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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두 목사의 <내가 너에게 불세례를 주노라>에 대한 분석
2009년 05월 04일 (월) 06:22:56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박문수 교수(서울신학대학원 조직신학)


들어가는 말


요즘 한국교회에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간증이 유행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간증집회가 열리고 그런 간증서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므로 가히 ‘천국간증 신드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가 현실의 불안함 때문에 내세에 대한 관심이 큰 것을 반영한다. 중요한 문제는 이런 간증들이 ‘신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하는 점이다. 긍정적 영향은 천국과 지옥의 실재에 대한 믿음을 주고 종말의 심판에 대한 긴장을 갖게 만들며 심각한 회개를 일으킨다. 반면에 부정적 영향은 현실생활에서 성숙한 믿음과 변화된 삶을 추구하도록 만들기보다는 신비한 환상체험에 몰두하고 현세보다는 내세를 기대한다거나 혹은 내세에 대한 공포심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우려되는 것은 신자들이 내세에 대한 불안감에 휘말릴 경우 그것을 벗어나고자 더 강렬한 신비체험에 몰입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이런 ‘천국과 지옥의 간증’에 힘입어 부흥하였다는, 신비체험을 강조하는 교회가 있다. 인천의 주님의교회(김용두 목사)인데, 담임목사는 2005년 8월부터 2008년 7월까지 모두 5권의 천국과 지옥의 간증서인 <내가 너에게 불세례를 주노라>(예찬사)를 출판하여 올해까지 15쇄나 거듭하였다고 하며, 심지어 해외집회는 물론 외국어로 번역하여 해외 판매도 예상된다고 한다. 이 글은 이 책자들에 나타난 신비체험 현상을 신학적·성서적으로 고찰하고, 한국교회와 신자들에게 바른 체험신앙을 제시하고자 기고하였다.

변화산의 신비체험

   
신비체험은 성경의 내러티브들에서도 발견된다. 그 전형적인 예는 마태복음 17장 1절~9절이다. 본문은 ‘변화산의 변모된 예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 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오르셨다(1). 그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일상생활의 장소가 아닌 거룩한 만남을 상징하는 높은 산, 즉 영적인 장소로 인도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제자들은 놀라운 일들을 목격하였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입으신 옷도 빛과 같이 희게 변하였다(2).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더니 예수님과 말을 나누었다(3).

이와 같이 제자들은 놀라운 ‘신비한 환상’을 실제로 본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 앞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는 이미 이 세상의 사람(this-worldly man)이 아니었으므로 다시 나타났다는 것은 특이한 체험이었다. 그러자 이런 신비한 환상에 도취된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좋사오니! 이곳에 선생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짓고 여기에서 머무르고 싶습니다.”(4) 사실 제자들은 자신들을 알아주지 않고 온갖 핍박과 위협이 기다리는 힘든 세상에 머무는 것보다 신비한 환상을 맛보며 초자연적인 삶을 사는, 저 세상적인 삶(other-worldly life)을 선택하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신비한 일은 또 일어났다. 갑자기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고 그 구름 속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나의 기뻐하는 자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소리가 들렸다(5).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다(6).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위엄에 대한 경외(fear)이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산에서 내려왔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그 광경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9) 그것은 신비한 광경들을 알리는 것보다는 알리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하기 때문이었다.

본문은 신비체험을 추구하는 신앙의 특징들을 말해준다. 첫째로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한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우월감이나 특권의식을 가지게 된다. 둘째로 초자연적이고 비상한 현상들만을 좇고 안주하려는 무분별한 은사주의에 치우치기 쉽다. 셋째로 이 세상에서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책임에 대해 무관심하고 저 세상의 삶을 추구하는 이원론적 영지주의를 따르게 된다. 넷째로 이성이 아닌 명상과 사랑을 통해서 신적 존재를 접촉하려는 신비주의 신앙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다섯째로 신비한 체험들이 사실일 수 있으나 공개하지 않는 것이 신자들에게 유익할 수 있다.

