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문화 | 기독교적 영화보기
       
<마더> / ‘엄마’이기에 잃어버린 것들
<코렐라인> 그리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2009년 06월 17일 (수) 07:57:47 전강민 기자 minslife@amennews.com
 
‘엄마’라는 말을 들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사람들은 자신을 낳아준 사람이며, 키워준 사람을 엄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엄마는 평생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존재로 생각한다. 많은 이들은 어쩌면 엄마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이 같은 일반적 이미지를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되고, 영화소재가 될 만큼 주목받을 만한 사건이 되기도 한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마더>는 살인자로 몰린 아들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한 엄마의 사투가 주된 내용이다. 좀 모자란 아들 도준(원빈)이 여고생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되자, 엄마(김혜자)는 냉정함을 잃어버린다. 경찰과 변호사 등 모든 이들에게 도움을 청해 보지만 누구 하나 엄마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아들의 범행을 인정해버리는 상황이다. 그래서 엄마가 직접 나선다. 엄마는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의 집에 몰래 침입하기도 하고, 결정적 증거물을 찾아나서 결국 손에 넣기도 하면서 진범을 찾아간다. 하지만 자기 자신만의 수사가 진행될수록 엄마는 모성애를 벗어나 어떤 광기를 띠기 시작하고, 결국 평소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모습의 엄마로 변하게 된다.

<마더>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인 <살인의 추억>과 연장선에 서 있다. <살인의 추억>보다 한 단계 진보한 영상미와 한 템포 빠른 전개로 관객을 쉴 새 없이 몰아간다. 봉 감독의 영화 만드는 기술은 확실히 한 발짝 진보했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에 비해 잃은 것도 있다. 숨 가쁘게 진행되는 스토리와 빠른 화면전환으로 인해 배우들의 감정을 충분히 싣지 못했다. 김혜자라는 ‘연기의 달인’이 있었기에 그나마 스크린 속에 넘치는 에너지를 담을 수 있었다. 만약 감정의 높낮이를 조금만 부드럽게 이어갔다면, 우리는 분명 지금껏 누구도 보지 못했고, 존재하지 않았던 ‘완벽의 연기’를 접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더>에서 관객들은 아들을 위해 애쓰는 엄마의 모습 외에 또 다른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 후반부에 표출되는 광기의 진원지는 바로 엄마의 삶을 살아오느라 잃어버렸던 여성성의 억제에서 비롯됐다. 봉준호 감독 또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억압됐던 성적 욕망의 표출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마더>는 엄마라는 직책을 완수하기 위해 잃어버렸던 자신의 모습을 뒤늦게 찾아 나선, 그래서 더 슬픈 또 하나의 ‘지킬박사와 하이드’ 이야기다.

   


   
지난 달 <마더>보다 일주일 먼저 개봉한 <코렐라인: 비밀의 문>(Coraline, 이하 <코렐라인>)은 애니메이션이다. 좀 더 구체적인 장르로 구분하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모형을 한 동작 한 동작 움직여서 찍은 컷들을 연결한, 쉽게 말하면 인형극이다. 하지만 인형극이라고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고 어색할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최근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되돌아볼 일이다. 이 영화는 1993년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라는 영화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대중화에 앞섰던 헨리 셀릭 감독의 작품으로, 세계 최고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감독의 실력을 여실히 증명해 보이고 있다. 게다가 <코렐라인>은 최초로 시도된 3D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스크린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형들의 향연은 관객들의 시선을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항상 바쁜 부모와 함께 살아 늘 심심한 소녀 코렐라인은 이사 온 새집에 작은 비밀의 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자신의 또 다른 부모가 살고 있는 세상이 있는데, 주변 환경이나 이웃들은 모두 현실과 똑같지만 그들의 눈이 단추라는 것만 다를 뿐이다. 하지만 또 다른 부모는 코렐라인이 항상 동경하던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이다. 엄마는 상냥하고 아빠는 재미있다. 비록 단추눈을 하고 있지만 코렐라인은 현실의 삶보다는 그곳에 드나드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단추눈 엄마는 코렐라인에게 또 다른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을 요구하면서 차츰 비밀이 밝혀진다.

   

<코렐라인>에 등장하는 엄마의 모습은 <마더>와는 반대로 엄마의 역할을 잃어버린 것으로 나온다. 코렐라인의 엄마는 가정의 리더다. 자신이 가족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엄마의 역할을 잠정 포기했다. 음식도 하지 않고, 딸과 놀아주지도 않는다. 결국 코렐라인은 엄마역할을 해 줄 이를 찾아 비밀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영화는 코렐라인이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와 가족 전체를 배려하는 ‘철’이 들면서 해결책을 찾기 시작한다. <코렐라인>은 철없는 소녀가 펼치는 ‘엄마 찾아 삼만리’다.

   


성경에 한 여인이 등장한다. 그는 처녀의 몸으로 아들을 잉태했고 낳았다. 그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그녀는 성모가 됐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성모’라는 역할을 위해 ‘엄마’를 잃어버렸다.

   
성경은 예수님의 사생활 전달에는 지극히 적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래서 마리아의 엄마 역할이 어땠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저 평범한 엄마의 역할을 했거나, 아니면 보통의 엄마보다 아들을 더 사랑해 줄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심지어 아들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할 때도 성경은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요 19장 25절)라는 짧은 표현만 할 뿐이다. 과연 그 고통의 시간에 마리아는 그렇게 존재감이 없이 그저 서 있었을까?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는 잃어버린 예수님의 엄마 마리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살점이 튀는 장면과 손발에 못이 박히는 사실적인 장면들도 가슴 아팠지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가장 가슴 에는 장면은 바로 엄마 마리아의 절규다. 영화 내내 마리아는 예수님께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한번이라도 죽음을 앞둔 아들의 얼굴을 만져보려고 필사의 노력을 한다. 이 순간만큼은 성모의 모습이 아닌 전형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인다.

   


십자가가 언덕 위에 세워졌을 때는 마치 넋이 나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엄마로서 차마 보지 못할 장면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한 청년의 엄마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성경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예수님의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강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교회와신앙> 후원 회원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은행 607301-01-412365 (예금주 교회와신앙)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기독교 박해국 순위 2위 소말리아
'이중아담론' 그게 뭔데?
성례, 개신교와 가톨릭의 차이는.
한기총-한교총-한교연 통합 과정
KWMA ‘선교 모범 교회와 기관
이태원 참사 교훈 “안전 사회 만
“저출산 조장, 김영미 부위원장을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호 : 교회와신앙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이용약관 / 발행인 : 장경덕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303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