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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본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지방교회
[ 이단연구 / 김홍기 ] 지방교회(위트니스 리) 교리 비판 ⑨
2016년 04월 12일 (화) 14:42:25 김홍기 목사 yesusarang@shaw.ca

김홍기 목사 / 밴쿠버필그림교회 담임, 글로벌기독교이단연구원장

   
▲ 김홍기 목사

지방교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인이었던 워치만 니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많은 이단 연구가들은 이러한 주장에 있어서 일치한다. 예를 들어 한국교회연합이 펴낸 이단사이비예방백서에서 작성자들은 “지방교회의 창시자 워치만 니”라고 말한다(331쪽). 또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가 펴낸 이단사이비연구보고집에서 집필자들은 “지방교회는 워치만 니로부터 시작되었으며”(91쪽)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단연구가인 서춘웅 목사도 “지방교회의 창시자는 워치만 니”(교회와 이단, 555)라고 말한다. 이뿐 아니라 지방교회의 열혈 옹호자인 엘리옷 밀러 역시 지방교회가 워치만 니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Eliott Miller, We Were Wrong, 10).

많은 이단 연구가들은 워치만 니가 지방교회의 창시자라는 점에 있어서 일치하지만, 니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서로 엇갈린다. 예를 들어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의 이단사이비연구보고집의 저자들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저서 ... 사이비성이 농후하므로”(92쪽)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서춘웅은 “지방교회는 워치만 니가 시작했는데 그에게서는 특별한 교리적 탈선을 엿볼 수 없었다”(서춘웅, 교회와 이단, 566)라고 말한다. 그러나 워치만 니에게서 이단성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 서춘웅은 지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적 삼위일체,” 즉 이단 교리(異端 敎理)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지방교회의 이런 이단 교리는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는가? 서춘웅은 이렇게 답한다. “그의 사후 위트니스 리가 그의 후계자가 되면서 점차 전통적인 기독교의 교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Ibid., 566). 즉 지방교회의 삼위일체 이단 교리는 위트니스 리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리는 자신의 양태론 이단 교리가 니의 가르침에 기초하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확언한다.

그[워치만 니]는 17절에 있는 ‘그’(성령)는 18절에 있는 ‘나’(주)인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언급했다. ... 워치만 니 형제는 찬송가 490장 5절에서 ‘주님, 당신은 전에 아버지로 칭함을 받으셨지만, 지금은 성령으로 칭함을 받으신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워치만 니는 그의 찬송에서 주님을 성령뿐만 아니라 아버지로도 칭했다.”(Witness Lee, Concerning the Triune God—the Father, the Son, and the Spirit, Chapter 1, Section 10)

리는 여기서 자신의 삼위일체론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워치만 니의 것이라고 확고하게 주장한다. 리의 주장에 의하면, 리의 삼위일체론이 정통이라면 워치만 니의 삼위일체론은 정통이 되고, 이와 반대로 리의 삼위일체론이 이단이라면 워치만 니의 삼위일체론은 이단이 된다. 서춘웅에 의하면 지방교회의 삼위일체론, 즉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론은 이단 교리(異端 敎理)인 “양태론적 삼위일체”이다. 그러나 리에 의하면 그의 “양태론적 삼위일체”는 워치만 니의 것이다. 그런데 워치만 니는, 위의 인용문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동일시하면서 이것이 본질적인 의미에서 그렇다고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워치만 니는 구별된 삼위가 아닌 구별되지 않은 삼위, 즉 ‘한 위격의 하나님’을 신봉하는 ‘일위일체론,’ 달리 말하면 ‘양태론자’였다는 비판을 결코 비켜갈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니는 ‘지방교회의 양태론 이단교리(異端 敎理)의 창시자라’는 혐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서춘웅은 지방교회의 “양태론적 삼위일체”에 대한 책임을 리에게 묻지만, 정작 당사자인 리는 자신의 삼위일체론이 워치만 니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워치만 니에 관한 평가는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서춘웅처럼 워치만 니에게서 “특별한 교리적 탈선”을 보지 못한다(서춘웅의 자료에는 필자가 위에서 인용한 자료와 같은 것이 없음). 그리고 워치만 니에 대한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의 관대한 평가는, 이단연구가인 서춘웅의 지방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는 달리, 지방교회에 대한 우호적인 평가로 이어진다. 그러나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동일시할 수 없는 것처럼,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에 의해 형성된) 현재의 지방교회를 동일시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워치만 니를 통해서 (현재의) 지방교회를 보면 지방교회의 실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지방교회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들의 현재의 적나라한 모습을 봐야 한다. 그러면 지방교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그것은 지방교회의 현재의 말과 행동, 특히 그들이 그들의 비판자들과 더불어 치열한 토론을 할 때 가장 잘 드러난다.

지방교회와 더불어 신문 지상이나 웹 사이트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토론을 벌였던 사람들은 한국인들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토론은 거의 20여 년 전에 있었다.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서 지방교회가 토론할 때 어떤 말을 했는지 거의 모른다. 그러나 지방교회가 지상토론을 하며 남겼던 말들과 그들이 현재 하고 있는 말들을 잘 살펴보면 그들의 일그러지고 거짓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가운데 가장 추한 모습은 실제로 명백한 ‘교리 사기’를 공공연하게 반복해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를 악용한 지방교회의 교리 사기

필자는 지난 글(‘1,650억을 요구한 지방교회의 참담한 패소’)에서 실례를 들어서 지방교회의 ‘교리 사기’를 폭로하고 다음과 같이 강력히 비판했다.

마틴 로이드 존스나 빌리 그래엄 같은 정통 설교자들이 마치 일위일체를 주장하는 것처럼 거짓으로 꾸민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나 그래엄 같은 정통 삼위일체론자들이 하나님을 한 인격(a person)이라고 지칭한 것은 ‘일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지, 정, 의를 소유하신 한 ‘인격적인 분’(a personal being)으로 묘사한 것이다(이에 관해서는 이후의 글에서 자세히 다룰 것임). 이것은 그들의 진술이 들어 있는 문맥을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David Martyn Lloyd-Jones, God the Father, God the Son, 55-6).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이드 존스나 빌리 그래엄 같은 정통 설교자들을 마치 ‘일위’를 주장하는 양태론자들인 것처럼 둔갑시켜 놓은 지방교회의 행위는 확실한 ‘교리 사기’이고, ‘학문적인 범죄’인 것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또한 논의의 진전을 위하여, 이 글에서는 마틴 로이드 존스의 견해를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그러나 여기서 먼저 한 가지 분명히 지적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로이드 존스가 사용한 영어 표현(God is a person.)은 우리 말로 번역할 때 ‘하나님은 한 인격이시다’라고 번역하기보다는 ‘하나님은 인격적 속성을 가지신 분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우리 말의 특성상 더 자연스럽고, 신학적으로 오해의 소지를 없애며, 저자의 의도를 더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래와 같은 저자의 말을 볼 때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본질적인 존재의 마지막 특징으로 데려가는데, 그것은 인격인 것이다(That, then, brings us to the last characteristic of God’s essential being and that is personality). 실제적인 용어[인격-pesonality]는 성경에서 사용되지 않았지만 성경 전체에 함축되어 있으며 나는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인격(personality)은 무엇을 뜻하는가? 인격은 마음과 지성과 의지와 이성과 개성과 자아 의식과 자기 결정이 있는 곳에 존재한다(Personality exists where there is mind, intelligence, will, reason, individuality, self-consciousness and self-determination.). 이러한 것들이 있는 곳에 인격(personality)이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인격적인 속성을 가지신 분이다(God is a person.)라고 주장한다. (David Martyn Lloyd-Jones, God the Father, God the Son, 55) (밑줄 강조는 필자의 것)

위의 인용문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로이드 존스는 여기서 삼위일체의 위격(Person)을 논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삼위’(three Persons)이신가 혹은 ‘일위’(one Person)이신가를 논한 것이 결코 아니다! 삼위일체의 위격에 대한 논의는 이후에 나온다. 여기서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속성을 가지신 분’(“a personal being”)이시라는 것을 표명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위격’이 아닌 하나님의 ‘본성’(혹은 본질)과 관련된 말이다. 로이드 존스는 위의 진술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본질적인 존재의 마지막 특징으로 데려오는데, 그것은 인격인 것이다”라고 말함으로, ‘하나님은 인격적인 속성을 가지신 분이다’(God is a person.)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위격’과 관련된 표현이 아닌 하나님의 ‘본성’과 관련된 표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지성과 의지를 가리키는 ‘인격(personality)’은 하나님과 관련하여 쓰여질 때 하나님의 본성을 가리킨다. 아우그스투스 스트롱은 인격(personality)을 하나님의 절대적(혹은 내재적) 속성으로 분류한다(Paul Enns, The Moody Handbook of Theology, 190). 이와 달리, 루이스 벌코프는 인격을 하나님의 전달되는(communicable) 속성으로 여긴다(Ibid., 190). 한편 밀리아드 에릭슨은 인격을 하나님의 위대함(greatness)의 속성에 편입시킨다(Ibid.,190). 그러나 신학자들이 인격을 하나님의 어떤 속성(attributes)으로 분류하든지 속성은 하나님의 본성을 표현한 것이고, 그래서 인격(personality)은 하나님의 본성의 일부인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하나님은 인격적인 속성을 가지신 분이다”(God is a person.)라고 말한 것이다. 다음의 진술은 이러한 관점을 더 분명하게 한다.

