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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코트와 성냥개비... <영웅본색>
2009년 01월 28일 (수) 08:10:58 전강민 기자 minslife@amennews.com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있는 허리우드 클래식시네마, 서대문에 있는 드림 클래식시네마에서는 몇 해 전부터 지난 고전 영화들을 상영하며 옛 추억과 감동을 다시 팔고 있다. <더티 댄싱>을 시작으로, <벤허>, <미션>에 이어 현재는 <영웅본색(英雄本色)>을 상영 중이다.

<벤허>나 <미션>과 같은 감동대작에 이어 <영웅본색>이라는 오락영화가 상영되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거나 불편해하는 이도 있겠다.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필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는 <영웅본색>은 가히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영화라고 본다.

   
<영웅본색>은 허투루 평가할 영화가 아니다. <벤허>와 <미션>이 수 십 년이 지나도 여전한 감동을 주는 걸작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영웅본색>이 그러한 작품성을 지닌 영화가 아니라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영웅본색>은 그들이 누리지 못한 것을 누렸으니, 바로 한 시대 청소년 문화를 송두리째 지배한 경험이 있다. <벤허>를 보고 감동받아 마차타고 다닌 사람 있을까? <미션>을 보고 은혜 받아 짐 묶고 폭포를 올라간 사람 본 적 있는가? <영웅본색>을 보고 아빠 바바리코트를 입고 입에 성냥개비를 물고 질겅거린 이들... 부지기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현재 30대 중반에서 40대 사이의 한국남성이라면 십중팔구는 집안 거울 앞에서 이 짓을 한번쯤은 해 봤을 것이다. 그리고 계중 몇몇은 그 복장으로 등교해서 교실에서 그 행동을 했다.

<영웅본색>의 등장은 이후 ‘홍콩느와르’라는 새로운 영화 장르를 만들어냈다. 여기서 홍콩느와르의 특징을 간단하게 설명해 본다. 사전적인 의미의 느와르란 ‘1940∼1960년대에 만들어진 프랑스의 범죄와 폭력의 세계를 다룬 검은 영화’라고 한다. 홍콩에서 만들어진 느와르는 이외에 몇 개 특징이 더 있다. 일단 주제가 그들의 의리다. 모든 주제는 똑같다. 의리다. 의리를 표현하는 방법만 다를 뿐 결론은 같다. 또 하나의 특징은 총을 쏜다는 것. 그냥 쏘는 것이 아니라 마구 쏴 댄다. 총알? 안 떨어진다. 권총이 기관총같이 수도 없는 총알을 내뿜는다. 탄창 가는 장면, 거의 없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항상 총알이 없다. 주인공은 거의 죽는다는 또 다른 특징도 있다.

이런 장르적 특징의 터를 닦은 것이 바로 <영웅본색>이고, 오우삼 감독이었으며, 주윤발이 었다. 이후 목숨 걸고 도박하는 이들의 의리를 담은 <지존무상>, 외로운 오토바이맨의 비애를 그린 <천장지구> 등이 홍콩느와르로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느와르의 마지막이자 절정을 장식한 영화 역시 오우삼 감독, 주윤발 주연의 <첩혈쌍웅>이다. 작정하고 온갖 폼을 다 잡은 <첩혈쌍웅>이후 홍콩느와르는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어서인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영웅본색>을 영화관에서 다시 봤다. 처음 볼 때는 복사본 비디오테이프로 봤다. 극장에서는 처음 봤다. 역시 촌스러웠다. 액션장면이 촌스러웠고, 당시 거의 신인배우였던 장국영의 연기가 촌스러웠다. 하지만 스토리 및 대사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멋있었고, 주윤발의 연기는 그대로 현재 영화에 옮겨와도 전혀 유치하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20년 전에 받았던 감동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말끔히 날아갔다.

   

<영웅본색>이 한 시절 청소년문화를 풍미할 수 있었던 것은 주윤발의 공이 크다. 그럼 왜 그 당시 청소년은 <영웅본색>에 나온 껄렁껄렁한 주윤발에 열광했을까? 교과서에 나오는 표현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막 지나고 있던 청소년에게 반항심 가득하면서도 남성미 촬촬 넘치는 주윤발이야말로 영웅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주윤발은 ‘윤발이 형님’으로 통했다. <영웅본색>의 주윤발은 천하무적 수퍼히어로가 아니다. 현실과 공상을 구분할 줄 아는 중고등학생이 수퍼맨이나 스파이더맨, 람보나 코만도를 자신의 영웅으로 삼지는 않는다. 혹 정신줄 놓은 학생이 그들을 따라할 수 있으나 대부분은 주변 인물-두 가지로 좁혀진다. 운동선수이거나, 동네에서 한 주먹 하는 형-을 자신의 인생 롤모델로 삼곤 했다. 주윤발은 옆집 형 같은 이미지로 친근하게 다가와서는 온몸으로 한 주먹하는 형님들의 표본을 보여 주었으며, 악당을 향해 ‘쌍권총질’을 할 때면 마치 잘 다져진 운동선수의 몸동작을 보는 듯 했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아도 유머를 잃지 않았으며, 의리를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였다. 그러다 마지막에 비통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드디어 옆집 건달 형은 영웅의 지위에 올라서고야 만다.

미국 영화에서도 이 비슷한 영웅이 있으니 바로 ‘존 맥클레인’ 형사다. <다이하드>라는 영화에 등장한 이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아저씨는 기존에 보지 못한 현실적인 연기로 액션영화의 흐름을 바꾸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액션도 그렇지만, 어수룩한 맥클레인 형사의 모습은 리얼 그 자체로 다가왔다. <람보>의 스탤론 아저씨는-대한민국 육군 보병을 나온 대부분의 남자 성인이라면 누구나 콧방귀를 뀌게 만든-M60 기관총을 한손으로 들고 쏘는 장면을 선보이면서 곧바로 ‘가짜’ 사나이가 돼 버렸다. 어린아이를 마치 책가방처럼 들고 다니면서 적진을 뛰어다니던 <코만도>의 아놀드 현 주지사 아저씨는 그 근육질의 몸매가 통째로 가짜처럼 다가왔다. 존 맥클레인 형사는 이러한 모습에 반하는 그럴듯한 모습과 행동으로 아마 외국 청소년들의 영웅이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다이하드>가 1988년, <영웅본색>이 1986년이니 아마도 윤발이 형이 브루스 아저씨에게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혹자는 이렇게 불만을 표할 수도 있겠다. <영웅본색>의 주윤발도 허무맹랑한 건 마찬가지 아니냐고. 아니다. 주윤발은 탄창을 갈아 넣어야한다는 사실을 깜박한 것 말고는 모든 것이 그럴듯했다. 그럼 빗발치는 총에 맞지 않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윤발이 형은 총알을 피해 다니지 않았다. 총알이 윤발이 형님을 피해 날아갔을 뿐이다.

돈과 명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현대 사회. 배신과 협잡, 이기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삭막한 사회에 인간을 향한 ‘의리’에 모든 것을 걸었던 20년 전의 영웅이 던지는 감동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이가 바로 <영웅본색>에 나왔던 그 영웅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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