교리적인 문제점들

1. 계시론
이 책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신비한 체험에 비중을 둔다. 그래서 “성경말씀은 이제까지 알만큼 알았으니 말로만 믿지 말고 체험을 해야 한다”(4권, 153쪽)고 주장한다. 이처럼 말씀보다 체험을 중시하는 태도는 성경말씀의 가치와 목적에 일치되지 않는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은 성경의 유익함에 대하여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라고 말씀하였다. 즉 신앙체험이 우리의 믿음을 강화해 주는 유익함이 있지만, 그러나 성경말씀은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성경말씀은 신자를 온전하게 한다. 그리고 체험은 말씀신앙을 확증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말씀과 체험이 건전하게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면 이 책자가 "하나님 안에서의 죽음"이라고 표현하는 입신상태에서 천국에 있는 바울로부터 직접 성서비평에 가까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즉 “실제로 천국에 갔을 때 바울사도에게 물어보았는데 바울은 자신이 감동을 받아 쓴 바울서신들보다 주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4복음서가 훨씬 더 유익하다”(5권, 69쪽)고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정통교회는 정경 66권에 대하여 동등한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각권마다 하나님의 계시로서 각기 고유한 목적과 기능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저자는 천국에서 바울에게 ‘성경에 대한 신학적 비평’을 들어야 하는가? 이런 표현은 저자가 신학교 강의실이 아니라 천상의 사도로부터 직강을 듣는다는, 일종의 직통계시를 주장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2. 신론
이 책자는 하나님을 경박하게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금 하늘나라에서는 극성스럽게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너희들 때문에 특별한 회의가 열렸어!”, “나(성부)는 저들에게 기름을 부어주겠다. 그리고 저들이 기도하다 보면 지칠 수 있으니 아들아(성자), 너는 저들에게 더 강력하게 능력을 주고, 성령은 불과 기름과 은사를 주자!”(1권, 71쪽). “예수님의 머리카락은 금색이며 눈에는 쌍꺼풀이 있다”(1권, 44쪽). “예수님의 집에서 한참 찬양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장엄한 음악소리가 나더니 성령님께서 오셨다”(1권, 147쪽). “얼떨결에 본 것은 성령님의 눈인데 아주 예쁜 눈 모양의 모습이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1권, 148쪽).

또한, “하나님께서 대뜸 하시는 말씀이 ‘OO아! 나의 돈까스야!(예수님이 지어주신 별명) 너 왜 나의 날을 더럽혔느냐? 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았지? 내 마음이 심히 슬프고 가슴이 아프구나’라고 하시면서 보좌 앞에 엎드려 놓고 막대기 같은 도구로 대 여섯 대를 때리셨다.” “OO이는 팔굽혀 펴기를 중단하고 개다리 춤을 사정없이 흔들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3권, 172쪽). 말하자면, 하나님은 사람들과 별명을 부르며 교제하고, 주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체벌한다거나 팔굽혀펴기를 시키고, 사람이 개다리 춤을 추면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무계한 주장이다.

하나님과 피조물의 교제가 이런 모습이었던가? 하나님은 보이는 물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이시다(신 4:15; 요 4:24). 하나님은 소리를 치시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에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신 29:4; 빌 4:7). 하나님은 실제로 매를 들어 치시지 않아도 우리를 책망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합 1:13; 계 2:4). 이 책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주일을 성수하지 않았다고 체벌하고 팔굽혀 펴기를 시키는 분이 참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은 인간을 대하실 때 외모를 보시지 않고 마음을 보신다(삼상 16:7; 롬 2:11). 그래서 우리가 춤을 추지 않아도 진정 회개하고 믿음으로 나아올 때 기뻐하신다(사 57:15; 히 11:6).

