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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 가볼 만한 기독교유적
2009년 07월 27일 (월) 06:43:21 전강민 기자 minslife@amennews.com

 
산과 바다, 그리고 섬과 계곡 등 휴가철이면 어딜 가든 사람이 넘친다. 인파에 치여 떨치려고 가져간 시름을 한아름 더 짊어지고 오는 경우가 빈번하다. 따라서 휴가지 한곳에만 머물러 며칠씩 보내지 말고 이동하는 도중에 혹은 하루나 반나절 시간을 내어 가까운 기독교유적을 둘러보면 휴식과 함께 영성을 재충전 할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의 휴가방법이 될 수 있다. 강이 있는 내륙, 사면이 바다인 섬, 그리고 산에 각각 숨어 있는 보물 같은 기독교유적을 소개한다.

한탄강에서 찾는 전쟁의 상흔, 철원

‘철원’하면 왠지 비무장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녹슨 기차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만큼 철원은 군사도시로 인식되어 있다. 몇 해 전부터 청정도시들이 각광받으면서 철원도 주목받고 있다. 철원에도 가볼만한 곳이 많은데, 대부분 전쟁과 관련된 장소들이다. 그래도 남한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니 일단 남쪽보다는 좀 더 시원하겠다.

철원의 가장 대표적인 유적은 바로 ‘옛 노동당사’ 건물이다. 교과서에 항상 등장해서 국민 모두가 한번쯤은 사진으로 보았음직한 건물이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아있지만 그 규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사뭇 무겁다. 자녀들에게 한국전쟁의 아픔을 알려주기에는 가장 좋은 장소임에 틀림없다.

옛 노동당사 인근에 2002년 등록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된 ‘철원감리교회’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옛 감리교회 건물 잔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몇 개의 기둥과 아치형 입구만 남아 있지만, 진입로에 있는 안내문에서 당시 화려하고도 위엄 있는 교회당 모습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1920년에 붉은 벽돌로 지은 것을 1936년 미국인의 설계로 화강석으로 재건축했던 건물이다.

6•25전쟁 때 이곳을 중심으로 기독교 청년 학생들이 반공 투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공산군이 점령했을 때는 지하를 고문실로 사용했다는 가슴 아픈 역사가 묻어있다.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에 폭격으로 파괴됐다.

   
▲ 철원제일감리교회

철원에는 전쟁이 낳은 또 하나의 흔적이 있는데, 바로 ‘승일교’다.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고도 불리는 승일교는 남북합작 다리로 알려져 있다. 1948년 철원이 북쪽 땅이던 시절 다리 공사가 시작되어 교각을 세웠고, 이후 한국전쟁으로 공사는 중단되었지만 휴전 후 1958년 남한 정부가 상판을 얹어 공사를 완성했다.

‘승일교’라는 다리 이름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우선 김일성 시절에 만들기 시작해서 이승만 시절에 완성했다고 해서 이승만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따서 지었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 설은 전쟁 때 한탄강 전투에서 공을 세운 박승일 대령의 이름을 땄다는 설이다.

승일교 아래를 흐르는 한탄강 계곡은 제법 깊고 수량이 빨라서 여름철 최고의 레저로 자리 잡은 레프팅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한탄강 레프팅을 즐기다보면 승일교를 지나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고석정도 만날 수 있다. 물론 레프팅을 이용하지 않아도 고석정의 풍경은 감상할 수 있다.

믿음의 씨앗을 뿌린 섬, 강화도

강화도는 서울에 인접한 섬으로 사시사철 찾는 이들이 많다. 특히 강화도 내의 동막해수욕장과 강화도에서 뱃길로 갈 수 있는 석모도의 민머루해수욕장은 영종도에 있는 을왕리해수욕장과 더불어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강화도에서 휴가를 보낼 계획이라면 이동 중에 아래의 장소에 잠깐 들러보자.

우선 강화읍내에 1900년에 지은 '성공회 강화성당'이 있다. 한옥의 형태로 지어져 가장 한국적인 예배당 형식을 자랑하는 강화성당은 기독교역사와 건축 두 분야에서 각각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성전 모양은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 모양이며, 내부는 서양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본 따 만들었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2001년 개신교 건물로는 정동감리교회 문화재예배당 이후 두 번째로 국가로부터 사적으로 지정됐다.

   
▲ 성공회강화성당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는 '성공회 온수리성당'이 있다. 온수리성당은 강화성당과는 다르게 색이나 건축양식이 훨씬 토속적이고 친근하다. 위치도 언덕 위에 자리 잡아 강화도를 내려다보는 강화성당과는 대조적으로 동네 어귀 나즈막한 구릉에 자리잡고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온수리성당은 국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솟을대문 형태의 정문이 있고, 예배당도 정방형 한옥으로 지어져 모든 면에서 소박함이 가득 묻어있다. 온수리성당은 인천광역시 지방문화재로 지정됐다.

강화도에서 뱃길로 30분 거리에 있는 교동도에도 초기 기독교유적이 있다. 교동도에 1899년 복음이 전파됐다. 강화도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권신일 부부가 교동도에 초가 한 채를 마련해서 예배를 드린 것이 교동교회의 시작이다. 1907년에는 교동지역 교인만 1천여 명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한다. 현재 교동도는 1933년 지어진 옛 교동교회가 있다.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서 배편을 이용하면 교동도에 들어갈 수 있다.

   
▲ 교동교회

그 시절 선교사도 찾은 휴가의 명소, 지리산


여름 휴가철이면 종주등산객으로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이 바로 지리산이다. 최근에는 제주 올레길과 더불어 지리산 둘레길이 유명세를 타고 있어 이번 여름에는 좀 더 많은 이들이 지리산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 여름 지리산 종주등반이나 지리산 계곡, 특히 피아골이나 뱀사골 계곡에서 휴가를 즐길 계획이 있다면, 반나절 시간을 내어서 노고단에 오르길 권한다. 그곳에서 또 하나의 기독교유적을 만날 수 있다.

성삼재 휴게소에서 노고단에 오르는 길은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넓은 등산로다. 노고단에 근접할 즈음에 한 무너진 건물 잔해를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한국주재 선교사수양관’의 흔적이다. 1925년부터 1926년 사이에 이질과 말라리아 등의 풍토병을 피하기 위해 선교사들이 선택한 휴가 및 수양의 장소가 바로 지리산 노고단이었다. 당시 노고단 근처 숲 속에 수양관 건물이 무려 52동이나 세워졌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완파되어 현재는 건물 잔해만 남아 있다. 건물 잔해 몇 개가 남아있을 뿐이지만, 성삼재를 넘는 도로나 자동차가 전혀 없던 시절 이곳 산꼭대기에 세워진 석조건축물은 당시에는 별천지와 다름없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노고단 선교사 수양관은 당시의 기독교의 위상과 선교사들의 사회적 위치를 추측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유적이다.

   
▲ 노고단 선교사수양관


유명한 산과 바다에는 어김없이 사찰과 암자가 있다. 이 땅에 불교의 나이와 기독교의 나이를 따져보면 어쩔 수 없는 결과이지만, 한국의 기독교유적은 너무도 적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건물하나를 지어도 몇 세대, 몇 백년을 바라보고 건축하는 역사적인 의식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현재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기독교유적에 대한 한국교회의 더 많은 관심과 보전을 위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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