성경은 하나님은 인격적 속성을 가지신 분이다(God is a person.)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배의 어떤 참된 의미에도, 그리고 우리 자신과 세상에 관하여 우리가 자신감을 가지는 데에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면 하나님은 인격적 속성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성경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간접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은 창조에서 그분 자신과 그분의 마음과 그분의 감성(sensibility)의 흔적을 남기셨다. 당신은 거기에서 그분의 마음과 그분의 뜻과 그분의 통제(ordering)를 본다. . . .  그러나 하나님은 인격적인 속성을 가지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수많은 직접적인 증거가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가 항상 인격적인 방법으로 묘사되고 있는가를 주목해 본 적이 없는가? 우리가 고려했던 하나님의 이름을 취해 보라. ‘나는 … 이다’는 인격적인 진술이다. ‘나는 . . . 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는 한 인격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가 그 자신에 관해 이런 방법으로 말씀하신다고 선언하신다(God says that He speaks of Himself in this manner.). 하나님의 각 대표자들은 하나님은 단순히 무의식적인 힘이 아니라 인격적인 속성을 가지신 분(God is a person.)이라고 선언했다. . . . 이뿐 아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사람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또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남자들과 여자들을 특별히 다루실 수 있다는 것과 특별한 사람들을 택하시고 축복하신다는 것을 가르친다. 한 번 더, 이 모든 것은 인격적인 것이다(all that is personal).(Ibid., 55-6)

위의 인용문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로이드 존스가 사용한 표현(God is a person.)은 하나님의 본성과 관련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위격(삼위 혹은 일위)과 관련해서 사용한 것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관련하여 인격(personality)을 말할 때는, 위의 정통 신학자들의 주장과 같이, 하나님의 속성(혹은 본성)의 일부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이드 존스의 표현을 하나님의 위격(삼위 혹은 일위)과 관련지어 말하는 것은 저자의 본래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교회는 이 표현을 위격(삼위 혹은 일위)과 결부시킨다. 지난 해 미주의 크리스찬 투데이를 통해서 진행된 필자와의 지상토론에서 지방교회가 제출한 글(‘지방 교회측은 정통이고 성경적이다’)에는 다음과 같은 로이드 존스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한 인격이시라고 말한다”(Martyn Lloyd-Jones, Great Doctrines of the Bible, pp. 55-56). 그리고 곧 이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필자는 위 정통 신학자들[마틴 로이드 존스를 포함하여]의 인용문에 언급된 ‘한 인격’이라는 말이 ‘비 인격체’와 대조되는 표현이며, 신약에서 한번 사용된 ‘데오테스’(2320)(골2:9) 즉 ‘신격’(神格)의 의미로 이해한다. 따라서 이것은 ‘삼위는 세 인격들이시다’라는 말과 충돌하지 않는다. “단일한 신격 안에 삼위가 계시는데...”라고 한 웨스트민스터 신조 3장 2절에서, 우리는 두 개념의 조화를 볼 수 있다(박윤선,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 영음사, 23쪽). 김 목사께서는 정통 신학자들이 설명한 이러한 ‘신격’ 개념을 어떻게 보시는가?

위의 인용문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지방교회는 로이드 존스의 표현(God is a person.)을 하나님의 본성이 아닌 하나님의 위격(삼위 혹은 일위)과 관련하여 논하고 있다. 로이드 존스가 말한 ‘한 인격’(a person)이라는 표현을 ‘신격’(神格) 혹은 ‘단일한 신격’과 동일시하고 있다. 또한 한 인격(a person)을 다음과 같이 ‘삼위’와 비교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하나님은 ‘한 인격’이시다는 말]은 ‘삼위는 세 인격들이시다’라는 말과 충돌하지 않는다.” 지방교회가 로이드 존스의 표현(a person)을 하나님의 본질이 아닌 하나님의 위격과 관련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다음의 진술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로이드 존스나 빌리 그래엄이 “하나님을 지, 정, 의를 소유하신 ‘인격적인 분’으로 말할 때” 그 하나님은 삼위 중 어느 한 위격(1/3)만을 가리키는 용어였는가? 아니면 삼위 전체가 그렇다는 말인가? 만일 전자라면 그들은 양태론자가 아니라 삼신론자가 되어야 옳다. 만일 후자라면 진리상 전적으로 옳은 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지방 교회측은 후자의 의미로 그들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문제가 있는가?(#5 반론)

지방교회는 로이드 존스가 말한 ‘a person’이라는 표현을, 저자의 본래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본질’이 아닌 ‘위격’의 수(數)와 관련시켜 놓은 후에, 필자에게 이렇게 질문까지 한다. “김홍기 목사께서는 정통 신학자들이 설명한 이러한 ‘신격’ 개념을 어떻게 보시는가?” 아니, 도대체 로이드 존스가 ‘신격’ 개념을 말한 적이 있었던가? 달리 말하면, 그가 하나님은 ‘한 위격’ 혹은 ‘한 신격’을 가진 분이시라고 말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말이다! 로이드 존스 혹은 빌리 그래엄 혹은 코르넬리우스 반 틸이 말한 적이 결코 없는 것, 즉 ‘신격’이라는 용어와 개념이라는 것을 제멋대로 만들어 놓고 이 정통 신학자들의 견해인 ‘신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이런 어리석은 질문,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런 ‘어리석고 간교하며 유치한 교리 사기’에 대해서 어떻게 응해야 하는가? 바른 대응을 위해서 우리는 먼저 지방교회가 여기서 말하는 ‘신격’이 무엇인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지방교회는 신격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우리는 먼저  골로새서 2장 9절에 단 한번 언급된 ‘신격’(神格)(데오테스, 2320)이 로마서 1장 20절이 말하는 신성(神性)(데이오테스, 2305)과 전혀 다른 단어임을 볼 필요가 있다. 즉 신격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6:4)라고 할 때의 '오직 하나’에 해당되며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전체가 포함된 개념인 반면, 신성은 그 하나님의 본성을 가리킨다. (#5 반론)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방교회는 골 2:9(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개역개정)에 나오는 ‘신성’(神性, 헬라어로 ‘세오테스,’ 영어로 Godhead 혹은 Deity)을 신격(神格)이라고 고쳐서 부른다(이것은 지방교회의 성경인 ‘회복역’에 나와 있는 것임). 그리고 여기 골 2:9에 나오는 ‘신성’ (神性-세오테스)은 롬 1:20에 나오는 신성(神性)과 “전혀 다른 단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성경적으로 타당한 말인가? 정말 이것이 정통적인 해석인가? 이 질문에 적절히 답하려면 먼저 ‘세오테스’라는 단어의 뜻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그러면 ‘세오테스’는 무엇을 뜻하는가?

사전을 찾아보면 ‘세오테스’는 deity(신성) 혹은 Godhead(하나님)라고 나와 있다. 그래서 어떤 영어 성경들(KJV, NKJV)은 ‘세오테스’를Godhead(하나님)로 번역했다. 그러면 Godhead(하나님)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Merriam-Webster 영어 사전을 보면 Godhead를 “divine nature or essence”(신적인 본성 혹은 본질)라고 정의한다. 즉 영어로 Godhead는 ‘하나님의 본성 혹은 본질’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 말로 옮기면 ‘신성’(神性)이라 표현하는 것이 합당하다. 따라서 개역개정이 번역한 ‘신성’ (神性)이라는 표현은 원어의 의미를 잘 살린 좋은 번역이다. 또 다른 영어 성경들(NIV, NASB)은 ‘세오테스’를 Deity로 번역을 했다. 그러면 deity는 무엇을 뜻하는가? Merriam-Webster에 따르면, deity는 “essential nature of a god”(신적인 본성)이다. 이것을 우리 말로 번역하면 ‘신성’(神性)이 적절하다.