3. 그리스도론
이 책자는 천상의 예수님을 외적 형체를 가진 존재이고, 사람의 몸속에 자유로이 출입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이것은 신인합일을 주장하는 영지주의 신비사상에 해당한다. 우선, "예수님의 머리카락이 금색이며 눈에는 쌍꺼풀이 있다. 예수님은 미남이다"(1권, 44쪽)라든가 혹은 "예수님이 오셔서 목사님의 몸속으로 들어가시자 설교가 더 강력해지기 시작했다"(1권, 66쪽)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앞 인용문에서는 다분히 개인의 선입견(예수의 초상화를 보았던 기억)에 의존하여 천국의 예수님을 설명한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러나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예수님의 실제 모습은 오늘의 팔레스틴 주민이나 북아프리카 사람에 가깝다고 한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500여 명의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지상의 몸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셨고, 본 그대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막 16:19; 행 1:9-11). 따라서 천국의 예수님의 모습은 성경의 설명에 일치해야 마땅하다. 예수님이 사람의 몸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접신상태를 의미한다. 성경은 예수님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영'(성령)이 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롬 8:9; 고전 6:19).

또한, 예수님과 관련하여 그의 신성을 모욕하는 내용들이 등장한다. "예수님께서는 개고기는 영적으로 유익이 별로 안 되니 가급적 안 먹는 게 좋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개는 음란한 짓을 많이 하는 짐승이니 영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3권, 168쪽), "빨간 색의 스포츠카에 예수님께서 카레이서 같은 복장의 멋진 모습으로 앉아 계셨다··· 지금부터는 이 차를 타고 쇼핑을 하자꾸나"(4권, 133쪽), "주님은 '그래 극장에서 상영하기 전 시사회 할 때 보았느니라'하고 말씀하셨다"(4권, 159쪽),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는데 주님께서도 세 개 정도의 보따리를 갖고 천사들과 동행하셨다"(5권, 104쪽). 정통교회는 성경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시라고 고백한다. 빌립보서 2장은 그 사실을 잘 묘사해 준다. 즉 그는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동등하신 분이시다(6). 동시에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7).

그런데 이 책자는 예수님을 감각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즉 ‘21세기의 예수’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개가 음란한 짐승이라고 말했다거나 예수님은 카레이서처럼 복장을 갖추고 쇼핑을 다닌다거나 극장 시사회에 가서 미리 영화를 관람한다거나 성지여행을 위해서 보따리를 싸서 신자들과 동행하였다거나 하는 적나라한 표현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성경말씀이 말하지 않는 그 이상의 것을 말하려는 유혹은 바로 사탄의 속삭임이다. 이런 간증들은 하나님을 인간의 범주로 끌어내리는 신성모독이 아닌가 생각된다.

4. 인간론
'다른 복음'이라는 사실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일로 입증된다. 이 책자에서도 동일한 경향을 보여준다. "천사가 돌아가기 전에 목사님께 꼭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간다"(1권, 70쪽), “(목사님의) 보물창고는 가장 높은 직급의 천사들이 지키고 있었고 귀중한 것이 많았다”(1권, 78쪽), "목사님이 설교하면 예수님이 흉내를 내시고 박수도 치고 좋아하신다"(1권, 108쪽), "목사님이 기도하는 자리에는 큰 불덩이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2권, 56쪽), "목사님께서 설교하면 두 명의 천사가 강당 십자가 밑에 앉아서 큰 책에 낱낱이 기록했다"(2권, 186쪽).

이런 묘사들은 예수님과 천사와 인간의 관계를 혼란 속에 빠트린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피조물인 천사와 인간과는 구별된다. 천사도 인간과 동일한 하나님의 피조물이지만 인간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받았지만 그렇다고 신적 존재로 높여질 수 없다. 그런데 이 책자는 천사가 김 목사에게 머리를 숙인다거나 목사가 설교하면 예수님이 흉내를 내신다거나 두 명의 천사가 김 목사의 설교를 기록한다는 것은 ‘인간의 신격화’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잠간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신 적이 있었다(히 2:7). 그 말은 예수님이 성육하신 상태로서 천사보다 열등한 지위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천사보다 뛰어나지 못하며 예배와 존경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천사는 하나님이 보내셔서 인간을 섬기는(돕는) 존재이다(히 1:14) 따라서 김 목사에게 천사들이 꾸벅 절하고 천국으로 돌아간다는 표현은 천사보다 높은 존재라는 것을 암시한다고 본다.

