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라브리 공동체 입구

‘언젠가는 꼭 한 번 가 봐야지’라며 벼르고 별렀던 ‘한국 라브리 공동체’(대표 성인경 목사, 이하 라브리)를 찾아갔다. 그곳을 향해 자동차 핸들을 돌리는 순간 마음이 가벼웠다. 비록 그곳이 거리가 제법 먼 강원도 양양의 한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지만 말이다.

기자의 기억에 새겨진 ‘라브리’(www.labri.kr)에 대한 이미지는 ‘아무나 언제든지 찾아가도 항상 반겨주는 곳’이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약 10년 전 서울 후암동에 라브리 사무실이 있을 때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받은 첫인상이 지금껏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도 아무나 반겨줄까’, ‘차를 한 잔 얻어 마실 수가 있을까?’ 등을 상상하는 동안 기자의 자동차는 어느 덧 기대하던 라브리 앞에 멈추었다. 미리 연락을 안했기 때문일까 입구에 들어서는 마음이 제법 ‘쿵쾅’ 거리기도 했다.

‘삐리리, 삐리리...’
“계세요! 아무도 안 계세요?”
현관문은 열려 있었지만, 초인종을 눌러도 전화를 걸어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넓은 앞 마당 한 켠에 묶인 강아지만 ‘왈왈’ 거리며 낯선 사람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건물 뒤로 가자 누군가가 뛰어나왔다.

“안녕하세요.”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는 이가 있었다. 라브리 식구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최정원 간사(31, 협동간사)가 매우 미안해하며 기자를 안내했다. 그는 라브리의 이모저모와 이곳저곳을 능숙한 솜씨(?)로 잘 설명해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종종 외부 손님 방문 때 안내를 맡은 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자처럼 라브리를 궁금해 하며 이곳까지 직접 방문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 라브리는 기자가 갖고 있던 이미지 그대로다. 조금 더 덧붙인다면 ‘인생의 갈림길에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들의 답을 찾기 위해 누구나 잠시 머물렀다 갈 수 있는 영적인 피난처’인 곳이다. ‘피난처’라는 불어의 단어인 ‘라브리’(L'Abri)와 잘 어울린다. 프란시스 쉐퍼 박사 부부(Francis & Edith Schaeffer)가 1955년에 스위스의 알프스 산기슭 ‘위에모’(Huemoz)란 동네에서 시작한 것이 기원이다.

▲ 넓은 응접실

▲ 좀더 자유스러운 강의실

‘기독교세계관학교’는 라브리의 자랑거리다. 누구나 갖고 있는 인생의 문제들을 기독교세계관의 관점으로 공부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해 보자는 측면에서 개설된 것이다. 한두 가지 주제를 깊이 있게 연구하고 또 그것을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곧바로 적용해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훈련소다. 한 학기(term)는 연구 주제에 따라 1~2주에 끝나는 것에서부터 5~10주씩 진행되는 것 등 다양하다. 개인적인 묵상과 연구 그리고 토론이 자유롭다. 장소가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관계로 공동체 생활이 필수적이다. 하루 1만8천원(7일 미만은 2만원)의 생활비를 지불해야 한다.

“성인 이상이면 누구나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라브리는 공간이 협소한 관계로 정원 12명 이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정원에 여유가 없습니다. 합숙하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시면 신청을 한 후 어쩔 수 없이 조금 기다려야만 합니다.”