그러면 성경의 주석가들은 골 2:9의 ‘세오테스’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탁월한 강해설교자인 존 맥아더 목사는 골 2:9을 강해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신성(Deity)의 일부가 아닌 모든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고 주장한다. ... 신성(Deity)은 신적인 본성(divine nature)을 강조하는 말이다”(John MacArthur, WORDsearch7 CD-Rom). 따라서 맥아더에게 있어서 ‘세오테스’는 신성(神性)을 의미한다. 또한 신약성경 학자인 컬티스 본(Curtis Vaughan)도 ‘세오테스’를 Deity, 즉 신성(神性)으로 이해한다. 그에 따르면, “이 말은 추상적인 용어로서 신적인 특징들과 속성들을 뜻하는 것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완전한, 내적인 본질(inner essence)을 의미한다”(Curtis Vaughan, Expositor’s Bible Commentary, 828). 이뿐 아니라, 또 다른 신약성경 학자인 에드워드 루스티오(Edward R. Roustio)도 ‘세오테스’를 Deity(신성)으로 이해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신성(deity)의 모든 속성과 본질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Edward Roustio, Liberty Bible Commentary, 2461).

그러면 이제 롬 1:20(“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에 나오는 ‘세이오테스’가 무엇인지를 알아볼 차례이다. 먼저 ‘세이오테스’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면 “divinity or divine nature’(신적인 본성)로 나온다. 어떤 영어 성경들(KJV, NKJV)은 이것을 “Godhead”(하나님)로 번역했는데, 이것은 신적인 본성 즉 신성(神性)을 의미한다. 또 다른 영어 성경들(NIV, NASB)은 이 말을 “divine nature”(신적인 본성)로 번역을 했는데, 이것 역시 신성(神性)을 뜻한다. 그리고 개역개정은 ‘세이오테스’를 “신성”(神性)으로 번역을 했다. 그러니까 위와 같은 성경의 번역자들에게는 골 2:9의 ‘세오테스’와 롬 1:20의 ‘세이오테스’는 완전히 동일한 것, 즉 신성(神性)인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 주석가들은 롬 1:20의 ‘세이오테스’(신성)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신약성경 학자인 에버렛 해리슨(Everett F. Harrison)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divine nature).’ 우리는 그의 사랑과 은혜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곳, 즉 성경과 특히 그의 아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요 1:14)를 쳐다보아야 한다”(Harrison, Expositor’s Bible Commentary, 527).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신적 본성이다. 따라서 해리슨은 ‘세이오테스’를 신성(神性)으로 이해한다. 존 맥아더 목사 역시 ‘세이오테스’를 신성(神性)으로 이해한다. 그는 롬 1:20을 강해하며 “친절함과 은혜로움 같은 하나님의 신적 본성이 반영되었다”라고 말한다. 맥아더는 여기서 하나님의 친절함과 은혜로움은 신적 본성, 즉 신성(神性)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인다. 따라서 맥아더는 ‘세이오테스’를 신성(神性)으로 이해한다 (John MacArthur, WORDsearch7 CD-Rom). 존 휘트머 교수 역시 ‘세이오테스’를 다음과 같이 신성으로 이해한다. “‘신적인 본성’으로 번역된 세이오테스라는 말은 신약에서 이곳에 단 한 번 나타나며 하나님을 하나님이 되게 만드는 속성들을 아우른다”(John A. Witmer,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442).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지명도가 가장 높은 성경들의 번역자들과 정통 신학자들은 골 2:9의 ‘세오테스’를 신성(神性), 즉 하나님의 본성 혹은 본질로 이해한다. 그러나 지방교회는 신성(神性)이 아니라 신격(神格)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신격은 “삼위 전체가 포함된”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8). 그리고 이런 말도 한다. “<세 위격 전체를 포함한 개념인 인격>(엄밀히 말하면, 신격(神格, 데오테스)”(#6, 밑줄 강조는 필자의 것). 이뿐 아니라 “하나님은 삼위 전체가 포함된 신격(골2:9) 개념에서는 ‘one Person’이라고 할 수 있다”(#8, 밑줄 강조는 필자의 것)고 말하기도 한다.

“세 위격 전체를 포함한 개념인 한 인격?” “삼위 전체가 포함된 한 신격?” 이런 표현들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정통신학이 삼위를 하나로 묶어서 ‘한 인격’ 혹은 ‘한 위격’ 혹은 ‘한 신격’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가? 정통신학이 삼위를 말하는 것은 성경이 삼위를 구별해서 말씀하기 때문이다. 어떤 조건 아래에서도 삼위가 혼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성경에 기초한 아타나시우스 신조의 경고이다. 위격상으로는 아버지는 아버지이시고, 아들은 아들이시며, 성령은 성령이시다. 달리 말하면 위격상 삼위는 다른 분이시다. 반면에 본질상으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하나이시다. 달리 말하면 본질상 삼위는 동일한 분이시다. 이와 같이 삼위를 아우르는 개념은 하나님의 ‘본성’이지, 한 인격 혹은 한 신격 개념이 아니다. “세 위격 전체를 포함한 개념”은 ‘한 본질’이지, ‘한 인격’ 혹은 ‘한 신격’이 아니다! 성경의 하나님을 ‘하나’로 표현하려면 한 인격의 하나님이 아닌 ‘한 본질의 하나님’으로 표현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서든 성경의 하나님과 관련하여 ‘하나’를 말하려면 ‘위격’이 아닌 ‘본질’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일위가 아닌 삼위’를 말씀하기 때문이다. 지방교회는 ‘겉으로는’ 삼위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일위를 주장한다. 그래서 필자는 지방교회가 실질적으로 일위일체론을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방교회는 분명히 ‘삼위일체론 이단’이다. 위에서 보는 표현들에 반영된 이단 사상(異端 思想)이 바로 그 명백한 증거인 것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위에 인용된 그의 진술에서 ‘God is a person.’(하나님은 인격적 속성을 가지신 분이다)을 지방교회가 위에서 말한 “삼위 전체가 포함된 한 신격’의 개념으로 말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로이드 존스는 ‘’삼위 전체가 포함된 한 본질 혹은 한 신성(神性)’의 개념으로 ‘God is a person’(하나님은 인격적 속성을 가지신 분)을 사용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의 본래의 의도를 표현하는 합당한 번역은 “하나님은 한 인격이시다’가 아닌 “하나님은 인격적 속성을 가지신 분’이 되어야 한다. 또한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본질 혹은 신성과 관련된 로이드 존스의 주장을 하나님의 위격에 관한 주장과 관련하여 논한 지방교회를 향한 필자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로이드 존스나 빌리 그래엄 같은 정통 설교자들을 마치 ‘일위’를 주장하는 양태론자들인 것처럼 둔갑시켜 놓은 지방교회의 행위는 확실한 ‘교리 사기’이고, ‘학문적인 범죄’인 것이다!” 이에 더하여, 지방교회가 이런 일을 거듭 자행한다면 ‘교리 전문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방교회는 이런 일을 지속적으로 한다. 그래서 지방교회에 대한 필자의 비판은 다음과 같이 한 수위 더 높아진다. 폐일언하고 지방교회의 필진은 ‘교리 전문 사기꾼들’이다! 독자들은 필자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확실한 물적 증거들을 지속되는 논의에서 분명히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악용한 지방교회의 교리 사기

이 주제를 위한 논의를 위해서 위에 인용한 지방교회의 진술을 아래와 같이 다시 인용하도록 한다.

필자는 위 정통 신학자들[마틴 로이드 존스를 포함하여]의 인용문에 언급된 ‘한 인격’이라는 말이 ‘비 인격체’와 대조되는 표현이며, 신약에서 한번 사용된 ‘데오테스’(2320)(골2:9) 즉 ‘신격’(神格)의 의미로 이해한다. 따라서 이것은 ‘삼위는 세 인격들이시다’라는 말과 충돌하지 않는다. ‘단일한 신격 안에 삼위가 계시는데...’라고 한 웨스트민스터 신조 3장 2절에서, 우리는 두 개념의 조화를 볼 수 있다(박윤선,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 영음사, 23쪽). 김 목사께서는 정통 신학자들이 설명한 이러한 ‘신격’ 개념을 어떻게 보시는가?

