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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씨가 ‘두 증인’인가?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 26
2008년 12월 05일 (금) 00:00:00 장운철 기자 kofkings@amennews.com

요한계시록 11장의 핵심 내용 중 하나가 바로 ‘두 증인’이다. 그 두 증인에 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지만, 그 중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가 누구인가?’일 것이다. 이만희 씨도 그의 책 <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도서출판 신천지, 2005)에서 그것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었다. 계 11장의 제목을 ‘두 증인과 일곱째 나팔’로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과연 두 증인은 누구인가. 그 관점으로 계 11장의 이 씨 해설을 직접 살펴보자.

“두 증인은 계시록 10장과 같이 하나님의 펼친 책을 받은 사도 요한과 본장 1절에서 지팡이 같은 갈대로 비유한 육체를 말한다. 이들은 증인이라는 말 그대로 계시록 사건을 보고 들은 대로 증거할 두 증인 중에서 성령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아 역사하는 자는 ‘사도 요한의 입장에 있는 목자’이다(계1:2, 22:8)”(이 씨의 책, p.226).

무슨 말인가? 한 마디로 ‘두 증인=이만희’라는 말이다. 두 증인 중 핵심 인물은 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 바로 ‘사도 요한의 입장에 있는 목자’, 즉 이만희 씨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 씨는 성경(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좋은 용어(?), 즉 ‘사도 요한’, ‘보혜사’, ‘이긴 자’ 등을 모두 자신과 연결시킨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위해서 성경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교주 신격화 만들기’라는 이단 사상의 전형인 셈이다.

 

   
 
   ▲ 이만희 씨(pd수첩 촬영)
 
그렇다면 과연 ‘두 증인=이만희’라는 게 맞는지 따져보자. 먼저 ‘두 증인’이 언급된 요한계시록 11장의 성경구절을 보자.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 옷을 입고 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리라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계 11:1~4, 개역개정성경).

주어와 술어 등의 관계를 좀더 명확하게 살펴보기 위해서 영어성경(NIV)을 한 번 더 보자.

[I was given a reed like a measuring rod and was told "Go and measure the temple of God and ... And I will give power to my two witnesses, and they will prophesy for 1,260 days clothed in sackcloth." These are the two olive trees and the two lampstands that stand before the Lord of the earth.](계 11:1-4, NIV)

‘지팡이 같은 갈대’(a reed like a measuring rod)를 받은 이는 요한이다. 그것을 준 이는 계 10장과 연결해 볼 때 ‘힘센 천사’로 이해하는 게 자연스럽다(계 10:1). 그 천사는 요한에게 명령을 한다. 그 명령한 내용은 위의 영어성경(NIV)의 밑줄 친 부분이다. “가서 측정하라 ···그리고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겠다. ···”(영문 해석)는 것이다(3절). 이 명령에 요한은 그것을 따르는 ‘행위자’로 등장한다. 따라서 그 명령의 내용에 등장하는 ‘두 증인’에 요한이 들어가지 않음이 논리적으로 자연스럽다. 만약 두 증인 속에 요한이 들어간다면, 또는 요한을 가리킨다면 ‘내가 너에게 권세를 주겠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했어야 옳다. 요한은 이미 그런 모양으로 직접적인 명령을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기록하라”(계 1:19), “···올라오라”(계 4:1) 등을 통해 그 예를 살펴 볼 수 있다.

따라서 본문 문맥상 요한이 두 증인에 속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사도 요한의 입장으로 왔다는 이만희 씨도 두 증인에 해당되는 인물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내용면에서 한 가지를 더 논리적으로 살펴보자. 계 11:3절의 내용은 ‘두 증인은 예언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 옷을 입고 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리라”). 예언에 관한 신구약 성경 각각 한 곳을 펼쳐보자.

먼저 요엘 선지자가 말한 내용이다(구약성경).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 2:28)

그것을 사도 베드로가 인용했다(신약성경).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 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사도 베드로는 구약성경 요엘서를 인용하면서 “그 후엽라는 시점을 “말세엽로 해석했다. 말세에 ‘예언’, ‘환상’, ‘꿈’ 등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세 용어들은 독립적이지 않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일어난다는 점에서 그 맥을 같이 한다. 또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2:21, 욜 2:32)는 뒤따르는 구절로 집중된다. 따라서 예언, 환상, 꿈 등의 일들은 ‘예수=구원자’라는 결과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동일한 의미군에 속한다. 즉, ‘예언’이란 ‘예수=구원자’임을 드러내는 행위인 것이다(지난 분석 25의 예언 행위 결과 참조).

