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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대한 믿음과 종교 구분 못한 도킨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비판
2008년 06월 25일 (수) 00:00:00 양봉식 기자 sunyang@amennews.com

종교의 기원
   
어느 시대나 어떤 사상이 그들을 지배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삶에 지배당하는 사상의 문화가 나타난다. 최근 열광하는 도킨스의 무신론을 주장하는 <만들어진 신>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배경으로 한 절대진리를 무시하는 사상에서 출발하고 있다. ‘너에게 진리인 것은 네게 진리이고, 나에게 진리인 것은 내개 진리다’라는 것이 오늘날 현대인들의 사고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진리는 배태적인 것이라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묘한 모순이 있다. ‘네 의견도 맞고 내 의견도 맞다’는 것을 수용하는 다원주의 논리가 ‘이것은 절대 진리다’라고 말하는 또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절대 불갗라는 독재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절대진리라는 또 하나의 의견 역시 다원주의에서는 ‘그래 그런 주장도 일리가 있다’라는 것에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점에 있어서 도킨스도 같은 부류일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우리는 분명한 세계관을 가지고 산다. 기독교 세계관이든 그렇지 않든 자신이 교육받고 배운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고 사고하고 결정하며 산다. 도킨스는 무신론이라는 신념의 세계관에서 기독교를 보고 그것이 옳다고 믿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려 한다.

도킨스는 “신을 믿는 것은 태양 주위를 도는 찻주전자를 믿는 것과 같이 완전히 비이성적인 믿음이다”라고 말한다. 신을 믿는 것은 터무니없는 수준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도킨스의 이런 주장은 전통적인 무신론자들의 무신론의 증명에서 등장하는 주 메뉴다. 독일 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흐는 신을 믿는 이유는 위로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에 의해 형이상학적이고 영적인 위로를 주기 위해 몽상처럼 만들어진 허구라는 주장이다. 1841년에 한 철학자의 주장은 서구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포이에르바흐의 문제는 “무언가를 원하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존재한다는 졈이다. 이것은 모든 세계관들이 인간의 필요나 갈망에 대한 반응임을 암시한다. 이런 세계관은 무신론자이건 유신론자이건 모두 해당한다.

칼 막스는 사람들이 신에 대해 망상에 사로잡히는 것은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되었기 때문이며 사회주의 혁명이 도래하면 종교는 자연적으로 소멸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로이드는 신에 대한 믿음의 기원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를 향한 갈망에 있다고 주장했다.

자연주의 진화론의 결과가 종교
도킨스는 종교에 관해 자연주의적 설명을 제시한다. 신에 대한 믿음은 뭔가 다른 진화론적 매커니즘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무신론에 대해 “자연적인 성향이 잘못된 방향으로 빗나가 결국에는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어떤 것으로 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연한 부산물이나 유용한 무언가가 빗나간 것이 유신론의 결과라는 것이다.

도킨스의 이런 다윈적인 유신론의 결과에 대한 주장은 인간의 도덕적인 삶과 공의를 실천하려는 근본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게 한다. 인간의 도덕적인 삶에 대한 권리는 인간 스스로 부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무너뜨리거나 파괴하는 이들에 대한 긍극적인 심판의 기준은 없다. 스스로 우연하게 생긴 존재가 무질서하게 삶을 산다고 해도 해가 될 것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도킨스가 ‘우연한 부산물’이라고 말하는 그의 논리는 결국 그 중요한 증거들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도킨스 스스로 ‘과학’이라는 유용한 도구를 내팽개치고 있으면서, 무신론의 주장에서는 자기 모순을 자처하고 있다.

도킨스는 물론 포이에르바흐, 막스, 프로이트 모두 종교를 자연주의적인 설명의 범주에 넣으려 한다. 종교가 전적으로 인간의 정신 안에서 발생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증은 순환적 논증이다. 이것은 신은 없다는 가정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으며 이 가정과 전적으로 일치하는 신에 대한 설명이 제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부분 기독교는 다신론에서 일신론을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그러나 종교의 역사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화를 보여준다. 기독교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이단발생은 이런 사실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도킨스가 말하는 자연적 진보에 대한 증거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다양화가 맞을 것이다. 문제는 도킨스의 이런 주장을 사람들이 아주 쉽게 동의한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폭력이 오히려 이런 선동주의를 더 선호하고 열광하며 지지한다. 그래서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자신의 논리를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포악한 행동은 정당화시킨다. 도킨스는 신의 존재나 행위를 끌어들지 않고 종교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려는 자연주의자들의 전통 안에 서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주장에 대한 극복해야 할 한계를 내다보지 못한 실수를 하고 있다.