그리고 아주 결정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나는 지옥의 하늘에 있는 십자가에 매달린 지 수 시간이 지날 때까지 나의 육체는 꼼짝하지 못했다"(4권, 96쪽). 이 구절에서 당황스러운 것은 '지옥의 하늘에 십자가가 있다'는 것과 김 목사가 그 십자가에 매달려 예수님의 십자가를 연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말은 지옥에 있는 영혼들이 십자가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되어서 제2의 구원기회설이 추론될 수도 있다. 그리고 저자가 실제로 두 손과 두 발에 대못을 박는 경험을 했다고 표현하는데 내심 자신의 환상체험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동일시하지는 않는지 우려가 된다. 성경말씀에는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갈 5:24)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예루살렘에서 십자가 죽음을 재현하고 있는 그런 행위적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정과 욕심을 버리도록 촉구하는 영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이런 간증들은 지옥과 십자가의 역할에 대한 오해와 김 목사의 신격화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5. 성령론
가장 민감한 문제는 성령론에 관련되어 있다. 저자는 성령의 불세례를 강조한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불세례를 언급한 곳은 마태복음 3장 11절(눅 3:16)이다. 즉 “나는 너희에게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서 불세례는 ‘회개를 일으키는 죄에 대한 심판과 정화’를 의미한다. 또한 오순절운동사에서도 불세례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죄의 세력에 대해 승리하는 성화의 능력부여’로 이해되었다. 즉 성령이 불과 같이 임하면 강력한 회개가 일어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어 영적 각성을 일으키는 부흥운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세례운동을 일으킨 어윈의 경우 불세례를 불의 세기로 구분하여 더 뜨거운 불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므로 불세례운동을 왜곡시킨 장본인이 되었다. 그것은 성령을 인격(person)이 아니라 능력(power)으로 받아들인 까닭이다.

또한 이 책자는 성령의 불세례를 주술적 능력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내 몸 안에 있는 불들은 강력한 공격형 무기로 바뀌어 화염방사기처럼 강력하게 발사되었다”(4권, 27쪽), “우리가 ‘성령의 독가시!’ 하면 우리에게서 독가시가 자동적으로 발사되었다”(4권, 213쪽), “성령의 불! 하면서 소리나는 곳을 향하여 외쳤는데 (성미를 훔쳐 먹던) 쥐의 뇌와 내장이 터졌다”(4권, 244쪽).