8개월째 협동간사로 라브리를 섬기고 있는 최 간사는 라브리를 찾는 이에 비해 공간이 여유롭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했다.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내어 쉼과 함께 그동안 궁금해왔던 인생의 문제들을 삶과 지적으로 해결 받고 싶은 이들이 적지 않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최 간사를 따라 라브리의 둘러보았다. 사방에 많은 책들로 갖추어진 도서관, 금방이라도 난상토론이 진행될 것 같은 대화실, 분위기 있는 응접실, 식당 등이 곳곳에 잘 자리잡고 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간 활용도가 매우 떨어진다는 것이다. 최 간사도 눈치를 챘는지 ‘원래 고속도로 휴게소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었다’며 건물의 내력을 설명해 주었다. ‘어쩐지...’ 한 바퀴 둘러본 후 학교라는 분위기보다는 고급 레스토랑과 같은 곳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 사방에 책으로 진열된 도서관

▲ 인터넷은 최소한으로 제한된다

▲ 쉬는 시간에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다들 모이세요.”
최 간사의 호출이 떨어지자 라브리 식구들이 응접실에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대청소 시간인 것이다. 그렇다고 최 간사나 또는 누군가가 ‘너는 이곳을 청소하고, 너는 저곳을 청소해라’는 식의 강압적인 지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청소를 할까’에 대해서 다들 익숙한 듯 대화를 통해 정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남자 분들은 밖에 나가 눈을 치우기로, 여자 분들은 실내에서 구역을 할당해 청소하기로 했다. 또한 몸이 불편한 한 분을 향해 다들 그를 쉬게 하자는 데 동의했다.

합숙하는 라브리 식구들은 대부분 청년들이다. 그중 신학생(또는 신학 지원자) 비율이 크다. 청년의 때에 신앙과 인생의 철학을 결정해야 하는 일이 보다 크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기독교세계관의 사고를 통해 목회의 길을 잘 닦아 놓으려고 하는 열정도 그 원인일 것이다.

▲ 청소 구역을 정하고 있다

기자는 라브리의 대표인 성인경 목사를 만나려고 했다. 인터뷰 때문이다. 라브리를 둘러보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일까 마침 성 목사가 출타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 독지가가 라브리 사역을 돕겠다며 승합차를 기증하겠다는 것이다. 그 일로 성 목사가 대문을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성 목사는 라브리에 대해 “기독교인이건 비기독교인이건 누구나 아무 때나 오셔서 대화할 수 있는 곳”이라고 정의를 내린 후 연거푸 죄송하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최 간사도 미안해했다. 그래서 기자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자신은 인터뷰 같은 것 해본 적이 없다며 쑥스러워했었는데 용기를 낸 것이다.

“저에게도 근본적인 질문이 있었어요. ‘기독교가 진리라는 것을 과연 어떻게 알 수 있을까?’하는 것이지요. 인간은 유한하고 그리고 이성에도 한계가 있는데 그런 인간이 어떻게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느냐는 궁금함입니다.”

▲ 최정원 간사

10년 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최 간사는 한동대학교 학생 시절 라브리를 알게 되었다. ‘성경과 문화’라는 성인경 목사의 수업을 들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던 최 간사는 청년의 때에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한 번 해결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라브리에 들어오게 된 동기였다.

“마음 놓고 질문만 해도 절반의 답을 얻을 수 있다고들 하잖아요.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지요. 질문이 자유롭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교회에서 ‘기도해봐’, ‘성경 읽으면 답이 다 있다’는 피상적인 답만 많이 들어왔잖아요. ‘정직한 질문, 정직한 대답’이 바로 이곳의 특징입니다. 저는 이것이 맘에 들었어요.”

금년 4월에 퇴소할 예정인 최 간사는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러하듯이 진로에 대한 기도제목도 가지고 있다. 계속 해왔던 대로 직장으로 복귀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길을 선택할지가 관건이다.

“물론 단점도 있어요. 이곳은 워낙 오픈(open)되어 있는 곳이라 사생활이 거의 없어요. 심지어 마음 놓고 통성기도할 만한 곳도 없어요.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말이죠. 그런 공동체 생활을 통해 새로운 인격을 훈련한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어요.”

최 간사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라브리 식구들은 조금 전 정해진 대로 자신이 맡은 구역을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 감시하는 사람도 없고 인상 쓰는 사람도 없다. 라브리 공동체 식구들은 이러한 자유와 책임 속에서 자신에 대해서 발견해 가고 있는 중이다.