정의할 수 없는 종교 개념
종교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그리고 그 정의들은 어느 것도 계속해서 지지할 만큼 탄력적이거나 대표적이지도 않다. 더구나 종교 정의는 중립적이지도 않다. 그 이유는 개개인의 특정한 목적들과 편견들을 반영하는 데서 오기 때문이다. 맥그라스는 “누군가 동감하고 있는 믿음들이나 제도들을 지지하기 위해, 그리고 그가 반대하는 믿음들과 제도들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형성된다”고 말한다.

   
▲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강연하는 맥그라스 교수
도킨스도 예외는 아니다. 그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맥그라스에 의하면 도킨스는 “신앙의 기원에 관한 야심찬 이론들을 끌어 와 쓰고 종교의 본질에 관하여 굉장히 문제의 여지가 많은 일반화된 주장들을” 한다. 즉 보편적인 설명을 가능하게 하는 개념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종교의 문화적 맥락에 대한 제국주의적 태도라고 밖에 묘사될 수 없는 것을 채택한 것과 함께 체계적인 경험 연구에 있어 중요한 기초를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즉 도킨스의 주장은 과학적인 논리와 합리성이 결여된 보편적인 신념들과 태도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것은 그가 신봉하는 혹은 절대라고 믿는 다윈적인 토대 위에 세워진 가치이기 때문이다. 19세기 가정들은 종교가 보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이제 폐기되었다. 어떻게 가톨릭과 기독교가, 이슬람과 유대교가 보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오히려 더 첨예하게 대립하고 중립적이지도 않다. 같은 기독교 안에서도 오순절과 개혁주의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도킨스의 종교에 대한 신념은 이미 한물간 이론을 들고 비판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삼지창을 든 사오정이 람보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꼴이다.

종교와 신에 대한 믿음을 구별해야
도킨스는 ‘모든 시대 모든 곳에 존재하는 인간의 주된 결핍의 본질적 유사성’이라는 프레이저의 가정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 이론으로부터 ‘믿음이 욕망에 의해 채색되도록 하는 보편적 경향’이라고 종교의 기원을 단정한다. 이것은 ‘욕구 충족’을 종교의 전체적인 특징으로 보는 도킨스의 시각이다. 정말 그런가? 우리가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의 결론인가?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이지 않다. 욕구충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는 아니다. 인간이 세계를 인지하는 방식에서 자신의 약함에 대한 절대자의 의존은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지하고 적응하는 방식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개인적인 편견을 가진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을 현상 유지하는 데 주로 드러난다. 어떤 것이 사실이기를 바라고 그것을 믿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우리가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그것들이 나와 모든 세계를 조화롭게 여긴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울증에 빠진 이들은 세상이 나를 공격한다고 생각하고 우주는 악의 적인 것이라고 여긴다. 이런 인지적 편견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 하는 사고체계다.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바꾸길 거부하는 뿌리 깊은 저항이 있다. 이 저항은 우리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을 가지게 하는 인지적 편견들에 의해 보강된다. <만들어진 신>은 이런 무의식적 편견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인지적이고도 무의식적 편견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과학적인 검증이나 체계적인 고찰을 통해서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설명을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도킨스의 종교적 고찰은 이런 방법을 적용하기보다 인지적 편견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자의 태도와 사뭇 다르다.

그의 이런 편견이 가져다 준 결과는 ‘종교’와 ‘신에 대한 믿음’의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신이 없는 종교는 사라질 것이라는 단순한 도식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제한된 논의는 종교적 개념이나 사고방식들이 인간 지성의 온전함을 파괴하거나 인간의 마음의 순수함을 오염시키며, 엉터리이거나 유해하다는 것은 논증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게 한다. 그래서 도킨스에게서는 종교에 관련한 지식과 경험, 공동체 소속감, 윤리적 결과, 신비적 경험 등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게 된다.

기독교에 있어 신조와 교리는 종교적 측면에서는 쉽게 이해되거나 설명되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신앙의 선언문들로 기독교 공동체의 근본적인 자원들과 경험들을 오랜 기간 성찰한 후에 나오게 된 것이다. 이것은 심리학적 기능들이나 도킨스의 명제적인 설명에는 들어맞지 않는 것들이다. 도킨스는 종교를 좋아하게 되는 심리적 과정이 있고 그 결과 종교가 삶의 선택적 우위를 점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심리적으로 종교를 준비하지 않는다.

더구나 도킨스는 뇌의 작용과 심리적인 요인이 우리는 종교적인 방향으로 가게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매우 조악한 주장이다. 인간의 인지의 과정이 종교적 개념을 생성하고 유지한다는 도킨스의 주장은 제대로 증명된 것도 아니며, 더구나 인지의 과정이 종교적 개념만 생성돼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입증하지 못한다. 이것은 애석하게도 도킨스에 있어 종교는 그 자체가 선택적 우위가 없는 부수 현상이며, 사회적·심리학적·역기능적이다.

