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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아래 새 것 없다" 신천지의 계보
호생기도원·장막성전·천국복음전도회·새빛등대중앙교회
2008년 04월 07일 (월) 00:00:00 전정희 기자 gasuri48@hanmail.net

< 바로 잡습니다>

기독교청지기교육원(탁명환 소장과 탁성환, 원세호, 오평호 목사가 주도)이 유재열 장막성전에 들어가서 정화 운동을 한 사실이 없으며, 또한 확인된 바도 없습니다. 첫 장막성전은 유인구(유재열 부) 씨가 중심이 되어 시작되었으며, 후에 유재열 씨가 아버지 유인구 씨를 쫒아내고 교주로 등극한 것입니다. 그래서 소위 유재열 장막성전이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어떤 것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는다. 추수꾼 포교법으로 정통교회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는 이단단체 신천지(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총회장 이만희)도 그렇다. 그 ‘아비’와 ‘형제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큰 미혹성에도 불구하고 덜 유명한 신천지의 ‘가족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신천지의 조부격이 호생기도원(교주 김종규), 아비격인 장막성전(교주 유재열), 큰형님격인 천국복음전도회(교주 구인회), 작은형님격인 새빛등대중앙교회(교주 김풍일)의 과거와 현재를 약술한다(신천지에 대해서는 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 2007년 7월 4일자 ‘가짜로 시작해 가짜와 싸워 이긴 가짜’ 기사참고).

1. 신천지의 ‘조부’(祖父)격인 호생기도원

호생기도원은 김종규(본명 김용기. 1925년생)가 1964년에 세웠다. 위하수증, 위장염, 폐병 등 갖가지 합병증에 시달리던 그가 1963년 자기도 모르는 사이 “죽으면 어디 갑니까?”라고 자문했을 때 예수님이 흰 세마포 옷을 입고 나타나 “가로리로 가야지”라고 했다한다. 다음날 어떤 사람이 ‘가로리’에 가서 시계포를 사주겠다고 해 그곳에서 시계포를 경영하며 성결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날 기도 중에 방언과 방언통역의 은사를 체험했다고 한다.

1964년 1월 4일 김종규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 속칭 사자암 아래에서 방을 빌려 집회를 시작했다. 처음엔 10여명이 시작했으나 점점 신도수가 증가했다. 그 때 명칭을 ‘계시’에 의해 호생기도원이라고 했다. 훗날 장막성전의 교주로 ‘어린 종’이라 불리는 유재열과 그의 부친 유인구, 모친 신종순, 그리고 ‘모세장로’라 불린 외삼촌 신종환도 그의 제자였다. 유재열은 당시 S고 기계체조선수로서 일본 원정시합에 출전하기로 했으나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일본어 방언을 받기만 하면 마음대로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모친을 따라 호생기도원에 출입했다.

김종규는 신도들에게 안수·안찰·방언·방언통역·신유 등 신비체험을 강조하고 교리화하면서 주로 환자들 치병으로 교세를 확장했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의 종’이라면서 말세심판의 피난처요 지상천국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며 그 곳에 주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주를 ‘주님’이라 부르는 여신도로 구성된 ‘12천사’ 조직도 있었다.

2. 신천지의 ‘아비’격인 대한기독교장막성전

 

   
▲ 장막성전의 어린 종 유재열 교주의 설교모습(사진: <한국신흥종교총람>)

가장 나이 어린 교주. 17세에 ‘어린 종’으로 등극한 장막성전의 유재열(1949년생)은 1964년 김종규의 호생기도원에 들어가 열성신도가 되었다. 김종규가 여성신도들과 얽힌 스캔들로 호생기도원에서 쫓겨나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 청계산 저수지 근방으로 옮기게 되자, 유재열의 가족도 그와 함께 이곳으로 왔다. 그러나 과천으로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 김종규는 또 다른 여인과 불륜관계를 맺어 물의를 일으켰다. 이를 목격한 유재열은 김종규를 축출하고 자신이 교권을 장악한 뒤 ‘장막성전’이라 이름을 바꾸어 교주가 되었다.

유재열은 창교신화(創敎神話)를 아주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1966년 3월 1일 유재열이 우물가에서 몸을 씻고 있는데, 태양빛이 강력하게 비추는 것을 27명의 신도들이 보았다는 것이다. 목욕을 하다 말고 방안으로 들어가니 햇빛이 꾸불꾸불 따라 들어와 유재열이 쓰러졌는데, 이 때 자신이 두루마리를 계속 먹고 나서 테이프 같은 것을 입속에서 끄집어내는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유창한 설교가 입 속에서 터져 나왔다고 주장한다. 이후 장막성전에서는 3월 14일을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성탄절’로 지켰다.