이런 황당한 주장은 ‘주술적 능력을 위로부터 받는 것’이라고 믿고 있음을 말해준다. 더 나아가 종종 주술적 능력의 전이를 말하고 있다. “설교하실 때마다 성령님의 불이 나에게 쉴새없이 들어왔다”, “어이구 신난다. 더 강하게! 더 뜨겁게! 예수님께서 목사님의 몸에 손으로 부채질하시며 불을 집어넣으시는 것 같았다. 목사님께서는 아휴 뜨거워하시고는 펄쩍펄쩍 뛰면서 설교를 하셨다”(1권, 159쪽). 이런 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한다면 기독교와 주술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또한 '방언기도'와 '성령춤'은 귀신을 몰아내거나 병 고치는 신유사역이라고 주장한다. “모두들 방언기도를 하니 마귀들은 하나둘씩 나가떨어져 버리고 말았다”(1권, 175쪽), “예수님은 나에게 성령춤을 통하여 병 고치는 사역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성령춤을 통해서 병을 고치려면 적어도 대학교 2, 3학년 수준은 되어야 한다”(2권, 284쪽). 마가복음 9장에는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므로 병 고치시는 기사가 나타난다. 예수님은 말씀의 권세로 귀신에게 명령하여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셨으며 일으켜 세우셨는데(25-27), 제자들에게는 기도 외에는 귀신들이 나갈 수 없다고 하셨다(29절). 즉 귀신추방이나 신유사역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권세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수단, 즉 방언기도나 성령춤 그 자체가 귀신을 몰아내고 병을 고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이들은 성령의 신비한 은사들을 경험하고자 집중하고 있다. 즉 영안이 열리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다. 즉 “세상의 하늘은 육신으로 볼 때는 파랗지만 영적으로 보면 마귀들이 너무 많아 새까맣게 보인다. 교회에서 기도한 후 집에 도착하여 침대에 잠깐 누웠는데 악한 영들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악한 영들의 크기는 날파리나 모기 하루살이 같은 작은 것들에서부터 시작하여”(4권, 176쪽). 이것은 ‘표적과 기사’를 구하는 감각적 신앙을 자극하는 표현이다. 더 나아가 생명이 없는 사물과도 대화하는 대물방언을 하게 되었다는 간증도 등장한다. “스타렉스가 ‘안 돼요! 싫어요! 저를 주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4권, 119쪽). 이런 극단적인 경험들은 신자들이 무익한 것에 마음을 쏟게 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사 44:9; 딛 3:9).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다음의 글에서 발견된다. “예배시간에 성령의 강력한 기름부으심이 넘치고 흘렀으며···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사들이 천국에서 왔는데··· 큰 캠코더를 가지고 춤을 추면서··· 예수님도 큼직해 보이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4권, 230-231). 즉 성령의 강력한 기름부으심이 넘칠 때 영안이 열려 큰 캠코더를 들고 촬영하는 천사들과 예수님을 보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란 무엇인가? 예배자가 예배시간에 누리게 될 환희를 위하여 성령께서 기름을 부으시는 것인가? 또한 천사와 예수님이 카메라를 들고 예배를 촬영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성경의 ‘기름부으심’은 성별과 사명부여를 의미하므로 남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시 20:6; 단 9:25; 행 4:27; 10:38). 그리고 천사와 예수님은 영적 존재이므로 카메라를 돌려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또한 이 책자는 자신들의 성령체험들을 비판하는 정통교회에 대하여 성령훼방죄로 정죄한다. “성령훼방죄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 때문에 드러내기를 몇 번이나 망설이고 망설였으며 그로 인하여 한국교회가 받을 충격과 여파를 생각하면 참으로 조심스럽다··· 방언이나 예언 통변을 무시하거나 아예 반대하는 경우··· 이외에도 인본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잘못 주장하는 것까지 포함한다면···”(4권, 246-248쪽), “저희를 이단으로 몰아가려는데 그쪽을 보시는 주님의 눈은 어떠십니까? 예수님은 내가 그들은 그들대로 무서운 심판을 하리라”(5권, 162-163쪽).

마가복음 3장 29절에서 성령훼방죄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신성모독’을 의미한다. 정통교회가 이단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성령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 책자는 정통교회의 비판에 대해 성령훼방죄로 정죄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심판을 선고하고 있다. 물론 정통교회의 비판이 절대시되는 것은 위험하지만, 건전한 성령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비판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요일 4:1).

6. 천사와 귀신론
이 책자는 영계를 출입하는 교인들의 간증모음집이다. 이 교회의 신자들은 매일 저녁마다 방언기도회(21:30-07:30)에 참석하여 예수님이 환상 중에 나타나 자신들을 천국이나 지옥으로 인도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기도하는 중에 천사들이나 혹은 여러 귀신들이 나타나 천국과 지옥을 왕래하게 하고 또는 겁을 주거나 시험을 하는데 그 간증들은 대부분이 황당무계한 내용들이다.
우선, 천국의 천사들은 그 수가 많으며 신자들의 집(고층 아파트)을 부지런히 건축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예수님을 따라서 갔는데 많은 천사들이 분주히 다니고 무슨 공사를 하고 있었다”(1권, 74쪽). 또한 천사들에게 각기 공로에 따른 직급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천사들은··· 지상에서 올라오는 건축 재료들을 쌓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책망을 받고 제대로 쌓으면 칭찬과 함께 직급이 올라가기 때문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쌓는다”고 말한다. 일면 받아들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다음의 문장들은 너무도 빗나간 경우들이다. “날개가 2개 달린 천사보다 4개 달리 천사가 직급이 훨씬 높고 강하다”, “목회를 크게 잘하는 목사들은 그만큼 능력이 있기 때문에 천사의 날개가 6개다”(2권, 241쪽). 특히 수호천사의 날개 수가 목사의 등급을 말해준다니 아주 황당한 주장이다. 목회자는 천사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엎드려 성령의 능력을 구하므로 성공적인 목회를 감당하는 것이다.