지방교회는 골 2:9에 나오는 헬라어 ‘세오테스’(영어 번역은Godhead 혹은 Deity)를 제멋대로 소위 신격(神格)이라는 단어로 번역을 해 놓은 후, 위의 인용문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웨스트민스터 신조 2장 3절(위에 3장 2절로 표기한 것은 오류임)에 있는 영어 표현(In the unity of Godhead)을 “단일한 신격 안에”라고 불법적으로 번역을 해놓았다. 그러나 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Godhead는 ‘하나님’ 혹은 ‘신성’으로 번역을 해야 옳다. 이것은 단어의 사전적인 뜻을 보아도 그렇고, 지명도가 높은 성경들의 번역자들과 정통 신학자들의 견해를 보아도 그렇다는 것을 이미 위에서 설명했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조의 영어 표현(Godhead)은 ‘하나님’으로 번역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 영어 사전들(Merriam-Webster 혹은 Oxford English Dictionary 등)은 Godhead를 “divine nature or essence”(신적인 본성 혹은 본질)라고 정의하기 때문에 Godhead(하나님)는 하나님의 본질과 관련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조의 2장 3절(In the unity of the Godhead there be three persons, of one substance, power, and eternity: God the Father, God the Son, and God the Holy Ghost)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나님의 통일성(혹은 단일성) 안에 한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을 가진 삼위가 계시니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시다.” 필자의 이러한 번역은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완역하여 PDF 파일로 인터넷에 게시해 놓은 김효성 목사(Ph.D.)의 번역과 그대로 일치한다. “하나님의 단일성 안에 한 본체와 능력과 영원성을 가진 세 인격들이 계시니,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지방교회는 이것을 “단일한 신격 안에 삼위가 계시는데...”라고 번역을 해놓았다. 이는 마치 삼위가, 지방교회가 함부로 주장하는 바처럼, ‘한 신격’ 혹은 ‘한 인격’ 안에 계시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조작을 해놓은 후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단일한 신격 안에 삼위가 계시는데. . .’ 라고 한 웨스트민스터 신조 3장 2절[2장 3절로 정정해야 함]에서, 우리는 두 개념[삼위와 일위]의 조화를 볼 수 있다(박윤선,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 영음사, 23쪽).” 지방교회의 이러한 글 쓰기 행태는 이중 교리 사기를 보여준다. 먼저 웨스트민스터 신조 2장 3절을 잘못된 번역을 통해 이단 교리(異端 敎理)로 둔갑시켜 놓은 후, 소위 ‘한 신격’ 혹은 ‘한 인격’ 안에 삼 위격들이 계시다는 지방교회의 이단 교리(異端 敎理)를 정통 신학자인 박윤선 박사가 인정하는 것처럼 조작을 해놓은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이중 교리 사기’인 것이다! 지방교회가 이런 후안무치한 교리 사기를 계속한다면 앞으로 이에 상응한 심판을 반드시 받게 될 것이다!


코르넬리우스 반 틸을 악용한 지방교회의 교리 사기

지방교회는 조직신학자인 코르넬리우스 반 틸도 소위 ‘a person(한 인격)’을 말했다고 주장하며 그들의 이단(異端)적인 ‘경륜적 양태론’을 지지하는 받침대로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반 틸이 과연 지방교회의 이단적인 개념과 동일한 의미로 ‘a person(한 인격)’이라는 말을 사용했는가? 반 틸의 다음과 같은 진술을 직접 살펴 보고 질문에 답변하도록 해본다.

여기서, 존재의 어느 다른 형태(any other form of being)와 비교해 볼 때, 그저 명확하게 하나가 아니라 수적으로 하나(numerically and not merely specifically one)이신 하나님은 이제 그 자신 안에서 특정한 그리고 수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 위격과 대조하여 하나님의 본질(essence)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한 분으로 말한다(We speak of God as a person.).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 안의 세 위격들에 관하여 말한다(yet we speak also of God of three persons in the Godhead.). 위격 사이를 구별하는 것이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들의 각각은 하나님의 존재와 동일시된다고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위격들 사이에 참된 구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삼위일체의 각 위격은 신성 자체에 관하여 완전하다고 말한다. 통일성(unity)과 복수(plurality)는 하나님 안에서 동일하게 근본적(ultimate)이다. 하나님의 위격들(the persons of the Godhead)은 상호간에 서로에 대하여 철저하시며, 그러므로 하나님의 본질에 관하여도 상호간에 서로에 대하여 철저하시다. 하나님은 하나의 의식을 가진 분이시다(a one-conscious being).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세 의식을 가진 존재이시다(a tri-conscious being).(Cornelius Van Til, An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Phillipsburg: P&R Publishing, 2007), 348. (밑줄 강조는 필자의 것)

위의 인용문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반 틸은 여기서 하나님의 (위격이 아닌) 본질(essence)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a person’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 반 틸이 사용한 표현(We speak of God as a person)을 저자의 본래의 의도를 따라 번역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한 인격으로 말한다’가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한 분으로 말한다’로 번역을 해야 마땅하다. 달리 말해서, 반 틸은 여기서 하나님의 본질(신성-神性)과 관련하여 ‘a person’을 사용했음으로 우리는 반 틸의 의도대로 ‘a person’을 ‘한 인격’이 아닌 ‘한 분’으로 번역하고 또한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반 틸은 정통 삼위일체론에 따라 하나님과 관련하여 ‘하나’라는 숫자를 말할 때 하나님의 본질을 말했고, ‘삼’이라는 숫자를 말할 때 하나님의 위격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지방교회(김바울)는 ‘지방 교회측은 정통이고 성경적이다’라는 글에서 이와는 정반대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하나님이 ‘한 동일 본성을 가지신다’는 의미로 설명한다. 그러나 에릭슨, 로이드 존스, 반 틸 같은 저명한 신학자들의 아래와 같은 언급들은 ‘본성’을 겨냥하여 ‘한 분’(one God)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왜 적절치 않은지를 알게 한다(예를 들어, 사람이라는 ‘동일 본질’을 가진 세 명은 ‘세 사람들’일 뿐임).

여기서 지방교회는 하나님과 관련하여 ‘하나’라는 수를 말할 때 하나님의 ‘본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는 정통 삼위일체론의 주장과는 정반대인 ‘비정통적인 주장’이다. 더 분명히 말하면 이는 ‘이단 사상’(異端 思想)이다. 그러면 지방교회는 하나님과 관련하여 ‘하나’라는 수를 말할 때 무엇을 가리킨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위격’인 것이다. 즉 하나님과 관련하여 ‘하나’라는 수를 말할 때는 하나님의 ‘본질’이 아닌 ‘위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통 삼위일체론과 정반대의 ‘이단 교리’(異端 敎理)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정통 교리는 ‘삼위와 한 본질’을 주장하고, 양태론 이단 교리(異端 敎理)는 ‘일위와 한 본질’을 주장한다. 지방교회는 하나님과 관련하여 ‘하나’라는 수를 말할 때, 즉 ‘한 분’이라고 표현할 때는 하나님의 ‘위격’을 가리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한 인격’(a person) 혹은 ‘한 신격’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지방교회는 ‘일위일체’를 말하는 이단인 것이다! 하나님과 관련하여 ‘하나’라는 수는 하나님의 ‘본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과 관련하여 ‘하나’라는 수를 하나님의 ‘위격’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하면, 지방교회처럼, 이단(異端)이 되는 것이다.

지방교회는, 하나님의 위격의 수(數)에 관한 논의를 하면서, 반 틸이 한 인격(a person)을 말했다고 주장한다. 아래는 지방교회가 반 틸의 진술을 번역해 놓은 것이다. 반 틸이 지방교회의 소위 ‘신격’이라는 용어나 개념을 사용했을 리가 만무한데, 지방교회는 반 틸의 진술을 제멋대로 ‘신격’이라는 단어로 번역해 놓고 반 틸이 마치 삼위의 하나님을 ‘한 위격’의 하나님으로 말한 것처럼 ‘교리 사기’를 하고 있다. 아래의 번역을 보면 마치 반 틸이 ‘삼위’의 하나님이 아닌 ‘한 위격’의 하나님을 말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아래의 글(‘지방 교회측은 정통이고 성경적이다)을 읽는 독자들은 그렇게 여길 것이고, 따라서 지방교회의 글에 의해서 감쪽같이 ‘교리 사기’를 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즉, 신격 전체가 한 인격이시다 라고 단언한다. ...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하나의 수적인 동일성(numerical identity)을 현시함을 신앙으로 간직 해야만 한다. 심지어 존재론적인 삼위일체 내에서 조차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숫자적으로 하나이시다 라고 주장해야 한다. (Cornelius Van Til, An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p. 229)

지방교회는 마틴 로이드 존스나 코르넬리우스 반 틸과 같은 정통 설교자와 신학자의 말한 의도를 정반대로 뒤집어 놓고 독자들과 한국교회 및 세계교회를 상대로 ‘명백한 교리 전문 사기’를 자행하고 있다. 이렇게 상습적으로 교리 사기를 하는 자들과 정식으로 지상토론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을 상대해 주는 것은 이들이 자격 있는 논객이기 때문이 결코 아니라 반론권이라는 법을 존중하기 때문이며 지방교회의 이단 교리를 확실히 파헤쳐서 독자들과 한국교회의 이해를 돕고자 하기 때문이다.

