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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영혼을 만드는 골짜기일 뿐이다
2008년 02월 21일 (목) 00:00:00 장경애 jka9075@empal.com

<하나님의 얼굴을 엿보다> 중에서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 최요한 옮김 / 복있는사람 펴냄

기독교 세계관의 첫 번째 요점은 이 세상이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은 마치 약탈당한 아름다운 도시와 같다. 기쁨과 평화를 위해 세워졌으나 잔인함과 고통이 난무하는 곳으로 변했다. 굴라크 아르키펠라고의 아름다운 수도원이 소련 스탈린 치하에 강제 노동 수용소 군도로 변한 격이다. 평화와 묵상을 위해 지은 세상이 가치가 떨어지고 상처만 남아 절망과 고통의 장소로 변해 버렸다. 하나님은 세상을 안식과 기쁨이 넘치는 곳, 창조주와의 친밀감과 평화를 맛볼 수 있는 동산으로 만드셨다. 그러나 동산은 황무지로, 아름다운 도시는 재칼들이 득실대는 폐허로 변했다. 세상은 본래 이런 곳이 아니었다.

기독교 신학은 이러한 상태를 ‘타락’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주신 목적에서 타락, 곧 떨어져 나갔다. 온갖 것들이 세상에 기어들어 본래 목적지를 향해 달리던 세상을 탈선시켰다. 섣불리 우리가 아는 세상이 세상의 본래 모습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은 좋은 곳이지만 타락했다. 그러나 본래 모습에 대한 기억과 장래 모습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치 외세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된 나라가 과거에 누리던 자유를 기억하고 장차 해방될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과 같다.

기독교 세계관은 고통의 실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고통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영원히 있지도 않을 것이다. 구원을 그린 위대한 기독교 화폭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단서가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회복이다. 구원은 어떤 점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좋은 창조세계를 본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구원은 재창조이자, 본래 하나님이 의도하셨지만 잃어버린 세상의 순수와 기쁨의 회복이다. 고통과 슬픔은 현존하는 질서의 일부지만 영속하지 못하고 새로운 창조를 통해 치환될 것이다. 고통․핍박․죽음․슬픔은 새 예루살렘에서 있을 자리가 없다. 우리는 우리를 비극에 빠뜨리는 그 힘이 마침내 제거될 것을 희망하며 산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생각과 생활에 존재하는 고통과 슬픔이 만들어 내는 불안한 긴장감을 가지고 살지만, 이것은 훗날 회복되고 재창조된 세상에 밀려날 한시적인 질서임을 확신한다.

‘지금’ 불안은 ‘나중’ 희망의 균형을 잡아 주는 힘이다. 지금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나중에 풀릴 것이라는 기대의 중심을 잡아 준다. 마치 거울을 보듯 우리가 아는 현재는 흐릿하지만 곧 사물의 실체를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현재의 모순이 나중에 풀릴 것이라는 생각은 언뜻 보면 굉장한 변명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는 과학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고전적인 사례로 생각보다 훨씬 일반적인 것이다.

우리는 고통과 슬픔이 정당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난상 토론을 거치지 않더라도 이 점은 분명하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이건 옳지 않아”라고 외치는 무엇이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만일 자연이 우연히 생긴 산물이고 비인격적인 우연한 힘이 낳은 결과라면, 고통과 슬픔이 있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동요될 필요가 없다. 고통과 슬픔은 무의미한 세상의 필연적 결과다. 무의미한 세상에 더해진 무의미한 파편일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여기 모든 일에 정도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순이 있다. 이는 마치 세상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어떤 생각이 내재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기대에 어긋나기 때문에 고통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본성 깊은 곳에 하나님의 성품이 배어 있고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마땅히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만일 우리가 우주를 불공평한 곳으로 생각한다면 공평한 우주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안에 분명 있다는 증거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창조 교리의 결론대로 하나님․우주․인간은 조화를 이루고 있어 비록 미미하더라도 우리의 정신과 하나님의 정신이 어느 정도 일치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공평”의 뜻을 이해한다면 현실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대답은 세상에 대한 과거의 기억과 장래의 희망 안에 들어 있다. 고통이 부당하다는 강한 생각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세상이 어떠해야 한다는 인식 위에 있다. 우리는 실제 경험하는 것과 마땅하다고 기대하는 것이 서로 일치하지 않음을 안다. 이 세상이 우리의 참된 집이 아니라는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세상은 존 키츠의 표현대로, 영혼을 만드는 ‘골짜기’지 우리가 영원히 머물 집이 아니다. 우리는 참된 본향을 향해 이곳을 지나가는 나그네다 노정의 고통은 끝나게 마련이다.

하나님은 고통을 아신다.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이 고통을 겪으시고 아신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고통의 크기를 몸으로 느끼셨고 희생과 그 비참한 무게를 몸소 체험하셨다.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에 발을 들여놓으시고 고통과 슬픔을 겪으셨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상태를 창조주에게 알리려고 파견된 통신원이 아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에 오셨고 세상의 비극과 고통을 직접 경험하셨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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