유재열은 하나님께서 말세의 심판에 대비해 마지막 종으로서 자신을 세웠으며 심판이 될 때에는 밀실이 있어 그 속에 숨게 되는 숫자는 14만4천명이라고 주장했다. 기성교회를 비롯해 불신자들은 전부 멸망하고 오로지 장막성전 신도 14만 4천명만이 살아남는다고 하면서 1969년 10월 1일에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해 많은 신도들이 집을 팔고 청계산 아래로 몰려들어 제2의 신앙촌으로 불리기도 했다.

유재열은 자신과 부친 유인구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두 증인’이라며 예수께서는 비사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았는데 오늘날 말세지말을 당하여 신령한 것을 밝히 보여줌으로 자신들이 그대로 일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막성전은 7천사 즉 스룹바벨 또는 임마누엘(유인구), 어린 종이라는 삼손(유재열), 여호수아(신광일), 디라(김영애), 미카엘(김창도), 사무엘(정창래), 솔로몬(백만봉) 등 7명의 간부들 아래 12전도사→24장로→48집사→72문도→14만4천 신도의 계급으로 조직됐다(8군왕으로 분류할 경우 7천사에 모세장로 신종환을 포함한다). 신도들은 계급별로 신분을 나타내는 배지를 달고 다녔는데, 유 교주는 주로 설교와 계시, 방언, 통역 등의 일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처음 27명의 추종자로 시작된 장막성전의 교세는 1970년대에 5천여 명으로 급격히 불었으며, 신도의 약 60%가 박태선의 전도관에서 이탈한 사람들이었다.

어린 종 유재열 교주는 스가랴 9장 11절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신도들에게 자신의 왼편 손목을 면도칼로 긁은 뒤 피를 병에 받아 보관하게 하였다. 교주가 신도들에게 ‘사령장’이라는 임명장을 줄 때 보관하고 있던 피로 십자가를 써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후에 사령장은 많이 발행해야 하고 피는 모자라서 돼지피를 섞어 십자가를 써주었다는 설도 있다.

1969년 10월 1일로 예언됐던 말세심판 불바다설이 빗나가자 의혹을 품은 많은 신도들이 장막성전을 등졌다. 1970년 4월 장막성전의 7천사 중 한명인 솔로몬 백만봉이 탈퇴해 재창조교회를 만들었는데, 1970년 9월엔 여호수아 신광일(신종환의 아들)이, 뒤이어 유재열의 외삼촌인 신종환도 탈퇴해 합세했다. 전도관 박태선의 신앙촌에 머물다 1967년 장막성전에 입교한 이만희는 유재열에게 재산을 다 털리고 사기를 당했다며 장막성전을 이탈해 백만봉을 따랐다. 그러나 이만희는 "1980년 3월 13일에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백만봉의 주장과 달리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자 따르던 무리들과 함께 다음날인 3월 14일 안양시 비산동에 신천지중앙교회를 세웠다.

   
▲ 이삭교회 전경(사진: <한국신흥종교총람>)

1980년 교주 유재열이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떠났고, 유 교주를 존경했다는 오평호 목사가 장막성전을 맡아 개혁을 단행한다. 당시 월간 현대종교 발행인이던 탁명환 소장과 탁성환·원세호·오평호 목사가 주도하는 청지기교육원이 교육을 담당했다. 이후 서울대공원계획에 따라 막계리에 있는 장막성전이 헐리고 대신 과천면 문원리에 새부지를 받아 교회당을 건립했다. 예장 비주류 청담동측에서 이들의 전향을 위해 노력했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이삭교회가 창립되었다. 전국 약 80개 지교회로 흩어져 있던 대한기독교 장막성전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이삭교회로 일제히 이름을 바꿨고 13개 노회 60개 교회로 정리됐다.