정통 신학자들과 지명도가 높은 성경 번역본들은 한결같이 골 2:9의 ‘세오테스’를 신성, 즉 하나님의 본성(혹은 본질)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본성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영원불변하심, 하나님의 지성과 의지와 같은 하나님의 인격성(personality)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롬 1:20에 나오는 ‘세이오테스’(신성-神性)와 완전히 동일한 개념이다.

그런데 지방교회는 “골로새서 2장 9절에 단 한번 언급된 ‘신격’(神格)(데오테스, 2320)이 로마서 1장 20절이 말하는 신성(神性)(데이오테스, 2305)과 전혀 다른 단어”라고 제멋대로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정통 해석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성경이 뜻하는 바와 상반된다! 이것은 지방교회가 제멋대로 만들어 놓은 거짓된 교리인 것이다! 그러나 지방교회의 거짓된 주장과 달리, 골 2:9의 ‘세오테스’(신성)와 롬 1:20의 ‘세이오테스’(신성)는 완전히 동일한 단어이자 동일한 개념인 것이다.

지방교회의 이단 사상(異端 思想)은 다음과 같은 표현에도 나타나 있다. “즉 신격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6:4)라고 할 때의 '오직 하나’에 해당되며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전체가 포함된 개념인 반면, 신성은 그 하나님의 본성을 가리킨다”(#5). 그러면 왜 이것이 이단 사상(異端 思想)인가? 그 이유는 하나님과 관련하여 ‘하나’를 말할 때는 하나님의 본성을 가리키는 것인데, 지방교회는 하나님의 ‘위격’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표현된 ‘신격’은 앞서 ‘한 신격’ 혹은 ‘한 인격’과 동의어로 사용했고, “신격은 . . . ‘오직 하나’에 해당되며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전체가 포함된 개념”(#5 반론)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하나님과 관련하여 ‘하나’를 위격에 적용하면 이단(異端)이 된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는 삼위이시지만, 경륜적으로는 일위이시라는 주장은 성경의 주장이 아니라 지방교회의 주장이요, 정통 교리가 아니라 이단 교리(異端 敎理)인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라는 말씀에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아들과 성령은 구별된, 즉 다른 분이다. 아들이 떠나가시는 것이 성령이 떠나가시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 보내시는 ‘그’(성령)는 아들이 아니시다. 지방교회의 주장에 의하면 아들이 떠나가신 것이 아니라 ‘아들과 성령과 아버지’가 떠나가셨고(지방교회가 볼 때 아들과 성령과 아버지는 동일한 분임으로 또한 상호내주하심으로), 아들이 성령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아들과 성령과 아버지’가 ‘아들과 성령과 아버지’를 보내셨다(지방교회가 볼 때 아들과 성령과 아버지는 동일한 분임으로 또한 상호내주하심으로).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진술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지방교회의 이단 교리(異端 敎理)의 관점에서 본 왜곡된 진술이다.


정통 신학자들(찰스 핫지, 어거스틴, 로레인 뵈트너)을 악용한 교리 사기

지방교회는 정통 신학자들은 지방교회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경륜적 삼위일체’에서 삼위를 동일시한다고 다음과 같이 거짓되게 주장한다.

이들[가이슬러 박사와 김홍기 목사]은 정통 신학자들이 인정하는 ‘경륜적인 삼위일체론에서의 기능상의 동일시’(고후 3:17)를 양태론으로 오해한다. 이것은 위격을 동일시 한 사도 바울(고후 3:17)과 주 예수님 자신(요14:9-11)까지 양태론 이단이 되게 했다.”(#8 반론)

여기서 지방교회가 하려는 말은 이것이다. 즉 사도 바울(고후 3:17)과 예수님(요 14:9-11)은 위격을 동일시했는데(예: ‘주는 성령이시다’), 그것은 본질상이 아닌 기능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리고 정통 신학자들은 이 성경 구절들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가이슬러 박사와 김홍기 목사는 그렇게 이해하지 않음으로 바울과 예수님을 양태론 이단이 되게 만들었다. 따라서 지방교회는 실제로는 결국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바울과 예수님 및 지방교회와 정통 신학자들을 양태론 이단으로 만든 가이슬러 박사와 김홍기 목사는 비정통이요 이단이다. 물론 이것은 지방교회의 이단 교리(異端 敎理)에 기초해서 내린 지방교회의 ‘명백한 교리 사기’에 불과하다!

지방교회의 이런 유치하고 어리석으며 거짓된 말에는 ‘이단 사상’(異端 思想)과 ‘교리 사기’가 들어 있다. 바울과 예수님은 지방교회가 말하는 것처럼 기능상으로 위격을 동일시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울과 예수님은 아들과 아버지를 위격상 동일시하신 것이 아니라 본질상 동일시하신 것이다. 정통 신학자인 웨인 그루뎀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이러한 신학적 관점을 잘 설명해준다. “삼위일체 안의 구별된 삼위는 목적과 그들이 무엇을 생각할지에 관해서 하나이실 뿐 아니라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시며 그들의 본성에 있어서 하나이시다”(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238). 지방교회는 골 2:9과 요 14:11을 거론하면서 정통 신학자들이 이것을 위격의 동일시로 보았다고 ‘뻔뻔한 교리 사기’를 한다. 그러나 칼빈주의 정통 신학자인 로레인 뵈트너는 골 2:9(“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과 요 14:11(“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은 아버지와 아들이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심을 뜻한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삼위일체의 각 위격은 완전히 수적으로 동일한 본질(the numerically same substance) 소유하신다는 은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들에 의하여 입증된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 2:9).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 14:11).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고후 5:19). (Loraine Boettner, Studies in Theology, 108) (밑줄 강조는 필자의 것)

정통 신학자들은 삼위를 동일시하여 한 위격이라고 결코 표현하지 않는다. 따라서 삼위를 구별하지 않고 동일시하여 삼위를 ‘한 위격’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정통이며 명백한 이단 사상(異端 思想)이다. 지방교회가 주장하는 바처럼, 경륜적 혹은 기능적으로 볼 때 삼위를 동일시할 수 있으며,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한 위격’이라 말하는 것은 분명한 이단 사상(異端 思想)이다. 바울은 아들과 성령을 본질상 동일한 분으로 여긴 것이지(고후 3:17), 기능상 두 위격이 동일하다고 말한 것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도 아들과 아버지는 본질상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이지, 기능상 두 위격이 하나라고 결코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결국 지방교회 양태론자들은 그들의 이단 교리에 의해서 예수님과 사도 바울마저 양태론자로 둔갑시킨 셈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단 교리의 참담한 종착역이요 무서운 해악인 것이다.

정통 신학자인 웨인 그루뎀이나 로레인 뵈트너나 찰스 핫지는 지방교회가 말한 바와 같이 결코 주장하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지방교회는 정통 신학자들의 의도를 정반대로 뒤집어 말함으로 명백한 교리 사기를 한 것이다. 바울의 선언(고후 3:17)과 예수님의 말씀(요 14:9-11)에 대한 정통 신학자인 찰스 핫지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지방교회의 필진이 분명히 거짓말을 했고 따라서 속이는 자들임을 명백히 밝혀준다.