요즘, 교회사에서 오랜 논쟁거리인 수호천사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수호천사 개념은 히브리서 1장 14절의 말씀,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를 잘못 받아들인 결과이다.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이 수호천사를 각 신자에게 보내주셨는데 그 수호천사를 신자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신자는 ‘천사동원권’을 가진다고까지 주장한다. 이 본문에서 ‘부리는 영’이란 ‘섬기는 영’을 잘못 번역한 것이며 천사가 하나님의 뜻에 의존하여 사역하는 영임을 말하지 인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책자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모양을 한 많은 귀신들을 소개한다. 심지어는 떼어 낸 눈알과 같이 생긴 귀신이 통통 튀면서 등장하기도 한다. 자신 안에 들어있는 귀신들의 정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나의 몸속에 들어 있는 귀신들은 지옥의 왕인 사탄의 특별명령으로 왔다”(2권, 36쪽)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신을 지옥의 왕 마귀인 사탄에게 데리고 가셨다”(2권, 201쪽)고 말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현대인들의 문화생활에 귀신들이 깊이 침투한 사실을 간증하므로 반문화주의 태도를 드러내기도 한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의 세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4권, 20쪽). 즉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에서도 귀신이 나와 들여다보는 신자에게로 들어갔다고 말한다.

또한 문제가 되는 구절은 예수님이 다가오시는데 갑자기 귀신으로 돌변하였다거나 예수님이 옆에 계시는데도 귀신에게 “이런 미친놈의 귀신을 봤나”(2권, 93쪽), “야 네가 그 개똥인가 사탄인가 하는 왕 마귀냐 이 개새끼야!”(2권, 201쪽)하며 욕을 했다는 표현들이다. 특히 예수님이 갑자기 귀신으로 변한다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지금껏 예수님으로 나타난 존재를 귀신으로 볼 수도 있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귀신에게 쌍욕을 해야 귀신이 물러간다면 이런 행위가 과연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물리치는 것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귀신론에 집착하면 온통 귀신천지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오히려 성도는 항상 선한 일에 열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딛 2:14). 따라서 우리의 초점이 그리스도에게 있어야지 귀신에게 집착하는 일은 결코 유익함이 없다.

7. 천국론
저자는 천국을 현실의 연장으로 이해한다. 즉 “천국에 목사님의 집은 340층이었고, 평수로는 인천시보다 조금 더 크다”(1권, 76쪽), “천국에는 이 땅에서 교통수단으로 사용하는 택시나 버스 기차 탱크 등 모든 것들이 다 있다”(5권, 114-115), “십일조를 잘하고 목사에게 충성하며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은 천국의 큰 집에서 살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천국에서의 삶에도 빈부의 격차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표현들은 ‘상급’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다분히 세속적 자본주의 가치관이 내재하는 표현들을 쏟아내는 것이다. “목사님의 집이 벌써 900층이 넘었으며 내 집은 700층이었고, 수많은 천사들이 집을 세우는 공사를 하고 있다”(3권, 90쪽). 그러므로 천국은 지금 성도들이 올라와 거처할 수 있는 ‘고층아파트 건축’이 한창이라는 것처럼 들린다.