도킨스는 신의 계시에 대해 무지하거나 혹은 사람의 자연적인 두뇌 작용에 대한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그는 이것을 구별 못해서 믿음에 대한 것을 종교적인 것으로 전락시키며, 단순화시키는 실수를 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이드는 종교를 문명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현상으로 파악했으며 베르고트는 “종교적 믿음의 타당성은 과학적 추론에 의해 실증될 수도 없고 논박될 수도 없다”고 분명히 못박았다.

신을 믿는 자들은 정신바이러스 감염자
도킨스가 주장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정신 바이러스’ 개념이다. 1990년대에 그는 그냥 있었으면 건강했을 정신을 감염시키는 어떤 종류의 정신적 바이러스 개념을 소개했다. 컴퓨터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는 것과 같이 믿음이 바로 정신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된다는 그의 주장은 대중들을 자극했다.

신에 대한 믿음은 완전히 비이성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망상에 희생되는 것은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이며, 이것을 통해 전체 인구에 퍼진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바이러스들은 단지 가설로만 가정되는 것은 아니다. 정체를 확인하고 관찰하고 구조와 활동 양상도 있어야 한다. 도킨스는 이성적, 과학적, 그리고 증거를 기초로 한 개념들과 종교적 믿음들 같은 비이성적 개념들을 구분하고 정신적 바이러스는 종교적 믿음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무엇이 이성적이고 과학적인지 결정하고 구별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도킨스는 간과한다. 도킨스의 주장의 문제점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신념이라고 하는 것처럼 그가 말하는 것 자체가 신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즉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모든 세계관은 신념체계의 범주에 속한다. 그것은 증명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것이 세계관의 본질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주관적인 판단을 가지고 있다. 맥그라스는 “완전한 지적 성실성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고 말한다. 즉 도킨스 자신의 생각은 무엇이 이성적이고 참되는지에 관하여 그 자신이 내린 주관적 판단에 희생되고 있고 그저 내부에서 파열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모든 과학자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도킨스의 정신 바이러스 역시 증명될 수 없는 주관적인 것일 뿐이다.

종교는 악인가
도킨스가 알고 있는 신은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을 혐오하고 동성애를 증오하고 인종을 차별하고 유아를 살해하고 대량학살을 자행하고 자식을 죽이고 전염병을 퍼뜨리고 과대망상증에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자,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이다.

그러나 나 역시 이런 신을 믿지 않는다. 기독교도 그런 신을 믿지 않는다. 그의 신에 대한 호전적인 태도는 아마 폭력을 초래한다고 믿는 이슬람의 근본주의, 특히 성전적 형태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종교가 폭력을 일으킬 수 있다. 아일랜드의 구교와 신교의 싸움, 종교 역사 속에 이런 일은 발생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면 폭력은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종교만 폭력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20세기의 역사는 정치적 극단주의도 폭력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남미에서 우익 정치인들과 군대들에 의해 희생된 군사행동,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북한의 정권에 의해 자행되는 민족적 비극은 종교가 아닌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들이다.

소련의 무신론자들이 자행한 교회를 향한 폭력에 대해 도킨스는 답할 의무가 있다. 소련은 1918년에서 1941년까지의 기간에 많은 교회들과 사제들을 조직적으로 파괴하고 제거했다. 중국도 여전히 자유로운 종교활동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목적에 맞지 않으면 죽이기까지 한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도킨스가 주장하는 종교는 폭력을 조장한다는 말은 이런 증거를 통해 거부할 수 있다.

무신론 역시 유신론과 같은 문제점을 강하게 노출하고 있다. 비평을 받을 필요가 있음에도 상대방에게만 문제를 덮어씌우는 처사는 올바르지 못하다. 종교가 무익하고 사회에 해악이 된다고 도킨스를 생각한다. 그래서 종교가 사라질 때 비로소 문명은 유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종교는 더 왕성하게 활동하고 세력을 얻는 까닭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사회가 신을 거부할 때 이를 대체한 대안을 찾게 된다. 그것은 효나 충성, 자유, 평등 같은 초월적 사상들이다. 공산주의가 유물론적 사관에서 무신론을 들고 나올 때 가진 자유와 평등이 낳은 결과를 도킨스는 알지 못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들이 갖는 권위는 신적인 위치에 있으며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는다.

즉 종교만이 갖는 대립적 구도 속의 폭력, 다시 말해 구교와 신교,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립이 불러온 폭력은 종교만의 현상이 아니다. 도킨스는 “내집단과 외집단을 형성하고 유지시키는 것을 조장한다. 이러한 사회적 구획화와 차별이 무너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잘 알면, 그분은 그런 사회적 분열과 일치를 초월하며 철폐하는 것을 가르쳤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즉 도킨스는 종교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점이다. 그는 기독교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왜곡한다. 그는 신에 대한 믿음과 종교를 구분하는 것을 실패했다. 또한 기독교이 핵심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했다. 종교의 외적인 것에만 치중한 그의 비판은 마땅히 철폐되어야 한다. 더구나 종교는 해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성찰하고 우리 삶을 보다 진지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그가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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