주는 성령이시다, 즉 그리스도는 성령이시다. 그들은 하나이시고 동일하시다. 하나이시고 동일한 위격이 아니라, 하나이시고 동일한 존재(Being)이시다. . . .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시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의미로서의 존재를 말한다. 이것은 본질과 능력의 동일함을 말한다. 그리스도는 성령이시다.”(Charles Hodge, A commentary on 1 & 2 Corinthians, 73) (밑줄 강조는 필자의 것)

지방교회는 찰스 핫지를 더 권위 있는 성경 교사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추켜세운다. “지방 교회측은 아타나시우스와 찰스 하지를 포함한 더 많은 권위 있는 성경 교사들이 이 본문에서의 ‘주’는 예수님을, ‘영’은 성령을 가리킨다고 말한 점을 구체적인 출처 제시를 통해 밝히고 있다”(#8). 그러나 지방교회는 찰스 핫지가 지방교회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꼭꼭 숨겨 버린다. 그리고 마치 찰스 핫지가 지방교회의 이단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꾸미고 있다. 참으로 더럽고 비열하며 간교하고 요사스러운 ‘교리 전문 사기’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필자가 이 점을 이전의 글(‘1,650억을 요구한 지방교회의 참담한 패소’)에서 위와 같은 찰스 핫지의 진술을 직접 인용하며 비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 가증한 짓을 계속하고 있다. 참으로 ‘뻔뻔스럽고 요사스러운 이단’(異端)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지방교회는 시간을 내어서 조금만 들추어보면 백일하에 드러날 명백한 교리 사기를 ‘상습적’으로 하면서 자신들을 비판하는 정통 삼위일체론자들을 비정통과 이단으로 둔갑시키는 ‘간악한 교리적 테러리스트들’이다!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로60년을 넘게 미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섬겨 온, 미국의 복음주의의 양대 보수 명문인 트리니티신학대학원과 댈러스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철학자요 조직신학자로 20년을 넘게 봉직한, 미국의 복음주의 철학협회(The Evangelical Philosophical Society)의 설립자요 초대 회장이며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협회(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의 회장을 역임했고, 국제 기독교 변증학 협회(the International Society of Christian Apologetics)의 설립자요 현 회장인 노먼 가이슬러 박사에 대해서 지방교회 필진들이 쏟아 붓는 악담과 가당찮은 이단 정죄를 보고 있노라면, 한심하다 못해 기가 막히고, 증오와 악에 북받친 그들의 모습에서 ‘거짓의 아비의 닮은꼴’을 본다. 권위 있는 정통 신학대학원에서 피땀 흘려 가며 권위 있는 교수들과 예리한 지성을 가진 동료들로부터 엄혹한 비판을 받아가며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자들이, 게다가 자기 이름으로 변변한 책 하나 제대로 펴낸 것도 없는 자들이 자신들의 이단 교리를 기초로 상대방의 주장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명백한 교리 사기를 하며 100권이 넘는 권위 있는 책을 저술하고 수많은 탁월한 논문을 발표한 세계적인 대학자를 악의적으로 헐뜯고 비방하며 폄하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장탄식을 금할 수 없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은 이런 때 쓰여질 말이다. 여기 가이슬러 박사의 반박문이 ‘교회와 신앙’에 게시된 후 지방교회 필진이 보내온 여덟 번째 반론 글에서 몇 가지 진술들을 인용해 본다.

“가이슬러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고 믿기 보다는 자신의 조직신학 체계와 철학적 논리의 틀 안에서 성경을 읽다 보니, 심지어 주 예수님까지도 양태론자라고 정죄하는 참람한 말을 한 셈이다”(#8).

“가이슬러 자신이 사도 바울과 주 예수님까지도 양태론자로 정죄하는 참람한 이단으로 규정될 것이다”(#8).

“종합적으로 볼 때, 가이슬러는 삼위일체론 뿐 아니라 기독론과 교회론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8).

“단지 가이슬러가  성경적인 ‘신격’ 개념에 무지하여 모순처럼 보일 뿐이다.”(#8).

“그 결과 이들[가이슬러 박사와 김홍기 목사]은 변명의 여지마저 ‘구조적’으로 차단된 분리된 세 하나님들’ 신봉자가 되었다.”(#8)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다섯 번째 진술만을 다루기로 한다. 이 진술은 지방교회의 이단 교리를 기초로 한 것으로 가이슬러 박사와 필자의 정통신학을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새빨간 교리 사기’를 한 것이다. 필자는 거듭해서 ‘위격상 구별된 삼위와 본질상 분리될 수 없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믿음을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일관성 있게 주장해 왔다! 우리는 위의 진술에서 ‘분리된 세 하나님들’이라는 말에서 명백한 이단 사상(異端 思想)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지방교회가 말하는 ‘분리된 세 하나님들’이라는 말은 ‘공간적으로 분리된 세 위격들’이라는 말이다(예: 아버지와 성령은 하늘에 계시고 아들 홀로 이 땅에 오심). 달리 말하면 여기서 말하는 ‘분리된 세 하나님들’ 혹은 ‘분리된 세 위격들’은 ‘본질적으로 분리된 세 위격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단(異端)적인 지방교회의 상호내주론에 따른 ‘공간적으로 분리된 세 위격들’을 말한다. 결국 지방교회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 본질로서의 불가분리(不可分離)한 삼위의 하나님을 믿는다(정통 삼위일체론) 해도 ‘지방교회의 이단적인 상호내주론’(삼위가 상호간에 공동 거주하시며 그들의 활동들 안에서 서로 너무 어우러져서 삼위일체의 한 구성원은 다른 구성원으로 일컬어짐으로 한 인격으로 간주됨)을 믿지 않으면 ‘분리된 삼위’를 믿는 것이며, 이것은 곧 삼신론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삼위의 하나됨은 ‘삼위의 동일 본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삼위의 상호 공동거주(삼위의 상호내주)’에 있다는 말이 된다. 달리 말해서 이 말은 지방교회가 (정통 삼위일체론이 주장하는) ‘삼위의 본질상 하나됨’을 부정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결국 이 말은 (이단적인 지방교회의 상호내주론의 관점에서 볼 때) ‘위격들의 공간적 분리’를 묘사한 성경의 진술을 삼신론으로 정죄한 것이 된다. 그러면 이 같은 지방교회의 이단적 주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다음과 같은 위트니스 리의 주장에 그 단서가 들어 있다.

삼위일체에 관한 전통적인 설명(The traditional explanation of the Trinity)은 대단히 부적절하며 거의 삼신론과 같다(borders on tritheism).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합쳐졌을 때(joined with us), 하나님은 뒤에 남겨지신 것이 아니었고 그리스도도 보좌에 남아 계시지 않았다. 이것이 기독교(Christianity)가 주는 인상이다. 그들은 아버지가 한 위이시며 다른 위이신 아들을 보내사 구속을 성취하셨고, 그 후에 아들이 또 다른 위이신 성령을 보내셨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생각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은 보좌에 남아 계시고 성령이 신자들 속에 오신 것이다. 신자들이 기도할 때, 그들은 아들의 이름으로 아버지 앞에 고개 숙여 기도하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하나님을 이렇게 분리된 위들(separate Persons)로 가르치는 것은 성경의 계시가 아니라 니케아 신조의 교리이다."(To split the Godhead into these separate Persons is not the revelation of the Bible, but the doctrine of the Nicene Creed). (Witness Lee, Life Messages, Vol. 2 (#42-75), Chapter 19, Section 2)

위의 글에 나와 있는 명백한 이단 사상(異端 思想)에 의하면, 성경의 다음과 같은 진술들은 준(準)삼신론이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요 6:57). 리에 의하면 이 말씀은 아버지와 아들의 ‘공간적으로 분리된 위격’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준(準)삼신론이다. 또한 이 말씀대로 설교하고 가르치면 준(準)삼신론이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공간적으로 분리된 위격’을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의 진술을 준(準)삼신론 혹은 삼신론이라 정죄하는 리와 지방교회는 명백한 이단(異端)이다.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 리에 의하면 이 말씀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공간적으로 분리된 위격’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준(準)삼신론이다. 그리고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전하고 가르치면 준(準)삼신론이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공간적으로 분리된 위격’을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의 진술을 준(準)삼신론 혹은 삼신론이라 정죄하는 리와 지방교회는 명백한 이단(異端)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리에 의하면 이 말씀 또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공간적으로 분리된 위격’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준(準)삼신론이다. 그리고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전하고 가르치면 준(準)삼신론이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공간적으로 분리된 위격’을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의 진술을 준(準)삼신론 혹은 삼신론이라 정죄하는 리와 지방교회는 명백한 이단(異端)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 17:1). 리에 의하면 이 말씀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공간적으로 분리된 위격’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준(準)삼신론이다. 그리고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전하고 가르치면 준(準)삼신론이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공간적으로 분리된 위격’을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의 진술을 준(準)삼신론 혹은 삼신론이라 정죄하는 리와 지방교회는 명백한 이단(異端)이다.

