는 확실한 물증을 제시하라!

존 칼빈의 교리에 대한 아전인수적 해석

지방교회: 존 칼빈: “성부는 전적으로 성자 안에 있고 성자는 전적으로 성부 안에 있다.”

반박: 물론 이 말은 성부와 성자의 ‘본질적인 연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이 지방교회가 말한 이단적인 주장들을 단 하나라도 말한 적이 있었는가? 지방교회여, 대답해 보라. 칼빈의 글에서 찾은 구체적 물증을 제시해 보라!

스코트 호렐의 진술에 대한 명백한 교리 사기

지방교회: 스코트 호렐: “말하자면 하나님의 각 위는 어떤 의미에서, 각자의 충만한 위격을 감소시킴이 없이 상호 내주하신다.”

반박: 여기서 호렐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상호내주론’이 무엇인지 설명한 것이지 자신의 주장을 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이것을 마치 호렐 자신이 주장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 것은 지방교회의 명백한 교리 사기이다! 호렐의 말은 가이슬러와 로즈에 의해 인용되었다. 지방교회는 심지어 자신의 신학적 비판자들의 말까지 인용하고 왜곡하여 교리 사기를 하고 있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교리 사기꾼들이 아닐 수 없다! 호렐이 쓴 글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댈러스 신학대학원의 한 복음주의적인 신학자는 최근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했다. “동방정교의 전통에 속한 많은 사람들과 서방교회 안의 점증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삼위일체의 통일성은 페리코레시스, 즉 신적인 각 위격이 다른 위격 안에 내주하심(the inner habitation or coinherence of each divine person in the other),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각 위는 어떤 의미에서 각자의 충만한 위격을 감소시킴이 없이 상호 내주하신다(That is, each member of the Godhead in some sense indwells the other, without diminishing the full personhood of each.). 그렇다면 하나님의 본질적 통일성(essential unity)은 신적 속성의 내적인 동등함과 상호 내주(mutual indwelling)에서 오는 강렬한 인격적 통일성(personal unity)에서 발견된다”(Scott Horrell, The Self-Giving Triune God, www.bible.org).

로레인 뵈트너의 진술에 대한 교리 사기

지방교회: 로레인 뵈트너: “주기도문에서…‘아버지’라는 단어는…배타적으로 첫째 위격만을 가리키지 않고, 한 하나님인 세 위격들을 가리킨다.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반박: 지방교회는 저자들의 용어까지 제멋대로 바꾸어 번역을 하며 속인다. 독자들은 지방교회의 번역을 결코 믿어서는 안 된다! 하나하나 뒤집어 보아야 한다. 뵈트너는 ‘정통 교회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었지 ‘지방교회의 삼일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필자의 다음과 같은 번역과 대조해 보라. “‘아버지’라는 말이 우리의 기도에 사용될 때 . . . 이것은 삼위일체의 제1위격을 독점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 하나님으로서의 삼위를 언급하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Loraine Boettner, Studies in Theology, p. 107).

여기서 핵심 구절은 이것이다. “한 하나님으로서의 삼위”를 말한다. 이 말은 ‘삼위는 (본질상) 한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이다. 삼위가 ‘아버지’이시라는 말은 ‘제2위격(아들)과 제3위격(성령)이 제1위격(아버지)도 된다는 말’(지방교회의 이단 교리)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삼위는 한 하나님으로서, 즉 삼위는 동일 본질을 소유하신 분으로서, 우리의 아버지이시라는 말이다. 달리 말해서 삼위는 본질상 한 분이시므로 성부가 아버지이시면, 아들도 아버지이시요, 성령도 아버지이시라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성자가 믿는 자들의 친구이시면(요 15:15), 아버지도 친구이시고(약 2:23), 성령도 친구이시라(요 14:16)는 말이다. 정통 신학자 뵈트너를 지방교회의 이단 교리 신봉자로 만들어 놓은 지방교회는 후안무치한 교리 사기꾼들이다!

분리된 위격을 주장하는 이단 교리

지방교회: 이와 달리 노먼 가이슬러와 김홍기 목사는 ‘세 위격들 간의 상호내재’(요14:11)를 “지방 교회의 이단적 상호내재론”으로 애써 폄하하고, ‘세 분리된’ 위격들’[을] 강조하면서 그 ‘각각’이 ‘완전한 하나님’이시라고 말함으로써 사실상 “세 하나님들”(three God)을 주장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반박: 여기 ‘세 분리된 위격들’이라는 말은 다시 강조하거니와, 지방교회의 이단 사상을 명백히 보여준다! 본질적으로 하나이신,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삼위를 믿는 정통 삼위일체론자들을 “세 하나님들”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세 하나님들”을 믿는 삼신론은 삼위의 본질적 하나됨을 부정하는 자들이나 혹은 ‘삼위 삼본질’을 주장하는 자들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지방교회의 위와 같은 주장은 비성경적이고 비논리적일 뿐 아니라 명백한 교리 사기이다.