천국은 어떤 이들이 들어가는가? 이 책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피를 먹고 회개치 않고 죽어서 가는 지옥을 보여주셨다”(5권, 218쪽), “지옥에 갔을 때 주님께서는 주일날 돈쓰는 사람들이 가는 지옥을 보여주었는데 그 지옥은 폭포지옥이었다. 폭포지옥은 이상하게도 물 색깔이 검은색이었으며”, “주일날 일하는 사람들이 가는 지옥을 보여주셨는데 아이스크림 지옥이라고 말씀하셨다”(5권, 219쪽). 이 책자는 예수를 믿지만 율법을 범한 사람이나 주일을 온전히 성수하지 않고 거래를 하거나 일하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말하여 행위구원론을 강조한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구원론을 가르친다(엡 2:8; 롬 1:17). 행위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결과인 것이다(약 2:17).

또한 이 책자는 천국에 입장하려면 ‘출입증’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3권, 68쪽). 중세 가톨릭교회가 연옥에 있는 성도를 위해 면죄부를 구입하면 즉각 천국에 입장하게 된다고 미혹했던 역사를 기억하는가? 예수님은 그렇게 가르치시지 않았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마 7:21). 천국의 입장은 ‘출입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회개하고, 바리새인들보다 진정 의로워야 하며, 온전히 순종하는 성도가 들어간다.

진정한 성령운동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자는 왜곡된 성령운동의 부산물이다. 이 책자의 심각한 문제점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신비체험을 강조하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인간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신이 인간에 들어가 합일되는 신비주의를 주장하고, 지도자를 신통한 존재로 묘사하여 신격화하고, 불세례를 주술적 능력으로 해석하고, 방언기도와 성령춤이 귀신추방과 신유의 능력이며, 수호천사들의 능력에 따라 목회의 성공이 좌우되고, 귀신과의 영적 전쟁에 몰입하도록 유도하고, 천국에는 빈부의 격차가 있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행위로 가능하다는 해석의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자의 주장들은 성서적 근거를 제시할 수 없는 경험적인 것들이다.

성령운동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관대함을 주장한다. 몰트만이 지적한 것처럼 오랫동안 기독교가 ‘성령망각증’에 걸려 성령론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하심’을 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성령운동에 대해 여전히 반대하는 입장은 ‘은사중지론’을 주장한다. 즉 성령의 다양한 은사체험들은 성경시대에 적합한 것이고 그때에 모두 종결되어 오늘에 반복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오히려 성령의 은사들은 더욱 다양하고 풍부하게 경험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각종 은사체험들을 모두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 4:1)고 권면하였다.

이 책자를 읽고 난 후 발견한 문제점들이 있다. 첫째로, 천국과 지옥의 입신체험이 상당히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심리적 기대와 선험적 기억들이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즉 성령의 인도하심 중에 실제로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는 것과 인간적인 심리적 기대 사이에서 그 빈틈을 악한 영이 노릴 수 있다는 말이다. 둘째로, 저자인 김 목사의 신격화를 우려하게 되었다. 셋째로, 날마다 기도하는 중에 예수님과 천사가 나타나 자신들을 천국과 지옥으로 데리고 간다는 말은 이미 이들이 신비주의에 빠져있음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의 특성은 신비적 요소들이 많지만 신비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신비주의는 아니다.

넷째로, 이 책자가 말하는 종말론적인 천국은 빈부의 격차가 있고, 상급으로 주어지는 고층아파트와 각종 현대문명으로 가득한 자본주의 냄새가 풍기는 곳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가 정작 이런 것일까? 다섯째로, 성령의 불세례는 주술적 능력이고 그 능력은 전이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성령의 다양하고 풍성한 은사들이 계발되어야 한다. 그러나 방언기도나 성령춤과 같은 것이 귀신추방이나 신유능력의 원천으로 오해되고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영안이 열려서 천사와 귀신들의 영적 실체를 보게 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에 집중하는 것은 우리 신앙에 결코 무익한 일이다. 수호천사 개념도 성령의 역할과 충돌을 빚을 수 있고, 신인합일의 영지주의 사상에 일치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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