리와 지방교회가 볼 때 아들과 아버지는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들과 아버지는 상호간에 공동 거주하시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기도하시는 아들’과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는 ‘한 인격’(a person) 혹은 ‘한 위격’ 혹은 ‘한 신격’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은 지방교회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 잘 나타나 있다.

가이슬러는 또한  위트니스 리 책 중에서 문맥을 무시하고,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는 기도하시는 아들이시다. 또한 기도하시는 아들은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이시기도 하다.”라는 표현을 가져와 양태론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위 내용은 스가랴 2:8-12에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보내신 자(He)’와 동시에 ‘보내심을 받은 자’ (I) 둘 다 이심’을 지적한 바로 다음 문장이다. 위 말을 할 때 위트니스 리의 의도는 기도하시는 아들도 ‘만군의 여호와’ 즉 <삼위 전체>이시고,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도 ‘만군의 여호와’ 즉 <삼위 전체>이시라는 전제 하에 한 말이다. 즉 ‘1격=2격, 2격=1격’이라는 말이 아니라 ‘삼위 전체=삼위전체’라는 말이다. 이것은 칼빈주의 정통 신학자인 로뢰인 뵈트너가 ‘주기도문 상의 성부는 단지 제 1격만이 아니라 삼위 전체’(Triune God)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8)

여기서 “기도하시는 아들이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라는 말은 ‘아들이 삼위 전체’이시고 ‘아버지가 삼위 전체’이시라는 지방교회의 이단(異端)적인 개념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아들이 삼위 전체”라는 말은 아들이 아버지도 되시고 성령도 되신다는 말이다. 또한 “아버지가 삼위 전체”라는 말은 아버지가 아들도 되시고 성령도 되신다는 말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라 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명백한 이단 교리(異端 敎理)이다.

정통교리는 “아들이 삼위 전체”라는 말이나 “아버지가 삼위 전체’라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한 위격이 삼 위격 전체’가 된다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양태론적인 언어와 개념이기 때문이다. 만약 한 위격을 전체와 관련시켜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 혹은 본성 혹은 존재와 관련되어야 한다. 정통 신학자인 웨인 그루뎀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

하나님은 한 분리되지 않는 존재이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존재 안에 세 위격이 계시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 첫째, 각 위격은 전적으로(completely) 그리고 완전히(fully)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언하는 것은 중요하다. 말하자면 각 위격은 그 자신 안에 하나님의 존재의 모든 충만(the whole fullness of God’s being)을 소유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아들은 부분적으로 하나님 혹은 단지 하나님의 삼분의 일이 아니시다. 아들은 완전히 그리고 충분히 하나님(wholly and fully God)이시다. 그리고 아버지와 성령도 그러하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를 각 위가 하나님의 오직 삼분의 일임을 나타내는 도표 14.1에 따라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 . . 도리어 우리는 아버지의 위격(the person of the Father)은 그분 자신 안에 하나님의 전 존재(whole being of God)를 소유하고 계시다고 말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아들은 그분 안에 하나님의 전 존재를 소유하신다. 그리고 성령은 그분 안에 하나님의 전 존재를 소유하신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함께 말할 때 우리는 아버지 혼자, 혹은 아들 혼자, 혹은 성령 혼자에 관해서 말할 때보다 어떤 더 큰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존재의 전부(all of God’s being)이시다. 아들 역시 하나님의 존재의 전부이시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의 존재의 전부이시다(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252).(밑줄 강조는 저자의 것)

위의 인용문에서 그루뎀이 사용하는 다음과 같은 표현들에 주목하라. “완전히 그리고 충분히 하나님(wholly and fully God)” 혹은 “하나님의 존재의 모든 충만(the whole fullness of God’s being)” 혹은 “하나님의 전 존재(whole being of God).” 그러면 그루뎀은 이러한 표현들을 하나님의 무엇과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위격과 관련지어 설명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본성과 관련지어 설명하는가? 그 답은 명백하다. 그루뎀은 위의 표현들을 하나님의 위격이 아닌 하나님의 본성과 관련지어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루뎀은 이보다 앞선 논의에서, 즉 ‘각 위격은 완전히 하나님이시다’(Each person is fully God)라는 명제를 논하면서, 하나님을 하나님의 본성과 연관 지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Ibid., 233-38).

하나님과 관련하여 ‘하나’를 말할 때, 그리고 한 위격을 전체와 관련시켜 말할 때는 항상 하나님의 ‘본질’ 혹은 ‘본성’ 혹은 ‘존재’와 관련지어야 한다. 그루뎀이 위에서 주장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 것이다.

최고의 삼위일체의 경우에는 하나가 셋을 합한 것 만하며, 둘을 합해도 하나보다 더하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자체가 무한하시다. 그래서 하나 하나가 다른 하나 안에 계시며, 모든 이 안에 계신다. 또 모든 이가 모든 이 안에 계시며, 모든 이가 한 이 안에 계시다. (김석환의 교부들의 삼위일체론에서 인용됨, 299).

 위에서 어거스틴이 말한 “그들은 각각 자체가 무한하시다”는 말은 하나님의 속성, 즉 하나님의 본성의 일부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여기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본성과 관련하여 삼위를 논한 것이다. 위에 인용한 어거스틴의 말은 지방교회가 정통 삼위일체론자들을 공격할 때 단골로 사용하는 인용문이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필자를 이단으로 몰겠다고 지방교회가 사용한 인용문이기도 하다. 위에 있는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해 놓고 지방교회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김홍기 목사는 결코 어거스틴이 위에서 고백한 것처럼 “삼위의 모든 위격들이 한 위격 안에 계신다”라고 고백하기 어려울 것이다. ... 왜냐하면 김목사의 신론에 따르면, 삼위는 상호내주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명백히 다른 두 관점들 중 누가 정통이고 누가 이단인가? 어거스틴인가 아니면 김홍기 목사인가?”(#5)

지방교회여, 유치하고 어리석은 비몽사몽 중에서, 꿈 깨! 이런 말이 당신들의 귀에 노랫가락 소리와 함께 쟁쟁하게 들리지도 않는가? “어거스틴과 김홍기 목사는 하나님의 본성 안에서 삼위는 상호내주하신다고 믿는 바가 동일하다고 전해라!” 성령이 신자들 안에 거하시면 본질적으로 성부-성자-성령 삼위가 다 신자들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삼위는 구별이 되시나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이시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삼위 전체가 기도하시고 삼위 전체가 기도를 들으셨다는 표현은 정통 교리가 아니다. 요 17:1(“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의 말씀은 아들이 아버지께 기도하신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반면에 리의 말을 곱씹어 보면 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도하시는 아들이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로서 기도하시는 아들에게 기도하신다.’ 원 세상에, 이런 괴상망측한 교리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아니, 아들과 아버지를 동일시했으면 그대로 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할 것이지 무얼 또 변명하느라 그렇게 급급해 하는가? 리는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아들은 아버지이시고, 아들은 또한 성령이시다. ... 그리고 아들이실 뿐 아니라 영원한 아버지이신 주 예수님. 우리의 주님은 아들이시고, 그는 또한 아버지이시기도 하다. 할렐루야! Witness Lee, Concerning the Triune God (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73), pp. 18-19

리는 또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성령이시고, 그분은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또한 주님이시다. 그분은 아버지이시고 아들이시며 성령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주님이시다(Witness Lee, The Clear Scriptural Revelation Concerning the Triune God)
www.contendingforthefaith.org/responses/booklets/triune.html

리는 또 다른 데서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삼십여 년 전 상해에서 워치만 니 형제는 이 구절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는 17절에 있는 ‘그’(성령)는 18절에 있는 ‘나’(주)인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언급했다. ... 워치만 니 형제는 찬송가 490장 5절에서 ‘주님, 당신은 전에 아버지로 칭함을 받으셨지만, 지금은 성령으로 칭함을 받으신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워치만 니는 그의 찬송에서 주님을 성령으로만 아니라 아버지로도 칭했다. (Witness Lee, Concerning the Triune God—the Father, the Son, and the Spirit, Chapter 1, Section 10)

이렇게 이곳 저곳에서 아들과 아버지가 동일하며 아들과 성령이 동일하다고 나팔을 불고 다녔는데 여기서는 맞고 저기서는 그렇지 않다고? <삼위 전체>를 말했건 무엇을 말했건 아들과 아버지가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그것은 삼위의 하나님을 ‘한 인격’(a person) 혹은 ‘한 신격’이시라 말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이것이 양태론 이단(異端) 교리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과연 CRI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균형을 맞춘 지방교회의 진술이란 말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이것은 지방교회가 이단 교리를 적나라하게 또한 일관성 있게 드러낸 것일 뿐이다.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오해하지 않도록 말을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괴상망측한 이단 교리를 말해놓고 그것을 성경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을 이단으로 몰아세우는 지방교회의 적반하장의 교리 사기는 준엄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성경을 준(準)삼신론으로 정죄한 리의 교리, 더 나아가 성경을 삼신론으로 정죄한 지방교회의 교리, 이것이 바로 명백한 이단 교리(異端 敎理)인 것이다.