 

   
▲ 1987년 3월 14일. 이삭교회 창립21주년 기념예배 및 헌당예배 주보(사진: <한국신흥종교총람>)

그러나 개혁되는 듯한 이삭교회는 유재열 교주가 미국에서 돌아오자 개혁을 시도했던 오평호 목사를 그 직에서 해임하고 추방하여 합동비주류에서도 탈퇴해버리고 독자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이삭교회 총회를 조직했다. 80여 개에 이르렀던 이삭교회 지교회들이 2008년 현재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으나 과천시 문원동의 이삭중앙교회는 현재 과천소망교회(담임 장현승 목사)로 이름을 변경하고 예장 개혁국제(총회장 유호문 목사) 교단에 소속해 있다. 교단측은 여러 가지 검증을 한 후 과천소망교회의 가입을 허락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2008년 현재 유재열 교주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는 1984년 3월 서울 충무로에 부인 김모씨 이름으로, 1984년 9월 서울 북창동에 본인 이름으로, 2001년 8월 서울 청담동에 부인 이름으로 각각 고급한정식 식당 OO회관을 개업해 운영하고 하고 있으며, 현재 강남구 청담동의 고급주택가에서 살고 있다.

3. 신천지의 ‘큰형님’격인 천국복음전도회

 

   
▲ 천국복음전도회 구인회 교주의 집회 포스터

일명 ‘새마을전도회’라고 불린 천국복음전도회의 창교자는 구인회(1941년생)다. 구 교주는 은산성결교회의 유년주일학교를 다니다가 1956년도에 박태선 전도관의 신앙촌에 들어가 시온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구 교주가 신앙촌에 들어가게 된 것은 신비체험 때문이었다. 12월 어느 날 새벽에 하늘에서 노란 광채가 보이면서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신앙촌에 들어가라. 그곳은 감람나무 박 장로가 있는 곳이니라. 너는 거기로 가야한다’는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 천국복음전도회 구인회 교주의 집회장면

이후 그는 1968년 가족과 함께 13년을 살던 전도관을 이탈해 유재열의 장막성전에 입교한다. 그가 장막성전으로 옮기게 된 것 역시 꿈에 계시를 받아서였는데 ‘박태선은 한 마귀이며 일곱 마귀는 장막성전의 일곱 천사를 가장한 놈’이라고 일러주더라는 것이다. 1969년 다시 장막성전을 이탈한 구 교주는 71년 1월의 어느 새벽 “만민에게 경배를 받으라”는 음성을 듣고 자신이 재림예수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는 자칭 ‘다윗의 뿌리’, ‘어린 양’,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면서 경기도 부천 소사로 옮겨 몇 사람의 전도관, 통일교, 장막성전 이탈자를 포섭하고 집회를 시작했다.

 

   
▲ 2002년 월드컵대회 당시 포교 중인 천국복음전도회 신도들

 

   
▲ 구인회 교주의 분파 최총일측이 1999년 전국 1만여 교회에 배포한 책자

구인회는 1972년 서울 양재동의 말죽거리에 ‘초막절’(새마을전도회)이라는 이름의 교단을 세우고 부산, 진주, 전주, 대전, 광주 등지에 지회를 조직하면서 교세를 확장했다. 구 교주는 태극기를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라며 1973년 음력 11월 10일 오전 9시에 4만5천도의 뜨거운 유황불이 내려와 장막성전은 불 못이 되고 그곳에 지상천국이 건설된다고 주장했다. 이 때 그는 거액의 돈을 받고 ‘천국행 차표’를 판매하는 등 사기행각을 통해 신도들의 많은 금품을 갈취했다.

구인회는 자신이 예언한 1973년 11월 불심판이 불발로 끝나자 천국복음전도회로 이름을 바꾸고 대구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구 교주는 1975년 2월 사이비종교 일제단속에서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가 1976년 2월 29일 서대문교도소에서 사망했다.

구인회 교주의 사망 후 천국복음전도회는 많은 분파로 나뉘어 소멸된 듯 보였으나 구인회를 따르던 경남 마산의 최총일이 1999년 <새 하늘과 새 땅 지상천국은 재림예수교회에서 이루어진다>는 책 1만권을 전국교회에 배포하면서 활동이 드러났다. 최총일은 이 책에서 자신을 ‘어린양 재림예수 구인회의 아내’라며 “신구약 성경 66권을 완전히 풀이할 수 있는 사람은 다윗의 뿌리, 어린양, 재림예수님과 어린양의 아내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2002년 월드컵경기장 곳곳마다 찾아다니며 열띤 포교활동을 벌여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 최총일측의 집회소와 내부