   
▲ 출처: (Norman Geisler, Systematic Theology, Vol. 2: God, Creation, p. 298)

어거스틴의 가르침에 대한 아전인수적 해석

지방교회: 즉 이들은 어거스틴이 고백한 “all in each” 대신, 두 위격들이 배제된 “제 3격 성령만”의 내주를 외침으로써 스스로 정통 삼위일체론자인 어거스틴과도 다름을 자백하고 있다.

반박: 어거스틴이 말한 “all in each”는 본질적인 연합을 말하는 것이다. 즉 성도 안에 성령이 거하시면 (본질상) 성부와 성자도 함께 거하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삼위는 한 본질이시고, 한 본질은 한 존재이시기 때문이다.

삼위는 한 인격이며 또한 세 인격이라는 모순된 교리

지방교회: 김목사는 자신의 첫글에서 위트니스 리가 “그 셋은 항상 동시 존재하며 상호내재한다. 한 분이 이곳에 있을 때는 셋 모두 이곳에 있다”라고 한 말도 소개했다. 그렇다면 ‘상호내재하시는 셋’을 말하는 사람을 ‘일위 일체’를 말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비양심적인 거짓 참소일 뿐이다.

반박: 상호내재하시는 셋’을 말하고는 왜 ‘삼위는 한 인격’이라고 말을 바꾸는가? ‘경륜적 삼위일체 안에서 한 인격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라는 지방교회의 변명에 대하여는 이미 충분히 그 모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한 번 더 언급한다면,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는 ‘아버지를 보내신 아들’이 될 수 없다. 성경은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셨다고 말씀하시지 아들이 아버지를 보내셨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지방교회가 말하는 것처럼, 경륜적으로 아버지가 아들이고 아들이 아버지라면 위와 같은 모순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삼위의 구별에 대한 모순된 교리

지방교회: 지방 교회측은 삼위의 구별을 굳게 믿는다. 예를 들어 예정과 선택은 성부에게, 구속은 성자에게, 인침과 보증은 성령께만 돌려지는 속성이며 이는 결코 뒤섞일 수 없다(엡1장).

반박: 지방교회는 경륜적 삼위일체에 있어서 아들이 아버지이고, 아들이 성령이시라고 주장한다. 지방교회의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적용해 보면, 삼위의 경륜(역사, 활동, 기능)에 있어서 성자가 예정과 선택을 하셨고, 성령이 구속하셨으며, 성부가 인침과 보증을 했다는 말이 된다. 이처럼 아무리 말을 요리조리 돌려 해보아도 결국 자신의 말에 스스로 얽매이는 것이다. 이것이 이단 교리의 실상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관한 비정통 교리

지방교회: 3) 제 2격만 성육신 했음에도 “하나님 전부, 삼일 하나님이 육체가 되셨다”고 한다는 비판에 대하여 지방 교회측도 제 2격이 성육신의 주체이심을 인정한다(갈4:4). 그러나 그 성자 하나님은 1/3 하나님이 아니라 ‘삼위전체’이시라는 것이다.

반박: 지방교회는 어거스틴의 교리를 제멋대로 사용해서 자신들의 비성경적인 교리들을 뒷받침하곤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육신 교리에 있어서 어거스틴의 교리는 지방교회의 교리와 정반대이다. 아래는 이에 관한 서철원 교수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일체를 강조하여 삼위일체가 다 함께 일한다고 하여도 위격들에게 고유한 사역을 배정하였다. 즉 삼위일체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셔서 본디오 빌라도 아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장사되고 삼일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올리우신 것이 아니라, 오직 성자가 그렇게 하셨다. 다시 삼위일체가 비둘기의 형체로 세례 받는 예수께 오신 것도 아니고, 주의 승천 후 오순절 날에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과 같은 소리가 있을 때, 삼위일체가 불의 혀같이 갈라짐으로 그들 각자 위에 오신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이 오셨다. 또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말한 것이나, 내가 이것을 영화롭게 하였고 다시 이것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 삼위일체가 말한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말씀하셨다(서철원, 교리사, 403).