신구약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예언의 의미와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의미가 서로 다를 수 없다. 성경은 하나의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다(딤후 3:16). 따라서 ‘두 증인은 예언한다’(계11:3)는 의미는 두 증인 역시 ‘예수=구원자’임을 드러낸다는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이 씨가 만약에 ‘두 증인’에 속하고 싶으면 ‘예수=구원자’라는 예언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의 책을 통해서 나타난 그의 주장을 보면 그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살펴보자.

“계시록이 응하고 있는 오늘날은 계시록에 약속한 이긴 자(계2, 3장, 21:7)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그 말씀을 믿지 않는 자이며 마귀의 영에게 조종을 받는 자이다. 천하만국은 약속한 목자 앞으로 나와야 한다”(이 씨의 책, p. 37).

“계시록에 예언한 말씀이 이루어질 때는 계시록에 약속한 구원의 처소와 구원의 목자를 찾아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그 구원의 목자는 니골라당과 싸워 이기는 자이며 구원의 처소는 그가 인도하는 장막이다”(이 씨의 책, p.40).

무슨 말인가? 결국 이만희 씨 자신을 통해야만 구원의 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이 씨가 올바른 ‘예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두 증인’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갈대=사람’?

이 씨는 ‘두 증인’은 특별한 두 사람을 뜻하는 것이며 그중 주인공에 해당되는 인물이 자신이라고 소개하고 있다(위의 이 씨 해설). 그 말이 맞다고 해보자. 이 씨의 설명에 올바른 요소가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맞다고 가정하는 게 아니다. 이 씨는 혼동하면 안 된다. 두 증인 중 또 한 인물에 대한 이 씨의 설명이 너무도 우스꽝스럽기 때문에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일 뿐이다.

두 증인 중 한 인물이 이만희 씨라면, 또 한 인물은 누구인가? 이 씨는 또 한 인물을 설명하는 성경구절이 ‘지팡이 같은 갈대’라고 한다(계 11:1). 이 씨는 그 갈대가 ‘한 사람’을 의미한다고 했다. 즉, ‘갈대=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그의 황당한 주장 역시 직접 살펴보자.

“요한이 받은 지팡이 같은 갈대는 무엇인가?(1절) ···마치 예수님을 의심한 세례 요한처럼(마 11:7) 믿음이 연약한 자이기는 한데 요한이 의지하며 함께 일하는 일곱 금촛대교회의 성도 한 사람을 말한다”(이 씨의 책, pp.222-223).

이 씨는 진도를 조금 더 나갔다. ‘아담-하와’, ‘모세-아론’ 관계를 예로 들면서 두 증인 중 한 인물을 ‘영적배필’에 해당된다고까지 했다. 계속해서 그의 재미있는 주장을 들어보자.

“그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붙여주신 하와와도 같고 모세에게 데려다주신 아론과도 같은 영적 배필이다”(이 씨의 책, p. 223).

다시 말해 두 증인은 ‘이만희 자신과 또 자신을 돕는 누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과련 그런가? 이 씨의 주장대로 ‘갈대=사람’일까?

이 씨는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마다 마치 그것이 성경적인 뒷받침이 있는 양 종종 여러 성경 구절을 인용해 왔다. 그러나 이번 ‘갈대=사람’에 대해서는 마 11:7을 제외하곤 아무런 성경구절의 언급이 없다. 그냥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식이다. 이유는 없다. 왜! 그나마 인용한 마 11:7이 ‘갈대=사람’을 입증해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www.amennews.com)가 이 씨를 대신해서 ‘갈대’ 관련 성구 몇 개를 찾아보았다. 갈대의 의미를 다른 성경 구절을 통해서 밝혀 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 달을 숨겼더니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출 2:2-3)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마 11:7)

위 구절들은 자연 상태의 갈대(reed)를 의미한다. ‘연약함’의 의미가 있다. 이 씨가 예로 들었던 마 11:7절 마찬가지다. 다른 구절을 살펴보자. 계 11:1의 ‘갈대 지팡이’가 직접 언급되는 구절도 있다.

“이제 네가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 왕 바로는 무릇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왕하 18:21)

“보라 네가 애굽을 의뢰하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일반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에 찔려 들어가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사 36:6)

이 때의 ‘갈대 지팡이’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방 나라인 애굽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 것이다.

무슨 의미인가? 이 씨가 주장하려고 하는 ‘갈대=사람’의 논리는 성경적인 지지를 전혀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갈대=사람’인가? 

너도나도 ‘두 증인’

본문의 ‘두 증인’의 의미가 자신에게 해당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만희 씨 외에도 여럿 있다. 한결같이 정통교회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거나 그 정도로 이단성이 짙은 이들의 주장들이다.

