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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이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것
2009년 05월 13일 (수) 08:20:34 장경애 jka9075@empal.com


<고귀한 시간 ‘낭비’ - 예배> 중에서
마르바 던 지음/ 김병국, 전의우 옮김/ 이레서원 펴냄


오직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그분을 예배할 수 있다. 예배라는 말은 예배를 받는 분의 가치(자격)와 관련되기 때문에, 그 가치를 알고 인정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그 가치를 그분에게 돌리며 선포할 수 있다. 예배에 관한 이 시대의 갈등 가운데 아주 널리 퍼져 있는 ‘예배’와 ‘전도’의 차이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위험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형성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예배의 중요성은 참으로 미묘하고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를 세밀하게 구분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꼼꼼히 읽지 않으면 놓쳐 버리기 쉽다.

많은 목회자와 그 외 지도자들은 미국 전역과 그 밖의 나라에서 ‘어떻게 하면 예배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사람들에게 더 흥미진진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또는 ‘우리 예배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으려면 어떤 형식의 음악을 사용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예배에 관한 논쟁을 가열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의 궁극적인 행복을 매우 태만히 여기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 크리스천(때로는 안티 크리스천)사회의 한 가운데서 교회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통합된 예배란 무엇이고, 하나님의 백성은 그 예배를 어떻게 드리며, 우리가 참된 교회라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돌봄과 전도를 통해 이웃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특정한 형식의 예배를 수단으로 불신자들에게 호소하려는 것은 ‘예배와 전도’를 심각하게 혼동하는 것일 뿐 아니라 양자를 모두 크게 훼손하는 일이며, 그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 됨에 더 충실할 수 있도록 ‘예배와 전도’의 중요한 차이를 세밀하게 살펴보자.

참된 교회가 된다는 것은 단순한 종교 구매자들의 집합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참된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 각자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며, 우리를 불러 그분의 소유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으로 자유를 얻은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통해 그분에게 반응하며, 기독교 공동체를 더욱 견고히 세우고 확장하는 일에 우리의 은사를 사용한다. 우리가 통합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예배로 부르셨고, 그 예배 가운데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찬양과 감사로 반응하고, 영적 변화와 성장을 위해 열린 마음으로 반응하며, 세상에서 그분을 섬기려는 새로운 헌신으로 반응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임재를 통해 변화되는 예배는 '교회 됨’을 더 깊게 한다. 이러한 예배를 통해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에 따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살아가는 대안 사회가 된다.

이러한 묘사가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교회 됨’을 제재로 이해해야만 우상을 숭배하고 소비 지향적인 문화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있고 그런 문화에 저항할 수 있는 개인적이며 집단적인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이 주는 심오한 기쁨을 계속해서 진정으로 회복할 수 있으며, 예배를 통해 양육 받은 후에 자신의 믿음과 사랑을 이웃과 나누는 리듬에 풍성한 기쁨으로 참여할 것이다.

먼저 ‘예배와 전도’를 혼동하지 않도록 이런 리듬을 항상 기억하기 바란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불신자들을 위한 전도와는 달리, 예배가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예배는 불신자들이나 ‘교회 밖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도록 계획되어야 하며, 따라서 접근하기 쉬운 ‘형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예배와 전도’를 심각하게 혼동한 것이다. 이처럼 ‘예배와 전도’를 심각하게 혼동한 데서 빚어진 갈등 때문에 갈라진 교회들도 많다. 깊이 들어가 보면 이러한 갈등의 원인은 교인 수의 감소 때문에 교회와 교단이 새신자를 끌어들일 방법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목회자와 평신도와 교단 관계자들이, 주변 세계에 ‘호소력을 가지고’ 그러한 호소력을 통해 ‘성장하기’ 위해 각 교회의 ‘전통을 버리라’는 마케팅 전문가들의 거짓 조언을 받아들이면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깊은 진리를 깨닫도록 돕는 음악이나 설교가 사라지고, 신학적 내용이 없어지며, 예배자들을 피동적이게 하고 귀를 솔깃하게 하는 소비주의를 조장하는 예배 형식이 그 자리를 대신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땜질식 처방을 받아들일 때 나타나는 무서운 결과는, 진짜 문제들은 다뤄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배의 의미와 실제에 관한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며, 사람들이 교회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는 진짜 우상들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며, 세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모든 성도들을 제사장으로 무장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음악과 새로운 예배 형식을 사용해야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을 끄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를 그분의 백성으로 빚는 데 도움을 주는 게 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 단순히 외부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특정한 예배 형식이나 그 외 다른 요소를 선택하는 것은 예배가 전도의 첨병 역할을 하도록 강요하는 일이다. 전도는 모든 성도가 해야 할 일이다. 좋은 예배는 전도의 요소도 담고 있지만, 전도가 예배의 주된 목적은 아니다. 예배는 이웃을 향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 어디에도 ‘불신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말은 없다. 오히려 수많은 본문이,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명령하며, 초대하며, 촉구하며, 호소한다. 예배는 그러한 ‘자력’을 인정하는 자들만이 진정으로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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