해명과 수정

필자는 지난 글(#10: 마틴 로이드 존스와 워치만 니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한 가지 문장[(이단적인 지방교회의 상호내주론의 관점에서 볼 때)]을 부주의함으로 빠뜨렸다. 아래는 이 문장이 빠졌을 때와 들어 있을 때를 비교한 것이다.

오류가 없는 문장: 결국 이 말은 (이단적인 지방교회의 상호내주론의 관점에서 볼 때) ‘위격들의 공간적 분리’를 묘사한 성경의 진술을 삼신론으로 정죄한 것이 된다.

오류가 있는 문장: 결국 이 말은 ‘위격들의 공간적 분리’를 묘사한 성경의 진술을 삼신론으로 정죄한 것이 된다.

물론 오류가 있는 문장은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 공개적으로 필자의 부주의함을 인정하고 수정을 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이 있다. 문장을 수정한다고 해서 필자의 신학적 입장이 바뀌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부주의함으로 빠진 문장[(이단적인 지방교회의 상호내주론의 관점에서 볼 때)]이 들어가야 필자의 신학적 입장이 정확하게 드러난다. 수정을 함으로 해당 단락에 나타난 필자의 신학적 입장과 수정된 문장이 완벽한 일치를 이루게 된다.

‘위격들의 공간적 분리’에 대한 필자의 신학적 입장은 이미 위에서 충분히 설명을 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재론하지 않기로 한다. 그 대신 수정된 문장이 들어 있는 단락 전체를 여기 인용하도록 한다. [아래의 단락의 전후 단락을 살펴 보기 원하는 독자들은 필자의 글(#9: 이단의 본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지방교회)을 참조하기 바람]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다섯 번째 진술만을 다루기로 한다. 이 진술은 지방교회의 이단 교리를 기초로 한 것으로 가이슬러 박사와 필자의 정통신학을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새빨간 교리 사기’를 한 것이다. 필자는 거듭해서 ‘위격상 구별된 삼위와 본질상 분리될 수 없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믿음을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일관성 있게 주장해 왔다! 우리는 위의 진술에서 ‘분리된 세 하나님들’이라는 말에서 명백한 이단 사상(異端思想)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지방교회가 말하는 ‘분리된 세 하나님들’이라는 말은 ‘공간적으로 분리된 세 위격들’이라는 말이다(예: 아버지와 성령은 하늘에 계시고 아들 홀로 이 땅에 오심). 달리 말하면 여기서 말하는 ‘분리된 세 하나님들’ 혹은 ‘분리된 세 위격들’은 ‘본질적으로 분리된 세 위격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단(異端)적인 지방교회의 상호내주론에 따른 ‘공간적으로 분리된 세 위격들’을 말한다. 결국 지방교회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 본질로서의 불가분리(不可分離)한 삼위의 하나님을 믿는다(정통 삼위일체론) 해도 ‘지방교회의 이단적인 상호내주론’(삼위가 상호간에 공동 거주하시며 그들의 활동들 안에서 서로 너무 어우러져서 삼위일체의 한 구성원은 다른 구성원으로 일컬어짐으로 한 인격으로 간주됨)을 믿지 않으면 ‘분리된 삼위’를 믿는 것이며, 이것은 곧 삼신론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삼위의 하나됨은 ‘삼위의 동일 본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삼위의 상호 공동거주(삼위의 상호내주)’에 있다는 말이 된다. 달리 말해서 이 말은 지방교회가 (정통 삼위일체론이 주장하는) ‘삼위의 본질상 하나됨’을 부정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결국 이 말은 (이단적인 지방교회의 상호내주론의 관점에서 볼 때) ‘위격들의 공간적 분리’를 묘사한 성경의 진술을 삼신론으로 정죄한 것이 된다. 그러면 이 같은 지방교회의 이단적 주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다음과 같은 위트니스 리의 주장에 그 단서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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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홍기 목사 소개

미국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철학박사(Ph.D.)
미국 탈봇신학대학원(Talbot School of Theology) 목회학 석사 및 목회학 박사(M.Div., D.Min.)
글로벌기독교이단연구원장
교회부흥성장연구원장
밴쿠버필그림교회 담임

WWW.21CHURCH.COM (신천지 관련 동영상 설교 63편, 지방교회 관련 동영상 설교 4편, 여러 이단 관련 동영상 설교가 유투브에 게시됨)

 

     관련기사
· 정통 삼위일체론을 삼신론으로 정죄한 지방교회· [ 반론 ① ] 지방 교회측이 김홍기 목사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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