지난 2008년 6월 5일 한국장로교연합회(한장총) 이단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한국 이단들의 요한계시록 오용의 역사에 대한 비판과 정통 견해 제시’ 세미나에서 최병규 목사(한장총 이단상담소장)는 그 부분을 잘 정리했다. 즉 박태선, 정명석(JMS), 홍종효 씨 등이 이만희 씨와 유사한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홍종효 씨는 한 동안 이만희 씨와 협력관계로 있었다. 그 두 사람이 ‘두 증인’으로 행세를 하기도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에서도 이 부분을 잘 지적했다. 예장합동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교주 이만희) 연구보고서’를 통해 “이만희 씨는 홍종효 씨와 함께 자칭 ‘두 증인’, 또는 ‘모세’와 ‘아론’으로 행세하기도 했다”며 “그러나 둘은 1987년 사소한 문제로 다툰 후 결별”하게 됐다고 보고했다(2007 92회 총회). 이 씨의 주장대로라면 홍 씨는 이 씨의 돕는 배필로써 ‘두 증인’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부부 싸움을 통해 이혼(?)한 셈이 된다. 이후 홍종효 씨는 자신이 ‘진짜 재림예수’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두 증인이란?

그렇다면 성경 본문의 ‘두 증인’은 무슨 뜻일까? 먼저 ‘두 증인’이 실제적인 인물인가 아니면 상징적인 인물인가 하는 점부터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만희 씨는 실제적인 인물, 그것도 자기 자신이 바로 그 ‘두 증인’이라고 해설해 보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상징적인 인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유는 성경 본문 스스로 그렇게 암시를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계 11:4을 보면 ‘두 증인’은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와 같은 존재로 불린다.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계 11:4).

다시 말해 ‘두 증인=두 감람나무=두 촛대’가 모두 동일한 의미의 용어라는 말이 된다. ‘촛대’에 대해서는 이미 성경 본문 스스로 교회를 상징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계 1:20 ‘일곱 촛대는 일곱교회니라’). 따라서 ‘두 증인’ 역시 상징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의미는 ‘교회’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이다.

번(Vern)은 ‘두 증인’을 ‘교회’로 보았다. 그는 “계 1:12, 20절에서 일곱 촛대가 1:11의 일곱교회를 대표하는 것과 같이 증거하는 교회를 대표한다”며 “일곱 촛대보다 두 촛대가 언급된 것은 스가랴 4장의 유형을 따르고 모세와 엘리야가 짝을 이룸을 반영하기 위함(참고 마 17:3-4, 신 17:6, 눅 10:1)”이라고 설명했다(Vern S. Poythress, p. 137).

권성수 역시 같은 의견이다. “두 촛대는 계시록적 이미지로 보면 교회이다”며 “교회는 ‘두 증인’으로 1260일 동안, 즉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 어간에 복음을 전(예언)하는데, 교회는 반석 위에 세워져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마 16:18)”고 설명을 했다(권성수, pp.256-257).

이만희 씨는 성경을 해설한다고 하면서 ‘교회’가 앉아야 할 자리에 자신이 앉으려는 크나큰 오류를 범했다. 이미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까지 넘보려고 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어찌해야 할까?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하루 속히 회개하는 것 말이다.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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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의실상> 분석 이전기사

1) 계시록의 주제가 과연 ‘이만희’인가
2) 계시록의 중심인물이 과연 '이만희'인가
3) 환상계시는 뭐고 또 실상계시는 뭔가
4) 이만희 씨가 말하는 '계시의 전달 과정'
5) '사도 요한 격의 목자'란게 왜 필요할까
6) "계시록 바르게 가르쳐 줄 사람 없다"?
7) 비유, 예수님 의도와 이만희 씨의 곡해
8) 예수님이 영으로 이미 재림하셨다고?
9) 요한이 '성령에 감동하여' 허상을 봤다?
10) '알파와 오메가'도 비유로 보는 이만희 씨
11) 이만희 씨는 자신이 神이라 생각하나
12) 왜 부활하신 예수님을 성령체라 하는가
13) 예수님께 직접 안수 받은 자?
14) 도대체 누구를 드러내려 하는 것인가
15) 계시록의 '이기는 자'가 이만희 교주인가
16) 이만희 씨의 ‘만나 교리’ 맞나?
17)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18) 이만희 씨 마음 문 흔들릴까?
19) 이만희 씨의 계시록 4장 오해
20) 이만희 씨 때문에 요한이 울었다?
21) 이만희 씨는 비유풀이의 달인?
22) 이만희 씨는 14만4천명에 속하나?
23) 이만희 씨의 성경해설 원리
24) 이만희 씨가 말하는 '재앙'
25) 이만희 씨가 말하는 '예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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