최총일(재림예수교회천국복음전도회) 외에 구인회의 영이 임했다고 주장하는 단체는 충북 청주에도 있다. 1988년 어느 날 머리에서 테이프가 드르륵 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났고 그 때부터 자신이 재림예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박인수(한국예수교천국복음전도회)다. 2002년부터 청주 죽림동에서 지상천국이 이루어진다고 믿으며 집회를 계속하고 있는 박인수는 본래 천국복음전도회 대구지관에서 일하다가 청주로 내려가 독립한 것이다. 그는 <세계일보> 등 일간신문에 정기적으로 집회광고를 내며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 박인수측의 집회소와 내부

4. 신천지의 ‘작은형님’격인 새빛등대중앙교회

   
▲ 새빛등대중앙교회 김풍일 교주

대한예수교장로회 성경총회 새빛등대중앙교회는 유재열의 장막성전에서 1974년 이탈한 김풍일(1940년생)이 창교한 단체다. 1974년 영등포 시장 내에서 모임을 갖다가 1979년 9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한국예수교실로교회란 이름을 걸고 집회를 했는데 이것이 새빛등대중앙교회의 시초다. 이후 강서구 화곡동으로 옮겨 집회를 하면서 천국복음전도회 이탈자를 포함한 신도들을 많이 모았다.

지난 1991년경 JMS 단체(교주 정명석)가 쓰던 서울 관악구 봉천동 본부 건물로 옮겨 대한예수교장로회 국제실로등대교회라고 하다가 실로등대중앙교회로 이름을 바꾸고, 다시 새빛등대중앙교회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언뜻 정통교회와 비슷하게 보이는 전국교역자협의회, 실로신학원 등의 기관이름도 사용한다.

 

   
▲ 서울 봉천동의 새빛등대중앙교회 전경

김풍일은 1978년 9월 ‘12월 25일은 예수 탄생의 날이 아니다’는 내용의 프린트 물을 만들어 배포하고 1981년엔 ‘기독교의 성서오류를 실상으로 밝힌다’는 내용을 배포하더니 1982년 8월엔 드디어 교리서인 <생명나무>를 발행했다. 여기서 김풍일은 자칭 ‘보혜사’, ‘가지 사명자’라며 한국에 지상낙원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정통교회의 목사들은 개들, 거짓목사는 사냥개, 좀도둑 같은 거짓 목사는 똥개에 불과하다고 맹비난했다. 김풍일은 자신을 통한 새언약의 비밀을 알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데, 성경은 다 짝이 있으므로 짝을 맞추어 해석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진리의 성령을 최초로 받은 사람으로서 계시록을 받아먹어 ‘새언약’말씀을 통달했다는 주장이다.

김풍일은 새언약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한국을 중심으로 지상천국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을 특별한 성지(聖地)로 보고 있다. 즉 ‘봉천’(奉天)이란 하늘을 받든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받들어 모시는 성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봉천동이 14만4천의 구원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역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내용을 <새노래>라는 찬송가로 만들어 교인들에게 부르게 하고 있다.

 

   
▲ 지난 2003년 10월 14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김풍일의 계시록복음대성회

 

   
▲ 해마다 계속되고 있는 김풍일의 부활절집회 전단

지난 2003년 10월 14일 김풍일은 “2000년간 인봉된 계시록을 개봉한다”며 계시록복음대성회를 열고 잠실실내체육관집회를 시작했다. “성경 기록에 예수 믿고 죽어서 천당 간 사람이 현재까지 한 사람도 없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의 천지개벽> 책자도 무료로 배포했다. 이후에도 김풍일은 “성경으로 확인된 4월 17일 부활절 집회에 참석하자”며 해마다 부활절을 즈음해 대형 체육관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의 부활절이 결정되는 방법은 태양신을 섬기는 잘못된 계산법이다”는 주장을 하면서다.

봉천동 본부를 포함한 새빛등대중앙교회의 지교회는 2002년 현재 전국에 약 30여개 있다. 주로 지역 이름을 앞에 두고 ‘새빛’ 이나 ‘등대’를 붙여서 교회이름을 사용한다. 대전새빛교회, 전주새빛교회, 군산등대교회, 구미등대교회 등이 그 예다.

 

   
▲ 김풍일의 새빛등대중앙교회 지교회 명단(출처: 새빛등대중앙교회 요람)

 

 
[ 참고 및 인용자료 ]
이강오, <한국신흥종교총람>, 1992년
탁명환, <기독교이단연구>, 1992년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4월호
월간 <성별>, 1981년 6월호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한국의종교단체 실태조사연구>,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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