지방교회의 두드러진 특징은 말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믿지 않는 것이다. 삼위의 본질적인 하나됨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위에서 언급한 성경 구절들을 향해 ‘분리된 위격’을 말하는 삼신론이라고 정죄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에 계신 때나 33년 여 이 땅에 계신 때나 아들이 아버지와 성령과 본질적으로 분리되신 적은 단 한 순간도 없다. 왜냐하면 동일 본질이시기 때문이며, 또한 동일 본질은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 6:9)라고 기도하셨을 때에 아들과 아버지는 본질상 분리되신 것이 아니다. 이러한 성경 구절을 가리켜 ‘위격의 분리’를 가르치고 있으며 따라서 삼신론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삼위의 본질적 하나됨을 믿지 않는 악한 이단(異端)이다. 이런 맥락에서 리와 지방교회는 명백한 삼위일체론 이단(異端)이다!

위에 인용한 지방교회의 진술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는 기도하시는 아들이시다. 또한 기도하시는 아들은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이시기도 하다.’ ... 위 말을 할 때 위트니스 리의 의도는 기도하시는 아들도 ‘만군의 여호와’ 즉 <삼위 전체>이시고,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도 ‘만군의 여호와’ 즉 <삼위 전체>이시라는 전제 하에 한 말이다”(#8). 그런데 이 진술 바로 다음에 이런 진술이 나온다. “이것은 칼빈주의 정통 신학자인 로뢰인 뵈트너가 ‘주기도문 상의 성부는 단지 제 1격만이 아니라 삼위 전체’(Triune God)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로레인 뵈트너가, 지방교회가 말하는 것처럼, 성부는 <삼위 전체>, 달리 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라고 말했다는 뜻이다. 이를 또 달리 말하면 뵈트너는, 지방교회가 말하는 것처럼, 성부 성자 성령 삼위는 ‘한 인격’ 혹은 ‘한 신격’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교리 사기’이다. 왜냐하면 뵈트너가 사용한 표현(Triune God)은 ‘삼위 전체’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번역해야 옳기 때문이다. 정통 신학자들과 정통교회가 ‘Triune God’(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삼위와 한 본질’의 하나님 전부를 가리키는 것이지 ‘삼위’만을 가리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지방교회가 뵈트너가 사용한 표현(Triune God)을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닌 ‘<삼위 전체>’로 번역해 놓은 이유는 뵈트너의 본래의 의도를 180도 뒤집어 지방교회의 이단 교리(異端 敎理)에 악용하기 위함이다.

심지어 지방교회는 속이기 위해서 문장의 배열까지 바꾸어 놓았다. 위에 있는 지방교회의 진술을 보면 “성부는 단지 제 1격만이 아니라 삼위 전체’(Triune God)라고 말한 것”이라고 적었다. 이것은 뵈트너가 표현한 문장의 배열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으로서, 성부 하나님을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전체, 즉 ‘한 인격’ 혹은 ‘한 신격’으로 둔갑시켜 놓으려고 한 교활한 시도인 것이다. 그러나 뵈트너는 본래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The Triune God is our Father)라고 표현을 했다. 이러한 문장 배열은 뵈트너가 이 말을 할 때 하나님의 위격과 관련지어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과 관련지어 말한 것임을 확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이 표현이 나와 있는 뵈트너의 다음과 같은 글의 문맥을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다. 뵈트너는 ‘하나님의 본질’에 관해 말을 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라고 표현을 한 것이다.

삼위일체의 세 위격들은 똑같은(the same identical), 수적인 본질(numerical substance or essence)을 소유하신다. 그리고 속성(attributes)은 본질(substance or essence)에 내재해 있고 또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신적인 속성의 모든 것은 삼위의 각자에 의하여 똑같이 소유되어야 하며, 또한 삼위는 동질이시고(cosubstantial) 동등하며(co-equal) 영원히 공존하셔야(co-eternal) 한다. 각자는 참으로 하나님이시고, 동일한 능력을 행사하시며 신적인 영광에 동일하게 참여하시고 동일한 예배를 받으실 자격이 있으시다. ‘아버지’라는 말이 우리의 기도에 사용될 때, 예를 들어 주기도문, 이것은 삼위일체의 제1위격을 독점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 하나님으로서의 삼위를 언급하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The Triune God is our Father.) (Loraine Boettner, Studies in Theology, 107)(밑줄 강조는 필자의 것)

이제 한 가지 점을 더 지적하고 논의를 매듭짓고자 한다. 그것은 지방교회는 하나님의 본질과 위격을 혼동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의 이단 교리(異端 敎理)의 뿌리라는 것이다. 지방교회의 다음과 같은 진술을 보면 하나님의 본질과 위격을 혼동하고 있는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즉 신격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6:4)라고 할 때의 '오직 하나’에 해당되며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전체가 포함된 개념인 반면, 신성은 그 하나님의 본성을 가리킨다. (#5)

여기 신격이라 함은, 지방교회의 주장에 의하면, ‘한 신격’ 혹은 ‘한 인격’이다. 지방교회는 삼위를 ‘한 인격’ 혹은 ‘한 신격’으로 만들지 못해서 안달복달이다. 소위 ‘삼위 전체를 포함한 한 인격 혹은 한 신격’의 개념이 없이는 삼신론이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는데, 이는 하나님의 본질과 위격을 혼동하는 이단(異端)적인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에 인용된 신 6:4의 말씀은 지방교회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소위 ‘신격’(‘한 신격’ 혹은 ‘한 인격’)의 개념이 아닌 ‘신성(神性),’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본질 혹은 본성의 개념에 기초한 것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가 하나이신 것은 ‘삼위가 한 인격 혹은 한 신격”이시기 때문이 아니라 ‘삼위가 한 본성을 공유’하고 계시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웨인 그루뎀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삼위일체 안의 구별된 삼위는 목적과 그들이 무엇을 생각할지에 관해서 하나이실 뿐 아니라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시며 그들의 본성에 있어서 하나이시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은 오직 한 분(혹은 존재-being)이시다. 세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계시다. . . . 구약에서 가장 친숙한 구절은 신 6:4-5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238). (밑줄 강조는 필자의 것)

지방교회는 하나님의 본질과 위격을 혼동하는 삼위일체론 이단(異端)이다. 이것은 신 6:4의 말씀에 나오는 유일신 개념을 하나님의 본성이 아닌 하나님의 한 인격에 기초해서 이해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의 한 본질을 하나님의 한 인격으로 혼동하는 이단인 지방교회, 그래서 그들은 삼위의 한 본질을 신봉하는 정통 삼위일체론을 삼신론으로 공격한다. 즉 이단 교리를 근거로 정통 교리를 이단 교리라고 몰아 세운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서 정통 신학자들의 견해를 정반대로 왜곡하여 ‘명백한 교리 사기’를 상습적으로 또한 전문적으로 자행한다. 무지하기 때문에 이런 짓을 하고 있다면 이런 선무당 같은 자들을 정당한 신학적 논의에서 배제시켜야 마땅하다! 그러나 알고 이런 짓을 하고 있다면 이런 명백한 교리 사기꾼들을 정통교회로부터 퇴출시켜야 마땅하다! 지방교회의 간교한 양태론 이단 교리는 정통교회와 정통 삼위일체론을 교란시키고 위협하는 악성 암세포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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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홍기 목사 소개

미국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철학박사(Ph.D.)
미국 탈봇신학대학원(Talbot School of Theology) 목회학 석사 및 목회학 박사(M.Div., D.Min.)
교회부흥성장연구원장; 글로벌기독교이단연구원장; 밴쿠버필그림교회 담임목사
WWW.21CHURCH.COM (신천지 관련 동영상 설교 66편, 지방교회 관련 동영상 설교 7편, 안증회 관련 동영상 설교 3편, 여러 이단 관련 동영상 설교가 유투브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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